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슐랭가이드, 대한민국 미식의 청신호와 적신호

미슐랭가이드가 나왔다굽쇼? 벌써부터 난리가 났다. 매체에서도 앞 다투어 보도를 해대고 있다. 드디어, 절대 미각으로 무장한 미슐랭 비밀 시식단의 성스러운 발길이 이 한반도에 상륙하는 것인가! 그러나 잠깐. 진정할 필요가 있다. 이번에 발간되는 것은 미슐랭 ‘그린’ 가이드다. 미슐랭의 이름값을 아예 무시할 수는 없지만, 기본적으로는 관광 가이드북에 지나지 않는다. 음식도 소개하지만 그보다는 관광의 다른 측면에 초점을 맞춘다. 우리가 ‘미슐랭가이드’하면 떠올리는 그 레스토랑 가이드는 ‘레드’다.

물론 이 그린 가이드(이하 ‘그린’, ‘레드’는 ‘미슐랭가이드’)의 발간에 의미가 아예 없는 것은 절대 아니다. 표지의 색깔처럼 그린은 레드로 가는 길목의 청신호나 다름없다. 언젠가는 레드도 발간된다는 의미다. 그 ’언젠가‘가 정말 언제인지는 사실 문제다. 인터뷰에서도 ’as soon as possible’이라는 표현을 썼다. ‘우리 언제 만나 밥(술) 같이 먹자’가 생각난다. 아무도 그게 진짜 언제가 될지는 모른다는 그 ‘언제.’

그래도 정말 언젠가는 나온다고 하니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미슐랭가이드가 그 역사와 전통을 등에 업고 우리나라 미식계에 한 줄기 빛을 드리울까? 이 또한 섣부를 수도 있지만, 안팎의 현실을 차근차근 들여다보면 ‘글쎄올시다’라는 대답을 할 수 밖에 없다. 회의가 든다. 근원지는 바로 미슐랭가이드 그 자체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지갑을 열만큼 미슐랭가이드의 권위는 절대적인가?

미슐랭가이드의 권위에 들어오는 ‘태클’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고, 다분히 전방위적이기까지 하다.  그 근원지 또한 자국인 프랑스다. 2004년, 비밀 시식단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파스칼 레미는 <테이블에 앉은 시식단 (L’Inspecteur se Met à Table)>라는 책을 통해 미슐랭의 비밀을 까발렸다. 시식단의 부족으로 미슐랭측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자주 레스토랑을 평가하러 다닐 수 없는 현실이라는 것이 요지였다. 특정 셰프의 편애로 인한 공정성의 손상 또한 당연히 거론되었다.

어떤 식으로든 평가를 해서 점수를 매기고 그 점수가 매상에 큰 영향을 미치는 만큼, 공정한 평가에 대한 문제제기는 사실 이러한 가이드북이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미슐랭가이드의 경우, 프랑스 바깥에서 들어오는 태클은 거의 대부분 프렌치에 편중한 평가와 그로 인한 비(非) 프렌치의 상대적 박탈감에서 비롯된다. 특히 ‘아메리칸 퀴진(American Cuisine)’의 존재를 믿는 미국의 목소리가 두드러진다. 이제는 유럽과 견주어 차별화에 성공했다고 자부하기 때문이다. 2011년판을 기준으로 미국에서 최고 등급인 별 세 개를 받은 미국의 레스토랑은 전부 아홉 군데, 그 가운데 한 군데(일식)를 빼놓고는 모두 프렌치에 어떻게든 기대고 있으니 그런 목소리를 낼만도 하다. 아예 프랑스인 셰프의 이름을 걸고 있거나, 프렌치를 바탕으로 삼고 있다거나 프렌치 테크닉에 바탕한 조리 교육을 하는 CIA출신이거나 하는 식이다. 프랑스와 맞먹는 별 세 개 레스토랑을 자랑하는 일본의 경우 대부분이 자국의 음식이다.

미슐랭에서 비밀 시식단을 풀었을 때 과연 어떤 레스토랑을 평가할지, 그 대상에도 회의를 품지 않을 수 없다. 일본의 경우를 생각해본다면 우리 음식을 하는 레스토랑이 우선순위에 오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파인 다이닝 한식 레스토랑? ‘호텔 한복 사건’의 불똥이 엉뚱하게도 호텔 한식당으로 튀었다. 덕분에 이제는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서울 시내 특급 호텔 가운데 한식당이 있는 곳은 네 군데 뿐이라는 걸 안다. 그 모두에서 음식을 먹어보았다. 초고속 엘리베이터나 전통을 차용한 공간은 미슐랭의 가능성이 있었지만, 음식은 아니었다. 호텔이 파인 다이닝의 알파도 오메가도 아니지만, 그 둘 사이에 대안도 없는 것이 바로 우리 음식의 현실이다.

