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인 다이닝 위기론-2016년을 돌아보면

IMG_2325날짜를 정확하게 기억하지 않는다. 하지만 굳이 그럴 필요가 전혀 없다. 인터넷을 뒤지면 찰나에 찾을 수 있다. 시카고 컵스가 백 몇 년 만에 메이저리그 월드 시리즈를 우승했던 날이니까. 딱히 동기가 없더라도 기억할 수 있는 날이겠지만 굳이 기억을 시켜주려고 애쓰는 이도 있었다. 중계를 실시간으로 들으며 점심을 먹었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었느냐고? 당연히 없었다. 사실은 점심 자리 자체가 크게 필요하지 않았다. 이미 내린 결론을 확인하는 자리였달까. ‘이제 미슐랭 가이드가 한국에서도 출범했으니 도움이 되는 게 좋겠다’와 비슷한 말을 들었다.

그런 대화가 오가는 가운데, 식탁에 오른 방어회에 딸린 레몬 쪼가리에 선키스트사의 스티커가 그대로 붙어 있는 것을 보았다. 레몬이 썰리면서 스티커도 조금씩 썰린 채로 레몬에 그대로 붙어 있었다. 그러니까 현실은 바로 이런 것인데 미슐랭 가이드. 비록 별을 받은 곳은 아니었지만 바로 그곳도 당시 출간된 미슐랭 가이드에 실려 있었다. 현실은 바로 이런 것인데 미슐랭 가이드였다.

이 글을 쓰려고 생각한지는 좀 오래 되었다. 전편 격으로 이 글을 올린 게 4월 13일이니 석 달도 더 지났다. 올렸더니 ‘그동안 쓴 글을 짜깁기한 것 같다’는 덧글이 달렸는데 사실은 짜깁기도 아니다. 2013년의 ‘지큐’지에 기고했던 5년도 더 묵은 글을 그대로 올렸다. 이 글을 쓰려고 마음을 먹고 나니 당시에 뭐라고 썼는지 궁금해서 찾아 보고 바로 연결해 쓸 생각이었다. 절반은 동어반복이 귀찮았고 절반은 의욕이 없어 지금까지 내버려 두었다. 더 이상 쓰지 않으면 병이 될 것이므로 이제는 뱉고 끝을 내야 되겠다. ‘뉴욕 타임즈’ 같은 곳에서 음식 평론가로 몇 년 일하면 회고록을 써서 팔 수 있을 정도로 이야깃거리가 많아지는데, 이야깃거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굳이 책으로 쓸 가치는 없다고 보므로 이 글 한 편 정도면 당시의 18~20개월을 요약하고 접는데 큰 무리가 없다고 본다.

어디에선가 ‘파인다이닝 위기론’이라는 글을 읽었다. 한 줄로 요약하자면 ‘2016년에 한국의 파인 다이닝이 전성기를 달렸으나 지금 위태롭다’는 내용이었다. 현재의 상황은 그렇다 치더라도, 2016년에 과연? 그때까지 나는 20개월 가까이 한국의 파인 다이닝 씬을 가장 열심히 취재했었다. 물론 보는 사람의 위치와 정황에 따라 그걸 전성기라고 본다면 구태여 말릴 이유는 없겠지만, 나는 굳이 그렇게 보지 않았다. 아니, 사실은 그 전 몇 년 동안보다 더 본격적으로 취재를 하며 나는 그만큼 더 고통스러웠다.

‘예스, 셰프!’ 나의 마지막 취재는 제주도의 밀리우였다. 1차 취재를 끝내고 다음 날 아침, 비행기 시각에 맞춰 제주도의 정반대편에서 출발했다. 위험할 정도로 앞이 잘 보이지 않는, 빽빽한 안개 속을 헤치고 달리며 나는 전날의 저녁 식사를 복기했다. 음식만 놓고 본다면 부정적이라고 볼 수 없었지만 요리사들의 ‘예스, 셰프!’가 자꾸 다른 기억을 덮었다. ‘예스’였는지 ‘위’였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상관 없다. 어쨌든 요리사들의 외침에 음식이 정확하게 보이지 않았다.

이런 게 과연 필요한 걸까. 원칙적으로라면 필요할 것이다. 몇십 명의 요리사들이 비좁은 공간에서 몇백 명의 식사를 동시다발적으로 준비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말이다. 그런데 손님이 요리사보다 고작 두세 명 많거나 아니면 아예 적은 상황이라면? 의도와 상관 없이 식사의 경험에 부정적인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물론 이곳에서만 ‘예스, 셰프!’를 들은 것도 아니었다. 그나마 이곳은 열린 주방이었고 요리사들이 그렇게 크게 복창하는 상황도 아니었다. 그런데 저 멀리의 닫힌 주방에서 내는 ‘예스 셰프’가 멀리 떨어진 홀에서도 들리는 상황.

마침 내 접시 위에 셰프가 뿜어주고 간 거품이 꺼져가고 있었다. 거품을 뿜어준 셰프는 곧 다른 식탁으로 옮겨 이야기를 나눈다. 어때, 맛있지? 얼핏 들리는 대화로 짐작하건대 요리사 지망생들 같았다. 멀지 않은 자리인지라 더 잘 들릴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주방에서 나오는 소리 때문에 자꾸 가물가물해진다. 예스 셰프. 잠깐, 셰프는 지금 식탁을 돌고 있는데? 환청이거나 잔상 아닐까. 그렇대도 별로 이상할 게 없었다. 예스 셰프.

