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호텔 케이크 대참사
선정적인 언어도, 고발도 내 일과 거리가 멀다. 하지만 사진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저 모양이 된 케이크에는 ‘대참사’ 말고 다른 표현이 떠오르지 않는다. 차선-아니면 진정한 최선-으로 ‘개박살’ 정도가 있을 것이다.
갑자기 생각이 나 신라호텔에 올라가 산 케이크다. 사진으로는 구분이 어렵지만 세 조각이었다. 포장을 시작해서 얼음팩을 채우는 것까지는 보았다. 그걸 보는 것도 나의 일이니까. ‘얼음팩을 쓰면서 가져가는데 몇 시간 걸리는지는 왜 묻지 않는 걸까’라고 생각했는데 계산하느라 그 이후는 지켜보지 못했다. 상자째로 비닐가방에 딱 맞게 들어가 움직이지 않는 구조였기 때문에 딱히 크게 의식하지 않고 가져왔다. 다른 곳에서 케이크를 포장해올 때와 행동에 차이가 없었다는 말이다. ‘내가 케이크를 운반하고 있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인식하고 조심스레 들고 다닌다. 수평 상태를 깨뜨리지 않는다. 그렇게 가져와 그대로 냉장고에 넣었다. 저녁 이후 먹으려 꺼냈더니… 참사는 이미 벌어진 뒤였다. 가운데 케이크는 아예 형체조차 없이 사라졌다.
‘운반을 잘못한 건 아니냐’라는 반론은 유효하다. 나는 의식하고 가져왔지만 의식 못하는 순간 흔들렸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그래서 자세히 들여다 보았다. 많은 케이크 매장에서는 운반 사고(?!)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두 가지의 안전장치를 더한다. 움직임을 최소화하기 위한 수단이다. 일단 공간이 남으면 종이 ‘스페이서’를 붙이고 종이 받침에 테이프를 붙여 상자 바닥에 고정시킨다. 사진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둘 가운데 어느 것도 없다. 케이크의 합보다 단면적이 큰 상자에 그냥 담아 내기만 한 것. 심지어 반 농담처럼 ‘테이크아웃은 기사가 해서 차로 운반하기만 하기 때문에 그런 조치의 필요성을 인식하지 못하는 걸까’라고 생각까지 했는데. 이렇게 아무 조치 없이 공간이 남으면 그다지 급하지 않은 제동 한 번에도 참사는 벌어질 것이다.
왜 이런 걸 못할까. 엄청나게 어렵거나, 돈이 많이 드는 일도 아니다. 얼음팩이 대중화된 것처럼 ‘스페이서’도 많이 쓴다. 인기 많은 방배동 메종 엠오의 포장 사진을 참고하자. 생각난 김에 지난 토요일(17일)에 가보았는데, 줄을 서서 사가야 할 상황에 이르니 동시 입점 고객의 수를 통제하고 ‘티켓’을 발부해 주문과 포장을 분리해 체계적으로 움직인다. 두 가지 조치도 물론 잘 해서 판다.
신라호텔의 페이스트리 부티끄라면 유동인구-주문이 밀려서 이런 걸 못하는 상황도 아니다. 호텔이라는 맥락도 그렇고, 서울 시내에서 케이크 구매 행위가 가장 우아하고 느긋할 수 있는 곳이다. 전체의 상황을 여느 매장보다 더 즐기면서 살 수 있다는 말이다. 게다가 한 조각에 11,000원부터 시작한다. 페이스트리로서는 비싸다. 이 정도 서비스와 디테일은 기본이라고 말하는 것조차 입이 아프다.
실제로 예전에도 신라호텔의 떨어지는 디테일에 대해서 지적한 바가 있다. 대표적인 게 팔선에서 베이징덕을 먹고 남은 오리고기를 먹고 싸갈때 딸려 나오는 소금통이다. 병원 물약병을 썼다. 세계적인 호텔에서 그렇게 사소한 것 하나 격과 기능에 딱 맞는 걸 찾기 어렵겠는가. 방기라고 밖에 할 말이 없다.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그나마 약병은 옛 젠틀맨의 칼럼 <미식의 이해>에서 언급한 것을, 호텔 관계자가 읽고 교체하겠노라는 이야기를 에디터에게 들은바 있다. 그게 격의 문제라면 이건 더 중요한 기능과 경험으로써 맛의 문제다. 생각을 못하는 것일까, 아니면 하지만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라연의 서비스에 대해서도 논한 적 있다. 역시 관건은 떨어지는 디테일이다.
