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리동] 을밀대-냉면 아닌 냉면
먹고 트위터에 ‘충격 받았다’고 짧게 평을 남겼더니 누군가 이유를 물었다. 그래서 한참 복기했다. 왜 그럴까. 밑으로 파고 내려가 출발점인 음식의 정체성까지 이르고 나니 그제서야 좀 더 분명해졌다. 이 음식은 냉면, 즉 차가운 국수다. 차가우면 수축되고, 수축은 곧 긴장을 의미한다. 냉면을 비롯, 그날 먹은 음식에는 긴장감이랄게 하나도 없었는데 이는 비단 온도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육수는 미지근-얼음장처럼 차갑지 않아서 문제라는 말이 아니다. 낮은 온도에 딸려 오는 신선함이 없다-하고 닝닝한 가운데 부정적인 의미에서 달달했으며, 면은 생기 없이 퍼져 있었다. 비린 계란(노른자 언저리는 역시 퍼렇다!)이며 대강 채친 오이, 시늉만 낸 배-굳이 이 계절에 써야 할까? 다른 업소도 마찬가지다-는 또 어떤가.
그래도 냉면은 음식으로서 최소한의 체면치레는 했다. 바삭하지 않은 겉에 질척한 속의 부침개? 참을 수는 있다. 하지만 수육은 도저히 음식이라 볼 수 없었다. 정말 물에 빨았다고 밖에 할 수 없는 고기는 얇아도 질겼고 간은 하나도 되어 있지 않았다. 바닥에 깔린, 뜨거운 물에 잠깐 몸 담갔다 나온 것 같은 마늘과 파채는 구차했다. 이 모든 게 재료부터 조리, 서비스를 비롯한 전 영역에 무의식적으로 스며든 방만함이 낳은 결과였다. 전통 아닌 구태다.
늘 말하지만 음식에는 감정적인 가치가 있다. 따라서 특별한 추억 때문에 을밀대를 찾는다면 그건 나름의 의미가 있다. 또한 그런 측면에서 음식에 관련된 일을 업으로 삼지 않는 이들이 마치 모든 평양냉면의 완성도가 동일한 양 전제하고 줄세우기를 하려 들어도 그러려니 할 수 있다. 그것이 음식에 딸린 재미라면 좋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도저도 아니고 자신의 업이 시식과 평가에 얽혀 있는 이라면, 또 모종의 이해관계가 얽힌 것이 아니라면 을밀대의 음식에 찾아가서 먹을 수 있다는 가치를 부여하면 안된다. 냉면이라 보기 어렵고, 또 다른 음식에 분위기까지 감안한다면 차마 음식이라 보기도 어렵다. 음식에 관련된 모든 사안이 세 치 혀 끝에 달린 것도 아니지만, 설사 어떤 이유에서 혀가 전혀 기능을 못하는 상황이더라도 이게 2015년의 서울 한복판에서 모르는 이에게 권할 음식이 아니라는 걸 대체 모를 수가 없다. 평양냉면이 여전히 희소성을 지닌 음식이지만, 여기를 빼놓으면 줄세우기 놀이를 못할 만큼 업소가 부족한 것도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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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을밀대의 냉면을 먹고 그날, 새벽까지 잠을 못 이뤘다. 머리가 복잡했다. 굳이 표현하자면 그 냉면국물 같달까. 다만 나는 내 머릿속이 복잡하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냉면국물은 어떠한가. 만드는 사람들은 알고 있을까? 먹는 사람들은? 이것이야 말로 수동적 공격성(passive-aggressiveness)가 맛으로 구현된 예가 아닐까? 그날 한 끼 반 정도를 먹었는데, 배고픈 줄도 모르고 새벽까지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