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미띠에에서 먹다 만 저녁

IMG_1648언제나 ‘먹어봐야 맛을 안다(The proof is in the pudding)’와 ‘똥인지 된장인지 찍어 먹어봐야 아나’ 사이에서 갈등한다. 라미띠에는 미안하지만 후자였다. 어쨌든 나의 일이라 생각하는 비평적 아카이브의 대상으로서 딱히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누군가 ask.fm을 통해 물었다. 그것도 두 번(1 / 2)이나. 미슐랭 가이드의 서울 진출에 관한 글, 특히 잠재적 후보 리스트를 향한 질문이었다. 사실은 라 사브어도 같이 물었는데, 거기 또한 정말 끔찍한 수준이어서 가치도 없고 게다가 다른 사람이 산 식사였으므로 리뷰하지 않았다. 그래서 짧게 이 글을 쓰고 말았던 것.

누군가의 선택을 정당화 또는 승인할 이유가 없고, 심지어 무기명 질문 사이트이므로 그가 누구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면. 그래서 월요일 밤에 전화를 걸었다. 영업시간이 끝나기 직전의 시각. 나중에 매니저라고 알게 된 직원은 ‘기본적으로 (저녁에) 1인 손님은 받지 않는다’고 말했는데 내가 이유를 설명해달라고 하자 예약을 받아 주었다. 그래서 어제 간 것이었다. 차가 막혀 20분 늦었고 사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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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자리가 좀 의아했다. 홀이 없고 별실 구조였는데, 내가 배정 받은 자리는 가운데를 파티션으로 나눠 최대 4인 두 팀까지 수용할 수 있는 방이었다. 그리고 나의 자리는 바깥쪽, 문과 가까운 자리. 자체로는 불만스러울 일이 아니다. 그게 전부라면 어쩔 수 없지 않겠는가(물론 구조 때문에 다른 손님이 얼마나 많은지 알 길은 없다). 하지만 왜 굳이 바깥쪽, 즉 문 바로 앞에 자리를 차려 놓았을까. 평면도를 보면 알겠지만, 기본적으로 2인 식탁 둘을 붙여 놓은 구조라 안쪽에 앉는 편이 덜 불편하고 얼마든지 그렇게 차릴 수 있다고 본다. 그래서 웨이터에게 물었다. 원래 여기에 앉는 게 맞나요. 그는 ‘저희가 그렇게 차려 놓았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이어 매니저가 메뉴를 설명해주고 바로 음식을 내오겠다고 말해서, 일단 와인 리스트를 보고 고른 다음 시작하고 싶다고 알리고 들여다보고 있는데 웨이터와 요리사가 자리로 찾아왔다. 식탁이 모자라서 붙여 놓은 2인 식탁 가운데 하나를 빼가겠다는 것. 정확한 이유를 알려달라고 요청하자, 6인 손님이 예약에 없던 1인을 더 데려와서 자리를 만들어야 한다는 답이 나왔다. 그렇지 않아도 굉장히 시끄러웠다. 조금의 가감 없이, 파인 다이닝이라 포지셔닝하는 레스토랑에서 처음 맛보는 시끄러움이었다. 고깃집 수준. 남자 하나가 끊임없이 코를 킁킁거렸는데, 그게 아직도 귓가를 맴돌 지경이다. 어쨌든 내가 항의하자 셰프가 나왔고, 나는 지금 이 상태에서 식탁을 빼가겠다고 왔으면 기분이 좋을 수가 없으니 이유라도 정확히 설명해야 되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 사과를 받고 식사를 시작했다. 식탁을 뺀 자리의 휑하게 드러난 바닥을 보는 기분이란.

요리 사이의 간격이 길었다. 사진을 확인해보니 아뮤즈 부시가 나온 시각이 7:53, 이후 세 가지 요리가 나온 시각이 각각 8:02, 8:17, 8:34였다. 테이스팅 코스의 양과 혼자 먹는 이의 식사 속도를 감안하면 나는 이 간격이 길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보다 먹는 이의 움직임에 대한 반응이 없는 간격조절인 게 진짜 문제였다. 이를테면 세 번째 코스인 프렌치 어니언 수프는 세 숟가락 이상 먹지 않았다. 그럴만한 가치가 전혀 없는 음식이었다. 물어보는 게 귀찮아서라도 음식을 남기는 경우는 거의 없다. 어쨌든 내가 앉은 공간 안쪽 손님의 접시를 나르는 웨이터는 전혀 보지 않았고 결국 지나가는 타이밍에 맞춰 치워 달라고 요청해야만 했다. 물론 개별 공간의 한계 때문이겠지만, 그 또한 사실은 레스토랑의 결정 아닐까.

