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덕동] 무삼면옥- 육수의 딜레마와 맛내기의 정신승리

IMG_5559

자, 그래서 지난 주 공덕동 무삼면옥에 가보았다. 메밀 100% 냉면 보통(11,000원)과 수육 (15,000원)을 먹었다. 그럭저럭 잘 먹었지만 머릿속이 복잡했다. 과연 이 냉면의 목표는 무엇인가. 면도 만들기 어렵지만, 평양냉면의 궁극적인 문제는 육수라고 생각한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차갑게 먹어야 하는 고기 육수가 품고 있는 일종의 딜레마다. 전편 격으로 올린 에서 언급한 것처럼  차갑게 먹기 위해서는 고기국물의 장점, 또는 국물을 내어 먹는 목표 가운데 여러 측면을 포기해야만 한다. 실온, 또는 그보다 낮은 온도에서 굳으면 안되므로 젤라틴이 나오는 부위를 쓰기도 어려우니 정육 위주로 국물을 내야 할테고, 그러면 두툼함이나 감칠맛도 떨어진다. 그럼 과연 거기에 고기국물의 의미가 얼마나 숨어 있는 걸까? 우리가 국물에 우려낼 수 있는 고기의 맛 가운데 많은 부분의 의미가 없어진다. 설사 살려낸다고 해도 기본적으로 냉면이 지켜야 할 육수의 온도대에서는 그 맛을 많이 느끼기가 어렵다.

이러한 딜레마를 감안하면 아주 쉽게 두 가지의 필요성을 생각할 수 있다. 조미료와 소금-설탕류의 강한 간이다. 그러나 이곳은 무삼면옥이다. 설탕, 조미료, 그리고 색소를 쓰지 않는다는 가게의 결심을 이름에 담아 표현한 곳이다. 그래서 육수는? 한마디로 말하자면 ‘굳이 이것이 고기국물일 이유가 있는가’라는 생각이 드는 맛이었다. 평양냉면의 형식이 기본적으로 안길 수 밖에 없는 딜레마에, 그것이 조미료이기 때문에 쓰는 것마저 피한 국물을 내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라면, 뒤집어 그것이 굳이 고기로 낸 국물이어야 할 이유는 과연 어디에 있느냐는 것이다.

물론, 목표를 뚜렷하게 설정한 매장의 노력 자체를 폄하하려고 이런 말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나는 이곳의 맛내기에 얽힌 전략 또는 사고가 한마디로 주객전도된 것은 아닌지 궁금하다는 것이다. 달리 말해, 정확하게 원하는 맛이 있는데 그걸 화학조미료나 설탕을 없이 낼 수 있다는 판단과 기술 아래 이런 맛이 나온 것일까? 아니면 원하는 맛의 좌표와 상관없이, 조미료와 설탕을 아예 들어내는 것을 일단 대전제로 삼아 그 핸디캡 아래에서 지금과 같은 맛을 어쩔 수 없이 내는 것일까? 과연 조미료를 쓴 육수와 쓰지 않은 육수의 차이를 정확하게 인식하고 이 방향으로 간 걸까, 아니면 결과가 어찌 되었든지 어쨌든 조미료를 절대 쓰지 않는다는 마인드로 차별점을 삼고 싶었기 때문에 그냥 빼버린 것일까?