웃기는 일이 많이 있었다. 먹다가 도저히 견딜 수 없어 돈을 내고 나가는 해프닝 등, 지금껏 쓴 것과 별도로 말이다. 파인 다이닝에서 모래가 씹히는 시금치를 내는 정도는 차라리 인간적인 실수이므로 어이 없음 정도를 느끼며 넘길 수 있다. 물론 그건 전부가 아니고 그럴 수도 없다. 부정적인 리뷰가 실리자 잡지사로 전화를 걸어 편집장에게 나와 삼자대면을 하자는 요구도 있었다. 범죄를 저지른 것도 아닌데 삼자대면이 왜 필요한 걸까? 이런 일을 겪고 나면 나의 홈페이지에 의사를 밝히거나 메일을 보내는 정도는, 나의 평가에 대한 평가와 전혀 무관하게 정말 신사적인 대처임을 깨닫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파인 다이닝 위기설’이라는 주장에 딱히 동요 혹은 동의하지 않는 이유는, 좋든싫든 파인 다이닝은 언제나 위기를 겪어 왔고 앞으로도 당분간은 크게 바뀌지 않을 거라 보기 때문이다. 내가 자아낸 여건이냐고? 전혀 아니다. 직화구이 고깃집으로 대표되는 모든 서민의 굴레가 일정 수준 걷히지 않는 한, 파인 다이닝은 위기 상태를 벗어날 수 없다. 고깃집과 경쟁하지 않고, 미팅 및 소개팅의 장소로나 선택되는 현실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말이다.

그런데 이런 위기는 순전히 외부적인 것이다. 일정 수준 파인 다이닝의 세계에서 통제와 극복이 불가능하므로 어쩌면 지속적인 언급을 하는 것 자체가 이제는 에너지 낭비일 수 있다. ‘레스토랑에서 정말 탄산수 한 병이라도 시키는 것이 문화의 지속에 도움이 된다’는 주장은 물론 나의 이득과 전혀 상관이 없을 뿐더러 큰 그림을 보아서는 파인 다이닝 씬에 도움이 되는 것일 텐데도 소비자의 분노가 몇날며칠은 넘실거릴 정도로 반감을 산다. 현실이 이렇다면 외부적인 위기는 당분간 극적으로 개선되지 않을 확률이 높다.

문제는 내적인 위기이다. 보람이 없으니 결국은 그만 두었지만 한편으로는 저 ‘예스 셰프!’ 같은 외침을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았다. 파인 다이닝 씬이 숙명처럼 겪을 외적인 위기는 결국 ‘파이의 크기’라고 규정할 수 있다. 현실에서 식비가 차지하는 비율, 그 가운데 외식비가 차지하는 비율, 또한 고급 음식이 차지하는 비율, 거기에서도 고깃집이 아닌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이 차지하는 비율. 이 모두를 뚫고 최종적으로 파인 다이닝이 선택되었을 때, 그 작은 파이의 조각이 씬을 자체부양 및 배양할 수 있는 걸까?

이를 테면 파인 다이닝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알, 일종의 ‘사단’ 구축 말이다. 셰프가 성장하며 자신의 레스토랑을 일궈 내고 요리사를 양성해 독립 시키는 시나리오. 물론 사업의 비용은 다른 곳에서 끌어오겠지만, 셰프의 이름이 만들어 내는 브랜드가 키운 인력의 가치를 일단 입증해주는 시나리오. 과연 이게 가능할까?

만약 가능하지 않다면 ‘예스, 셰프!’ 같은 외침이 과연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말이다. 책으로 친다면 자서전 같은 것이다. 엘 불리에 천막을 치고 버텨서 스타쥬를 따냈다는 이야기, 세계 최고의 테크 대기업보다 요리가 좋다는 이야기, 미슐랭 별 몇 개를 받은 고난과 역경 극복의 이야기. 당신의 이야기가 여건의 특수성을 걷어내고서라도 보편적으로 성장하는 요리사에게 도움이 될만한 것인가? 만약 아니라면 결국은 그런 것들이 외적 위기보다 더 치명적이지만 한편으로는 인지가 어려운 내적 위기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올해 말이면 세 번째 미슐랭 가이드가 출간될 것이다. 일단 별이 뜨기 시작하면 돌이킬 수 없다. 셰프들은 스트레스를 받을 것이다. 별을 늘리는 것도 어렵지만 사실은 지키기의 부담이 더 클 수도 있다. 그런데 이런 부담을 짊어져야 할 셰프들도 사실은 30대 후반에서 이제 막 40대로 접어든 젊은이다. 과연 그 위에 이들을 끌어줄 세대는 있는 건가? 아니라면 미슐랭 가이드가 더 활성화되거나 아예 없어질 때까지, 아니면 힘들어 견디지 못하고 이 바닥을 등질 때까지, 긴 시간 동안 지금과 같은 부담에 무작정 노출되어야 할지도 모른다. 내부의 위기가 사실은 더 무서울 수도 있다는 가능성도 과연 누가 인식하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