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마일 밥상 프로젝트
얼마 전 주반과 7pm (현재 영업 중단)의 김태윤 셰프가 준혁이네 농장과 정기적으로 진행하는 ‘그린 마일 밥상’ 프로젝트에서 식사했다. 준혁이네는 남양주에 있는데, ‘제 3의 식탁’에서 댄 바버가 중요성을 역설하는 소위 ‘작은 생태계’ 식의 농장이다. 소품종 소량 생산 위주로, 그 자체가 하나의 작은 생태계를 이루고 있다는 의미다.
올해 처음 재배를 시작했으며 외부에서 들여온 모종-나머지 작물은 기본적으로 직접 만든 모종을 쓴다고 한다-을 썼다는 딸기나 어떻게 해도 단맛을 피할 수 없는 제외한다면 이날 아홉 가지 음식에 등장한 채소들은 한결같이 표정이 굉장히 구체적이었다. 과일과 채소(produce)를 먹을 때마다 두 가지를 생각한다.
첫째, 이렇게 소량생산을 지향하는 생산자의 과일과 채소도 일정 수준 이상의 상품성을 지닐 수 있는가. 생협 등등에서 유기농이나 무농약 작물 등을 둘러 보면 때로 그런 작법을 채용하므로 크기나 생김새, 맛 등에는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다는 분위기를 풍기는 과일이나 채소가 있다. 의도를 이해 못하는 건 아니지만 상품이라면 상품에 걸맞는 최소한의 완성도를 두루 지녀야 한다고 믿는다.
두 번째는 물론 맛이다. 트위터의 생산자로부터도 한 번씩은 시도해보았는데, 고급화를 지향하는 소품종 과채들 또한 전형적인 한국적 맛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처음에 점으로 맛이 몰려 있고 곧 밍밍함을 남기며 흩어지는, 여운이 없는 경험이다. 요즘 제철인 딸기가 아마도 가장 쉽게 들 수 있을 예일텐데, 이제는 하나의 패턴이나 정형으로 굳어져 설득이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보인다. 온갖 딸기를 먹고 있노라면 ‘과연 이것을 세계 어느 곳에서 먹어본 딸기들과 같은 차원에서 특징을 가졌노라고 이제는 인정을 해야 하는가?’라는 고민에 빠져든다. 물론 아직 그렇다는 답은 내지 못했다.
작년의 ‘7pm’ 리뷰에서도 간접적으로 언급했듯, 식사의 나머지 반쪽인 김태윤 셰프는 내가 가장 주목하는 실무자다. 무엇보다 그는 자신이 원하는 맛이나 요리 세계에 대한 개념적인 정립이 확실하다. 달리 말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아는데, 그 자체가 이미 내부에서 정리된 상태라 다듬어진 음식을 낸다. 단순하거나 사소한 움직임처럼 보이지만 생각하고 계산한 것들, 예를 들어 이날 디저트의 일부로 등장한 콤포트에서 신맛을 강조하기 위해 완전히 조리하지 않고 씹히도록 남겨둔 류바브 등을 먹고 있노라면 현재 한국의 식문화 씬(이든 바닥이든)에서 가장 필요한 게 이런 음식과 셰프라는 생각을 새삼 곱씹게 된다.
좋은 음식이란 과연 무엇일까? 답이 한 가지일리는 없겠지만 직업인으로서는 먹고 난 뒤 의미에 대해 계속 생각하게 만드는 음식이 그렇다고 믿는다. 생각은 많이 하되 손은 적게 움직이는 음식, 아니면 손이 적게 가도록 미리 생각을 많이 하는 음식이 드문 가운데 아직 완성되었다고 볼 수 없지만 김태윤 셰프의 음식에는 언제나 의미가 담겨 있다.
*사족 1: 참가비가 1인 50,000원이었는데 환경과 음식의 접점에 관심 가진 이들이 일부러 참가했을 행사임에도 불구하고 주류를 시키는 경우가 별로 없어 또 한 번 놀랐다. 와인 한 잔도 없이 먹기엔 좀 아까운 음식인데.
*사족 2: 콜리플라워(13,000원)을 한 통 사다가 일부는 데쳐서 먹고, 일부는 좀 지나치다 싶게 오븐에서 캐러멜화시켜 수프를 끓였다.
두 번째 문단의 ‘어떻게 해도 단맛을 피할 수 없는 제외한다면’ 의 중간에 들어가는 것은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