평양냉면 총정리와 레스토랑 리뷰 ‘B컷’
정인면옥(과 우래옥), 끝없는 평양냉면의 가격 논쟁과 한식의 맛
올리브 매거진 8월호의 레스토랑 리뷰 대상은 평양냉면이었다. 덕분에 지난 몇 달, 특히 지난 달에 집중적으로 평양냉면을 먹었다. 여기에 원고의 ‘B컷’을 올려 정리하고 당분간은 글을 쓰지 않을 것이다.블로그를 검색해보니 평양냉면으로만 글을 열 다섯 편 썼더라. 이만하면 충분하다. 가고도 안 쓴 곳도 있지만… 그나저나 왜 ‘B컷’인가? 두 가지 가능성을 놓고 고민 끝에 전체를 묶어 개념적으로 접근해 써 보냈는데 수정 요청이 들어온 것. 합당한 요청이고 사실은 그편이 쓰기 덜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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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고 차가운 고깃국물과 메밀면. 두 ‘미션 임파서블’이 대접에서 만났다. 평양냉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한국 식문화의 별종이다. 전통이든 습관이든, 형식 덕에 독특한 입지 또는 위상을 누린다는 말이다. 첫째, ‘집밥 지옥’ 속에서 거의 유일한 프로의 한식이다. 아무도 ‘집밥 같은 평양냉면’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다. 둘째, 그만큼 진입장벽이 높다. 기술의 벽도 높지만 ‘뿌리’나 ‘족보’ 같은 이중 인증 장치가 존재한다. 실향민 또는 그 자손이라거나, 이미 검증된 평양냉면집의 재직 경험 등을 갖춰야 소비자가 ‘진짜’라 인식한다. 셋째, 입지와 위상 덕분인지 음식 바깥에서도 최소한의 체계를 갖추었다. 접객 등 총체적 외식 경험을 이루는 나머지 요소 말이다. ‘노포’라며 좁아터진 방에 신발을 벗고 올라가는 불편함을 감수하게 만드는, 구태의연한 곳도 여전히 있다. 하지만 대부분 적절한 유니폼 차림으로 능수능란하게 움직인다. 넷째, 이 모든 걸 감안하면 적절함에도 매 여름마다 매체를 통해 ‘가격 논란’이 불거져 나온다. 고급 한식으로 정형화된 고깃집의 ‘음식값=재료값’ 논리가 빚는, 기대와 실제 가격 사이의 인지부조화다.
이런 맥락에서 지난 몇 해 동안 평양냉면에 대한 글을 써 왔다. ‘4대 평냉집’ 같은 아마추어적 줄세우기에서 벗어나, 장르화된 평양냉면에 대한 담론의 장을 일구고 인식의 폭을 넓히겠다는 의도였다. 그래서 대체로 긍정적인 시각을 고수해왔다. 하지만 한식 전체가 그렇듯, 평양냉면도 발전을 위해 고민할 때다. 핵심은 전통과 습관의 분리다. 전통의 이름으로 고수하던 것 가운데 습관, 또는 구태가 없는지 재고해야 한다는 말이다. 철학자 줄리언 바지니는 ‘전통은 움직이는 개념’이라고 말했다. 음식문화의 경우라면, 최종 목표인 맛내기의 효율을 위해 더 적극적으로 발전하는 과학기술을 포용해야 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원산지명칭보호(PDO)로 보호받는 전통 치즈 숙성을 기계가 통제하는 온습도에 맡기는 식이다. 평양냉면의 세계는 어떤가. 장작불은 가스불로 바뀌었고, 모터로 작동하는 압출기로 면을 뽑는다. 고기는 육절기로 얇게 저민다. 이 정도로 충분할까? 바뀌는 환경을 따라가기 위한 좁은 폭의 변화로, 소비자보다 생산자의 편의를 위한 것이다. 저온조리가 일상의 영역에 진입한 현재, 더 적극적으로 개선을 모색해야 한다. 설사 서양의 방법론이면 어떻단 말인가. 애초에 가스불과 모터도 서양의 문물이었다. 맛있으면 그만이다. 그리고 더 맛있어질 수 있다.
