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정동] 을지면옥-형식의 부재, 의미없는 전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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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기로 을지면옥은 처음일 것이다. 그 동네까지 나갔다면 내 선택은 분명 우래옥일테니까. 과연 우래옥이 음식을 훨씬 잘 만드는가? 그렇다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다만 모든 측면-음식 뿐만 아니라 그걸 에워싼 경험까지-을 감안한다면 우래옥과 다른 평양냉면집의 좌표는 다르다. 굳이 이런 표현까지 써야하는지 모르겠지만, 격이 다르다. 또한 우래옥 육수의 “육향”에 호불호가 갈린다는 이야기를 듣는데, 그게 정말 취향의 문제인지도 잘 모르겠다. GIGO(Garbage In Garbage Out)의 법칙이 비단 먼 옛날 전산에만 적용되는 이론이 아니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그게 결국 취향으로 정당화 또는 포장된 질의 문제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제서야 을지면옥에 가보고서는 놀랐다. 여기는 원래 면이 이랬던 것인가? 더도덜도없이 쫄깃했다. 평양냉면이라고 공감대가 형성된 음식을 먹을때, 나는 오히려 육수보다 면에 더 큰 기대를 품는다. 설사 역사나 전통을 모두 걷어내고 생각하더라도(가능한지는 모르겠지만), 메밀면은 만들기 어렵다. 글루텐이 없어 반죽을 늘리지 못하고 눌러 뽑아야 하기 때문. 수분을 더 흡수하도록 반죽을 숙성시키는 것도, 면을 미리 뽑아 놓는 것도 의미가 없다. 메밀이 한데 뭉치는 순간을 압착과 조리로 포착해 내놓은 결과가 면이다. 여기에 특유의 맛까지 가세하면 메밀면은 귀한 음식이 된다. 달리 말해 평양냉면은 충족시켜주기 쉽지 않은 형식이 가치를 담보하는 경향을 지닌 음식이다. 요즘 좀 늘기는 했지만 왜 여전히 평양냉면집이 동네마다 없고, 진짜 메밀 반죽 면을 내는 국수-소바집이 드문 이유다.

박찬일 셰프의 최근작 <백년식당>에 의하면, 우래옥의 일반면은 메밀과 전분의 비율이 7:3이라고 한다. 내가 생각한 것보다는 전분의 비율이 높은데, 과연 을지면옥의 면은 어떻게 만드는 걸까. 나는 이 면을 평양냉면, 아니면 더 나아가 국수 음식의 바람직한 형식이라고 생각할 수가 없다. 국수라는 음식이 보편적으로 지니는 총체적 질감 때문이다. 무른 밀으로 뽑은 면, 연한 면은 국물이나 양념과 함께 부드럽게 넘기는 목넘김의 맛을 핵심 매력으로 지닌다. 일본의 소바도 면을 목구멍으로 넘겨 그 감촉을 즐긴다고 하지 않던가. 평양냉면의 메밀면도 이 부류에 속한다. 한편 단단한 밀로 뽑은 면, 즉 이탈리아의 파스타는 국물의 힘을 빌지 않은 꼬들꼬들함을 매력으로 지닌다. 연한 밀의 면보다 단단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질기지는 않다.

