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카롱 맞(맛?)대결: 라 뒤레 vs. 피에르 에르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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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의 날. 모시는 스승이 없는 팔자라 평생 신경 안 쓰고 살아도 될 줄 알았는데, 인생이 어찌어찌 흘러 반대 방향으로 신경을 써야만 하는 상황에 처했다. 그러나 평가를 해야만 하는 입장에서는 그게… (이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하여간 그래서, 디저트 수업에 맞춰 학생들과 마카롱의 양대 산맥 라 뒤레와 피에르 에르메를 비교 시식하는 자리를 가졌다. 디저트계의 ‘고지라 대 메카고지라’ 맞대결 쯤 되는 건가. 아니면 어제 벌어진 커쇼 대 범가너? 그래봐야 각각 파는 12개를 전부 사서 한 개씩 먹어 보는 수준. 나름 공정하게 나눠 먹고자 각각 제비로 순서를 정해 원하는 걸 고르는 방식을 택했다. 일종의 게임이랄까. 몇 개 남은 건 다큐멘터리 <Kings of Pastry>를 보며 세 명의 MOF 후보 가운데 합격자를 뽑은 사람들이 가져갔다. 몇 가지 주목할 만한 점을 정리하자면.

1. 음료와 짝짓기

원래 계획은 음료를 짝짓기하는 것이었다. 커피는 압도한다는 생각에 차를 좀 보았는데, 대부분이 가향차라 아몬드 뒤를 잇는 향이 매력인 마카롱에는 불필요하다는 결론을 금방 내렸다. 양쪽 매장 모두에 물어보았는데 라 뒤레에서는 얼 그레이나 우바를 추천했고(여기에서는 차를 들여다보지는 않았다), 피에르 에르메에서는 전부 가향차인 것을 확인하니 말을 꺼내니 자기들도 맛보기를 할 때는 차보다 따뜻한 물을 곁들인다고 귀띔해주었다. 그래서 전기주전자와 에비앙 몇 병을 가져가 끓여 나눠 마셨다.

2. 선호도

먹고 토론을 했는데 학생들은 라 뒤레쪽으로 기울었다. 더 클래식한 것 같다는 기본적인 입장. 하지만 나는 언제나 그렇듯 피에르 에르메 쪽이다. 현대적이기도 하지만, ‘바디’도 훨씬 더 풍성하고 그 뒤로 여운도 섬세하다. 작년에 파리에선가 누가 가져온 라 뒤레도 먹고 이번에도 비교해보았는데 기본 입장이 바뀌지 않았다.

3. 콘셉트와 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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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글에서도 언급했는데 클래식 대 컨템포러리의 콘셉트와 별개로 라 뒤레의 팜플렛은 너무 촌스럽고 ‘가독성’이 나쁘다. 또한 자세히 살펴 보면 문구도 마카롱이라는 디저트에 어울리지 않게 굉장히 투박하다. 한 마디로 못 쓴 글이고, 전자제품 설명서에나 어울릴 법한 문체. 그걸 금색으로 박아 놓으니 안타까운 수준으로 마카롱의 격을 갉아 먹는다. 피에르 에르메의 소개 문구도 썩 잘 썼다고 말할 수 없고, 둘 다 명조체는 아니라는 생각이지만 그래도 보기가 훨씬 낫다.

4. 색소

‘알고 먹자’  이런 이야기 하는 부류 가운데 음식에 색소 넣으면 안된다는 공포 마케팅/음모론 같은 걸로 현혹하는 경우를 종종 보는데, 음식은 너무나 특별하기 때문에 색소를 쓰면 안되고, 옷은 염색한 천으로 만들어 입어도 상관 없는 건가? 음식물이 몸에 머무르는 기간와 옷을 입는 시간 가운데 어떤 쪽이 더 길까? 인체에 무해한 색소가 있으며, 음식은 눈으로도 먹고, 디저트는 어차피 조작을 많이 하는 음식이므로 즐거움을 주기 위해서라면 색소를 쓰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색소 안 넣고 흐리멍텅한 마카롱보다 색소를 써서 보기 좋게 만드는 쪽이 디저트/마카롱의 본질에 들어 맞는다는 생각. 그렇게 ‘천연’ 찾을 거면 화장실 휴지도 표백 안 한거 쓰고, 염색 안 한 무명옷 등등만 입을 일.

가로수길에서 현대백화점으로 가는 길에 900원짜리 “착한” 마카롱을 판다는 가게를 보았다. 가격이 싸면 착한가? 그렇지 않다. 오히려 가격으로 낮은 질을 미화하려 든다면 그건 나쁜 음식이다. 얼핏 보면 싼 것 같지만 실제로는 일반 프랜차이즈와 같은 무게의 빵을 절반으로 만들어 묶어 팔아 더 나은 선택을 하게 만드는 듯한 ‘세 개 천원 갓 구운 빵’ 매장이 대표적인 예다. 가격이 얼마든지 간에, 그게 품질과 일치를 이룰 때 뭐든 착할 수 있다. ‘대중화=저질화’는 정확히 아니지만 그렇게 굴러가고 있는 마카롱의 세계에서, 어쨌든 이런 마카롱은 1,500~2,000원짜리 마카롱의 두 배를 능가하는 가치를 준다. 게다가 굉장히 만족스러워서, 많이 먹을 필요도 딱히 없다. 학생들은 각각 하나씩 먹고 강렬한 맛 덕분에 더 이상 먹을 필요가 없다는 반응을 보였고, 나도 동의했다. 적은 양으로 ‘임팩트’를 준다는 측면에서 이 또한 바람직한 디저트상에 들어 맞는다. 언제나 냉동-해동의 과정 때문에 다소 미심쩍기는 해도, 이만하면 된 거 아닐까. 심지어 맛없는 조각 케이크보다 나은 선택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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