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수동] 트라토리아 챠오-맛내기 authorship의 부재
우연히 홍대 지역만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잡지 ‘스트리트 H’에서 기사를 보고 지난 주 가보았다. 2만원 아래의 음식과 5만원 아래의 와인을 적절하게 내는 비스트로/트라토리아는 음식만 잘 한다면 귀한 존재다. 음식은 물론 술의 측면에서도 현재의 음식 문화에서 좋은 대안이 될 수 있기 때문. 늘 이야기하지만 음식과 같이 먹을 수 있고, 또 12-15도 사이의 도수와 그에 따른 ‘볼륨’ 때문에 와인은 밖에서 마시기에도 좋은 술이다. 가격 등등이 너무 높게 형성된 것이 문제지만, 찾으면 또 적절한 가격대에서도 무엇이든 있기는 있다.
어디 하나 맺힌 구석 없이 부드러운 뇨끼(18,000원)만 놓고 보아도 기본적인 조리 실력은 갖췄다고 생각하는데(다만 주름이 좀 있었으면 좋겠다. 파스타의 주름은 장식이 아니고 소스를 잘 달라붙게 해주는 역할을 하며, 뇨끼의 주름 또한 한 단계 위의 숙련도를 말해주므로. 그래도 말 많고 탈 많은 몽고네의 아마추어 뇨끼에 비하면 두 단계는 위다.), 그에 비해 간이 너무나도 안 되어 있어 놀랐다. 우리가 ‘짜다’고 생각할 수 있는 서양식 간을 10이라고 수치화한다면 2-3의 수준. 조금 과장을 보태 생재료를 먹는 느낌이랄까. 비단 소금 뿐만 아니라 산이나 지방, 치즈도 거의 안쓰다시피 해서, 이것이 셰프의 본능에서 나온 것인지 아니면 어떤 외부 요소를 의식하고 지나치게 조정을 한 결과인지 꽤 오랫동안 생각하게 만들었다. 자기를 내놓고 판다는 측면에서 난 음식, 글, 미술, 음악 등등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가상의 소비자를 인식하는 건 때로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지만, 그게 지나치게 가상에만 존재하기 때문에 설정하고자 하는 사람도 어떤 특성을 품고 있는지 정확하게 모른다거나 울타리를 너무 넓게 잡아버린다면 결과가 절대 좋게 나올 수 없다. 음식은 음악이나 미술 등보다 더 일상적이고 직관적인 매체이므로 맞추는데 더 신경을 써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그래봐야 전부를 만족시킬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세상에 모두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존재나 개체란 없다. 흔들리지 않는 내부 논리를 세우고, 그것으로 소비자에게 개별적으로 호소하는 전략이 난 더 낫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나의 목표가 정말로 맛의 전달이라면 그렇다.
혹자는 참치 통조림 때문에 싫어할 수 있겠지만, 논외로 한다면 이 샐러드는 12,000원이라는 가격 아래 훌륭했다. 계란 잘 삶았고, 아루굴라는 적절히 쌉쌀했다. 심지어 참치 또한 그 둘과 잘 어울리는 고소함을 선사했다. 하지만 샐러드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드레싱의 존재가 거의 없다시피해서, 전체를 한데 묶어 주는 맛이 전혀 없었다. 이런 경우라면, 만드는 사람도 자신이 내는 술-맥주/와인/위스키-을 조금 더 세심하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외국에서 만든 기성품으로서, 술은 대부분 자신의 표정을 어느 좌표에서든 뚜렷하게 지니고 있다. 이걸 읽지 못하고 음식에 그에 대응하는 표정을 주지 못하면 술에 음식이 압도당한다. 챠오에서 내는 소아베 클래시코는 40,000원에 좋은 선택이었는데, 샐러드에 표정이 전혀 없다 보니 거의 모든 화이트 와인에 존재하는 시트러스 껍질의 맛과 향/신맛/미네랄 등등에 샐러드가 압도당한다. 적절한 레몬 비니그렛 정도면 충분했을텐데, 존재를 거의 느낄 수 없었다.
