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식의 이해(15)-파워블로거와 잘못된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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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바람에 실려오는 이야기를 듣는다. 내 글이 파워블로거의 진노를 샀다는 내용이다. 십년 가까이 꾸려온 블로그에 종종 비밀 덧글 형태로 첩보(?)가 들어온다. 원인은 간단하다. 그들이 맛있다고 하는 음식을 내가 감히 비판했기 때문. 일견 이해는 간다. 좋아하는 것을 싫다고 말하면 시쳇말로 빈정이 상하는 법이다. 설사 비판의 근거가 정당하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게다가 그 근거는 사실 나에게만 정당할 뿐이다. 그들이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다. 다들 ‘입맛은 주관적이다’라고 하지 않는가. 주관적인 영역인 취향 이전에 객관적인 영역, 즉 완성도에 문제가 있음을 지적해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는다. ‘내가 맛있게 먹었다’는 한마디면 끝이다. 이미 오래 전 연구와 실험 등으로 객관성을 확보한 자료를 근거로 삼아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평가하는 사람의 수는 계속 느는데 근거는 여전히 빈약하다. 지식을 기초로 삼는 평가가 드물다. 그래서 모래 위로 성이 계속해서 올라가고 있다. 멀리서 바라보는 사람의 심정은 참으로 조마조마하다.

얼마전에도 사건사고가 터졌다. 진원지는 지난호에서 언급한 바 있는 그 ‘오스테리아’, 무성한 찬사와 무거운 여름밤 공기를 뚫고 찾아간 그곳은 총제적 난국이었다. 일단 열린 주방을 통해 적나라하게 보이는 셰프의 움직임부터 어설펐다. 한마디로 수련이 덜 되었다는 증거, 그게 음식에도 고스란히 묻어났다. 스테이크 타르타르에는 쇠고기 맛을 아예 느끼지도 못할 비율로 파르미지아노 치즈를 곁들여 냈으며, 뇨끼는 아마추어의 솜씨처럼 주름-소스가 최대한 묻도록 돕는 역할을 하는-도 잡지 않았으며 크기도 들쭉날쭉했다. 그런 가운데 1cm 남짓 두툼하게 썬 연어 카르파치오가 결정타를 날렸다.

카르파치오의 주재료는 원래 쇠고기다. 주로 채끝(sirloin)을 얇게 저며, 머스터드나 역시 얇게 저민 파르메지아노 치즈 등을 곁들여 낸다. 이렇게 접시에 담았을때 ‘그림이 좋다’고 해서, 붉은색과 흰색을 주로 쓴 15세기 화가 비토레 카르파치오의 이름을 따서 붙였다. 세월이 흐르면서 울타리가 넓어져 생선 등 다른 단백질도 아우르게 되었지만, 주재료를 최대한 얇게 저민다는 특성만큼은 그대로 지킨다. 혀에 감기는 부드러운 질감이 요리의 주된 매력이기 때문이다. 이를 존중하지 않고 그저 날것인 단백질을 쓴 요리라면 그건 ‘크루도(crudo)’일 뿐, 카르파치오는 아니다. 조개 관자도 그대로 내면 크루도, 얇게 저며야 카르파치오가 된다. 구글 이미지 검색을 해보라. 둘의 차이가 뚜렷하다.

게다가 얇게 저민 연어의 예는 실생활에도 널렸다. 훈제 연어 안 갖춘 백화점이나 마트가 이제 없기 때문이다. 또한 그렇게 저미는게 ’미션 임파서블’인 것도 절대 아니다. ‘슬라이싱 나이프(slicing knife)’가 따로 있다. 식칼과는 달리 날이 얇고 가늘고 길어 재료를 누르지 않으니 부서뜨리지 않고 저밀 수 있다. 요즘은 저민 재료가 달라붙는 것을 막기 위해 날에 홈을 판 제품도 나온다. 한꺼번에 많은 양을 준비하는 경우라면 아주 살짝 얼려 저미는 동안만이라도 힘을 불어넣는 방법도 있다. 하여간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생각만 하면 된다. 하지만 생각의 밑천인 경험이 없다면? 그저 두툼하게 썬 연어에 카르파치오의 이름표를 달고 낼 뿐이다.

그리고 진짜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찬사가 쏟아지는 현실이다. 객관성의 결여는 머리 둘 달린 괴수다. 하나는 앞에서 언급한 지식의 결여다. 비싼 연어를 사다가 망치지만 않았다면 어쨌든 먹을 수 있는 무엇인가가 된다. 게다가 고명으로 얹는 파르미지아노 치즈나 앤초비, 올리브 등은 전부 시판제품이다. 이를 접시에 한데 담기만 해도 뭔가 되기는 된다. 하지만 그건 굳이 셰프의 손을 거치지 않더라도 먹을 수 있다. 비싼 돈을 내고 레스토랑의 식탁에 앉았다면 정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콘셉트와 손놀림이 담긴 요리를 먹을 수 있어야 한다. 연어를 두텁게 썰었다면 카르파치오가 아니니, 설사 먹을만하더라도 실격이다. 누군가는 이러한 점을 지적해야만 하는데 역시 모르니까 그냥 맛있다며 넘어간다.

