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호텔]팔선-24만원짜리 한 끼, 빠지는 디테일
미슐랭 별점으로만 따져봐도, 높은 평가를 받는 레스토랑들은 거의 대부분 독립적으로 굴러가는 곳이다. 호텔 같은 곳에 속하지 않는다는 의미다(물론 예외도 충분히 있음을 노파심에 언급한다-다만 이미 별을 단 유명 셰프들이 호텔에 입점하는 건 그 사람들의 이름값을 사오는 것이므로 별개의 경우로 여겨야 하겠다). 이유가 뭘까. 크게 두 가지로 추측할 수 있다. 둘 다 호텔의 덩치, 또는 조직과 관련 있다. 일단 호텔의 식당에는 전체를 굴리는데 필요한 비용까지 붙는다. 물론 고급이지만 전체를 따졌을때 그렇지, 내는 돈에 비해 음식의 수준이 높지 않을 수 있다. 두 번째는 운영 주체다. 셰프는 가급적 독립적으로 레스토랑을 꾸려나가기를 원한다. 자기 음식을 하고 싶기 때문이다. 호텔에 속하는 식당은 호텔 전체의 큰 그림에 맞춰 가야하는 부담이 한 켜 더 따른다. 그래서 호텔, 특히 국내 호텔 레스토랑의 음식에 높은 기대를 품지 않지만 오히려 그 큰 그림이 우리나라의 현실에서는 장점으로도 작용할 수는 있다. 나머지 부분과 공유하는 기반 시설(infrastructure), 특히 전문적인 교육이 많이 필요한 서비스의 측면이 그렇다. 물론 ‘텐텐’으로 통하는 추가 비용을 낸다는 전제가 따르겠지만.
얼마 전 신라호텔의 <팔선>에서 저녁을 먹었다. 북경오리를 포함한 ‘수(壽)’ 정식으로 24만원짜리였다., 각각 미슐랭 별 셋인 <알리니아(210달러)>와 <프렌치 런드리(270달러)>의 사이다. 그래서 돈의 절대적인 가치는 물론이거니와, 비슷한 가격대가 붙은 다른 레스토랑까지 비교 및 감안한다면 음식은 물론 서비스 또한 완벽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과연 그러했을까?
먼저 음식에 대해서 짚어보자. 재료와 간을 포함한 전체적인 맛에 두드러지게 못마땅한 점은 없었지만, 전체를 본다면 두 가지가 다소 아쉬웠다. “바디”의 부족과 다소 떨어지는 디테일이다. 조금만 기름기가 많으면 ‘느끼하다’는 말을 버릇처럼 하는 손님들을 배려하려는 의도인지는 모르겠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가벼웠다. 기름 한두 방울이나 진득한 요소 한 가지 정도가 못내 아쉬운 느낌이랄까. 예를 들어 사진의 해삼찜 같은 경우 조리도 간도 좋았지만 입에 넣을 때도 그렇고, 먹고 나서도 그 여운이 지나치게 짧았다. 해삼의 가운데에 새우나 고기 등을 채워 넣는 요리도 있으니 그런 요소로 풍성함이나 진득함을 더하는 것도 좋았을리라 본다.
한편 ‘디테일이 떨어진다’는 말은 여러 상황에 적용 가능하다. 일단 맨 위의 전채처럼 ‘생각 없음’을 꼽을 수 있다. 다른 건 그렇다 쳐도 특히 세 번째의 ‘자연송이’는 왜 있는지 모르겠으며(향도 거의 없다시피 했다), 무순을 깐 이유조차도 이해하기 어려웠다. 무순과 송이의 맛이 잘 어울려서(그럴리가)? 송이만 놓기 뭐하니까(아마도)? 가격이 자동적으로 정해주는 수준의 음식을 먹는다는 건, 콘셉트 또한 기대할 수 있다는 의미다. 물론 비교가 공정하지 않지만, 동네 고급 중국집 정도에서 잘 튀겨 나오는 깐풍기의 업그레이드 수준을 낸다면 스스로의 격을 부정하는 셈이 된다.
거의 모든 음식에서 한두가지 걸리는 요소들이 그렇게 비슷했다. 불도장에서는 퍽퍽한 돼지고기가 걸렸는데, 그 정도라면 굳이 먹을 필요 없으니 국물을 내는데 썼다면 차라리 걷어내는 편이 낫다고 보았다.
북경오리도 마찬가지. 껍질이 물론 바삭했지만 내가 아는 북경오리처럼 맥아당 등등을 발라서 구운 맛은 아니었다. 다소 찐득한 밀전병 또한 다소 아쉬웠다. 분명히 이보다 더 얇고 착 감기게 부쳐낼 수 있다고 믿는다. 참고로 정말 껍질만 발라주기 때문에 고기는 구이, 볶음, 튀김으로 처리가 가능한데 예전에 먹은지가 오래라 고기에 어느 정도 수분이 남아 있어야 하는지는 가늠하기가 조금 어렵다. 볶았을때 먹을 수 있는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이건 튀겨서 그런지 완전히 말라 있었다. 그냥 단백질 섭취한다는 기분으로 먹어야 끝까지 다 먹을 수 있다(오렌지잼 발라 먹으면 촉촉하고 맛도 잘 어울린다. 원래 오렌지와 오리는 좋은 짝. 오렌지 소스의 오리 Duck l’orange 같은 요리도 있고).
