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빙-인절미 빙수와 ‘UX’의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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갔노라, 보았노라, 먹었노라. 그리고 참혹하게 사레들렸노라.  폭발적인 인기를 끈다는 설빙에서 처음 인절비 빙수를 먹고 난 소감이다. 간단히 말해서 생각 없는 음식이고, 시간을 들여 글을 쓸 가치도 없다. 하지만 예상처럼 이런 의견을 어젯밤 트위터에 밝히자 적어도 예상 만큼의 폭발적인 반응을 맛보았다. 그 반응에 성원하고자 글을 보태겠다.

‘생각 없다’라고 평하지만 이 빙수가 계획의 산물이 아니라는 의미는 아니다. 우유(든 전지분유나 연유 물이든) 얼음을 곱게 갈아서 그 위를 덮은 콩가루와 거의 같은 느낌의 가루로 만든 건 분명히 의도한 바일 것이다. 하지만 지나친 콩가루 때문에 결과적으로는 악수다. 설비 비용이 다를지는 모르겠지만, 차라리 신라호텔 망고 빙수처럼 얼음이 갈리면서 켜 또는 결을 형성한다면 풀풀 날리는 콩가루의 바탕 역할을 할 수 있을 텐데 두 재료가 거의동일한 크기 입자의 가루가 되면서 먹기가 한결 더 힘들어진다. 따라서 입에 넣으면 일단 콩가루에 비강과 식도를 가득 메우고, 그 뒤로 버석버석했던 얼음이 녹으면서 그 둘의 비율 불균형(콩가루>얼음의 수분)으로 인해 입 안에 끈적한 막을 형성한다. 그리고 사레와 함께 먹는 이를 공격한다. 괴롭다.

찬찬히 뜯어보면, 분명 ‘맛있다’는 반응이 나올 여지는 있다. 사레의 참사가 터지는 한편으로 콩가루의 고소한 맛, 우유의 단맛, 떡의 탄수화물 맛이 한꺼번에 터지며 얼음의 시원함까지 거든다. 그걸 ‘맛있다’는 경험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또한 찬찬히 뜯어보면 굳이 빙수라는 형식을 통해 얻어야 할 것이 아니다. 얼음은 왜 갈고, 빙수는 왜 만들어 먹는가. 덩어리인 얼음을 갈면 부피가 늘고, 부드러워지며, 공기에 닿는 면적이 커지므로 더 빨리 녹고 그 과정에서 시원함을 얻는다. 이게 빙수라는 음식으로 얻을 수 있는 경험의 핵심인데, 일단 수북하게 쌓은 콩가루부터 이 정체성의 발현을 가로 막는다. 매장에 붙은 안내문에 의하면 ‘비벼 먹지 않아야 더 맛있다’고 하니 사레가 들리는 걸 감안하면서 열심히 퍼먹어야 하고, 사실 얼음이 녹아 봐야 지나치게 많은 콩가루의 양과 물에 녹지 않는 성질 때문에 더 처참한 곤죽이 될 뿐이다. 게다가 떡은 또 어떤가. 거듭 지적했지만 차가운 얼음 위에 올려 놓으면 더 질기고 딱딱해지므로, 습관적으로 얹지만 부드럽게 갈아낸 얼음을 먹는 경험과는 역시 충돌한다. 한마디로, 이 빙수를 먹으면서 맛있음을 경험하는 듯한 착각을 주는 요소는 압도적으로 콩가루일 뿐이므로 차라리 그걸 듬뿍 버무린 인절미를 먹고 차가운 우유를 마셔 씻어 내리는 편이 훨씬 낫다. 굳이 이 빙수를, 그것도 콩가루 잔뜩 들여마셔가며 먹지 않아도 얻을 수 있는 경험을 본질의 정체성마저 훼손해가면서 얻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두 가지만 더 지적하자면, 첫 번째는 요즘 늘 지적하는 맛의 설계, 즉 ‘쌓기/겹치기’의 문제다. 이 글에서 언급했다시피, 맛은 재료의 화합으로 인한 승화의 결과인데, 그를 위한 요령과 이해가 없으므로 재료를 시각적으로 쌓고 더해 ‘질보다 양’의 접근에 의한 시각적 우월함으로 대체한다. 달리 말해 문자의 표면적 의미에 지극히 충실한 해석(interpretation)과 표현(representation)이 득세하는 것. 인절미의 특성을 빙수에 옮기려면 콩가루를 간 얼음을 위에 쌓고 떡을 얹기만 하면 될까? 그냥 빵 사이에 인절미를 끼워서 구우면 그게 음식/디저트가 되는 걸까? 프랜차이즈가 R&D를 거쳐 나온 게 저런 수준이라면 미래가 없다.

