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산동] 대관원-어느 시절 중식당의 재림
…이곳을 발견했기 때문이다(뭔가 싶은 분들은 어제 올린 글 참고). 순전한 우연이었다. 별 생각없이 골목을 오가다 발견했다. 헐, 뭐 저런 곳에. 게다가 2층이다. 예전에 글을 올린 장강과 비슷하지만 여기는 더 사람이 안 지나 다닌다. 그래도 직장인들 점심 수요는 있는지 말도 안되는 백반 식당 같은 곳이 개발새발 ’11:30-1:30 1인 손님 받지 않읍니다’ 같은 문구를 붙여 놓고 영업한다. 그런데 화상이란다. 안 가볼 이유가 없다. 밥 차리기 귀찮은 날 가서 볶음밥부터 시켜보았다.
남들은 짜장과 짬뽕 사이에서 고민한다던데 나는 사실 그런 적이 거의 없다. 볶음밥을 가장 좋아한다. 하지만 요즘 잘 안 먹는 이유는, 진짜로 볶은 밥이 드물기 때문. 조건은 별 거 없다. 어제의 짜장과 마찬가지로 건더기는 없어도 좋다. 잘 볶으면 그만이다. 기준이 높은 것도 아니다. 밥알이 딱딱하거나 들러붙어 뭉치지만 않으면 된다. 왠지 끝에 액상이 아닌 식물성 기름의 맛이 감도는 이 볶음밥은 그런 면에서 좋았다. 요즘 어디에서나 거의 표준이 되어 버린 약한 간이 못마땅했지만 먹을 수 없는 수준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짜장이 전혀 달지 않았다는 점에서 조짐이 좋았다. 60대로 보이는 주방장이 홀로 나와 만두 이야기를 하는데 그가 오너 셰프라고 생각했다. ‘호텔 출신’이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혹 이것은 40년 경력자의 마지막 ‘커리어 무브’ 같은 것인가. 만두를 만드세요? 라고 물어보니 직원이라 여긴 3-40대 남자가 ‘이거’라며 쪄놓은 걸 하나 준다. 피는 다소 두껍고 뻣뻣하다고 느꼈으나 속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만두였다. 음. 또 와야 되겠다고 마음 먹고 나왔다.
그래서 곧 다시 가보았다. 유산슬과 예의 만두를 시켰다. 일단 해삼과 돼지고기의 질감에 만족했다. 동네 중국집에서는 해삼을 주재료로 쓰는 요리를 이제 거의 내지 않는다. 소량 들어가는 경우라면 채쳐 가공한 것을 불려 쓰는데 푹 익지 않은 경우가 거의 100%다. 이곳의 해삼은 그렇지 않았다. 부드럽게 잘 익었다. 돼지고기도 마찬가지. 동파육 같은 경우를 빼놓는다면 대개 지방이 거의 없는 안심 부위를 많이 쓰는데 대개 뻣뻣하거나 부스러진다. 그렇지 않고 센 불에 적당히 익힌양 부드러웠다. 이는 짬뽕 등 다른 음식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죽순은 통조림이 아니었는지 특유의 냄새가 적고 적당히 아삭해 질감의 대조가 좋았다.
한편 만두는 튀겨도 피의 뻣뻣함이 완전히 가시지는 않았다. 다만 기름솥에서 바로 나온 상태를 지나 식으니까 오히려 살짝 누그러져 먹기 편했다. 그 과정에서 페이스트리처럼 약간의 켜가 생기는 것이 흥미로웠다. 정확하게는 튀긴 만두지만 조리 방식의 선택 자체에 불만은 없었다. 한편 속은 부추에 다진 돼지고기가 체면치레 이상의 비율로 섞였는데 알갱이가 적당히 씹히는 수준. 만두에도 육즙이 최고의 기준인양 읊어대는 이들도 있는데, 많은 만두의 소가 조리 이전 거의 유화 소시지 이전의 점도라는 걸 감안하면 그 육즙이라는 것이 수분인지, 아니면 녹은 지방인지 알 수 없다. 또한 뜨거운 수분이 찍- 뿜어 나오는 것이 스테이크의 경우처럼 휴지의 실패로 내부 수준이 분리된 채 나오는 것인지도 감안해야 한다. 그래서 나오는 수분이라면 그건 조리의 실패이기 때문. 어쨌든 이 군만두는, 그런 표현이 지겹지만 직접 만드는 중국집 만두가 지금처럼 귀한 존재가 아니던 시절 먹을 수 있던 것에 가까웠다.