불만 전혀 없었던 생선찜. 다만 찌면 어차피 눅눅해질텐데 연잎밥은 왜 볶았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냥 찐밥이 나았을듯. 어쨌거나 밥에 향은 배어 있지 않았다.
디저트. 모양에 비해 맛은 별로. 전분을 이용해 굳힌 푸딩 같은데, 그런 종류에서 기대하는 질감에 비해 묵처럼 단단한데다가 단맛이 모자랐으며, 바닥에 깔린 망고(?) 소스 또한 신맛이 딸렸다. 그 사이의 삶은 팥은 완전 사족. 이전에 나온 음식들에서 의식적으로 가볍게 만들려는 의도가 보였으므로 이 디저트는 좀 의외였다. 보다 더 가볍고 상큼했어야 하지 않을까.
음식을 하나하나 짚어보자면 이렇지만, 결국 떨어지는 디테일이 가장 잘 드러나는 건 차였다. 처음 나올때는 입을 못 댈 정도로 뜨거웠고, 완전히 차게 식을 때까지 큰 조치가 없었다. 당연히 60도 대에 맞춰 가지고 나와 식사 내내 온도를 유지시켜줘야 한다. 계속해서 주전자를 갈아주는 방법도 있고, 어떤 방식으로든 가열도 가능하다.
다음은 서비스 차례다. 어찌 보면 음식과 비슷하다. 큰 줄기, 즉 대부분의 접객은 훌륭했지만 세세한 부분에서는 걸렸다. 이를테면 전채가 나오기 전에 일행이 자리를 잠시 비웠는데 음식을 자기들 타이밍에 맞춰 그대로 놓고 갔다. 시간이 좀 됐는데도 돌아오지 않자 ‘음식을 너무 빨리 내왔으니 조절을 하겠다’고 말을 했지만, 이런 경우라면 주방에서 아예 음식을 가지고 나오지 않아야 한다. 이 정도 가격대의 레스토랑에서는 당연히 기대할 수 있는 접객이다. 한편 내 자리는 주방 입구 바로 앞, 주방에서 음식 만들면서 나는 소리는 딱히 나쁘지 않았는데, 거기까지 오가는 종업원들이 거의 뛰다시피 빠르게 움직이는게 짜증난다 싶을 정도로 거슬렸다. 이날 식사에서 가장 거슬렸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 직원 배치를 어떻게 하는지, 그들이 얼마 만큼의 손님을 상대하는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뛰다시피 움직여야할 이유는 없다.
새로 문을 열고 한식당에서 아이들의 입장을 제한했다고 매체에서 씹어대던데, 기사를 보니 목표가 ‘미슐랭 별 세 개’라고 들었다. 입장 제한은 또 다른 사안이므로 여기에서는 언급하지 않겠지만, 만일 그 목표가 진짜로 미슐랭의 별이라면 이러한 디테일을 더욱 가다듬어야 할 필요가 있다. 국내는 물론 세계적인 대기업이 운영하는 호텔의 식당이 이 정도라면 아직 갈 길이 다소 멀다고 보는데, 다른 분야에서 잘 나가는 걸 보면 정상급 음식 문화의 디테일이 수준이 어느 정도여야 하는지 (분명 잘 먹으면서도) 감을 잡지 못하는 듯 보인다. 작년 3월 신라호텔 개최한 프렌치 런드리 갈라 디너에 갔을때, 그 자리에는 이부진 사장도 있었다. 분명히 나보다 이런 식사를 훨씬 많이 하실 분들이 같은 가격대로 제공하는 자신들의 음식을 냉정하게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참 궁금하다. 최소한 돈만큼은 어려움 없이 끌어다가 쓸 수 있는 곳에서 사람의 손으로 다듬을 수 있는 부분에 헛점을 보인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여기에서 내가 지적한 사항들은 분명히 큰 노력과 돈을 들이지 않고도 개선할 수 있는 것들이다.
사족
1. 레스토랑에 들어서며 아래층 라운지에서 빙수를 아직도 하는지, 혹 예약이 가능한지 물었다. 1은 O, 2는 X였다. 저녁을 먹고 내려가 물어보니 30분 대기. 분명히 대기를 예상할 수 있는 경우라면 적당히 타이밍 맞춰 아래층에 자리를 맡아 달라고 할 수 없는 것일까? 이런 식의 연계된 서비스는 호텔에서 기대할 수 있는 것이라 보는데.
2. 개중 싼 뵈브 클리코를 시켜 코스 전체에 곁들였다. 개중 싸서 180,000원(‘ㅅ’a). 달지 않은 스파클링 와인은 사실 두루두루 잘 어울린다. 치킨에도 맥주만큼 잘 어울릴 듯.
3. 짜장면은… 맛이차이나 셰프가 정말 잘 배워가지고 나온듯.
# by bluexmas | 2013/09/16 17:07 | Taste | 트랙백 | 덧글(10)
어차피 한끼 먹는 거 맛있게 먹는 게 좋죠.
2 Responses
[…] 플라스틱 병이다. 약 대신 소금이 담겼고, 출처는 신라호텔 중식당 팔선이다. 1인당 24만 원짜리 코스의 중심인 북경오리의 곁들이다. 껍질을 […]
[…] 신라호텔의 떨어지는 디테일에 대해서 지적한 바가 있다. 대표적인 게 팔선에서 베이징덕을 먹고 남은 오리고기를 먹고 싸갈때 딸려 나오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