한편 두 번째는, ‘트친’이 지적한 UX(User Experience Design)의 문제다. 한마디로 불편함을 감수하고 먹어야만 하는데 그게 문제인 것을 생산자도 소비자도 모른다. 펄펄 끓는 뚝배기 파스타나, 콩가루 듬뿍 들이마셔 기침해가면서 먹어야 하는 빙수나 마찬가지다. 인간의 동물적 측면, 즉 감각적 차원에서 분명히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성이 가로막는지, 이걸 끊임없이 ‘맛있다, 괜찮다’라고 정당화해가면서 먹는다. 이것이 나의 선택이기 때문에 그냥 괜찮아야만 하니까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내가 이거라도 해야 그나마 덜 불행할 것 같으니까 억지로 괜찮게 받아들이는 건 아닐까? 소위 말하는 “맛집”이 정말 총체적인 경험의 차원에서 맛있는 음식을 내놓고 있나? 행복하고 싶어서 찾아 필사적으로 매달리는데 사람을 더 불행하게 만드는 것들. 행복하고 싶어서 불행하고, 찾아서 불행하고, 필사적이어서 불행하고, 그런데도 매달려서 더 불행하다. “맛집”은 그런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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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런 평가를 하면 벼라별 재미있는 반응이 나오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서울도 아니고 부산에서 출발했는데 생각 없이 만든 음식일리가 없다’라는 것. 그에 대해선 글에서 충분히 설명했고, 또한 ‘인기가 많으면/잘 팔리면 좋은 거다’라는 논리만큼 말도 안 되는 게 있나? 올해 ‘명량’이 2천만 관객을 끌면 잘 된 영화라고 인정할 수 있나? 한때 로모 카메라가 엄청나게 팔리던 시절이 있었는데, 그때 로모가 가장 잘 만든 카메라였나? 최근에 인터넷에 만화 짤방도 돌았는데, 많이 먹고 잘 팔리면 맛있는 음식인가?

2. 또한 일반적인 반응 가운데 하나가 ‘난 맛있게 먹었는데 어쩌라는 건가? 내가 바보라는 건가?’라는 것. 이것도 아주 간단하다. 왜 당신을 7,000원짜리 빙수와 동일시하는가? 내가 빙수를 비판하면 그게 취향의 비판이고 인간 자체의 비판인가? 취향의 비판일 수는 있지만 인간을 향한 비판은 아니다. 다시 말하지만, 당신은 당신이고 7,000원짜리 빙수는 그냥 7,000원짜리 빙수일 뿐이다.  그리고 거기에 하나만 덧붙이자면 나는 이 빙수가 ‘마음에 안 든다’고 인상비평하고 있는 게 아니다. 진짜’마음에 안 든다’라는 인상비평의 대상은 생각도 안하고 ‘내가 좋아하는 걸 나쁘다고 말했어’라고 받아들이는 바로 이런 평가가 될 듯. 내가 던지는 메시지가 싫다면, 1. 논리의 연결고리가 약한 부분이 있다면 그걸 지적하거나, 2. 그냥 ‘이런 사람도 있군’이라고 생각하고 인절미 빙수 콩가루 들여마시면서 먹고 행복하다고 느끼며 살면 그만이다.

3. 어딘가에서 조미료 그득한 맛소금에 숯불로 구운 고기를 찍어 먹고, 홍대앞 놀이터에서 말도 안되게 시끄러운 랩 공연을 들으며 이 빙수를 먹는 경험이 바로 ‘지금, 여기’의 ‘K-Ness’ 경험의 핵심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비규환, 아니면 ‘K-Way To Hell.’

9 Comments

  • 가나 says:

    저도 이게 왜그리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는지 잘 이해가 가지 않았어요.
    요즘에는 비단 음식 문제가 아니라 단기간 내에 기하급수적으로 체인점 수를 늘리면서
    지점 관리가 (전혀라고 말해도 무방할만큼) 안되고 있는 게 더 급히 해결해야할 사안처럼 보이더군요.
    특정 모 지점은 기가 막힌 서비스로 유명하더라구요. 그런데도 안망하고 여름 난게 신통해요.

    • demianne says:

      저도! 이분의 의견에도 공감합니다. 폭풍처럼 매장이 늘어나니 정말 이렇게까지 인기인가 싶더군요. 빙수는 상쾌하고 깔끔한 뒷맛이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저 콩가루는 안어울리는 것 같아 먹으려는 생각도 들지 않았습니다만..

    • bluexmas says:

      이제 여름이 지났는데 과연 어떻게 될까요… 누가 먹으러 갈까요…

  • ... says:

    녹고 나면 미숫가루가 되더군요.

  • Doyun says:

    저 설빙 정말 별로였어요;; 이렇게 말씀해 주시니 속 시원하네요. 인기의 이유를 알 수 없음.. 콩가루 때문에 일단 목이 막히고 기침이 나서 먹을 수가 없어요. 녹으면 그냥 콩국물(?)이고..

    • bluexmas says:

      답글을 한참만에 다는데, 이런 반응을 트위터에 올렸더니 또 한참 난리가… -_-;;; 이건 잘못된 음식입니다.

  • SB says:

    솔직히 인절미는 별로인건 이해하는데요
    치즈랑 프리미엄딸기 같은경우에는 정말 맛있게 잘 만든거 같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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