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결산과 건방진 음식

IMG_9296기본적으로 리스트 뽑기 같은 게 싫은지라, 연말 결산 같은 것도 별로 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하지만 올해의 최악 레스토랑은 분명히 존재한다. 여름에 간 트라토리아 오늘. 나쁜 것에 대해서 말하기란 참으로 괴로운 일이다. 좋아질만한 나쁜 것에 대해서 말하는 것은 좋다. 나쁘지만 왜 나쁜지 이해할 수 있는 것에 대해 말하기도 괜찮다. 나쁘지 않을 수 있으나 실수로 인해 나빠진 것을 말하는 것도 그럴 수 있다. 대개 그런 것은 음식으로서 최소한의 기능은 한다. 먹을 수 있다는 말이다. 올해 레스토랑을 다니면서 느꼈다. 나아지고는 있구나. 콘셉트가 분명치 않고 유행의 결(콘템포러리?)이 뒤로 흐르는 듯한 느낌을 받았지만, 정말 터무니 없이 실행 자체가 망가진 채로 나오는 음식은 없었다. 하지만 트라토리아 오늘의 음식은 먹을 수 없을 정도로 나빴고, 그 나쁨의 상태가 지극히 의도적이었다. 어제의 글에서도 말했듯 맛이 없다-나쁘다의 스펙트럼도 참으로 다양하니, 어떤 지점에 머무르는 맛없음이 철저한 의도의 결과라면 그것도 괜찮다. 차라리 좋을 수도 있다. 말하자면 능력이 있는 가운데서 의도적으로 빚어내는 맛없음이라면 웃고 넘어갈 수도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능력이 없는데 의도적으로 빚어내는 나쁨-맛없음은 싫다. 트라토리아 오늘의 음식은 이 지점에 속하는 음식이고, 요즘 드물다. 많은 레스토랑이 콘셉트의 불분명함을 가리기 위해 완성도에 목을 매는 현 시점에서 존재하기가 어려운 음식이다. 그래서 올해 최악의 음식이다. 이런 음식은 팔면 안된다.

IMG_9289그만큼 나쁜 음식이 사실은 또 있었다. 이곳의 이름을 밝힐 생각은 없다. 기본적으로 직업적인 ‘세팅’의 자리가 아니었다. 말하자면 음식에 신경을 최대한 기울이며 먹을 상황이 아니었다는 말이다. 게다가 내 돈을 낸 곳도 아니었다. 대개 이런 경우라면 아예 글조차 쓰지 않는다. 또한 글을 쓰지 않을 이유는 또 있다. 위에서 밝힌 것처럼 100%의 나쁨을 나열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나쁜데 좋아질 구석이 없는 경우. 솔직히 말하자면 전혀 신경쓰지 않아도 그 나쁨이 콸콸 넘치는 음식이었다. 그래서 아예 식사의 끝에선 무념무상의 길로 접어든 가운데, ‘나쁜데 좋아질 구석’이 없는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 가장 쉽게는 자기 객관화의 결여를 이유로 꼽을 수 있다. 만드는 이가 이 음식을 진짜로 괜찮다고 여기는 것이다. 아니면 자기 객관화가 어느 정도 되기는 하지만 여러 가지 현실의 이유, 더 정확하게는 제약으로 인해 수정 및 발전할 기회를 얻지 못하는 것이다. 난 후자를 괜찮다고 여긴다. 맛없음에 좌절할 수는 있고, 돈도 아깝지만 오래 담아두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차라리 제약을 빚어내는 현실에 대해서 생각한다. 괜찮지 않지만 괜찮을 수 있다.

IMG_9286하지만 이 음식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너무나도 확실한 전자로 보였다. 그래서 생각했다. 이것은 건방진 음식이다. 음식이 건방질 수 있는 것인가? 건방짐의 딱지를 붙이는 것에 대부분 거부감을 느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렇지 않다. 오히려 나는 건방진 음식을 좋아하고 또 먹고 싶다. 건방짐의 스펙트럼에서 이 음식의 것과 완전히 반대에 있는 종류 말이다. 그것이 예술혼일 수도 있고, 완벽한 기술일 수도 있으며, 정확한 콘셉트와 비전일 수도 있다. 하지만 아마도 진정 건방진 음식이라면 그 세 가지가 웬만큼 균형을 이루며 교차하는 좌표 위에 놓여 있을 것이다. 가진게 있어서 떠는 건방짐이다.  ‘하하 내가 이 한 접시로 너를 압도하겠다’라는 의도가 콘셉트나 기술과 완벽하게 어우러진 음식. 먹고 나서 ‘아이고 좋은 음식을 만들어 주셔서 감사하고 또 죄송합니다’라고 바로 가드 내리고 표현하게 만드는 음식. 그런 음식이라면 한없이 건방져도 좋다. 내년에는 마음 놓고 또 드러내 놓고 건방짐을 떠는 음식이 좀 많아졌으면 좋겠다. 긍정적으로 건방진 음식 말이다. 이렇게 부정적으로 건방진 음식 말고.

1 Response

  1. 03/18/2016

    […] 없고 게다가 다른 사람이 산 식사였으므로 리뷰하지 않았다. 그래서 짧게 이 글을 쓰고 말았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