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르 에르메-4,000원짜리 마카롱과 맛의 디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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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가 갔다가 우연히 ‘르 헤브 드 베베’의 마카롱을 먹었다. 잘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마카롱의 기술적인 측면이 주로 질감에 영향을 미친다고 가정한다면, 적어도 그쪽으로는 딱히 불만족스러운 부분이 없었다. 그리고 이건 음식, 특히 디저트 부문 어디에도 적용할 수 있는 현실이다. 달리 말하자면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맛없음’이 기술의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기술을 따라 잡기가 쉬워서?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럼, 아직도 음식 제반의 생산을 다소 단순하게 기술 또는 기능의 문제라고 여기는 풍토 때문에? 굳이 하나를 골라야 한다면 난 이쪽을 고르겠다. 그리고 그게 우리가 겪는 맛없음의 가장 큰 원인이다. 거창하게 말하자면 육체와 정신은 분리할 수 없고, 엮여서 함께 가야만 하는데 여전히 음식 생산은 기능의 차원에서만 논하고 있는 건 아닌가. 그건 또 뒤집어 말하자면 추상적이라면 그럴 ‘맛’의 개념보다 수치나 기기 등으로 정량 및 객관화할 수 있는 부문의 개발 및 담론이 가시적인 성과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이것도 어찌 보면 시각 매체가 압도하는 현실의 반영이며, 그건 울릉도 해물찜처럼 ‘재료의 탑쌓기=맛’이라고 생산 및 소비자 양측이 인식하는 현실이 반증한다.

각설하고, 열흘-2주 전에 모셔왔다는 피에르 에르메의 마카롱을 현대 백화점 무역센터점에서 사먹었다. 메모와 사진을 참조하면 정확하게 어떤 맛의 마카롱을 먹었는지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 고수, 피스타치오, 초콜릿, 특히 패션프루트의 여운이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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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그래서 ‘우리나라에선 왜 이런 마카롱을 못 만드느냐?’라고 비판을 하려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그렇게 쉬운 일은 내키지도 않으며, 문제가 그렇게 간단치 않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요즘 ‘맛이라는 건 시간 축 위의 선형적인(즉 최소한 2차원) 경험인데, 이를 감안해야 할 서양 음식에서 그런 특성을 찾아볼 수 없고, 원인이 양념으로 시작부터 ‘조져버리는’ 한식의 현실에서 나온다’고 믿게 되었다. 그래서 시간 축 위에서 지방 등의 ‘멍석’을 타고 느낄 수 있는 맛의 설계 능력이 없는 경우가 많고, 특히나 디저트 부문에서는 이런 단점을 되도 않는 장식적 요소로 가리는 경우도 아주 많다(이런 예, 또는 최근 트위터에서 본 제이브라운의 괴상한 에클레어 등). 게다가 저런 마카롱의 여운을 만들어 내는 요소가 대개 이국적인, 그래서 낯선 향신료라는 것까지 감안한다면 그 뉘앙스를 이해 못하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현실의 전부가 아니라면 어쩔 것인가? 생산자가 맛의 원리를 알고 재료도 이해하지만 자기 비전을 원활하게 펼칠 수 있을 만큼의 재료를 손에 넣을 수 없거나, 가능하지만 심리적 저항을 안기는 수준까지 가격을 올려야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또한 그런 현실을 감안하며 먹을 수 있는 소비자는 과연 얼마나 될까?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면 머리가 아주 복잡해진다. 마카롱은 이미 대중화되다 못해 발에 채일 정도로 흔해졌다. 웬만한 베이커리에서 쉽게 살 수 있고, 스타벅스 같은 프랜차이즈 카페에서도 판다. 그런 대중화가 마카롱이라는 과자의 발전에 어떤 영향을 미쳤으며, 소비자에겐 또 어떤 이익을 가져다 준 걸까? 가격이 내려 더 싸게 먹을 수 있다는 점? 한편 이렇게 마카롱이 흔해진 현실에서 냉동된 마카롱을 들여와 해동해 4,000원에 팔며, 그러니 따지고 보면 최선은 아닐 제품에 근접하는 것이 없다는 현실은 과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국내에서도 피에르 에르메나 라 뒤레 같은 프랑스의 이름 없이 4,000원 짜리 마카롱을 만든다면 이런 수준의 맛을 낼 수 있을까? 그럼 사람들은 과연 거기에 가서 지갑을 열까?

