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토랑 리뷰, 밍글스, 라미띠에, 자격 논란
생크림 수급이 안되어 소규모 업자들이 디저트를 못 만든다는 현실에서 대체 뭘 더 이야기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미슐랭은 알고 있을까. 마지막 시장일 수도 있는 인구 천 만의 도시가 생크림의 종류도 아닌 존재 자체에 고뇌한다는 사실을. <외식의 품격> 후속작의 마무리가 너무 힘들어 잠시 블로그를 쉰다는 게, 두 달도 넘게 글을 쓸 수 없었다. 그만큼 원고가 오래 걸렸다는 말이다. 얼마 전 올린 <한국 음식 비평의 인정 투쟁과 그 과제>는 2편의 마지막에서 밝혔듯 이미 작년 이맘때 계간지 <21세기 문학>에 투고한 글이다. 어느 시점에서 올릴 생각은 했는데, 최근 올리브 매거진의 밍글스 리뷰를 놓고 벌어진 상황에 한편 적절한 대답이 될 거라 믿어 올렸다.
물론, 내가 너무나도 명백한 퀴어 영화를 보고도 ‘인간의 보편적 사랑’ 운운하며 왜곡하는 영화 평론가도 아닌 판국에 리뷰에 대한 해명을 올릴 의무는 없다. 어차피 음식 글과 음식점 리뷰를 써 온 지난 7년 동안 나왔던 반응과 전혀 다른 구석이 없기 때문이다. ‘내가 맛있다는 걸 왜 네가 맛없다고 평하는가’를 좋게 말해 진영, 나쁘게 말해 패거리 문화로 에워싸 던지는 말에 사실 이제 굳이 반응할 필요를 못 느낀다. 이제 더 이상 할 것도 없다. 어차피 아무 것도 없는 현실이라 리뷰도 쓰고 리뷰의 조건이나 맥락 같은 등에 대해서도 수없이 책과 매체를 통해 써 왔다. 어디 그뿐인가, 책도 번역했다. 그 잘난 인문학 바탕의 이론서는 물론, 요리책도 레시피 따라 음식 만들어 가면서 번역했다. 공부는 모두의 몫일 테니 나도 여러분도 공부하기만을 바랄 뿐이라는 나의 작은 바람과 더불어, 간단하게 당시의 상황에 대한 설명 몇 가지만 덧붙이겠다.
밍글스: 많은 이들이 내 밍글스 리뷰에 충격을 받았노라고 들었다. 온갖 반응이 페이스북 같은데서 쏟아져 나왔다고 한다. 그들만 충격을 받은 게 아니다. 나 또한 굉장히 큰 충격을 받았다. 음식은 영혼과 육체에 동시다발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리뷰를 위한 파인 다이닝 1회 방문엔 적어도 세 시간이 걸린다. 온갖 맛의 음식을 먹고 술도 마셔야 한다. 직업의 애환 따위 이야기하려는 게 아니다. 루스 라이쉴 같은 수준은 아니지만, 레스토랑 리뷰는 엄청난 감정 이입을 요구하는 일이다. 음식이 맛없을 때, 그리고 밍글스의 경우처럼 그 이유가 실행보다 콘셉트 쪽으로 기울때 나는 엄청나게 고민한다. 한 달 주기로 리뷰를 쓴다면 절반인 보름 정도는 그런 감정에 시달린다. 밍글스는 나에게 가장 큰 고민을 안긴 레스토랑이었다.
문제의 핵심은, 내 생각에 의도의 진위 여부다. 나는 의도적으로 밍글스를 흠집내기 위해 그다지도 부정적인 평가를 했는가. 그럴리가 전혀 없다. 누구라도 의구심을 품을 수 있다. 왜 그는 저렇게 부정적인 평으로만 지면을 채웠는가. 대체 좋은 점이라고는 없었는가? 밍글스의 경우 그랬다. 믿거나 말거나, 리뷰를 쓸 때는 균형을 맞추려 애쓴다. 좋고 나쁜 점을 일단 전부 펼쳐 놓고, 결코 넉넉하다고는 할 수 없는 지면의 사정에 맞춰 퍼즐을 맞추듯 자리를 잡아 준 뒤 미세하게 조정한다. 밍글스의 리뷰가 힘들었던 이유는, 전부를 펼쳐 놓아도 부정적인 측면의 균형을 맞춰줄 긍정적 측면이 없었다. 심지어 다른 레스토랑 리뷰보다 더 촉각을 곤두세웠고, 복수의 방문을 통해 거의 모든 메뉴를 먹었다. 그래도 없었고 심지어 지면과 강도를 감안해 많이 들어냈다.
