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랑 서울] 수하동-2만원 짜리 가난의 맛

img_6654-2엉겁결에 ‘이십공 주세요’라고 주문 넣고는 웃었다. ㅋㅋㅋ. 나 지금 뭐하는 거지. ‘초짜’ 티내는 건가.  이런 식의 은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필라델피아에 필리 치즈스테이크 원조라는 두 집이 서로 마주보고 장사를 하는데 한 군데에서 은어 시스템을 쓴다고 한다. 주문 창구 앞에 붙여 놓는다고. 은어를 안 쓰면 주문을 안 받던지 면박을 준다고. 다 웃기는 짓이다.

그런데 사실 나는 초짜 맞다. 하동관에도 잘 가지 않을 뿐더러 수하동은 처음이다. 이름이 드러내는 관계는 인터넷을 뒤지면 쉽게 찾을 수 있으니 굳이 동어반복할 필요는 없으리라. 주문하고 수저를 챙기는 사이에 탕이 나온다. 빠르다. 흥건한 국물 속에 불기 시작하는 밥이 담겨 있다. 앞에선 진한 듯한 착각을 주지만 실제로는 멀겋다. 건더기는 그나마 정육이 제대로 익어 먹을만하다. 소위 ‘내포’는 분해되지 않아 질기다. 천엽 같은 부속은 잘 분해하면 국물과 잘 어우러지는 질감을 충분히 선사할 수 있다. 심지어 청진옥에만 가도 나은 천엽을 먹을 수 있다. 이렇게 가죽같은 걸 열심히 씹을 이유가 없다.

img_6655일부러 그러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실 그래서 더 문제다. 해오던 대로 한다. 어떤 시점에서도 지금까지 해오던 것에 회의를 품고 재고하지 않는다. 특히 노포라는 음식점들이 더하다. 채 백 년도 안 되는 습관을 전통이라 착각한다. 재료를 이해하지 않고 답습하는 듯한 조리의 접근도 문제지만 그 나머지 요소조차 답습하는 게 더 답답하다.

새로 지은 고층 건물 지하에 현대적인 인테리어로 매장을 꾸며놓고는 여전히 파 그릇은 뚜껑도 덮지 않은 채로 식탁에 방치시킨다. 하동관 같은 곳의 싸구려 플라스틱 바구니보다 고급스럽지만 기본 설정이 바뀌지는 않는다. 굳이 생으로 먹고 싶지 않은 아랫둥의 윗부분까지 전부 썰어 낸 것도 마뜩찮지만 식탁마다 고정으로 배정시키지도 않는다. 손님이 차는 대로 파그릇도 이리저리 자리를 옮긴다. 최저 기본 식사가 10,000원인 가게다. 마음만 먹는다면 얼마든지 나눠 식탁마다 고정시킬 수 있다. 냉면 대접만한 그릇에 담아 이리저리 옮기는 광경은 궁색하기 짝이 없다.

img_6656나처럼 20,000원짜리를 시킨다면 가격에 비례해 궁색함의 체감도는 더 올라간다. 올라가는 가격 만큼의 가치는 어떻게 반영되는가. 그저 건더기가 많아질 뿐이다. 질겅질겅 씹어야 하는 내포 말이다 (제발 ‘아니 그럼 내포를 빼달라고 그러지?!’가 유효한 논박이라 생각도 하지 마시길). 한식은 언제나 어디나 그렇다. 가격에 비례해 양이나 가짓수를 늘리는 수준에서 그친다. 높아진 가격 만큼 사람의 생각도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을 못한다. 놋대접에 무거운 숟가락을 내지만 후추는 여전히 톱밥처럼 미리 갈아 놓은 걸 올린다. 파와 소금조차 만드는 사람이 맛의 통제 차원에서 양을 조절해주지 않는다. 말하자면 미완성인 음식을 20,000원에 판다. 날계란을 식탁에서 풀어 먹는 발상도 초라하다. 정 계란을 풀고 싶다면 주문을 받아 주방에서 손을 써야 한다. 대체 외식이 무엇인가. 그런게 무슨 전통이라고 떠받들고 있느냐는 말이다.

이런 음식을 미화하고 숭상하는 사람들이 있다. 아니, 너무 많다. ‘한국식 패스트푸드’ 같은 표현은 그래도 그냥 웃어 넘길 수 있다. 노포와 전통의 가치는 소위 ‘반 만년 역사’에 비하면 찰나의 흔적일 뿐이니 초라하다. 하지만 <식객> 같은 만화의 미화는 그나마 음식이 품을 수 있는, 실낱 같은 가치마저 퇴색시킨다. 가난한 시절의 흔적으로서 가치 말이다. 멀건 국물에 불은 밥을 고기 몇 점 나눠 씹어 국면 전환해가며 넘긴다. ‘이제 이런 음식 그만 먹자’고 반면교사 삼아도 모자랄 것을 현재의 물가에 맞춰 비싸게 먹는다. 가난을 맛보기 위해 비싼 대가를 치러야 하니 그 결과 가난해진다. 이제 가격이 도저히 정당화해줄 수 없게 된 음식이 왜 서민의 너울을 쓰고 중요한 가치라도 되는 양 보살핌(babysitting)을 받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전통은 대체 왜 전통인가. 그것 밖에 아는 게 없어서 전통인가?

 

6 Responses

  1. jeeseob says:

    공감합니다. 시원하네요.

  2. 번사이드 says:

    파는 미리 넣어서 끓이는 게 더 나을텐데 말이죠.. 저래도 사람들이 ‘고기 들어가 있다’하고 계속 팔아주니까 계속 저러겠죠.. 식당이 가난한 관습을 이어가기도 하지만, 먹는 이들도 마음이 가난합니다.
    아직도 밥 말아서 내오네요. 그거 전통 아닌데…많은 이들이 전통이라 우기죠. 전기밥솥이 생긴 이후엔 필요가 없죠

  3. Kyoungho Son says:

    저는 따끈하게 먹으려는 곰탕을 다 식은 상태로 종종 내주는게 더 짜증나더군요.. 10년전에 일반식사보다 2-3천원 더 주고 먹는 수준이면 모를까 사실 20공에 나오는 고기양이 예전의 특별수준보다 못하다는 느낌이 들정도로 고기량도 전반적으로 많이 줄이고 가격은 매년 천원씩 꾸준히 올리고 있죠.

  4. 오뚜기반찬 says:

    파는 어느때는 말라서 질기게 느껴지고 이름있는 곰탕 전문점들 가격 올리는데만 관심있는지 가끔 계산할때마다 내가 또여기 왜왔지하고 후회막심본전생각 남니다

  5. haf says:

    저 정도가 18달러- 천9백엔이라고 생각하면 어이가 없는 가격입니다. 식당들의 원가와 매출구조 분석을 해봐야 구체적으로 알 수 있겠지만 객당 수익률이 그리 높은 것은 아닌 요식업의 특성을 생각해 볼 때, 2만원으로 저런 음식이나 서비스 밖에 안 나온다는 건 결국 부동산 임대료와 식재료 원가의 문제라고 분석적으로 접근해봐야 하는 문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자기 건물에서 영업하는 경우는 주변에서 임대료 내고 장사하는 업체들의 가격이 올라가니까 그에 따라서 더 올려서 더 잘 버는 것 같고요.

  1. 12/16/2016

    […] 잡아주는 역할은 충분히 할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한우 암소를 고집하는 20,000원짜리 곰탕이 답습하다못해 결과적으로 퇴보하는 모습을 보여줄 때, 어딘가엔 이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