그렇다면 전분을 많이 넣은, 이런 가는 면은 어떤 경험을 주는가. 이날 식탁에 오른 면은 잘 풀리지 않았고, 따라서 국물과 함께 먹기 불편했다. 덩어리지니 씹지 않고 넘기면 목구멍에 걸릴게 뻔한데, 그렇다고 씹자니 질겼다. 따라서 내가 생각하는 음식 먹는 즐거움에서 벗어나도 한참 벗어난다. 이런 면이 일반적인 함흥냉면류를 먹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면이 이처럼 쫄깃해야 하는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혹 전분을 섞은 면이 제조 및 조리에 훨씬 편하기 때문은 아닐까. 굳이 이 냉면의 경우가 아니더라도, 나는 이 정도로 면이 질겨야 하는 이유를 헤아리기가 어렵다. 요즘 라면의 면은 덜 붇도록 변성전분을 쓰지만, 탱탱할지언정 질기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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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냉면은 돈 주고 사먹는 음식으로서 최소한의 차림새는 갖췄다. 하지만 편육(200g 16,000원)은 그렇지 않다. 들쭉날쭉 썰어 던지듯 담아 내왔다. 전통을 자랑하는 ‘노포’의 음식이라기보다, 직접 만들지 않고 공장에서 떼어다 파는 시장 순댓집의 것 같다. 심지어 집에서도 요즘은 이렇게 음식을 대강 담아 먹지 않는다. 재료 자체에 간을 전혀 하지 않는 전형적인 단점만 빼놓는다면 굉장히 잘 삶은 돼지고기여서 더 안타까웠다. 이래서는 손님도, 재료도, 또 음식을 만드는 식당도 존중받는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과연 가지런히 썰어 담아 내는 게 그렇게 어려운 문제일까? 그렇지 않은데 행동에 옮기지 못한다면 이유는 무엇일까? 보기좋게 썰기 위해 잘라 내야 할지도 모르는 자투리가 아까워서? 아니면, 설사 그렇게 하지 않더라도 어쨌든 손님이 찾아 오니까?

이런 음식을 먹고 나면, 항상 전통에 대해 생각한다. 변하지 않아야 전통인가? 그렇게 말할 수 없는 것이, 원하지 않더라도 세상은 변하고, 또 원하지 않더라도 영향을 받게 된다. 음식도 여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아무도 장작불 때어 물 끓여 조리하지 않는다. 물론 그런 노선을 택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건 100% 가치를 올리기 위한 선택이다. 요즘 우리가 ‘전통’이라고 높은 가치를 매기는 음식점의 대부분은 이런 노선과 별 상관이 없다. 발달한 문물, 또는 기술을 소비자가 아닌 생산자 편의에 맞춰 취사 선택한 다음, 소비자에게 열악한 선택을 정당화하는 구실일 뿐이다. 하동관의 식권이나 이곳의 번호표, 온갖 불편한 식탁과 후진 화장실, 싸구려 멜라민 식기와 불친절한 접객 등이 전부 여기에 속한다. 그런 요소들이 음식맛을 더 좋게 해주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고수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는 왜 그런 곳에 가서 지갑을 열고 ‘인증샷’을 찍고 감사하는가? 과연 그러한 전통은 대체 몇 년이나 묵은 것인가? 우리는 이보다 더 나은 외식 경험을 누릴 자격이 있다.

P.S: 냉면에 얹은 계란은 그래도 상태가 괜찮았다. 노른자 언저리에 밥맛 떨어지는 황의 푸른기가 돌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대체 언제까지 저렇게 노른자는 부스러지고 흰자는 질겨지도록 삶은 계란을 먹어야 하는걸까. 저건 학대받은 계란이다. 계란은 온도-시간에 따라서 아주 다양한 조리 결과를 ‘낳는’ 재료, 전체의 조화를 생각해서 완숙을 하더라도 굳이 저 단계까지 가야할 이유가 없다.

 

 

2 Comments

  • 자거스 says:

    전분면은 그저 싸고 생산자 입장에서 만들기 편하니까 그리 하는 것이겠죠.
    편육은 2013년까지만 해도 더 질이 좋았는데, 작년부터 싸구려 부위를 너무 많이 넣고 있더군요.
    좀 안타깝죠.
    육수가 별 매력이 없어 굳이 찾지는 않는데, 근래 먹어본 중에선 광명시 정인면옥 냉면이 메밀면답긴 했습니다. 요새 수육 소자는 좀 성의없이 내오고, 사진들 보면 수육 대자(2만3천원) 정도 시켜야 잘 내오는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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