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부] 전주곰탕-퇴보하지 않은 한식

img_5614원래 전주곰탕 방문은 좀 큰 기획의 야심찬 첫걸음이었다. 의정부 먼저 찍고 서울을 한 바퀴 돈 뒤 나주로 내려가… 하지만 모든 것이 원점으로 돌아갔고 전주곰탕 방문은 첫걸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시간이 좀 흘러 한 번 더 가보고 싶지만 의외로 왕복 80km를 오가는게 만만치 않아 일단 기록한다. 기본적으로 크게 바뀌거나 편차가 있을 만한 곳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img_5610너무나도 어쩌다 존재를 알게 된 이곳의 가장 큰 장점은, 메뉴 전반에 걸쳐 고기가 알맞게 익었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경우 한식 ‘탕반’의 정육 부위는 국물에 맛을 다 내어주고 뻣뻣하고 푸석하다. 한편 갈비를 비롯해 꼬리나 도가니 등 운동을 많이 하거나 연골, 콜라겐 등이 개입하는 부위는 뼈에서 살이 떨어져 상품가치가 떨어지는 걸 두려워해 덜 익힌다. 그래서 질겅질겅 뜯어야 한다.

img_5615그러한 특성은 양지 수육에서 가장 두드러진다. 한국에서는 국물의 재료지만 결 반대로 근섬유를 짧게 잘라주면 양지는 통으로 조리해 특유의 질감과 진한 쇠고기맛을 즐기기에 좋은 재료다. 형체를 정확하게 유지하지만 입안에서 저항 없이 녹아 내리는 고기는, 먹은 뒤 트위터에서 언급했듯 ‘올해의 쇠고기’ 축에 낀다. 한우도 암소도 아닐 이 고기가 그렇게 맛있는 이유는 사람 손을 잘 거쳤기 때문이리라.

갈비나 도가니 등의 탕류도 장점을 고루 나눠 가진다. 부위에 따라 살에서 떨어지는 정도가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국물에 담겨 있는 순간까지는 제 형태를 잘 유지하다가도 입에 넣으면 뼈에서 깨끗하게 떨어지고, 입에서도 저항 없이 씹힌다.

img_5612특별한 비결이 있다고 보지는 않는다. 일단 고기와 국물 사이의 ‘순혈주의’를 고집하지 않는다. 달리 말해, 굳이 고기까지 먹을 재료로 국물을 내지 않는다. 끓여 아우를 수 있는 의미를 감안하면, 굳이 고기까지 먹겠다고 국물을 낼 이유가 없다. 국물을 내지 않으면 사용 가치가 떨어지는 재료로 기본적인 맛의 매개체를 만들고, 여기에 먹기 위한 고기를 익힐 수도 있다. 서양식으로 치자면 닭육수에 닭가슴살을 은근히 삶는(poaching)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img_5616두 번째는, 아무래도 주인의 음식에 대한 애정 같다. 자기 물건에 애정 없이 장사가 되겠느냐고 반문하겠지만, 모든 업이 그렇듯 언제나 즐거울 수 없다. 그 ‘즐겁지 않음’을 적당히 다스리거나 견제해야 꾸기복 없는 결과물이 나온다. 비단 음식 뿐만이 아니다. 글도 그렇고 다 마찬가지다. 업에 종사하는 모든 이가 가질 수 없는 미덕이다. 찌들고 파묻히지 않는 건 중요하다.

img_5611물론, 사족처럼 맥락은 짚고 넘어가야 한다. 퇴보하지 않은 한식이지만 그 경계는 크게 잡아 10,000원 아래의 끼니 음식 안쪽이다. 완성도가 훌륭하지만 맛에 100% 동의하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이를테면 고기 찍어 먹는 단 소스나 국물 맨 끝에서 매듭 잡히는 듯한 참기름맛이 그렇다. 한편 김치야 아무도 건드리지 못하는 요소지만, 굳이 고춧가루에 버무린 것이 아니어도 국물과 고기에 균형을 잡아주는 역할은 충분히 할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한우 암소를 고집하는 20,000원짜리 곰탕이 답습하다못해 결과적으로 퇴보하는 모습을 보여줄 때, 어딘가엔 이런 음식이 7,000원에 존재한다는 사실엔 설사 실낱 만큼이더라도 희망이 존재는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