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트리의 가격 상승과 ‘먹을 수 있는 정체성’
지난 주에 우나스의 케이크에 대한 글을 썼는데, 사실은 가장 중요한 측면을 잊고 다루지 않았다. 쓰고 몇 시간 뒤에 생각이 나서 덧붙일까 생각하다가, 독립적인 글을 쓸 만큼 의미가 있는 사안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대체 무엇이냐고? 바로 가격과 ‘먹을 수 있는 정체성’ 사이의 관계이다.
우나스의 ‘도산 멜론’ 케이크를 다시 소환해보자. 썰어낸 멜론 조각을 형상화하기 위해 멜론 껍질을 썼는데, 물론 먹을 수 없다. 그 자체가 문제인가? 그렇기도 또 아니기도 하다. 늘 말하지만 밀가루나 설탕, 지방을 써서 형태를 빚어낼 수 있는 페이스트리 세계라면 먹을 수 있는 멜론 껍질 쯤은 얼마든지 구현이 가능하다. 물론 단지 먹을 수 있다고 해서 능사는 아니고, 페이스트리 전체의 완결성에 기여할 수 있어야 한다. 멜론 콤포트를 뻑뻑한 마스카르포네 치즈 무스가 싸고 있는 ‘도산 멜론’에서는 탄수화물의 ‘크런치’요소가 존재하지 않았고 아쉬웠다. 일반적인 케이크라면 요즘 많이 쓰는 다쿠아즈나 파테 브리제 류의 ‘바닥판’ 말이다. 결국 1. 멜론 껍질을 모사하면서 2. 페이스트리의 완결성을 높여줄 수 있는 요소의 도입이 가능한 상황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멜론 껍질을 쓰고 9,000원이다. 과연 어떤 과정을 거친 멜론 껍질을 쓰는지 모르기 때문에라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지만, 사실 진짜 문제는 이러한 구현의 난이도와 가격의 관계이다. 멜론 콤포트와 마스카르포네 무스, 그리고 화이트 초콜릿의 조합과 맛 자체가 최종 결과물의 목표였다면 이 케이크는 굳이 멜론 조각의 모양을 갖춰야 할 이유가 없다. 유리잔 같은데에 ‘베린느’의 형태로 담는다면 그 자체로 보기가 좋고 또 먹기에도 훨씬 편할 수 있다. 그러나 조각 멜론을 닮은 형태를 음식 외적인 이유에서 추구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부득이하게 굳이 먹을 수 없는 요소를 써 가면서 가격은 9,000원까지 올랐다.
우나스 혹은 어디라도 시각성과 맛의 완결성을 동시에 추구하는, 먹을 수 있는 멜론 껍질을 모사할 수 있는 기술력을 굳이 갖춰야 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이런 수준의 케이크 한 쪽에 9,000원이라면 그런 페이스트리 멜론 껍질을 실제로 갖춘, 더 높은 완성도의 케이크는 이제 얼마를 받아야 할까? 페이스트리의 ‘가성비’나 파티셰의 기술 수준 향상을 촉구하려는 의도가 아니다. 페이스트리에 장식적인 요소가 전혀 필요하지 않다는 주장도 아니다.
이전 리뷰에서 언급했듯 사실은 크게 의미 없는 시각성을 추구해야만 하는 현실이 파티셰는 물론, 결국은 소비자에게도 쓸데 없는 부담으로 고착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싶은 것이다. 거품이 끼고 있는데 결국 인스타그램 같은데에 그럴싸한 사진 한두장 올리는 용도 말고는 모두가 피곤한 길로 가고 있다. 얼핏 보면 ‘기술’에 높은 가격을 치르는 것 같지만 뜯어 보면 굳이 투입하지 않아도 될 ‘삽질’에 추가금을 내고 있다. 맛에도 도움이 안 되는 것은 물론 파티셰의 발전에도 보탬이 될 것 같지 않은 삽질 말이다. 돌이킬 수 없는 변화라고 생각하는데 과연 이 다음엔 무엇이 등장할까? 그건 또 얼마를 내고 먹어야만 할까?
*사족: 멜론 껍질도 그렇지만 아보카도 껍질은 사실 더 착잡하다. 이미 5년도 더 전에 선보였던 ‘기믹’ 아닌가?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한 시대가 왔습니다. 이제는 음식이 맛보다 겉모양이 더 중요한 시대에 진입한 거죠. 음식의 품격이 아니라 푸드포르노의 품격의 시대가 도래한 거 같습니다. 인스타그램 같은 데가 아니라 본인의 SNS를 위해서 음식점을 방문하는 시대입니다.
음식의 맛 따위는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얼마만큼 자랑할 수 있는 지 그 여부가 더 중요합니다.
푸드포르노의 시대에 살아남을려면 이런 변화는 피할 수 없죠. 그래서 같은 잣대로 음식을 파악하는 것은 곧 음악평론가가 하나의 잣대로 아이돌과 뮤지션을 평가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싫다면 맛을 최우선시하는 곳을 가야죠. 다만 2-30대 대중은 그런 곳에 더 이상 눈길을 주지 않을 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