‘직접 닭육수를 뽑아 주문마다 볶는다’는 짬뽕은 ‘닭육수’보다 ‘볶는다’에 장점이 있었다. 닭육수가 좋은 바탕이 되는 건 사실이지만 혼자서는 별 구실을 못한다. 짬뽕처럼 매운맛 위주의 국물은 지방이 두텁게 받쳐주지 못하면 쏟아 붓는 것에 비해 맛은 적극적으로 나지 않는다. 오히려 만만치 않게 들어간 각종 야채류의 존재가 더 반갑다. 그와 동시에 모든 중국집 음식의 적신호인 대왕 오징어 어묵(?) 발견. 더불어 생물에 뜨거운 물을 부어 익히지 않는한 과조리를 100% 보장 받는 꼴뚜기/주꾸미류 또한 화룡점정의 건더기로서는 썩 반갑지 않다. 이런 체면치레는 없어도 된다. 면은 살짝 뻣뻣한 편.
그래서 차라리 매운맛을 뺀 우동이 더 나았다. 능숙하게 계란 풀고 참기름으로 살짝 두터움을 더하는, 요즘은 흔하지 않은 경험.
한편 탕수육은… 어디에 가서도 시키는 의미가 있을까 회의를 품는다. 그야말로 무난한 메뉴를 굳이 찾거나, 정말 선택을 최소한으로 줄여놓은 곳이 아니라면 다른 요리를 시키는 것이 낫다는 생각. 물론 부먹/찍먹의 여부, 소스의 케첩 첨가 여부, 프루츠 칵테일/파인애플 통조림 등의 첨가 여부 등을 따져보는 것도 나름의 재미는 있겠지만…
이쯤 먹은 시점에서 오너 셰프라고 여겼던 이가 사실은 은퇴를 철회하고 현역 복귀한 고용인이고, 실제 주인은 직원으로 보였던 3-40대 남자라는 사실을 알았다. 옛날옛적 같은 이름으로 서울 시내에 큰 중식당이 있었고 거기의 삼대라고. IT 업계에서 10년 일하다가 이곳을 거점 삼아 가업을 잇겠다는 의도로 열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조금씩 배워가는 과정이라고.
그래서 간짜장은 맛있는가? 양파를 잘게 다져 볶았고 점도는 내가 좋아하는 수준보다 살짝 떨어진다. 뒤로 계속해서 매운맛이 감도는데 썩 반갑지 않았다. 종합적으로 볼때는 만족스러운 수준. 면은 짬뽕이나 우동을 먹었을 때보다는 덜 뻣뻣했다. 조리 상태보다는 면 자체의 배합비가 바뀐 듯한 느낌.
한편 이곳의 간판 메뉴라는 장육은 돼지 아닌 쇠고기 사태살을 말아서 쪘다는데 살코기가 퍽퍽하지 않아 질감의 대조가 좋다. 그에 비해 간이나 (팔각)향은 약한 편. 돼지 귀를 함께 굳힌 짠슬도 마찬가지로 간과 향은 약하다. 둘 가운데 한쪽이 간이라도 좀 더 강했으면 좋겠는데, 저 상태의 짠슬 먹는 것이 즐겁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고기쪽이 그런 편이 나을듯.
깐풍기는 닭강정과 혼연일체가 되어 질척한 요즘 경향과는 달리 반질거리거나 뭉친 덩어리가 아니라는 점이 좋았고 간과 매운맛도 적당했으나 ‘물기 없이 볶는다’는 원래 이름과 달리 다소 흥건한 물기가 튀김을 한차례 스치고 지나간 것처럼 숨이 죽어 있었다. 이쯤에서 개업 한 달 동안 음식에서 감돌았던 각이 살짝 무뎌진 느낌이 조금 들었다.