글을 쓰다 보니 생각치 않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데, 원래의 의도는 이런 것이었다. 첫 번째,  최선의 상태로 들여오는 것이 아닐 수도 있지만, 과연 이런 디저트류를 통해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그건 당연히 맛에 대한 이해와 그를 바탕으로 한 디자인 능력이다. 기회가 닿는다면 스타벅스도 좋고, 동네 빵집도 좋으니 몇 군데의 마카롱을 사다가 비교 시식을 해보시라. 과연 차이는 존재하는가? 특히 디저트 영역에서 요즘 외국 상표를 부쩍 많이 들여 오는데, 그 많은 것들 가운데 상표의 가치를 제대로 재현하는 물건을 파는 곳은 많지 않다. 뒤집어 말하자면 비싸게 팔지만 배울 게 없는 경우가 많다. 거듭 말하지만 냉동으로 들여와 파는 이 조건이 최적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입맛”을 타지 않은 페이스트리의 맛 디자인이 어떻게 되어있는지 궁금하다면 참고로 삼을 가치가 있다.

그리고 두 번째는, 바로 앞에서 언급한 사항과 엮어 가격 문제다. 4,000원짜리 마카롱을 사먹는데 심리적 저항감을 느끼는가? 과연 그렇다면 이유는 무엇일까? 단순히 4,000원이라는 절대적 화폐가치 때문에? 우리나라만 봉으로 알아서 다른 나라보다 비싸게 파는데 배알이 꼴려서? 그렇다면 1,500~2,000원짜리 마카롱은 당신에게 어떤 방식으로 만족을 안기는가? 그냥 다만 싸게 먹을 수 있어서? 달아서? 남들이 먹으니까? 답은 각자가 낼 것인데, 다만 가격에 따른 저항감은 절대적 화폐가치 뿐만 아니라 내부적으로 조정하는 욕망의 세기 및 빈도, 또한 음식의 성질 등과 복잡한 함수 관계를 지니고 있다는 것만은 짚고 넘어가야겠다. 예전 평양냉면의 가격 문제에 대한 글에서 언급한 것처럼 이는 생계가 아닌, 어찌 보면 잉여의 욕구 만족이 목적인 음식이다. 속옷과 악세사리의 비유가 정확히 맞아 떨어지지는 않겠지만, 속옷이 필수라면 악세사리는 선택이다. 해도 되고 안해도 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악세사리의 존재 자체가 불필요하다거나, 비싼 악세사리가 전부 의미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너무 뻔한 이야기를 한다고? 그럼 음식에 대해 그런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마카롱 하나 먹고 생각이 여기까지 흘러 갔다.

 

사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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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곱개를 사야 상자에 포장해준다고 해서 기꺼이 샀는데, 개당 4,000원짜리를 낱개로 사면 어떻게 포장해줄지 궁금하다. 그 정도 가격이라면 하나를 사서도 선물할 수 있을 수준의 포장을 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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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작년 초였나, 신세계에서 라 뒤레를 잠깐 들여왔을때 촌스러운 금박+명조체 팜플렛에 실소를 금치 못했는데, 이건 그보다 훨씬 낫다. 다만 둘 다 마카롱을 “섭취”하라신다. 이게 무슨 비타민, 미네랄이라도 되는 건가. 수입업체에선 비싼 걸 들여왔으면 격도 좀 맞춰줬으면 좋겠다.

3. 먹어본 것만 놓고 따지면 피에르 에르메>라 뒤레. 전자가 좀 더 섬세하다는 생각.