변화의 가능성이 가장 큰 영역은 국물이다. 물에 고기를 덩어리째 담가 팔팔 끓인다. 물리적 유화가 일어나 국물은 탁해지고, 정수를 바친 고기는 퍽퍽해진다. 하지만 다 먹는다. 맛이 없는데 전통일까? 습관이다. 뜨겁게 먹는 국물에도 안 맞지만, 특히 형용모순적 가치인 ‘맑고 차가운 고깃국물’을 추구하는 평양냉면에게는 핸디캡이다. 온도 때문에라도 고깃국물의 핵심 정체성인 진득함과 감칠맛을 원천봉쇄하기 때문. 젤라틴-콜라겐이 분해된-과 지방의 설 자리가 없다. 그래서 사태 등 기름기 없는 부위를 쓰니 끓여댈 이유도 없다. 따라서 국물 내는 고기 따로, 먹는 고기 따로 역할을 분담한다. 전자는 갈아 표면적을 넓혀 끓이는 시간을 대폭 줄인다. 온도도 낮춘다. 80도면 정수는 충분히 뽑는다. 모양새에 구애받지 않으니 자투리를 활용할 수 있다. 한편 먹는 고기, 즉 고명은 부드러움을 최대한 지켜준다. 진공포장 저온조리도 좋고, 일본식 타다키로 겉만 지져도 맛있다. 굳이 삶겠다면 고깃국물에 익혀 맛을 더한다.
면의 문제는 주로 실행의 영역에 속한다. 냉면은 차갑고, 차가운 것의 매력은 긴장감이다. 육수뿐 아니라 면의 익힌 상태나 온도도 중요한데, 너무 삶아 늘어지거나 미지근한 면을 내는 업소가 있다. 특히 여름에 손님이 몰리면 그렇다. 대접에 나태함이 담긴다. 쫄깃한 면도 마찬가지. 노포라는 훈장을 단 곳들이 그런다. 물론 ‘평양냉면=메밀면’의 정체성 공식만으로도 문제다. 메밀은 곡식 아닌 열매, 글루텐을 전혀 함유하지 않으니 반죽이 탄성 없이 퍽퍽하다. 늘리지 못하니 틀에 눌러 뽑는 것이고 면도 힘이 없어 ‘툭툭’ 끊어진다. 그래서 전분의 힘을 빈다. 6:4, 7:3 같은 비율 이야기가 나오다는 맥락이다. 하지만 수치까지 굳이 따질 필요가 없다. 쫄깃함은 평양냉면뿐만 아니라 면 음식 자체의 정체성을 거스른다. 국물과 함께 자연스레 넘길 수 없기 때문. 함흥냉면의 전분면, 배달 중국집의 소다면이 의미 없는 이유다. 잘 안 씹히고 넘기면 목이 메는 면은 맛보다 관리의 편의를 좇은 결과다. 평양냉면에는 이런 면의 자리가 없어야 한다. 한편 가격이 올라가면서 면의 양으로 갈음하는 경향도 경계 대상이다. 200~250g까지는 괜찮지만 무려 300g을 내는 곳도 있다. 성인 남성에게도 벅찰 수 있는 양이다.
면과 국물이 만난 맛은 어떤가. 다들 표준어도 아닌 ‘슴슴함’을 들먹인다. 심심함으로는 심심한 것이다. 이북이 기원인 평양냉면과 잘 붙는 것도 같다. 나도 이상적으로는 그렇게 믿는다. 무심한, 또는 아닌 듯 그러한 맛. 고기 국물로서 최소한의 두툼함을 품은 육수 위로, 고소하다기엔 좀 넘치고 구수하다기엔 또 살짝 모자란 메밀향.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들척지근함을 필두로 복잡하게 엉겨 붙은 맛의 타래가 천천히 흘러간다. 요즘 부쩍 생각하는 수동적 공격성(Passive-Aggressiveness)의 맛, 재료의 잠재력을 외면하고 양념으로 끌어내는 맛이다. 어디서 먹든 오래 목이 메고 속이 불편하다.
이해는 간다. 다시 한 번, 왜 하필 맑고 차가운 고깃국물인가. 감칠맛이 딸리니 부득이하게 화학조미료의 손을 빌어야 할 수도 있다. 차가워도 뜨거운 만큼이나 맛을 느끼기 어려우니 간도 세게 해야 한다. 그렇다면 과제는 두 가지다. 첫째, 현실을 인정하고 인지부조화를 보정할 것인가? 맥락을 이해하고 인식을 보정하는 것이다. 슴슴하지 않고 그럴 수도 없다. 크게 보아 ‘담백한 한식’이라는 선입견의 수정 과정 가운데 일부다. 둘째, 이를 바탕으로 딸려 나오는 반찬까지 한데 아울러 맛을 조정한다. 신맛의 김치까지 가세하면 평양냉면은 한 그릇으로 완결된 맛을 이룰 수 있음에도 더 강한 맛의 반찬을 습관적으로 내는 곳들이 많다. 더 맵고 짜고 달아서 평양냉면의 경험을 파괴하는 수준이다. 주방장과 찬모로 갈리는 두 세계의 갈등을 중재할 필요가 있다. 의미 없는 반찬을 없애면 간단히 해결된다.
