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 청진옥-말아 먹기 좋은 밥의 상태와 밥공장의 가능성

IMG_9782

간만에 청진옥에 갔는데 의외로 밥이 너무 멀쩡해서 놀랐다.  단순히 멀쩡한 걸 지나, 국에 말아 먹기 딱 좋은 상태였다. 국에 말아 먹기 좋은 밥은 어떤 상태인가. 갓 지은 건 너무 뜨거운 데다가 뭉쳐 있고, 보온해서 오래 보관한 건 흩어지고 부스러져 버린다. 그렇다고 밥을 상온에 식혀 보관하면 갓 지은 것보다 더 뭉쳐 국물에 잘 풀리지 않는다. 신기하게도 이날 청진옥의 밥은 그 중간 지점 어딘가에 머물러 있었다. 온기가 완전히 가시지 않았지만 풀기가 없어지지도 않았고, 또 그렇다고 뭉쳐 있지도 않았다. 여느 국밥집처럼 펄펄 끓지는 않지만 적어도 85도는 될 국물에 말면 부스러지지는 않고 적당히 풀어져 먹기 적당하다. 보온 밥통이 없거나 있지만 안 쓰던 시절 이불장에 넣어둔 밥의 상태랄까.

IMG_9779그런 밥이었지만 흔히 먹을 수 있는 것의 상태에 비춰 본다면 우연의 산물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했다. 비교적 회전이 적은 일요일, 그것도 점심 시간이었다. 밥을 언제 짓는지는 모르지만 미리 지어 준비할텐데 그 상태가 적당한 시점에서 먹은 것일 뿐. 밥 중심 식문화인데다가 쌀의 소비량이 갈수록 줄어드는 현실이라고 하는데, 정작 음식점의 밥 상태를 개선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누군가 연구를 하는지 궁금하다. 원재료를 준비하기는 쌀이 훨씬 편하지만, 조리 및 관리는 빵과 비교할때 전혀 쉽지 않다. 전체가 하나의 덩어리로 변하므로 일정 수준 이상의 대량 조리가 어렵고, 반드시 용기가 필요하다. 이는 조리가 끝난 다음 양에 비례해 옮기는 시간이 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개별 포장 때문에 되어 재가열도 (특히 음식점의 여건에서는) 거의 불가능하다. 음식점에서 흔히 쓰는 스테인리스 공기는 전자레인지에 돌릴 수도 없다.

IMG_9780밥의 특성이 이렇다면 차라리 외주 시스템을 개발할 수는 없는 것일까. 음식점 밀집 지역마다 거점 밥공장을 둔다. 공급조와 수거조로 나눠 전자는 계속해서 조리 및 포장해 공급 계약을 맺은 음식점에 납품하고 후자는 빈 공기를 거둬 설거지한다. 아예 김치와 함께 묶는 것도 방안… 이겠지만 북한 생각이 강하게 날 가능성이 높다. 밥공장과 김치공장이라니. 하지만 생각해볼 필요는 있다. 밥과 김치 중심의 구성이 생각보다 일관적인 품질 관리에 어려움이 많으며, 현재의 상황이라면 질을 향상시키기 어렵다는 것을. 나는 밥과 김치가 한식당의 가장 큰 부담이라 생각한다. 우래옥 같은 곳도 밥의 상태가 좋았던 기억이 없다.

그나마 먹을만한 밥을 내오는 음식점은 공통적으로 규모가 작으며 압력솥으로 밥을 자주 짓는다. 청진옥 같은 규모와 회전의 업소라면 그런 시스템으로 밥을 하기는 어렵겠지만, 최소한 국의 상태(온도/간/농도 등)를 파악한 뒤 그에 맞는 밥의 표준 상태 범위를 설정해둘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 범위에 맞는 조리 및 관리 시스템을 생각해봐야 한다. 단순한 물량 예측을 바탕으로 지어서 내보내는 수준이라면, 먹는 사람은 우연히 좌표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혜택 입기를 기대할 수 밖에 없다. 한식당의 제 1과제는 표준화와 매뉴얼 설정이다. 특히 이것이 지켜가야 할 전통이라고 생각한다면, 더더욱 그렇다. 이는  레시피 쓰기의 범위를 훨씬 넘어서는 일이다.

*사족: 토렴에 높은 가치를 두는 사람들도 있던데, 그게 어디에서 나왔는지 생각 좀 해봤으면 좋겠다.

4 Comments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