애초에 내 평가를 정당화하거나 ‘밍글스 그만하면 봐준 건데 왜 난리 법석이냐’는 의도가 아니므로 간단히 언급하겠다. 하나는 접객이었다. 복수의 방문 가운데 한 번은 굉장히 원활하지 못했다. 그 자체가 문제라기보다, 그에 대한 항의에 대응하는 과정이 굉장히 나빴다. 한마디로 아마추어의 느낌이었다. 매끄러운 매니저의 부재가 굉장히 큰 상황이었다.
다른 하나는 와인 짝짓기였다. 이 또한 지면 문제로 잘 다루지 않는다. 프랑스 와인의 이름을 AOC나 빈티지 정보까지 더불어 표기하려면, 한 병으로 조금 과장을 보태 원고지 1/4장을 써야하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단순한 이유만으로도 준비했다가 마지막에 들어낸다. 능이버섯밥의 반상을 메인으로 주문했는데, 샤토뇌프 뒤 파프(기니까 이후 CDP)가 짝으로 나왔다. 이유를 물어보니 능이버섯과 와인의 향을 짝짓는다고.
모든 레드와인이 그렇겠지만 특히 GSM 위주의 CDP는 굵은 편에 탄닌도 강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맞설 수 있는 육류-지방 등이 없다면 음식을 압도할 수 있다. 한마디로 향만으로 짝을 맞춘다는 발상은 다소 순진하고 안일할 수 있다는 말이다. 게다가 반찬이 열 가지도 넘고 어묵도 딸려 나오는 상황에서 과연 CDP가 최선의 선택이었을까? 와인은 좋지만 그렇다고 볼 수 없었다. 메인이니 레드를 내야 한다는 생각에 지나치게 얽매인 건 아니었을까?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강조하자. 밍글스의 셰프에게는 개인이고 뭐고 아무런 부정적 감정도 없다. 다만 상호를 바탕 삼은 리뷰에 ‘씹을 게 없어 이름을 씹는가’라며 분노한 이들에게 덧붙인다. 영어를 모르십니까? 우수한 GRE-Verbal 성적으로 유학가서 미국에서 10년 가까이 공부하고 직장 다녔고, 부업이랍시고 강남 학원가에서 GRE 영작을 가르쳐본 경험도 있다. 나는 사전의 정의를 충실하게 제시했을 뿐이다. 화학적 변화를 위한 단어가 아니라는데 옥스포드에 항의라도 하는 건 어떤가. 음식-레스토랑의 정체성과 합일하는 상호를 고르는 건 아주 중요한 일이다. 이름 아닌가.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라는 시도 있다. 그래도 이해 못하겠다면 더 쉬운 예를 들 수도 있다. 파스타 전문점 상호로 ‘샹젤리제’ 같은 것 어떤가. 프렌치 비스트로 ‘나폴리’는?
그와 더불어 요리의 핵심이 화학적 변화인지 물리적 변화인지 모르는 실무자 이야기도 들었다. 그런 분들이 내 리뷰에 화를 낸다면 그건 내 문제가 아니다.
라미띠에: 역시 들은 이야기를 옮겨보자. 올리브 매거진 편집장에게 셰프가 전화를 걸었다고 한다. 라미띠에 리뷰 계획을 물었다고. 상황에 맞춰 바꾸지만 짧으면 6개월, 길면 1년치 목록을 정해놓는 리뷰다. 라미띠에를 리뷰할 계획은 애초에 없었다. 대상에 대한 피드백도 당연히 받는다. 편집진의 제외 또는 포함 요청을 반영한다는 말이다. 그쪽에서도 라미띠에를 리뷰하자는 의견을 낸 적이 없었다. 글에서 언급했듯 철저히 개인적인 방문이었다. 게다가 설사 리뷰 대상으로 정해 놓았다고 해도 편집진은 가부를 답할 의무가 전혀 없다. 그럼 그게 무슨 리뷰인가.
어쨌든 리뷰 대상이 아니라는 답에 셰프가 항의했다고 한다. 내가 레스토랑을 방문해서 “영업 방해” 수준으로 소란을 피우고 갔다는 내용이었다. 일단 항의 대상부터 잘못되었다. 나는 올리브 매거진의 직원이 아니다. 내가 진정 영업 방해에 해당되는 행위를 저질렀다면 어차피 연락처를 가지고 있는 당사자에게 직접 항의하거나, 물리적 손괴 등이 있었다면 실시간 또는 CCTV 기록을 찾아 사후 신고를 하면 될 일이다. 너무나도 당연하지만 그런 불상사는 전혀 벌어지지 않았다. 나는 항의했을 뿐이고 그 과정에서 언성도 높인 적 없다.