능숙한 잡채밥도 같은 인상.
지금까지 먹은 음식을 한데 묶어서 생각해보면, 물론 충분한 기술이 받쳐주고 있지만 그보다 자존심이 음식의 완성도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인상이었다. 앞의 글에서도 밝혔듯 한국식 중국 음식의 요즘 위상은 떨어질 만큼 떨어졌다. 심지어 재료는 형편없지만 인력과 조리로 밀어 붙이는 ‘동포’ 운영의 동북식 중국집에도 밀린다. 그런 지평에서 언젠가 중국 음식이 압도적인 외식의 형식으로 인정받던 시절의 수준을 구현하겠다는 의지가 이곳의 음식에 차별점을 불어 넣는 핵심 요인이다. 한편으로는 반갑지만 그와 동시에 지속가능성을 점치기도 어렵다. 살얼음까지는 아니지만, 외줄타기를 하면서 현재의 완성도를 유지하고 있다는 느낌이랄까. 그건 아마도 이 수준의 중식이라는 것이 켜켜이 겹치는 깊은 맛보다 순간 조리로 인한 생동감을 장점으로 내세우기 때문일 것이다. 어차피 누구도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현실을 살고 있으니 지속될 것이라는 기대를 아예 품지 않고 가능한 가서 먹는 수 밖에는 없어 보인다. 이제 2-3만원 대의 일반 요리류를 넘어 해삼 등등의 고급 요리-메뉴에 있다-를 먹을 차례인데, 어떨지 모르겠다.
참, 트위터에 올렸더니 ‘한 시간 넘게 걸리는 거리인데 갈 만한가?’라는 질문을 받았다. 번뇌에 빠지게 만드는 질문은 회피하고 싶다. 이 정도로 언급할 수 있겠다. ‘호텔급 요리’라는 이야기도 나왔지만 다시 한 번, 나는 이곳의 음식을 ‘중식당이 압도적인 외식의 선택이던 시절을 재현한 결과물’ 정도로 본다. 그 정도까지 말할 수 있는 게 나의 일이다. 그걸 바탕으로 시간과 노력을 재단하는 건 각자의 몫이다.
도대체 몇명이 갔길래 많이 시켜 먹고 글을 올렸을까요? 라는 생각이 먼저들면서 류산슬 거의 90%건 해삼 사용하고 요리 잘 나가는 곳이나 섞어서 사용합니다.
여러 번에 나눠 갔다고 글에 썼는데 안 읽으셨습니까? 그리고 당연히 건해삼 씁니다. 어떤 건해삼이냐는 것이죠. 채친 것인가요, 아닌가요? 둘은 다른 재료입니다.
얼마 전에 다시 가봤습니다.
오향장육 여전히 좋은데, 짠슬은 젤라틴 비율이 높아진 형태로 바뀌었더군요. 매니저사장이 빠르게 피드백하면서 계속 변화를 꾀하나봅니다. 삼선짬뽕은 처음 같지는 않은데, 그래도 괜찮습니다.
아무래도 휴일이 필요하니, 조만간 1,3째주 토요일은 휴일이 될 거라 합니다~
젤리같은 짠슬도 나쁘지는 않다고 봅니다. 전 물어보면 아무 말도 안 합니다…. 쉬면서 해야죠.
당산-양평-영등포 언저리 사는 사람입니다. 괜찮은 중국집이 없어 아쉬웠는데 열심히 읽고 있어요. 정작 이글루스 할 땐 몰랐는데 쓰신 글이 좋아서 책도 보려고 합니다.
말씀 감사합니다.
bluexmas님 글을 무단도용하는 어리석은 곳이 있네요.. http://blog.naver.com/ebay0415/220539606922
참고하시길~
엇 간만이군요^^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다녀왔는데, 기대 이상이네요. 덕분에 잘 먹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그러셨군요. 전 계속해서 조금씩 완성도가 떨어진다고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