그래서 케이크는 어땠는가. 그게 가장 중요하다. 그러나 동시에 의미가 없기도 하다. 이렇게 자질구레하나 중요한 사항의 부재에 대해서 지적한다는 것은, 이미 맛에 대한 기대가 반감되었음을 의미하다. 맛이 있기도 어렵고, 있어도 맛있다고 느끼기가 어려워지며, 맛있다고 말해도 설득력이 없어진다. 그러니 간단히 짚고 넘어가자.
마침 도쿄 아스테리스크의 파티셰 이즈미 코이치가 내한해 특선 메뉴를 선보이는 시기라고 했다. 거기에서 두 점, 나름 재미있다고 생각한 여러 몽블랑 변주 가운데서 한 점을 샀다. 앞의 두 점은 공통적으로 수분을 잔뜩 머금었지만 꺼글꺼끌한 비스퀴가 걸렸다. 오래 구운 것인지 입에서 부드럽게 흩어지지 않고 자글자글한 알갱이를 잔뜩 남긴다. 카시스 등 과일의 단맛과 신맛은 좋았지만, 초콜릿 글라사주 위에 얹은 쇼트케이크 등, 이유도 명분도 없는 장식은 구차했다. 맛도 어울리지 않지만, 위는 마르고 아래는 눅눅해진다. 초콜릿 무스-사진의 ‘미라주’-에서는 프랄리네(?)의 바삭함이 면이 아닌 점으로 존재해서 나머지에 묻히는 것이 아쉬웠다. 좀 더 강한 대조가 필요하다.
한편 변주된 몽블랑-사진의 ‘럼 몽블랑’-은 완벽한 실패였다. 좁은 샷 글라스의 맨 위와 중간에 삶은 밤을 올리고 나머지를 무스로 채웠으니, 무스를 먹으려면 숟가락으로 아주 세게 눌러 밤을 뚫고 지나가야만 한다. 용기의 형태와 재질-싸구려 플라스틱-을 감안할때 거의 불가능한 미션.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마지막으로 생김새와 완성도. 모든 케이크가 큰 의미 없이 큰데 그 가운데 투박하다. 여느 조각 케이크류에 비해 30%는 커보인다. 난 이게 가격을 반영한 결과라고 본다. 스스로 설정하는 격이 있으니 거기에 맞춰 가격을 설정한다. 결국 가장 눈에 띄는 요소인 크기에 그 차이를 반영하는 것. 한국을 지배하는 여느 케이크에 비해 강한 단맛을 감안한다면, 이만큼 클 필요는 없다. 그보다는 역시 안팎으로 디테일을 다듬는 것이 과제다. 이것은 기술보다 ‘멘탈’의 문제다. 만약 그저 구색을 갖추기 위해 이런 사업까지 손을 대는 거라면, 그럴 필요가 없다고 본다. 생각이 나서 들러보니, 롯데 호텔의 피에르 가니에르 페이스트리도 어느 순간 철수했다. 한여름에 냉동팩을 달라니 맞는 사이즈가 없어 B5 크기를 욱여 넣을 정도로 디테일이 떨어지는 곳이었다. 아무런 의미가 없다.
처참하네요
국내 좋은 호텔중에 하나인 신라호텔이 이정도라니 ;;
동네 프랜차이즈 제과점만도 못하네요 매뉴얼이 안지켜지거나 아예 존재하지 않는 듯……
신라호텔까지 가서 케익을 산 이유..
더우기 그날 먹을 것도 아니라 냉장고에 보관한 케익..쩐G랄?
쯧쯧…
돈지랄로 밖에 안보이는 심적 여유도 없는 삶이라니…!
케이크집에서 알바할때 저 스페이서와 케이크 바닥 붙이느라 힘들었었지만 그게 기본이니까 그래 이런 거 시키니까 돈받는 거지 ㅠㅠㅠㅠ 하면서 열심히 했었는데 고객에게도, 열심히 만든 파티시에에게도 난몰랑을 날리는 기분이네요.
맛도 없는 케이크가 더 맛없어집니다..
가만보면 이 블로그에 댓글 다시는 분들은.. 이 블로그 주인에게 조금이라도 비판적인 의견을 내놓으면 무조건 까고 보기 바쁘신듯 하네요. 물론 블로그 주인 포함. 눈살 찌푸리고 갑니다. 글은 많네요.
네, 오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