내가 누구인지 아무도 알 필요 없지만, 혼자 레스토랑에 오는 손님이라면 사후에라도 이름과 얼굴은 각인이 될 가능성이 아주 높다. 어차피 거의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지만 나쁜 행동은 내 얄팍한 직업적 명성에 악영향을 미칠 게 분명하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영업방해 수준의 행위를 저지를 거라고? 난 오히려 미약하나마 레스토랑의 영업에 보탬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나왔다. 코스의 채 반도 안되는 상황에서 먹기를 멈췄지만 저녁 코스의 60% 이상에 해당되는 점심 비용을 받았다. 또한 와인도 마시다 말고 나왔다. 정확하게 레스토랑의 이득으로 환원될 수 있는지 알 바 아니지만, 적어도 나의 손해인 것만은 확실하다. 나의 영업이 결국 식사이니, 방해를 한 측은 레스토랑이 아닌가?
마지막으로 그런 이야기마저 들었다. ‘음식하는 사람들이 착해서 참고 있는데, 명예훼손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다 좋다. 하지만 10주년 특별 메뉴를 윤기 잃은 비닐 바인더에 끼워 보여주는, 손님이 이미 자리에 앉았는데 식탁의 일부를 치우는 레스토랑의 셰프가 할 말인지는 잘 모르겠다. 나에게 ‘상황이 이래서 미안한데 여건이 될 때 다시 오라며 연락하겠다’는 입으로 할 말도 아니다. 다시 한 번, 그런 이야기를 못내 하고 싶었다면 나에게 직접 할 일이다. 왜 애꿎은 매체를 대상으로 항의하는가. 나는 그들에게 내 취재의 세부 사항에 대해 설명한 적이 없다.
자격의 자격: 심지어 ‘무슨 자격으로 국내 유수의 레스토랑을 까냐’는 이야기도 나왔다고 들었다. 모든 레스토랑을 ‘깐’ 것도 아니고(라연 리뷰 좀 읽어 보시라. 나는 그곳의 냉면이 ‘평양냉면의 미래’일 수 있다고 평했다. 현재 한식에서 평양냉면이 누리는 위상을 감안하면 그게 어떤 의미인지 모를 수가 없으리라. 문해력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면), 무슨 자격으로 자격을 논하는지도 웃기지만 한국의 전형적인 ‘학원 마인드’다. 레스토랑 음식의 이해를 위해서는 최대한 레스토랑에만 많이 가야 한다는 사고 방식. 커피를 볶고 내리는 사람은 커피만 마신다. 와인도 마찬가지다. 음식은 문화의 집결체다. 특히 외국 것이라면, 문화의 이해 없이 잘 만들기 어렵다. 더 이상 설명할 필요도 못 느낀다. 차라리 솔직하게 라이프 스타일의 전시를 위해 레스토랑에 밤낮없이 간다고 말하면 좋지 않을까. 그래도 추종자들은 지지의 고삐를 늦추지 않을 것이다. 어차피 추종자니까. 지갑을 사랑하기란 원래 쉬운 일이다. 글처럼 애써서 읽고 생각할 필요가 없으니까. 나는 어느 누구에게도 그것을 강제한 적이 없다.
그래서 말하자면, 살 만큼 살았고 먹을 만큼 먹었다. 그 모든 ‘먹기’의 방편이 레스토랑이라고 믿은 적 없다. 농인지 진인지 ‘요리계의 하바드’라는 이야기까지 나오는 상황에서 그런 분들 공부하시는 학교 있는 나라에서 대학원 나오고 회사 다니면서 먹고 살고 다 했다. 바로 그런 분들이 마치 서양 파인 다이닝의 전도사 역할을 자처하신다면, 나도 똑같이 서양 음식 비평을 들여와 먹고 분석하고 글을 쓸 뿐이다. 그런 음식은 가능하고, 이런 비평은 가능하지 않은가? 세상에 가치 판단이, 평가가 존재하지 않는가? 기둥 뒤에 공간 있다.
*사족: 몇 년 전에 공부하시라고 <외식의 품격> 보내드릴테니 연락 부탁드린 분, 레스토랑 다니시느라 바쁘실 와중에 심지어 후원도 해주셨다고 밝히셨던데 감사드립니다. 혹시라도 후원금 돌려 받고 싶으시면 금액과 더불어 입금자 성함과 계좌 번호 알려 주십시오. 별도로 책도 보내드리게 주소도 꼭 부탁드립니다.