등 바로 뒤 열린 미닫이 문으로 웨이터가 계속 들락날락거린다. 한편 단체 손님은 엄청 시끄럽다. 내력벽을 뚫고 들려오는 웃음소리 어쩔건가. 하지만 음식이 맛있었더라면 끝까지 참고 앉아 있을 것이다. 사실은 단 한 번도 식사 중간에 자리를 뜨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그런 적이 없다. 심지어 영화 같은 것도 보다가 중간에 나온 경험이 거의 없을 것이다. 한편 손님의 의무라고 생각하기 때문인데, 네 번째 요리까지 받아드니 도저히 마음을 안 먹을 수가 없었다. 수프는 아무런 켜가 없는 국물에 치즈를 녹여 지극히 타성적이고 고루했고, 결심을 하게 만든 새우 튀김은 과조리 된 상태였다. 하지만 무엇보다 음식 전반의 배경으로 깔린, 물리는 단맛이 끔찍했다. 간신히 작고 예쁘게 만들어 놓은 요소들 사이의 틈새로, 싸구려 맛의 표정이 줄줄 새어 나오는 음식이었다. 돈이야 얼마든지 낼 수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음식이 나온 간격을 감안할때 이런 상황을 적어도 60~90분을 겪으며 앉아 있어야 할 시간도 노력도 아까웠다.

그래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비용을 다 내고 가겠다고 했다. 그러자 매니저가 셰프를 불렀다. 나는 말했다. 손님이 저렇게 시끄러운 거야 레스토랑에서 통제 불가능한 측면이 있으니 그렇다 쳐도, 전반적인 상황을 감안할때 도저히 끝까지 앉아 있을 수가 없어서 가야 되겠다고. 손님이 시끄러운가요? 라고 그가 말했다. 기본적으로 1인 손님 받지 않는게 자기네들 방침인데 매니저와 전화 통화를 받을 때 자기가 옆에 있었다고 했다. 다른 이들은 ‘방침이 그래서 1인 안 받는다’고 말하면 그냥 끊는데, 내가 계속 말을 해서 받으라고 그랬다고. 상황이 이래서 미안한데 여건이 될 때 다시 오라며 연락하겠다고 제안했다. 나는 거절하고 레스토랑을 나섰다. 와인과 지금까지 먹은 코스까지만 받겠다고 했다. 절반을 먹지 않은 시점에서 런치 코스비(85,000원)를 받았다. 참고로 저녁 코스는 150,000원이다. 물론 술값은 별도다.

1인 예약은 받지 않겠다. 뭐 좋다. 그런데 어쨌든 예약 확인 전화 같은 것도 걸지 않는다. 레스토랑을 다니며 이런저런 일을 겪을 때마다 그 패턴 속에서 모순을 읽는다. 외국의 고급 음식을 만든다는 이유만으로 일종의 문화 전달자 같은 역할을 자임한다. 사실 자임하지 않더라도 기본적으로 장착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너무나도 명백하게 한국의 것이 아니라면 정통성을 비롯한 이해의 수준이 일종의 인증 매개체 역할을 하기 때문. 그런데 사실은 지극히 한국적이다. 차라리 음식 맛이야 그럴 수 있다 치고 포기하면 편하다. 하지만 파인 다이닝은 음식이 전부가 아니잖는가. 나머지도 지극히 한국적이다. 서비스만 해도 디테일이 전혀 없다. 냅킨에 레스토랑 로고는 박지만 메뉴 한 장 출력해 테이블에 놓을 센스도 없어 비닐 클리어 파일에 담아 들고 와 읽어 주는 건 고루하다. 10주년이라던데 요즘 젊은 셰프들은 그런 거라도 최소한 잘 한다.

하여간 그렇다. 그냥 한 가지만 했으면 좋겠다. 그냥 장사를 하고 싶으면 장사만 하자. 없는 격 같은 걸 마치 있는 양 꾸미지 말자는 것이다. 남의 문화 들여다가 이리저리 자기 좋은 대로 뜯어 고쳐서 괴물 만들어 놓고 진짜 행세 좀 하지 말자. 초라하다.