 

 

 

11 Comments

  • Rolling says:

    7개 미만으로 사면 그냥 풀봉투에 포장해주더군요. 하다못해 개별 종이봉투라도 있었으면 했는데.

    • bluexmas says:

      저도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대체 왜 스스로 격을 떨어뜨릴까요?

  • renaine says:

    라뒤레는 세 개 부터 얇은 종이 박스를 주고, 피에르에르메는 세 개까지는 투명한 봉투인데 네 개부터는 사진의 박스에 담아줘요. 파리에서는 다섯 개 샀는데도 그냥 비닐봉투에 주더라고요. 빨리 먹고 치우라는 뜻인가.
    냉동과 그렇지 않은 것의 차이는 파리에서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당연하겠지만) 입 안에 넣는 순간 질감이 달라요.

    • bluexmas says:

      파리부심인가요;;; 아무래도 냉동하면 질감이 떨어지겠죠. 그나저나, 전 피에르 에르메가 라 뒤레 보다 낫던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 renaine says:

        라뒤레는 마카롱의 원조라는 자부심 때문인지는 몰라도 단일 플레이버 중심이고, 제일 복잡한 맛이 기모브를 샌드한 딸기봉봉 마카롱이더라고요. 딱딱한 것도 아닌데 묘하게 버석거려서 나쁘지는 않지만 훌륭하지도 않아요. 그래도 새로운 맛 나오면 한 번씩은 꼭 손이 가더라고요. 오렌지 플라워 마카롱은 여기밖에 없기도 하고.
        피에르에르메는 그냥 마카롱이라기에는 복잡한데 첫맛의 킥과 여운이 남고, 필링 안에 콩피나 쥬레를 넣어서 식감에 변화를 줘서 맛의 버라이어티로는 엔간한 갸또보다 나을 때가 많고요. 계절감 흘러 넘치게 오이;나 버섯;을 넣기도 하지만 몇 년 전에 먹은 한정 하나가 아직도 기억에 남을 정도. 저는 물론 피에르에르메를 더 좋아합니다.
        +최근에 먹은 것 중에서 제일 특이한 건 샤넬-알랭뒤카스의 시트론 마카롱. 아슬할 정도로 얇고 파삭한 쉘 안에 오렌지 알갱이가 그대로 살아 있는 필링을 채운 거였어요.

  • 문예지 says:

    스타벅스 마카롱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 bluexmas says:

    굳이 스타벅스에서 마카롱을 먹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 저도 파리에서 피에르 에르메를 먹어보고 세상에 이런 것도 있을 수 있구나 생각했었는데. 요새는 냉동해서 실어온 것을 먹는 처지지만.. 그래도 여전히 피에르 에르메가 최고인 것 같아요. 제가 음식에 둔해서 표현이 어렵지만, 선택한 소재의 뉘앙스를 다루는게 남다른 느낌.

    포장은.. 일본에서는 예전에는 한두개만 사도 박스에 넣고 단단한 쇼핑백에 넣어줬는데 요샌 가게들이 원가 절감 노력을 하고 있는지 어딜가도 포장이 예전만 못해졌어요. 그래도 네개만 사도 사진에 올리신 것 같은 박스에 넣어주긴 합니다.

    요즘 회사 업무가 스트레스라 달달구리로 입만 호강하는데 피에르 에르메 = 사다하루 아오키 >> 라 뒤레 >> 라 메종 뒤 쇼콜라 이런 느낌이었어요. 라 뒤레는 단독으론 나쁘진 않은데 피에르에르메랑 비교하면 (안습)

  • Simon says:

    작년 여름에 도쿄에서 맛보고 너무 감동을 해서 9월 정도에 지인 분과 가서 사먹었는데 실망했네요. 일단 가격도 일본보다 비쌌고(일본 310엔) 일본에서 먹었을 때만큼 재료의 개성이 뚜렷이 느껴지지 않았고 뒷받쳐주는 아몬드의 풍미도 약하더라구요. 제가 사고도 지인 분께 죄송했던… 해동이 섬세하지 못해떤건가 싶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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