Welcome back!:) ..French Bistro Napoli ㅋㅋㅋ
너무어렵게 써놔가지고 1도모르겠다 시발
역시 일반식당이나 파인다이닝 레스토랑 많이 가는 것만이 무조건 능사는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배우고 갑니다. 물론 직접 만들고 가서 먹는 경험을 많이 쌓는 건 중요하죠. 하지만 one of something 일 뿐, 음식에 대해 공부하는 등 다른 요소도 필요하겠죠. 다만, 모두가 음식에 대한 공부가 부족한게 함정이고 (저도 그렇습니다;;), 나 여기 가서 이런거 먹었어 뿌잉뿌잉 이런 글이 더 인기있는게 함정이죠;;
bluexmas님의 리뷰를 비판하는 사람을 페북에서 봤더랬습니다. 주 논지는 이렇더군요.
“이 요리를 준비해준 쉐프의 정성을 생각해본다면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블루님 안티들 수준이 이렇습니다. 힘내세요/
한국 인터넷의 언론문화가 사실전달보다는 (정치적이건 상업적이건)어떤 ‘의도’를 가진 글에 가깝다 보니 공개된 장소나 이름 걸고 쓰는 글에 있는 비평에 대해서 민감할 수밖에 없는거 같아요.(사족이지만, 그래서 인터넷 기사는 일류건 삼류건 간에 칭찬 위주의 기사가 많고 거기에 대한 비평은 밑에 있는 익명의 댓글들의 몫이죠) 뭐가 안좋다 그러면 안좋다는 사실보다는 왜 안좋다고 했을까라는 의도를 읽으려 하니 거기서 블루님과 마찰이 있는거 아닐까요.
틀린 소리 하신게 하나도 없으신데요^^
듣고 싶은 소리가 아니였던 것이죠
그냥 그러려니 하셔요ㅎㅎ
지난 기사도 많은 공부가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맹목적 방어의 자세는 무지나 무능력보다 훨씬 더 위험한 것이죠.
오랫동안 글과 책을 잘 읽어본 사람으로서 블루마스님의 고뇌가 여기까지 느껴집니다.. 포스팅으로 다시 글을 볼 수 있어서 기쁘고, “니가 뭔데 맛없다고 지X이야” 열내는 secret스러운 블로거들의 살기가 느껴질 정도의 패거리감성과 단결력에 다시 한번 경악합니다. 난독증 + 아이구 성님하는 패거리문화에 더 스트레스 받지마시고 날카로운 분석, 비판 응원합니다..
요즘 일어나는 논란을 보면, 파인다이닝 포함한 미식에서 겉멋만 든 사람들이 많은거 같다는 생각입니다. 아니, 파인다이닝 포함 식문화 자체가 겉멋만 든 경우가 많다는 생각이네요
즉, 거기에 내재되어 있는 과학기술과 문화 등은 받아들이지 않는거 같습니다.
그래서 음식을 재료 혹은 음식의 지식 등의 객관적인 잣대로 평가하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죠 (물론 거기에 기반한 평가는 다서 주관적이긴 하지만)
파인다이닝에서 술 등의 음료 주문에 문제제기 하면 발끈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술 주문은 강요나 강제의무는 아니며, 그렇게 해선 안돼죠. 하지만 강요를 하거나 강제의무로 두지 않아도, 일본이나 서양 등에선 파인다이닝에서 술 등의 음료를 주문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문화나 관습처럼 형성되어 있는건 왜일까요? 한 번 생각해봐야 되지 않을까요?
즉, 술주문 문제에 발끈하는 것도 겉만 받아들이고 그 안에 내재되어 있는 과학/문화 혹은 관습 등은 받아들이지 않아서 생긴 문제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사람들 상대하느라 고생 많이 하시네요;; 그래도 블마님 글들이 겉멋만 든 한국 파인다이닝 및 식/미식문화에 경종을 울리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앞으로의 글들도 말이죠
여기에 적어도 될지 모르겠는데;; 혹 류니끄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언급이나 리뷰가 없는걸 보니 평가가 좋진 않았구나… 싶긴 합니다만;;;
다시 글 올라오니까 좋네요 공감되는게 많았었거든요
이 무신경한 세상에서 참 고민이 많으시겠지만,
그래도 글 보면서 응원하는 사람도 많으니 너무 힘들어 마시길..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