13 Comments

  • 단단 says:

    와… 런치 85,000원, 디너 150,000원, 한국도 음식 값 만만찮네요.
    그런데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에서 비닐 클리어 파일에 메뉴를 담아 와 읽어 준다고요?
    믿을 수가 없는걸요.
    저는 여기서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 가면 그날의 메뉴판을 선물처럼 얻어 오기도 하는데…
    1인 예약도 안 받는다니 그것도 좀 신기하고…
    Bluexmas 님 글 보고 레스토랑이 표방하는 바와 메뉴가 궁금해 웹사이트를 찾아 보는데
    응? 이 집은 웹페이지도 없는 건가요?
    먹으러 가기 전에는 다이너들이 그럼 정보를 어떻게 얻을 수가 있죠?
    그 집 음식에 대한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어떻게 예약을 할 수 있을까요?
    블로거들 리뷰 보고?
    하여간 여러 가지로 신기합니다.

    • jo says:

      메뉴판을 달라고 하니,런치코스는 단일 메뉴라고 하더라고요.
      단일메뉴라도 뭐가 나오는 지는 좀 알고 싶은데….

  • losaria says:

    좋은 글 잘봤습니다. 그보다 글을 무척 잘 쓰시는군요. 식당과 맛 기타의 평가가 그 어떤 글보다 와닿네요.

  • SJ says:

    너무 너무 공감합니다. 어떤 상황인지 선명히 그려지는군요. 저는 일본에서 20년을 살며 일본식 서비스 문화에 익숙해서인지 한국에서 맛있으면서 편안하고 기분좋게 식사할 수 있는 곳이 좀처럼 없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주위에 이야기하면 제가 너무 까다로운 것 처럼 생각하는 것 같아 제 생각을 이야기하는 것도 그만두었습니다. 그런데 이 글을 읽고 속이 후련하기까지 합니다. 감사합니다.

  • bang says:

    지금은 어떤분이계신지모르겠지만
    오래전 제가 한참 음식에대한 열정이넘칠때
    저를 면접보셨던 라미띠에 오너쉐프님의 한말씀이 기억나네요
    “여기선 차비만받고도 일할사람이있다는…” 음식이 문제가아니라생각합니다
    최소한의 배려,양심이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운 오래전의 기억이네요…

  • tyson says:

    퍼갑니다 문제있을시에 요청하시면 삭제하겠습니다.

  • 예전에 읽었지만 트위터 링크 기념 다시 읽었습니다. 한달여 전에 서울 들어갔을 때, 3-4만원 정도 하는 점심을 먹었어요. 뭐 그렇게 고급은 아니지만 많이 싼 점심은 아니었는데 메뉴 설명이 오늘의 ___ 이런 건 뭐 어쩔 수 없다고 해도, 오늘의 ___ 뭔가요, 하고 물어봐도 답을 안(못)해주더군요. 종업원이 방을 나가고 제가 이상하다고 했더니 가족들이 안이상하다고 했어요 흑.

  • 식빵껍질 says:

    아 중간까지 읽다가 너무 답답하고 화가 나서 스크롤을 내리고 싶었네요 저녁 시간을 전부 망치다니.. 저같으면 부글부글해서 마구 지적하면서 컴플레인 했을텐데 저 정도로 정중하게 하고 나오시다니 인내심이 좋으시네요 이런 곳은 파인 다이닝이 아니라 그냥 고가 레스토랑인 것 같아요

  • 너네집덕 says:

    저도 예약할 때 싱글 다이닝을 거절 당했었습니다. 다행히 전에 한번 갔을 때 예약하느라 알게 된 장명식 셰프님 휴대폰 번호가 연락처에 있길래, 화가 나서 싱글 다이닝이 왜 안돼냐고 성토한 적이 있었습니다. 직접 답장을 해 주셨는데요, 사과를 하시면서 전에 혼자 와서 진상을 심하게 부린 손님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어서 그렇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싱글 다이닝 불가방침은 있을 수 없다면서 오라고 하셨지만 가지 않았습니다. 님의 글이 보니까 혼자서 안 가길 정말 잘 한 것 같습니다…..여기 그저께 미슐랭 별을 하나 땄더라구요…..전에 갔을 때도 다 맛있었지만 정작 메인인 월링턴 비프였던가는 저도 맛이 없어 남겼습니다. 룸도 좁아 답답했고, 그 날도 셰프님께서 직접 메뉴를 읊어 주셨습니다. 미슐랭 가이드 책자는 못 봤지만, 제 기준에서는 장명식 셰프님께는 죄송하지만, 솔직히 편안함을 나타내는 포크나이프 픽토그램이 한 개도 아까운 곳입니다. 태생적으로 싱글 다이닝의 거부의사를 인테리어 구조로 보여주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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