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호텔]라연-(평양)냉면의 미래와 나머지 단상

 

이번 달 올리브 매거진의 레스토랑 리뷰 대상은 신라호텔의 라연이었다. 원고 제한은 17매 안팎인데, 사실 쓰자면 170매도 쓸 수는 있다. 원고에서 언급하지 않았거나, 조금만 언급한 것들을 가볍게 정리해보자.

IMG_74481. (평양)냉면의 미래-‘닝닝하다’고 말하는 가운데 온갖 단맛 및 잡맛이 드글드글한 평양냉면 국물은 단가와 재료의 문제일까, 아니면 조리 습관의 문제일까. 그러한 맛을 완전히 덜어낸 것만으로 이 냉면은 의미가 있다. 리뷰에서도 언급했지만, 처음 먹었을때 난 이 냉면의 존재와 그 맥락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여름 내내 평양냉면을 평소보다 열심히 먹고 나니 생각이 바뀌었다. 훌륭한 냉면이며, 방향을 제시하는 음식이다.

한식의 고급화 및 현대화의 길은 분명 한 가지가 아니지만, 그 사고의 방법론은 한 가지일 수도 있다. 품고 있는 습관을 완전히 내려 놓고, 기존의 조리법 또한 완전 해체한 다음 원하는 맛의 목표를 재설정한 뒤 그 구현을 위한 조리법을 채택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해왔다는 이유로 굳이 쇠고기에 간장 양념을 더해 음식을 만들 것이 아니라, 그것이 진정 내가 원하는 맛인지 또한 재료에 최선인지 재검토해봐야 한다는 말이다. 설사 나의 지향점이 어느 시점 한식의 완벽한 재현이라는 결론을 내릴지라도, 일단은 모든 것을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IMG_74412. 이것은 결국, 성공의 제일 조건이 일관된 콘셉트라는 걸 시사한다. 라연의 맛을 한데 아우르는 콘셉트는 무엇인가. 다른 맛에 비해 단맛이 너무 두드러진다. 이전 에서도 언급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단맛이 더 강해졌을 가능성도 있다. 모든 맛을 강하게 내겠다는 의도라면 이해할 수 있지만 그에 비해 소금간이나 지방, 감칠맛 등은 굉장히 절제되어 있다. 위의 민어전은 너무나도 좋은 생선을 너무나도 잘 부쳤으나 간이 거의 안 되어 있다. 따라서 별 맛이 안 난다. 간장이 등장하지만, 그걸 찍어 내는 맛과 재료에 간을 해서 내는 맛은 다르다. 셰프가 이걸 모를리 없다. 위에서 언급한 냉면의 경우도 그렇고, 나는 이것이 셰프의 습관에서 나온 맛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니, 의도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럼 뭘까.

IMG_74423. 리뷰에서 ‘초월적인 줄리엔’에 대해 언급했는데, 모든 줄리엔이 성공적인 것은 아니었다. 특히 살짝 언급한 장어구이의 마늘종이 그러했다. 그냥 먹어도 좋은 재료인데다가, 세로로 갈라 열을 가하면 휘어져 보기에도 썩 좋지 않다. 차라리 겉껍질이 부드러워진 가운데 속살의 단맛을 즐길 수 있도록 잘 익히는 편이 낫다. 마늘종이라면 기본적으로 줄리엔이 된 재료 아닐까. 덜 익힌데다가 갈라 놓았으니 결국 뻣뻣한 껍질만 씹힌다. 완전히 익히지 않아 물컹거리는 가운데 맵고 단 양념이 질감을 더 악화시키는 장어구이에 이런 마늘종을 곁들이니, 정말 ‘완벽한 실패’라는 말 밖에 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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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마늘종 외에도 줄리엔이 실패한 건 또 있다. 전통적인 맛을 지녔다고 할 수 있는 대추와 인삼이다. 나는 전자의 질감과 맛, 모두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오히려 독자적으로는 먹을 수 있지만, 음식에 넣었을때 다른 맛과 잘 어울리지 않는다. 게다가 그걸 방치해서 먹게 놓아두면 더 불쾌한 질감을 남긴다. 삼계탕에 담겨 나오는, 불어 터진 말린 대추 말이다. 이러한 대추를 줄리엔으로 썰어 닭다리 말이 같은데 속으로 채우면, 까실거리는 껍질의 질감이 부드러운 닭고기를 침해한다. 맛도 마찬가지. 위에서 말했듯 단맛 말고는 절제된 맛의 표정에 불청객 역할을 한다. 같은 맥락에서 생인삼의 사용도 재고가 필요하다. 과연 인삼이 그 자체를 먹을때 의미 있는 식재료일까? 끓인 것도 썩 좋지 않지만, 생것은 때로 불쾌할 수 있다. 차라리 장아찌 등으로 만들어, 신맛 등이 쓴맛을 보조할 수 있는 맥락에 내놓는 것이 좋다.

IMG_74395. 사진 맨 왼쪽은 배 보쌈 백김치인데, 굳이 배를 썼다는 걸 보여주고 싶은 의도인지 모르겠지만 살이 조금 붙은 배껍질은 살이 이미 무른 가운데 질긴 껍질에 붙어 있어 질감이 썩 좋지 않다. 단맛도 닭 온반의 섬세함에 보탬이 안되니 들어내는 편이 낫다. 접시에 담긴 것 모두를 먹을 수 있다는 전제 아래 내놓는 것이라면.

IMG_74506. 질감의 측면에서 맨 마지막에 차와 내놓는 칡절편은 실패다. 처음 먹었을 때는 굉장히 질겨서, 정말 이해할 수 없었다. 두 번째에는 조금 나아서 첫 번째 실행의 문제라는 생각을 했지만 그 질감마저 식사의 마무리에 차와 나오는 것으로는 불쾌하다. 차라리 가장 만만하다고 할 수 있는 양갱류가 나을 것이다. 맛도 마찬가지. 제누아즈 부스러기를 붙여 경단의 변주를 시도한 것 자체는 좋았으나 마무리의 마무리를 위한 것이라면 시트러스 향 등을 잘 써도 좋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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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시트러스 향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후각적인 요소의 사용 또한 굉장히 절제되어 있었다. 이걸 절제라 말해도 되는 것일까.

8. 서비스. 비단 여기만 그런 것도 아니다. 패턴이 있다. 엄청나게 친절하고 신경쓰는 것 같지만 항상 디테일이 떨어진다. 물 대신 내오는 차가 무엇인지 물어보면 서버가 대답을 못하거나, 와인을 내면서 마치 제 삼자인 양 ‘제가 와인에 대해서는 아직 잘 몰라서’라고 운을 뗀다. 만약 100가지쯤 갖춘 목록에서 고른 것이라면 그럴 수 있지만, 아예 고정된 짝짓기에서 한정적으로 내는 상황이라면 외워서라도 설명해주는 것이 낫다. 아니면 별도의 소믈리에가 역할을 맡아야 되는데, 그렇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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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Response

  1. 12/22/2016

    […] 삼고, 껍질을 바삭하게 지진 돼지고기 수육을 중심에 둔다. 라연의 평양냉면이 한국 냉면의 미래라는 느낌을 주었다면, 그 트리플 해장국은 한국 국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