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슐랭 가이드 마지막 총정리 / ‘포스트 미슐랭’의 과제
‘대망’의 미슐랭 가이드 발표가 사흘 앞으로 다가왔다. 농담이 아니고 대망이 大望일지 待望일지, 大亡일지 나도 궁금하다. 그동안 하도 많이 써서 미슐랭 가이드에 대해서 더 이상 글을 쓰고 싶지 않은데 며칠 전 한 매체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취재 준비를 위해 연락했다는데, 밝힌 것처럼 글을 쓸 만큼 썼으므로 더 이상 할 말이 별로 없기는 하다. 또한 지겹다. 하지만 발간을 목전에 두고 서양 음식 1도 모르는 연로한 분들의 아무말 대잔치가 활자화된 걸 보고 마음이 아팠다. 마지막 총정리나 한 번 해보자.
1. 문화 사대주의, 또는 대체 왜 프랑스의 기준을 들여 오느냐는 지적: 이미 한국엔 여러 종류의 음식 가이드북-리스트가 존재한다. 얼마나 많은지 나도 세어보지 않았지만 사실 그 모든 것의 원조가 미슐랭 가이드이다. 이걸 두고 문화 사대주의라고 트집 잡는다니 우습기 짝이 없다. 문화사대주의를 문제 삼고 싶다면 왜 더 이상 장작불을 때서 나무틀에 면을 뽑아 평양냉면을 만들지 않는지부터 따져봐야 한다. 가스나 전기는 한국, 또는 동양에서 처음 발견 및 발명 되었나?
한편 같은 맥락에서 과연 한국적인 음식 평가의 기준이 존재하는지, 또는 음식 평가의 기준이라는 것 자체가 과연 한국에 존재는 하는지도 궁금하다. 난 없다고 본다. 한국적인 평가 기준을 내세우는 이들의 가장 큰 문제는 열등함과 다름을 구분 못하거나 아니면 의도적으로 하지 않으려 든다는 점이다. 특히 가장 큰 문제는, 한식의 많은 소위 전통이 재료의 이치 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습관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여러 근육 다발이 뭉친 돼지 목살을 고무가 될 때까지 바싹 구워 먹는 식문화는 다른 전통이 아니고, 그냥 재료를 이해하지 않고 천편일률적인 조리법을 적용하는 악습일 뿐이다.
2. ‘빕 구르망’ 리스트: 트위터에서 누가 ‘한국에 참 먹을 것 없다’고 그러던데 나도 동의한다.
3. 미슐랭의 사업주체: 딱히 열심히 알아보지 않았지만 어떤 개인과 집단인지 궁금하다. 가장 걸리는 측면은 개인적으로도 들었고, 매체에서도 언급하는 심사관들의 ‘커밍 아웃.’ 음식점에 나중에 찾아가서 ‘나 (또는 우리)가 심사관’이라 밝힌다는데 이게 과연 가능한 일인가?
4. ‘포스트 미슐랭’의 과제: 늘 지겹도록 말해왔지만 있는 것 가운데서 리스트 뽑아봐야 큰 의미가 없다. 한국 식문화는 그런 상황이다. 기분 나쁘다고? 나는 뭐 한국 식문화의 일부가 아니란 말인가. 나 또한 기분이 나쁘다. 척박한 식문화는 비단 외식 뿐만이 아니라 그냥 가장 평범한 밥 먹고 사는 삶에도 나쁜 영향을 미친다. 폭염 이후, 식품 매장엔 먹을 게 없다. 원래 먹을 게 없지만 더 없는 상황이다. 파프리카 한 개에 5,000원이 넘고 예전에도 말했지만 생크림이 두세 종류 밖에 없으며 파인 다이닝 재료의 국산 비율은 따져보면 처참할 것이다. 물론 국산을 쓰지 않아도 전혀 상관 없다. 문제는, 선택 자체를 할 수 조차 없는 상황이라는 점이다.
이런 현실에서 미슐랭이 진출한다. 막을 생각도 없고 능력도 없다. 하지만 이후를 고민해야 한다. 유념해야 한다. 미슐랭 가이드는 사업체다. 한국에 진출하는 이유도 사업적 계산 때문이다. ‘국가 대표 증후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미슐랭 가이드의 진출을 한국 식문화의 세계적 좌표 안착으로 착각하면 안된다. 그와 별개로 한국의 식문화는 척박하고 본질적인 개선을 추구해야 한다. 바로 지금 이 순간 한국 사회가 겪고 있는, 소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현실을 생각해보라. 이런 현실과 의식이 식문화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볼 수 없다. 공교롭게도 적폐의 절정 등장하는, 백 년 넘는 미슐랭 가이드의 쇠락이 한국 식문화의 쇠락과 동반해 가속화될지도 모른다고 본다. 중요한 건 일부 음식점-레스토랑을 향한 집중 조명이 아니다. 바탕과 기반과 저변이 나아져야 한다. 지금부터라도 축적해야 한다. 안 그러면 한국 사회의 퇴보와 맞물려, 우리는 더 크고 만성적인 맛없음에 고통 받아야할 지도 모른다.
5. 마지막으로 그동안 썼던 모든 미슐랭 관련 글의 링크를 한데 모은다.
미슐랭 가이드, 대한민국 미식의 청신호와 적신호 (2011/10/04)
미식의 이해 (16)-미슐랭의 딜레마 (2014/08/16)
식품매장도 그렇군요. 요새 서울 시내에서 폐업, 정리하는 평범한 식당들 보니, 앞으로 양극화가 더 심해질 거란 생각이 듭니다. 최근 친구와 봉피양 양재점에서 설렁탕을 먹었는데, 요새 가본 식당들 중에선 공기밥 상태가 그나마 제일 낫더군요. 지금 현실이 이렇습니다.. 요샌 동대문 근방 가면 그냥 ‘잘로스’에서 몽골음식 먹고 있습니다.
나중에 다시 찾아가서 “내가 바로 미슐랑 가이드 인스펙터요.” 한다고요?
믿을 수가 없는걸요. 미슐랑 정책에 정면으로 어긋나는 일인데요.
(저 “미쉐린”이라는 한글 표기도 웃겨요. 일본식 발음인가.)
저는 그냥,
‘늬들도 이제 경제력이 우리 프랑스 와인 사 마시고 푸아그라 사 먹을 수준이 된 것 같으니
옛다, 선심 써서 가이드 북 내 주마. 대신 보답으로 우리 식재료 많이들 사다 써라, 응?’ 같아요.
좋은 재료 꾸준히 공급 받을 여건도 안 되는 나라에 무슨 미슐랑 가이드입니까.
저는 한국에서 양식 파인 다이닝 하시는 분들은 재료 문제 어떻게 해결하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유럽인들은 적색육뿐 아니라 가금도 매우 다양한 종류로 즐기던데
한국의 파인 다이닝 본식은 늘 쇠고기 위주.
수급 탓도 있고 손님들이 보수적인 탓도 있겠죠.
탐구심 충만한 진지한 요리사들 같으면 재료도 이것저것 다양하게 만져 보고 싶을 텐데
한국에서는 좀 안됐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도 사명감 가지고 대중에게 부지런히 새 재료를 소개해 줘야겠죠.
여긴 요리사의 의무로 맛있는 음식 제공하는 일뿐 아니라 새 식재료 소개하는 일도 꼭 포함을 시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