닭도 마찬가지(어라? 사진이 없다;;;). 아주 고급 양식이라면 닭이 주요리일 이유가 없겠지만, 이 정도의 설정에서 한 마리 18,000원이라면 먹지 않을 이유가 없다. 마지막에 뚜껑을 덮어 익혔는지 껍질이 보기보다 바삭함을 조금 잃었고 수증기가 올라왔지만, 익힌 정도나 맛은 아주 좋았다. 다만 그것이 소금간 0, 소스 0의 상태였다는 것. 단면을 지진 레몬을 가지고 와서 짜주었지만 아무런 즙도 나오지 않았고, 설명과는 달리 바닥에 주(jus)도 전혀 없었다. 결국 와인을 소스 삼아 먹어야만 했다. 밋밋함의 여운이 굉장히 길었다.
나도 이것이 생산자에게는 어느 정도 비현실적으로 들릴 수 있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맛을 계획하는 사람도 일종의 ‘authorship’을 가져야만 한다. 맛은 모든 사람을 위해 미세 조정해서 맞춰줄 수 있는 게 아니다. 장류 바탕으로 뭉뚱그려 맛을 내고, 오래 끓여야 하기 때문에 소금간을 식탁에서 해 먹는 국 및 탕류에 익숙해져 살다 보니, 사람들은 음식의 맛내기가 모든 이에 맞춰 미세조정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 소설가에게 문체, 음악가에게 즐겨 쓰는 음계 등이 존재하듯 맛을 내는 사람도 짠맛, 단맛, 신맛, 단맛, 감칠맛의 5대 맛을 정확히 조정해서 일관성 있게 만들어 내는 자신의 맛이 분명하게 존재해야만 한다.
게다가 짠맛과 신맛, 거기에 약간의 감칠맛을 더해 맛을 내는 서양 음식이라면, 본인이 원하는 맛이 시각화되어 뚜렷하게 머릿속에 박혀 있어야만 한다. 챠오에서 저녁을 먹기 전 가졌던, 00그라운드의 좌담회에서 미술평론가 임근준 선생과 나누었던 이야기도 바로 그런 것이다. 와인만 해도 판매처에서 단맛/신맛 등의 관계를 2차원 평면으로 만들어 그 위에 올려놓아 맛을 시각화해 알려준다. 이렇듯 당신이 생산자라면 스스로 낼 수 있는 확고한 맛이 머릿속 어딘가에 일종의 좌표 개념으로 시각화되어 분명히 각인되어야 한다. 굳이 혀로 맛을 보지 않고도, 훈련을 통해 몸으로 낼 수 있는 맛이다. (그에 관련해서는 요리사의 흡연에 대한 다음 글 참조)
막말로 어차피 성공하기 어렵다면, 차라리 자기 것을 정확해서 만들어 내고 그걸 인정하는 고객층이라도 찾는 편이 낫지 않을까? 물론, 자기의 맛이라는 것이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래서 다들 누군가에게 끊임없이 맞춰줘야 할 부담을 느낀다면 이 모든 논의는 의미가 없겠지만.
안녕하세요, 트라토리아 챠오의 쉐프, 이주하입니다. 좋은 의견 감사드려요.영업상의 문제로 (뭐, 매출이겠지요..ㅎㅎ) 흔들리는 기준때문에 고민하던 부분을 명확하게 짚어주셨어요. 앞으로도 좋은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네, 셰프님. 다음 번에 더 맛있는 음식 기대합니다.
감사합니다.
저도 몇일전 다녀 왔습니다. 일단 전체적으로 만족스러웠는데 간이 좀 약하긴 하더군요. 이태리 파스타의
진하고 짠맛, 에도소바의 쯔유의 진하고 짠맛 등 면요리에 강한 간이 한국사람에게 유독 거부감을 주는
경우가 많은것 같아요. 제가 일하는 가게 바로 앞 소바집도 쯔유간이 손님의 의견에 따라서 엄청나게 약해
지는걸 본적이 있는데, 그런것 보다는 자기가 맞다고 생각하는걸 밀고 나가는 용기가 필요한게 아닌가
싶습니다.
아, 다녀오셨군요. 저도 마찬가지 생각입니다. 자기가 원하는 것이 확실히 있고 그걸로 설득시켜야 한다는 마음이 있어야 ㅗ한다고 보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