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카롱 열 개의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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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모로 너무 괴상한 일이다. 일단 마카롱을 열 개나 먹을 수 있다니 그게 신기하다. 달아서 물릴 테니까. 하지만 먹는다면 못 먹을 것도 아니고 또한 누군가의 기분을 상하게 할 일도 아니다. 게다가 그 ‘누군가’가 가게 주인이라면 정말 너무 괴상할 수 밖에 없다.

아직도 나는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사람이 공개적으로 방문자의 이야기를 하면 안된다고 생각하지만, 막말로 ‘진상’이 너무나도 많은 현실인지라 정말 어딘가에는 배출구가 필요할 수도 있다고는 인지하고 있다. 그런데 이 상황은 정확하게 그런 종류도 아니다. 적어도 알려진 정황에 의하면 손님은 그저 마카롱을 좋아했고, 그래서 먼 곳에서 일부러 찾아갔으며, 앉은 자리에서 열 개를 먹었을 뿐이다. 대체 이 정황의 어느 구석이 주인으로 하여금 여러 창구를 통해 손님에 대한 험담을 하게 만들었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한편 나는 마카롱 열 개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무타히로의 경험이 생각났다. 물론 맥락 등은 좀 다르지만 일종의 자기 도취와 자기 연민, 그리고 엘리트주의 등이 맞물린 괴상한 피해의식이 깔려 있다는 측면에서 한편 흡사함을 느낀다는 말이다. 음식을 팔아서 돈은 벌고 싶은데 원하는 손님만 받고 싶으며 그런 가운데 어쨌든 자기 음식을 먹는 모든 이가 프랜차이즈의 홍수 속에서 분투하는 개인 매장과 그 운영자인 자신의 시혜적인 가치는 알아줬으면 좋겠고 어쨌든 험담이든 비판이든 부정적인 이야기는 듣기 싫고… 이 모든 요인이 한 점에서 만나는 좌표가 가능할까? 구매자에게 굴종할 필요도 없지만 정당한 대가를 치르고 구입하는 상황을 마치 자선문화사업 같은 것으로 여길 필요도 없다는 말이다.

하여간 덕분에 많은 이들이 그렇듯 오랜만에 마카롱을 생각했다. 문제가 된 건 소위 ‘뚱카롱’이라는, ‘필링’이 엄청나게 많이 들어간 변종이던데 역시 괴악한 이름이 말해주듯 추상적인 차원에서의 맛을 구현할 수 없기 때문에 질이 아닌 양으로 갈음하려 드는 경향을 드러낸다. 가시적인 요소의 집합적인 부피(=양)을 늘리는, 6,000원짜리 가정식 백반의 열두 가지 반찬을 깔아주는 멘탈리티가 마카롱 같은 서양과자로도 옮겨간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