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리동] 을밀대-냉면 아닌 냉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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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트위터에 ‘충격 받았다’고 짧게 평을 남겼더니 누군가 이유를 물었다. 그래서 한참 복기했다. 왜 그럴까. 밑으로 파고 내려가 출발점인 음식의 정체성까지 이르고 나니 그제서야 좀 더 분명해졌다. 이 음식은 냉면, 즉 차가운 국수다. 차가우면 수축되고, 수축은 곧 긴장을 의미한다. 냉면을 비롯, 그날 먹은 음식에는 긴장감이랄게 하나도 없었는데 이는 비단 온도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육수는 미지근-얼음장처럼 차갑지 않아서 문제라는 말이 아니다. 낮은 온도에 딸려 오는 신선함이 없다-하고 닝닝한 가운데 부정적인 의미에서 달달했으며, 면은 생기 없이 퍼져 있었다. 비린 계란(노른자 언저리는 역시 퍼렇다!)이며 대강 채친 오이, 시늉만 낸 배-굳이 이 계절에 써야 할까? 다른 업소도 마찬가지다-는 또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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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냉면은 음식으로서 최소한의 체면치레는 했다. 바삭하지 않은 겉에 질척한 속의 부침개? 참을 수는 있다. 하지만 수육은 도저히 음식이라 볼 수 없었다. 정말 물에 빨았다고 밖에 할 수 없는 고기는 얇아도 질겼고 간은 하나도 되어 있지 않았다. 바닥에 깔린, 뜨거운 물에 잠깐 몸 담갔다 나온 것 같은 마늘과 파채는 구차했다. 이 모든 게 재료부터 조리, 서비스를 비롯한 전 영역에 무의식적으로 스며든 방만함이 낳은 결과였다. 전통 아닌 구태다.

IMG_6868늘 말하지만 음식에는 감정적인 가치가 있다. 따라서 특별한 추억 때문에 을밀대를 찾는다면 그건 나름의 의미가 있다. 또한 그런 측면에서 음식에 관련된 일을 업으로 삼지 않는 이들이 마치 모든 평양냉면의 완성도가 동일한 양 전제하고 줄세우기를 하려 들어도 그러려니 할 수 있다. 그것이 음식에 딸린 재미라면 좋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도저도 아니고 자신의 업이 시식과 평가에 얽혀 있는 이라면, 또 모종의 이해관계가 얽힌 것이 아니라면 을밀대의 음식에 찾아가서 먹을 수 있다는 가치를 부여하면 안된다. 냉면이라 보기 어렵고, 또 다른 음식에 분위기까지 감안한다면 차마 음식이라 보기도 어렵다. 음식에 관련된 모든 사안이 세 치 혀 끝에 달린 것도 아니지만, 설사 어떤 이유에서 혀가 전혀 기능을 못하는 상황이더라도 이게 2015년의 서울 한복판에서 모르는 이에게 권할 음식이 아니라는 걸 대체 모를 수가 없다. 평양냉면이 여전히 희소성을 지닌 음식이지만, 여기를 빼놓으면 줄세우기 놀이를 못할 만큼 업소가 부족한 것도 아니고.

 

1 Response

  1. 07/07/2015

    […] 을밀대의 냉면을 먹고 그날, 새벽까지 잠을 못 이뤘다. 머리가 복잡했다. 굳이 표현하자면 그 냉면국물 같달까. 다만 나는 내 머릿속이 복잡하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냉면국물은 어떠한가. 만드는 사람들은 알고 있을까? 먹는 사람들은? 이것이야 말로 수동적 공격성(passive-aggressiveness)가 맛으로 구현된 예가 아닐까? 그날 한 끼 반 정도를 먹었는데, 배고픈 줄도 모르고 새벽까지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