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호텔]라연-완벽한 조리와 이후의 과제
지난 몇 달 동안 ‘젠틀맨’에 미슐랭 가이드에 대해 썼다. 일본의 예를 들어 ‘정녕 별을 받고 싶다면 한식의 확률이 높지 않겠나’라는 결론을 내렸다. 문제는 어떤 한식이냐는 것이다. 답은 물론 하나가 아니다. 조선시대 수랏상의 완벽한 재현일 수도, 코스식 차림도, 한국식으로 양념한 고기와 김치를 넣은 타코와 부리토일 수도 있다. 진짜 중요한 건 답보다 답에 이르는 과정에 달렸다. 확고한 논리가 필요하다. ‘내가 생각하는 한식의 맛은?’이라는 질문에 스스로 찾은 논리와 답을 음식과 그 흐름에 일관되게 불어넣을 수 있어야 한다. 그게 여태껏 안 되는 이유는, 입 아프게 말하지만 성적을 위한 공부, 전공 외의 다양한 지식 결핍 때문이다(다양한 지식의 중요성을 강조하면 그 답을 요약해서 학원이나 책을 통해 우겨 넣는 현실 아닌가. 답이 없다).
그런 답을 완벽히 찾을 수 없다면? 일단 조리를 완벽하게 다듬을 일이다. 1월에 들린 ‘라연’의 음식이 그랬다. 기억이 조금 희미해졌으므로 전체적인 인상 위주로 따져보자. 5년 가까이 이 일을 하면서, 적어도 국내만으로 따져본다면 이보다 더 잘 만든 음식을 먹어본 기억이 없다. 완벽하게 껍질을 벗긴, 하얀 호두의 속살을 본 적 있는가? 이곳에서 내는 신선로에는 그런 호두가 담겨 있다. 호두 가지고 너무 호들갑 떠는 것 아니냐고? 왜 아니겠나. 다만, 이 정도 가격(160,000, 점심 코스)의 음식에서 그 정도의 기준을 안 지키는 경우가 흔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대단해보이는 것이다. 이건 사실 엄청난 게 아니라 기본일 뿐이다. 또한 거기에 40석의 레스토랑을 나 혼자 가득(…) 메운 여건도 감안은 해야 한다.
어쨌든 조리가 그렇게 훌륭했으며 맛도 균형이 잘 잡혀 있었다. 특히 어만두와 쇠고기 구이가 그러했다. 기본적인 단백질의 단맛을 살리는 정도로만 양념과 쓰고, 전자는 야콘 장아찌, 후자는 산초와 양파, 목이버섯 구이로 맛에 방점을 찍는 동시에 질감에 대조를 불어넣었다. 반면 구절편과 따로 은 식기를 제작했다는 신선로, 수긍하기는 어렵지만 평양식이라는 냉면은 곱게 채 썬 나물이나 계란 흰자, 예의 호두나 단정한 계란 지단 등의 모양새에 비해 맛이 따라가지 못했다. 한마디로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이 코스의 전체적인 큰 그림은 무엇일까, 의문을 품었다. 좋은 요리는 해석, 그저 그랬던 건 재현이라고 이해했고 그 둘 사이에서 균형이나 일관성을 지켜주는 게 콘셉트인데, 그건 무엇이고 누군가 생각했을까 궁금했다. 콘셉트에 의해 각각의 요리를 앉혔다기 보다 각각의 요리를 잘 만들어 이어 붙였다는 인상을 주었으므로, 이 전반적인 의사 결정에서 요리사 아닌 셰프의 영향력 비율이 궁금했다. ‘원스톱 서비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호텔에서 최고의 음식 또한 맛볼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그 반대라 믿는다. 그 서비스를 위한 제반 시설 확보의 비용이 음식에 추가되며, 셰프와 투자자 외의 수직적 위계질서가 의사결정 과정에 영향을 미쳐 셰프가 자신의 주장과 논리를 확고하게 펼칠 수 없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신라호텔은 모두가 알다시피 삼성 계열사, 그렇다면 음식이 몇 단계의 과정을 걸치며 ‘재가’를 받아야만 했을지, 생각하기 어렵지 않다.
탄수화물의 부재, 빨간 김치나 고춧가루의 제거, 일관성이나 성의가 딸리는 디저트(젤리 위에 계피 아이스크림을 앉힌 주 디저트는 나중에서야 수정과의 해석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마지막으로 차에 함께 나온 딸기는 너무 생각 없지 않은가) 등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하지만 그 의문을 최소화 시킬 만큼의 완성도를 지니고 있다면, 최소한 ‘비전’을 현실화할 준비는 갖춘 것이라고 본다. 문제는 다음 단계다.
‘성향’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 같은 한국인의 ‘passive aggressive’함이 한식에 대한 질문을 던지면 적나라하게 불거져 나온다. 어떤 것도 답이라고 보지 않으면서, 스스로 생각하는 답 또한 절대 제시하지 못한다. 앞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답은 절대로 하나일 수 없고, 그래서도 안된다. 만일 그걸 이해한다면 일단 각자의 내적 논리를 다져야 한다. 요리는 절대 몸놀림만으로 되지 않고, 앞으로 더 생각의 힘은 중요해질 것이다. 이런 현실에서, 나는 어떠한 내적 논리를 가지고 있으며 그걸 다지기 위해 무슨 수단을 동원하는가? 실무자는 물론, 나 같은 평가자를 포함한 모두가 스스로에게 던져보아야할 질문이다.
*사족: 그렇게 던져본다는 측면에서, 스스로에게 질문해보았다. 어느 정도 만족스러운 한 끼였는데, 그렇다면 다음 번 방문은 언제가 될 것인가? ‘금방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면, 혹시 한식이기 때문인가?
# by bluexmas | 2014/03/27 12:13 | Taste | 트랙백(1) | 덧글(10)
제목 : 참치 꼬치를 먹으며 느꼈던 지루함과 한식의 장점 [신라호텔]라연-완벽한 조리와 이후의 과제 식사를 하면서 가끔씩 음식이 참 지루하게 느껴지는 때가 있는데 그런 경우는 같이 식사를 하는 사람들이 지루한인간들이라 지루할 수도 있지만 음식 자체가 참 지루할 때가 있습니다. 주로 맛이나 질감이 같은 느낌의 음식이 꾸준히 입에 들어 갈 때인데 그럴 때는 음식을 남기기도 그렇고 또 여전히배가 포만감은 느끼지 못하는 중에도 음식이 지루하면 먹는 것이 고역일 수 있겠습니다. 지금은 풍요……more
[…] 콘셉트는 무엇인가. 다른 맛에 비해 단맛이 너무 두드러진다. 이전 글에서도 언급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단맛이 더 강해졌을 가능성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