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부] 전주곰탕-퇴보하지 않은 한식
원래 전주곰탕 방문은 좀 큰 기획의 야심찬 첫걸음이었다. 의정부 먼저 찍고 서울을 한 바퀴 돈 뒤 나주로 내려가… 하지만 모든 것이 원점으로 돌아갔고 전주곰탕 방문은 첫걸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시간이 좀 흘러 한 번 더 가보고 싶지만 의외로 왕복 80km를 오가는게 만만치 않아 일단 기록한다. 기본적으로 크게 바뀌거나 편차가 있을 만한 곳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너무나도 어쩌다 존재를 알게 된 이곳의 가장 큰 장점은, 메뉴 전반에 걸쳐 고기가 알맞게 익었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경우 한식 ‘탕반’의 정육 부위는 국물에 맛을 다 내어주고 뻣뻣하고 푸석하다. 한편 갈비를 비롯해 꼬리나 도가니 등 운동을 많이 하거나 연골, 콜라겐 등이 개입하는 부위는 뼈에서 살이 떨어져 상품가치가 떨어지는 걸 두려워해 덜 익힌다. 그래서 질겅질겅 뜯어야 한다.
그러한 특성은 양지 수육에서 가장 두드러진다. 한국에서는 국물의 재료지만 결 반대로 근섬유를 짧게 잘라주면 양지는 통으로 조리해 특유의 질감과 진한 쇠고기맛을 즐기기에 좋은 재료다. 형체를 정확하게 유지하지만 입안에서 저항 없이 녹아 내리는 고기는, 먹은 뒤 트위터에서 언급했듯 ‘올해의 쇠고기’ 축에 낀다. 한우도 암소도 아닐 이 고기가 그렇게 맛있는 이유는 사람 손을 잘 거쳤기 때문이리라.
갈비나 도가니 등의 탕류도 장점을 고루 나눠 가진다. 부위에 따라 살에서 떨어지는 정도가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국물에 담겨 있는 순간까지는 제 형태를 잘 유지하다가도 입에 넣으면 뼈에서 깨끗하게 떨어지고, 입에서도 저항 없이 씹힌다.
특별한 비결이 있다고 보지는 않는다. 일단 고기와 국물 사이의 ‘순혈주의’를 고집하지 않는다. 달리 말해, 굳이 고기까지 먹을 재료로 국물을 내지 않는다. 끓여 아우를 수 있는 의미를 감안하면, 굳이 고기까지 먹겠다고 국물을 낼 이유가 없다. 국물을 내지 않으면 사용 가치가 떨어지는 재료로 기본적인 맛의 매개체를 만들고, 여기에 먹기 위한 고기를 익힐 수도 있다. 서양식으로 치자면 닭육수에 닭가슴살을 은근히 삶는(poaching)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두 번째는, 아무래도 주인의 음식에 대한 애정 같다. 자기 물건에 애정 없이 장사가 되겠느냐고 반문하겠지만, 모든 업이 그렇듯 언제나 즐거울 수 없다. 그 ‘즐겁지 않음’을 적당히 다스리거나 견제해야 꾸기복 없는 결과물이 나온다. 비단 음식 뿐만이 아니다. 글도 그렇고 다 마찬가지다. 업에 종사하는 모든 이가 가질 수 없는 미덕이다. 찌들고 파묻히지 않는 건 중요하다.
물론, 사족처럼 맥락은 짚고 넘어가야 한다. 퇴보하지 않은 한식이지만 그 경계는 크게 잡아 10,000원 아래의 끼니 음식 안쪽이다. 완성도가 훌륭하지만 맛에 100% 동의하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이를테면 고기 찍어 먹는 단 소스나 국물 맨 끝에서 매듭 잡히는 듯한 참기름맛이 그렇다. 한편 김치야 아무도 건드리지 못하는 요소지만, 굳이 고춧가루에 버무린 것이 아니어도 국물과 고기에 균형을 잡아주는 역할은 충분히 할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한우 암소를 고집하는 20,000원짜리 곰탕이 답습하다못해 결과적으로 퇴보하는 모습을 보여줄 때, 어딘가엔 이런 음식이 7,000원에 존재한다는 사실엔 설사 실낱 만큼이더라도 희망이 존재는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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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큰 열쇠는 김치가 쥐고 있다. 전주곰탕의 김치를 잠깐 언급했는데, 고춧가루가 이렇게 많이 필요 없다고 보지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