고명으로 얹은 표고버섯을 보고, 나는 이곳이 ‘무삼’면옥일 수 밖에 없는 이유가 후자일 거라고 잠정 결론을 내렸다. 감칠맛이 필요하다는 것은 안다. 하지만 어쨌거나 조미료는 쓸 수 없다. 그럼 대신 다시마나 버섯 등을 쓴다. 그러한 결정이 생산자의 정신은 만족시켜줄 수 있을지 몰라도, 소비자의 입은 만족시켜줄 수 없을 가능성이 높다. 일단 그 효력의 차이가 꽤 큰 데다가. 비슷하게 가지 못하는 수준까지 재료를 써도 비용이 올라갈 수 밖에 없어진다. 나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어쨌든 맛있게 만든 음식을 먹고 싶은데, 이런 철학으로 만든 음식은 대개 빈약한 맛에 정신승리를 끼얹어 모자란 부분을 메우려 든다. 이 시도 자체를 높이 살 수 없는 건 절대 아니지만, 애초에 불가능에 가까운 목표에 도전하기 때문에 결과가 좋을 수 없다는 말이다. 깔끔하고 담백하다기 보다 차라리 아무 것도 없다고 말할 수 있는 냉면 위에, 대체 왜 설탕덩어리처럼 맛을 낸 배를 고명으로 얹을까? 버섯과 화학조미료의 거리는 머니까 그럴 수 있다고 치자. 설탕은 안되지만, 설탕덩어리처럼 단맛만 남은 배를 올리는 건, 원하는 맛의 좌표가 확실하게 존재한다는 가정 아래는 절대 내릴 수 없는 선택이다. 그것은 자연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자연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어색한 단맛은 이곳에서 추구하는 냉면의 맛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조미료의 첨가 여부는 철저하게 생산자의 선택이다. 다만, 정확하게 원하는 맛을 목표로 내린 선택이었을때 소비자가 공감할 수 있다. 그 반대라면 의미도 없고, 명분도 떨어진다. 이러한 사고는 요즘 대세인 유기농-제철 및 지역주의-느린 음식 등등의 만트라로 떨어지는 기술을 덮으려는 시도와 굉장히 흡사하다. 무엇을 어떻게 해도 좋지만, 원하는 맛이 분명하게 잡혀 있지 않거나 있더라도 구현하지 못할때 나머지 모든 건 의미를 잃는다.

IMG_5560

한편 빈약한 겉보기보다는 차라리 먹을만 했던 수육을 놓고 그런 생각을 했다. 과연 정확하게 원하는 맛을 어쨌든 구현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현재 이 가게의 생산자가 가지고 있는 기술 또는 전략 수준으로 그게 가능할 것인가? 덩어리고기를 물에 넣고 팔팔 끓여 육수를 내는 방식으로 이 육수는 어느 수준 이상의 완성도를 어쩌면 거의 절대 내줄 수 없을지도 모른다. 차라리 발상을 완전히 바꿔, 현대적인 서양 육수 추출 법을 응용하는 편이 더 가능성 있어 보인다. 고기는 최대한 작게 조각내고, 끓는 점 이하로 온도를 유지해 최대한 물리적 유화를 막아 기본적으로 맑은 국물을 추출한다. 아니면 압력솥을 이용해 끓이는 시간을 최대한 줄여 여러 번에 나눠 만들거나, 농축액 같은 국물을 뽑아내 물과 섞는 방법도 있다. 이런 방법을 거쳐 뽑았는데도 여전히 탁한 육수는 젤라틴 여과를 통해 냉장실에서, 신경 쓰지 않고 걸러 맑게 만든다. 소든 돼지든, 고명은 어차피 두세 쪽만 가볍게 얹어주면 되므로 진공포장해 저온조리로 익힌 뒤, 찬물에 식혔다가 냉장실에 보관한다. 삶아 만들 때처럼 수축되지 않아 손실도 적고, 또한 부드러우며 부스러지지 않아 얼마든지 얇게 저밀 수 있다.

결론. 평양냉면은 어려운 음식이다. 그 발상과 형식 자체에 딜레마가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정말 필요한 건, 언제부터 존재했는지도 모를 전통의 수호가 아니다. 적어도 과정의 측면에서는 절대 그렇다. 차라리 원하는 맛의 목표를 확실히 잡은 다음, 방법을 혁신에 이르도록 전략을 수정하는 편이 훨씬 효율적이다. 면은 압출기를 도입해서 어느 정도 그 상황에 이르렀다. 육수는 그 정도로 엄청난 설비 없이도 적절한 레시피와 실험을 통해서 혁신이 가능하다. 하지만 누가 그걸 시도할 것인가? 요리 공부하는 젊은 세대도 많을 텐데, 아무도 이러한 방식으로는 생각을 안 하고 있는 걸까?

4 Comments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