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식의 이해(16)-미슐랭의 딜레마

P1320030
10~11월, 6주에 걸쳐 미국 북서부(Pacific Northwest)에 머물렀다. 처음 4주는 ‘힙스터의 도시’ 포틀랜드에 머물렀다. 초점은 현지 제철 재료와 커피였다. 시장에서 재료를 사다가 직접 음식을 만들어 보았고, 커피를 매일 너덧 잔씩 마셔댔다. 나머지 2주는 시애틀에 며칠 들른 뒤 샌프란시스코에서 보냈다. 그곳에서는 레스토랑에 초점을 맞췄다.

레스토랑 방문을 위한 여정은 즐거움보다 고역에 가깝다. 물론 예약(언제나 어렵다)이나 예산(언제나 부족하다)도 문제지만, 체력과 감각에 걸리는 과부하가 더 버겁다. 파인 다이닝은 결국 형식과 절차다. 존중하려면 의식적인 노력 및 체력이 필요하다. 코스를 다 먹으려면 적어도 두세 시간은 걸린다. 마라톤처럼 ‘완주한다’는 표현을 써도 무방할 정도다. 둘 다 해봐서 아는데 시간과 체력의 소비 모두 흡사하다. 떨어진 체력과 감각은 당연히 평가에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원칙을 세웠다. 욕심을 버리는 것이다. 가고 싶은 레스토랑이 넘쳐나더라도 하루에 한 군데만 가며 나머지 끼니는 가능한 가볍게 먹는다. 또한 사흘 정도 연속으로 갔다면 하루는 완전히 쉰다.

원칙을 준수하자면 갈 수 있는 레스토랑의 수가 현저히 줄어든다. 2주일이라면 잘 해야 열군데 정도다. 기회비용의 문제가 물 위로 떠오른다. 물론 ‘비용’보다 ‘기회’가 더 중요하다. ‘장고 끝에 악수’ 두는 꼴로 한 곳에서 실패했다면 가지 못한 다른 곳의 알게 될 기회도 버리는 셈, 실패의 충격파는 두 배로 커진다. 다소 이상한 계산법이지만 배울 기회를 잃는 건 그만큼 뼈저리다.

그래서 가이드가 필요하다. 샌프란시스코는 뉴욕, 시카고와 더불어 미슐랭 가이드가 별점을 매기는 세 도시 가운데 하나다. 그럼 낙찰! 고민 없이 미슐랭 가이드를 참고해 가면 될까? 그게 좀 미묘하다. 쉽게 ‘그렇다’는 답이 나오지 않는다. 물론 가이드의 존재는 목적지를 정하는데도 영향을 미친다. 이왕이면 점수를 매기는 도시와 레스토랑에 찾아가 맛보고 싶게 마련이다. 하지만 차츰 별점으로 수렴하는 평가를 액면 그대로 믿기가 어려워진다. 콘셉트는 차치하고서라도, 사람의 명백한 실수 때문에 완성도가 떨어지는 음식을 만나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이 가장 두드러졌던 아틀리에 크렌(Atelier Crenn)의 경우를 짚어보자. 이곳은 작년에 두 번째 미슐랭 별을 새롭게 받았다. 덕분에 셰프 도미니크 크렌(Dominique Crenn)이 최초의 ‘투 스타’ 미국 여성 셰프로 다시금 유명세를 탔다. 재료의 물성을 극복하는 현대요리에 늘 호기심을 품고 있어 찾아갔는데, 결과는 처참한 실패였다. 콘셉트를 받쳐주지 못하는 조리솜씨 때문이었다.

‘시적 요리(Poetic Culinaria)’라는 기치 아래, 아틀리에 크렌은 시를 요리로 표현한다. ‘아름다운 가을 이파리 아래 자연 미녀가 잠자고 있네(Where the wild beauty is sleeping under the beautiful leaves of autumn)’라는 요리를 예로 들어보자. 채소를 낙엽처럼 바삭하게 만들어 사슴 안심 스테이크를 덮어 낸다. 한마디로 먹는 디오라마 수준이다. 다만 먹을 수 없는 부분도 있어 문제다. 말렸는지 튀겼는지 분간하기 어려웠지만, 이파리 역할의 채소에는 딱딱해 씹을 수 없는 부분이 꽤 많았다. 익힌 스테이크의 열과 수증기가 바삭함에 미칠 영향도 고려하지 않은 듯 보였다. 이런 종류의 결함이 열대여섯 가지에 이르는 요리 거의 모두에서 눈에 들어왔다. 육포를 흉내 내 말린 당근은 찐득해서 이에 달라붙었으며, 전갱이 크루도 위에 얹은 래디시 튀김은 아삭하지도, 부드럽지도 않고 딱딱했다. 시까지 들먹인 원대하고 고상한 콘셉트를 조리가 전혀 받쳐주지 못했다. 게다가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내 식탁에 올라와야 할 요리가 매체를 위한 사진 촬영에 동원되는 광경도 열린 주방을 통해 목격했다. 나사못이 뾰족하게 드러난 나무틀에 디저트를 담아내는 것까지 보고 나니, ‘미슐랭 조사관은 무엇을 본 걸까?’라는 의구심이 밀려왔다.

종종 ‘한 번 가서 알 수 있느냐’는 질문을 받는다. 거의 대부분 그렇다. 차라리 머리카락이 나오는 것과 같은 실수라면 모를까, 위에서 나열한 결함은 솜씨의 부족으로 인한 것이다. 다음에도 거의 비슷한 수준일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미슐랭 조사관의 별 두 개도 몇 번의 방문에 의한 결론인지 모른다. 철저히 비밀에 부치기 때문이다. 2004년 전직 조사관 파스칼 레미가 책을 통해 ‘자주 방문하기 어려운 현실’을 폭로했지만 미슐랭은 부정했다. 물론 조사관의 존재도 드러나지 않는다. 공정한 평가를 위한 장치인 건 맞다. 다만 저런 수준이라면 누가 와도 더 잘 내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래서 이래저래 미슐랭 가이드는 딜레마다. 따라가고는 싶지만 경험에 반비례해 믿음이 깎여나간다. 방문자들이 정보를 구축하는 ‘옐프(yelp.com)’ 같은 사이트도 대안 역할을 한다. 미슐랭도 이런 현실을 모르지 않는다. 2011년 기준 2,500만 달러에 이르는 적자가 말해준다. 그래서 같은 해, 회사의 본업인 타이어 담당 미국인을 새 디렉터로 앉혀 변화를 모색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2013년 가을, 나는 대부분의 미슐랭 별에 빛나는 레스토랑에서 실망을 맛보았다. 딜레마의 먹구름은 현재진행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