또 다른 객관성의 결여는 평가의 여건에서 찾아볼 수 있다. 가뜩이나 좁은 땅덩어리에서 모두가 언니오빠, 형동생으로 친하다. 객관적인 평가가 불가능하며 아무도 그걸 목표로 삼지도 않는다. 먹고 사진 올려가며 블로그를 꾸리는 이유가 어차피 네트워크 확장을 통한 집단 편입 및 권력 확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신을 드러내지 못해 안달이니, 실제 평론가의 제일 요건인 익명성 확보에 정확하게 반한다. 만화영화 <라타투이>에는 모두가 존재를 아는 음식평론가가 등장하지만, 현실은 사실 많이 다르다. 이해관계에 얽히지 않고 평가하기 위해 대개 스스로를 감춘다. 그래서 레스토랑 주방 게시판에는 현상수배처럼 사진과 포상금이 붙을 지경이다. 이러한 여건 속에서 자유롭게 레스토랑 나들이를 하고자, 뉴욕 타임스의 평론가 루스 라이츨(Ruth Reichl)은 분장에 연기학원까지 다니며 자신을 완전히 감췄고 그 이야기를 담아 자서전(<마늘과 사파이어(Garlic and Sapphire)>)도 냈다. 물론 이는 극단적인 경우지만 객관적인 평가 요건을 갖추기 위한 고민은 분야를 막론, 평가를 내리는 사람의 선결과제여야만 한다.

두툼한 가짜 카르파치오의 신장개업 오스테리아 또한 찬사의 진원지는 셰프와 호형호제한다는 파워블로거였다. 공교롭게도 이미 다른 간접 비판으로 약연을 쌓은 터라, 나의 레스토랑 비판글에 그가 다시 한 번 진노했다는 소문이 바람에 실려 다시금 날아들었다. 절묘하게도 마침 그 시점에 1년 동안 써왔던 책이 막 나온지라, 나는 블로그에 공개서한을 올려 그에게 책, 그것도 서명본 증정을 제안했다. 기본적인 서양음식의 완성도에 대한 객관적 지식을 담고 있는 책이니 그의 식도락에 도움이 될거라는 믿음이 확고했기 때문이다. 이제 한 달이 거의 지난 이 시점에서도 나는 아직 그의 메일을 받지 못했다. 누가 바람에 실어 말을 좀 전해주었으면 좋겠다. 내가 아직도 기다리고 있노라고.

-월간 젠틀맨 2013년 12월호

9 Comments

  • thearticlist says:

    저 카르파치오는 (저라면) 접시를 받는 순간 황당함+화남을 느꼈을 것 같던데, 너무도 평가가 좋죠. 제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해외 유학생 및 해외 여행객이 중국 다음으로 많다는 우리나라인데 아직도 서양식만이라는 이유로 모든걸 용서 받을 수 있다니.. 신기합니다.

    • bluexmas says: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외국물 먹는 사람들이 이리도 많은데 음식이 나아지지 않아요. 신기한 일이죠.

  • 김선아 says:

    블루 리본 3 개 드리앙 에서는 식전빵으로 깨찰빵 이 나옵니다.
    이걸 또 어느 분은 쫄깃쫄깃 ,색다르다고 좋다고 합니다.

  • 김선아 says:

    뜨리앙 입니다, 어떻게 수정하죠 ㅠㅠ

  • 영원한 루머 says:

    나름 긴 시간 지켜본 제 가설은 그렇습니다…
    Bluexmas님은 전문가로서 조리법의 완성도에 방점을 두고, 일반 블로거들은 재료(결국 얼마나 비싼 재료를 사용하느냐)에 더 방점을 두고 언급하는 듯 합니다.
    카르파치오를 예를 들면, 비전문가는 대개의 경우 연어의 두께보다는 연어의 질에 더 관심을 둔다는 거지요. 콘소메를 예를 든다면, 비전문가는 말갛느냐 여부는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는 거지요.
    제 개인적인 경험을 말씀드리면, 저는 블로거는 아닙니다만, 좋게 평가하신 l’eXXX는 그냥 그랬고, 긍정적으로 평가하지 않으신 loXXX는 그래도 자주 가는 편이거든요.
    사족입니다만, 저는 님의 많은 견해에 동의하고, 님을 제 요리 선생님(^^)이라고 생각합니다(님 저서 역서는 다 가지고 있고, 캔 오프너를 사용하지 않는다가 제 원칙이었습니다만, 선생님 글을 읽고 난 후 토마토는 통조림을 이용합니다.^^)
    비전문가가 짧은 지식으로 전문가를 뭐라 그러는 것에 대하여 더 놀랄 것도 없고, 비전문가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비전문가를 어떻게 설득할지 고민할 필요도 없는 듯 합니다, 새움 출판 이방인 아시잖아요…
    http://indindi.egloos.com/

  • bluexmas says:

    저는 좋은 재료를 갖추는 것이 완성도의 사전 단계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대부분 좋은 재료를 찾으면 그걸로 끝이라고 생각하죠. 되려 완성도를 향상시키는 실력이 부족한 걸 재료로 감추려 한다는 생각도 듭니다.

    아, 그리고 l’eXXX는 ‘지금 현재 서울의 맥락에서 어느 정도의 완성도를 갖추었다’라는 의미입니다. 여기에 대해서 제가 엄청나게 긍정적인 평가를 내린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그건 아니에요. 그 정도를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는 평가입니다. 뒤집어 말하면 대부분 그 수준마저도 못하는 것이 문제죠.

    하여간, 말씀 감사합니다. 그 뒤의 레스토랑은 어디인지 기억이 잘 안 나네요. 말씀해주시면 저도 다시 가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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