그렇다면 양식은 상황이 좀 나을까? 이유는 많지만, 지면이 부족하니 딱 한 가지만 언급하겠다. 파인 다이닝의 아이콘 대접을 받는 셰프 둘이 일자리를 옮겼다. 새 레스토랑을 선보인지 길어야 1년이었다. 나름의 속사정이야 있겠지만, 손님이 그것까지 헤아려야할 의무는 없다. 레스토랑 주방의 제 1 임무는 지속성이다. 추구하는 음식의 격을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한 달 전에 맛있게 먹어 오늘 또 갔더니 별 볼일 없어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그래서 미슐랭도 믿거나 말거나 별점을 내린 레스토랑들을 지속적으로 재방문 및 평가한다는 것이다. 주방 자체의 존재조차 지속되지 못하는데 그 음식의 격은? 업데이트를 위해 재방문했더니 레스토랑은 없고 셰프만 남았다면?

비판적 수용이 없는 소비자의 태도 또한 회의를 더한다. 권위에 맹목적으로 기대기만 한다. <트루맛쇼>? 파워블로거 추천 맛집? 모두 같은 맥락이다. 돈을 내고 먹으면서도 관대하다. 밥상머리에서 불평을 늘어놓으면 안 된다고 예절교육을 받은 덕일까? 자가트 서베이를 앱으로 받아 서울편을 무작위로 들춰보았다. 평들이 무작위로 호의적이다. 내가 알던 자가트가 언제 이렇게 너그러웠을까? <블루리본 서베이>? “샹들리에, 아늑한 분위기, 유럽의 카페”가 먼저 나온다. 거기까지야 가이드북이니 그렇다고 쳐도 “살이 많이 찐 주인아저씨 인상이 좋다”라는 독자평을 소개하는 건 스스로가 추구하는 권위마저 깎아내리는 듯한 인상을 준다. 주인아저씨 얼굴 뜯어먹으러 식당에 가나? 그린가이드에 소개되니 ‘미슐랭이 우리 맛의 비법에 관심을 기울였다’라는 광고문구를 내거는 집들이 나온다. 돌아가는 상황을 보고 있노라니 미슐랭가이드가 가뜩이나 안타까운 현실에 부담을 더하는 ‘적신호’가 될까 벌써부터 걱정이다. 정말 ‘언제’ 나올지도 모르는데.

-엘라서울 7월호

어쨌든, 나는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음식 현실에서 레드 가이드가 나올 것이라고 생각도 안 하고, 나와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누군가 나에게 그랬다. ‘우리는 지금 자라는 과정 아닌가요?’ 글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미슐랭가이드 자체의 권위도 문제가 있지만, 완성품 아닌 것에 미슐랭가이드가 신경써줘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아직도 연습이 필요하다면 집에서 연습하지 왜 손님 돈 받아가면서 하나?

 by bluexmas | 2011/10/04 13:05 | Taste | 트랙백 | 덧글(9)

 Commented by 삭후 at 2011/10/04 13:20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자카트 서베이는 이메일 계정으로 회원가입만 하면 서베이에 참여할 수 있더군요. – -;

 Commented by bluexmas at 2011/10/08 00:34

아 그렇군요 저도 가입해야 되겠습니다 ;;;

 Commented by 불별 at 2011/10/04 15:28 

좀 안좋아하는 식당 중 하나인 동대문 닭한마리를 동생이 가고 싶다해서 몇주전에 갔는데, 거기에 미슐랭 가이드에 뽑힌 식당이라고 쓰여 있더군요. 그렇게 시끄럽고 복잡한 곳을 미슐랭 가이드에서 선정했다니, 내가 아는 그 미슐랭 맞음? 이라고 생각했었는데;

 Commented by bluexmas at 2011/10/08 00:34

아 거기요 저도 지나가다가 사람들 기다리는 거 보고 어이 없었습니다. 그 미슐랭이 그 미슐랭이 아니죠ㅣ;

 Commented by 차원이동자 at 2011/10/05 01:08 

뭐랄까… 국내의 티비프로에 나오는 수많은 맛집소개들에 지쳐있는 사람들이 찾게되는 또다른 권위라는 느낌이 드릭도 합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11/10/08 00:34

네 근데 별 다를 바 없다는 것이 문제죠;;;

 Commented at 2011/10/05 01:51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11/10/08 00:36

그 정도로 미슐랭이 썩지는 않았으니 너무 걱정마세요;;

블로그 놀러갔다가 오랜만에 화이트스네이크 찾아 들었는데 언제 덕 앨드리치하고 렙 비치를 함께 들였죠?-_- 거 참 대단하네요;;; 63세가 더 대단해요; 임#범은 습관적인 바이브레이션이 정말 듣기 싫더라구요. 이제 소리는 갔는데 기교만 남은 느낌이랄까요?

 Commented by 랜디리 at 2011/10/08 14:46

올 초 뉴욕에서 공연을 본 선배 얘기로는 – 그 형도 좀 이 쪽 계열의 환자. 한 30개 보고 오신 듯 – 뉴욕에서 본 수많은 공연 중에도 단연 손꼽을만 했다고 하더군요.

26일 내한공연 때 한 번 확인해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