고명은 완전한 습관이다. 국물에 흩뿌리는 파나 청양고추도 마찬가지. 하지만 시급한 건 계란이다. 음식과 어울리는지도 의문이지만 문제는 학대, 즉 과조리다. 흰자는 뻣뻣하고 노른자는 목이 멘다. 비린내와 노른자에 낀 녹태까지, 계란이 입맛 떨구는데 이인분을 한다. 후자는 흰자의 황과 노른자의 철이 만나 생긴 황화철 때문이다. 계란을 과조리하지 않고, 삶은 뒤 바로 찬물로 식히면 막을 수 있다. 삶은 면을 찬물로 식히는 냉면집에서 어렵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거의 언제나 그런 계란이 오른다. 괜찮다고 여겨 소홀했다고 본다. 괜찮지 않고, 바꿀 때다. 아예 없애도 좋다. 한편 채소 고명은 좀 더 철의 이치에 호응해야 한다. 여름의 배와 무는 철도 거스르지만, 그만큼 맛도 없다. 연변이나 일본으로 건너간 냉면에는 수박이나 토마토가 오른다. 무와 배에 익숙하다면 거부감 느낄 수 있지만, 더 자연스러운 해법은 아닐까. 고민해볼만 하다.
마지막으로 음식 바깥의 과제다. 만 원 대인 가격에 기본적으로 불만이 없다. 그릇과 식기를 바꾼다고 전제할 때 그렇다. 스텐은 격이 떨어진다. 대접에서는 비린내가 풍기고 젓가락은 미끄러지며 이에 닿는 감촉도 나쁘다. 이미 사기나 놋대접을 쓰는 곳도 있다. 또한 대나무로 유명한 고장이 있다면 그 대나무로 만드는 젓가락도 기대할 수 있다. 한편 냉면만 시킬 경우 선불을 요구하는 업소가 종종 있는데 모바일 시대다. 백화점에서 무선 결제기를 쓴지도 오래다. 그러나 아직도 카드를 가져간다. 전담 직원이 돌아다니며 그 자리에서 계산하면 훨씬 효율적이다. 삶은 계란과 마찬가지다. 해법은 분명히 존재하고 또 어렵지 않다. 이젠 알고 수용할 때도 됐다.
글 잘 읽었습니다.
구구절절 와닿습니다. 계란만 관리해도 내국인 뿐 아니라 서양인들에게도 아리까리한 음식 일순위에서 교토의 전통음식처럼 바뀔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교토의 효테이처럼 계란을 살짝 말랑하게 조리해 넣는 것도 방법일텐데요. 돼지 사육과 유통 과정 개선으로 돼지 비린내가 상당히 사라진 지금에 고추가루와 파를 고명으로 넣는 것도 저는 사실 이해가 잘 안됩니다. 다들 선대에게서 물려받은 전통, 전례겠지요.
저는 냉면은 면이 주인이라 생각합니다. 차가워져 자기 퍼포먼스를 제대로 못내는 극한 상황에 다다른 삐쩍 마른 맛없는 고기도, 맛은 아리까리하지만 목이 메어 훅 들이키는 국물도, 단백질 보충 차원이라 생각하며 먹는 차가운 계란 모두 조연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언제나 면만 바라봤습니다. 하지만 이 글을 읽고나니 울림이 오는군요.
따라서 저 또한 위에서 지적한 그릇의 퀄리티나 서비스, 그리고 결제 방법들을 장안의 모든 냉면집이 스스로 개선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 더 추가하자면 요즘같이 호경기를 만났는데 그걸 오너쉽 없는듯한 지겨워 죽는 표정으로 접객하는 모습은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선대로부터 어느 정도의 DNA를 물려받아 맛의 기본이 살아있으면 서비스와 시설 재투자가 개판입니다. 물론 근대에 와서 도기 그릇 도입이나 고퀄 고명 투입 등으로 많은 혁신을 이룬 곳도 있지만요. 먹으면 먹을수록 평양냉면은 함부로 흉내내기도 따라잡기도 어렵지만 여전히 개선할점도 많은 미스테리한 음식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상한 냉면 먹을 바에야 면발 잘 만든 마포의 기름 순면 비빔국수나 양념 잘 친 막국수 먹는게 훨씬 개이득이라는 것을 깨달아가는 요즘입니다. 냉면이라 이름 붙이고 국물 부은 막국수를 제공하는 많은 곳을 가보았습니다. 정말 이해 안되는 맛인데, 저는 여기에서 전통이란게 역시 중요하구나. 재료값과 공수가 제대로 들어가야 냉면이란게 나올 수 있구나 – 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래옥의 비빔냉면이 고급지게 맛있고 장충동 평양면옥의 심심한 만둣국이 진짜 별미라는 것, 잘 모르실거에요. 그런데 투자 안하기 대마왕인 을지면옥의 수육반접시 메뉴는 왜 사라진겁니까? 메밀값이 천정부지로 올라 냉면만 팔면 안남는다고 찡찡대시면서… 그럼 메뉴 개발과 시설 투자를 하셔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