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냉면을 위한 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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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  오늘 처음으로 공덕동 무삼면옥에 가봤다. 여러 생각거리를 안겨줘서, 그걸 정리하는 동안 작년에 기고한 글을 전편 격으로 올린다. 이미 비슷한 내용의 을 올린 적이 있으므로, 딱히 새로운 건 없다. 다만 매체 지면의 제한 속에서 한 번 더 정리했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는 정도. 그럼 며칠 더 생각한 뒤 무삼면옥에 대한 글을 올리겠다.

그때 나는 정말 아무 것도 몰랐다. 흔한 국거리인 양지머리를 끓여 차게 식히면 그대로 평양냉면 육수가 될 것이라 믿었다. 선심 쓰는 셈치고 커피 필터로 한 번 걸러주기까지 했다. 그러나 국물은 냉면 육수와 아주 거리가 먼, 고기 맛이 조금 나는 냉수일 뿐이었다. 대접을 부여 안고 나는 향수의 눈물을 흘렸다. 가고 싶다, 서울. 평양냉면 먹으러. 남의 나라였지만 모든 한식을 먹을 수 있었는데, 하필 유일한 예외인 평양냉면이 발목을 잡았다. 육수에 그렇게 실패해 면은 아예 시도조차 안 하고 깨끗이 접었다. 아마추어가 만들 수 있는 음식이 아니라는 교훈을 얻었다.

평양냉면은 만들기가 아주 어려운 음식이다. 양대 핵심인 육수와 면이 모두 그렇다. 육수부터 따져보자. 국물 음식의 태생적 한계부터 걸린다. 고기가 풍족하다면 굳이 국물을 내 양을 늘릴 필요가 없다. 생계형 음식이었던 탓에, 고기가 풍족한 요즘 국물은 만족감을 주지 못한다. 같은 국물 음식인 설렁탕이나 곰탕을 놓고 프림이나 분유 파동이 심심하면 터지는 이유다. 진하게 우려내려면 재료를 많이 써야 하는데, 그럼 단가가 올라가 심리적 저항의 원인으로 작용한다. ‘싸고 양 많이’만 먹히는 현실에서 모든 음식이 겪는 수난이다. 진한 국물을 우리려면 평균 물의 20%에 이르는 무게의 고기며 뼈가 필요하다. 재료비가 만만치 않다는 의미다.

게다가 냉면 육수는 차게 먹으니 한층 더 어렵다. 깔끔함을 위해 고기국물 특유의 맛과 감촉을 책임지는 기름기, 관절을 끓이면 나오는 젤라틴을 걷어 내거나 피해야 한다. 따라서 소든 돼지든 닭이든, 기름기와 젤라틴이 적게 나오는 부위 중심으로 육수를 우려 식히고 또 걷어내는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 결과 재료의 양에 상관없이 감칠맛이 뜨거운 국물보다 떨어질 수도 있다. 안 쓰는 음식점이 없지만, 특히 평양냉면 전문점에서 화학조미료 맛을 느낄 수 있는 건 떨어지는 감칠맛을 보충하기 위해서다.

면 뽑기도 여간 만만치 않다. 주재료인 메밀은 밀가루 면의 쫄깃함을 책임지는 단백질인 글루텐이 없다. 일부 평양냉면 전문점에서 주문 가능한 순면, 즉 메밀 100% 면에 탄력이 없고 쉽게 부서지는 이유다. 대개 메밀가루에 전분을 7:3이나 6:4의 비율로 섞어 힘을 주는데, 그래도 밀가루 면처럼 늘려 뽑거나 미리 삶아 준비할 수 없다. 주문과 동시에 반죽을 틀에 눌러 뽑고 바로 삶아 육수에 말아야 한다. 그래서 이래저래 평양냉면은 집에서 재현이 불가능한 요리다. 전문점에서만 시간과 노력의 결과로 맛볼 수 있다. 따라서 현재의 가격은 합당하다. 프로 요리사인 박찬일 셰프도 한 매체를 통해 평양냉면 조리의 어려움을 언급한 바 있다. 동서양의 기술을 접목해 육수만이라도 우려 보았는데, 품도 재료도 만만치 않았다는 것이다.

게다가 한식을 향한 고정관념도 문제다. 한 접시 2만원에 이르는 파스타에는 지갑을 열면서 평양냉면에는 인색하다. 덮어놓고 한식이니까 만만하고, 그래서 절반 남짓한 가격에도 비싸다는 반응을 보인다. 물론 접객이나 식기의 개선 등 한식이 과제를 안고 있는 건 사실이다. 웨이터의 제복부터 식탁보, 깔끔한 메뉴 등 총체적인 분위기 형성의 요소를 두루 갖춘 음식점이 드물다. 평양냉면만 해도 일단 싸 보이는 스텐 대접부터 당장 바꿔야 한다. 어쨌든 모든 요소를 갖춘 파스타 한 그릇이 2만원이라면, 만원 안팎의 평양냉면은 오히려 싼 게 아닐까? 한식, 또는 양식이라서 무조건 우월하거나 열등하게 취급하고 그에 맞춰 심리적 가격표를 붙여서는 안 된다. 파스타의 가치를 인정한다면, 평양냉면의 가치도 동등하게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평양냉면은 완벽하지 않다. 하지만 현재의 면과 육수의 조합 만으로도 가격을 정당화할 수 있다. 되레 우리 욕망의 거리를 조정해 끼니보다 귀한 음식, 별식 대접하는 한편 단가 논란에서 늘 빠지는 노동력, 특히 숙련된 전문가의 기술을 인정해야 한다. 그래야 음식 문화의 질을 저하시키는 ‘싸고 양 많이’를 떠나 보내고 사회 전체를 관통하는 화두인 ‘노력의 정당한 대가’를 좇을 수 있다.

-월간 <싱글즈> 2014년 10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