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밀리우-목적지 레스토랑의 가능성과 한계
밀리우는 멀다. 서울을 기준 삼자면 일단 비행이 걸린다. 고작 50분짜리 짧은 여정이지만, 비행을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온갖 절차가 거리감을 여러 켜로 더한다. 한편 제주도를 기준 삼아도 가깝다고 볼 수는 없다. 공항에서 차로 꼬박 한 시간이 걸린다. 제주도 초행자에게 레스토랑이 자리 잡은 해비치 호텔은 나름의 고립된 지역처럼 다가온다.
이 모든 절차와 번거로움을 레스토랑이 보상해줄 수 있을까. 표면적으로는 그렇다. 일단 입지 및 환경이 국내에선 굉장히 독특하다. 아트리움 형식의 호텔 한 가운데 빈 공간에 열린 주방과 그 주위를 둘러 낸 바 형식으로 레스토랑이 자리잡고 있다. 주방에서 본격적으로 조리하면 얼굴에 열이 오른다는 단점은 있지만 일정 수준 감수할만 하다. 같은 공간에 드문드문 자리잡은 2-4인석의 ‘코쿤’ 또한 독립된 식사 공간으로 훌륭하다.
음식은 어떤가. 과연 목적지 레스토랑(Destination Restaurant)이 될 만큼 훌륭한가. 목적지 레스토랑의 자격을 생각할 때마다 웨스트 버지니아 주 아주 뜬금 없는 위치에 문을 열었다던 타운 하우스(Town House)의 일화가 떠오른다. 오직 지방도로만 접근 가능한, 인구 1,827명 마을의 현대 요리 레스토랑 말이다. 물론 제주도의 여건과는 전혀 달라 정말 아무 것도 없는 가운데 맛보기 위해 찾아가야 하는 음식. 밀리우는 그런 음식을 내는가. 일단 눈으로만 먹는다면 아주 훌륭하다. 담음새 및 완성도만 놓고 본다면 내가 지금껏 가본 한국 레스토랑 가운데 최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리라. 내 앞에 놓인 접시는 예외 없이 완벽했다. 모든 요소가 깔끔했고 흐트러진 구석이 단 하나도 없었다.
물론 여건을 감안해야 한다. 근 열 명에 이르는 요리사가 최대 20명 안팎의 손님을 상대한다는 점(그나마 내가 취재할 때는 절반도 차지 않았다), 또한 최대한 많은 요소를 미리 준비한다는 서양 요리의 구성을 감안하더라도 굉장히 많은 요소를 미리 만들어 조합하는 방식임은 헤아려야 한다는 말이다. 그래도 허술하게 내는 레스토랑이 대체 얼마나 많은지 따져 보면, 완성도만을 높이 사기에 그리 망설여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맛은? 완성도와 정확하게 일치한다고 볼 수 없지만 대체로 크게 불만은 없는 가운데, 하필 셰프와 레스토랑이 핵심으로 내미는 카드가 신경을 쓰는 만큼의 효과를 내지 못한다는 인상을 풍긴다. 물론 한국의 현실을 따져 본다면 요리의 주체가 통제를 할 수 없는 요인이기는 하다. 재료 말이다. 몇몇 요리에서 한 가지 재료를 다른 상태와 질감으로 내는 시도를 내세우는데, 재미있지만 재료가 의도 만큼 받쳐주지 않는다.
예를 들어 토마토를 여러 질감으로 낸 전채는 정작 핵심인 토마토 소르베나 콩피가 디저트에나 어울릴 정도로 너무 달다. 그래서 한 입 먹으면 바로 궁금해진다. 셰프는 이걸 알았지만, 즉 한국에서 통하는 토마토의 대부분이 단맛을 강하게 낸다는 걸 알았지만 변주를 굳이 시도하기 위해 선택했을까. 마지막 주요리인 오리 가슴살에 곁들이는 비트의 변주도 일단 그 원동력인 세심함이나 기술에는 경의를 표하면서도 그만큼의 경험을 맛의 측면에서는 주지 못한다는 사실에는 아쉬워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한편, 이런 전략이 셰프에게 오히려 제약을 가하는 건 아닌가 고민하게 된다. 재료에 얽힌 다른 전략도 마찬가지다. 주요리 전에 등장하는 소르베는 제주도의 쉰 밥 발효 음료라는 쉰다리로 만든다. 제주도의 유일한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이 향토 음식을 파인 다이닝의 재료로 활용 시도한다니 참으로 훌륭하다. 하지만 막상 먹어보면 강하게 발효된(그래서 거의 술에 가까운) 쉰다리의 맛이 그때까지 쌓인 다른 음식의 맛을 정리해주기엔 너무 강하고, 오히려 바로 앞의 요리에서 살짝 두드러진 쓴맛을 증폭시키는 부작용까지 낳는다. 한마디로 이론만 놓고 보면 너무 훌륭하지만, 실행으로 옮기니 효과가 그에 비해 떨어진달까.
환경이 훌륭하다고 그랬다. 또한 가장 비싼 메뉴가 137,000원이다. 와인 짝짓기를 제공하지는 않지만, 그것과 90% 호환 가능한 복수의 레드 및 화이트 와인을 한 잔 20,000원에 낸다. 음식에 맞춰 조율을 했다는 말이다. 심지어 짝이 아주 잘 맞지는 않지만 디저트 와인도 잔으로 낸다. 심지어 특정 카드로는 10% 할인 혜택도 받을 수 있다. 식사를 마치고 자리를 뜰 때는 셰프가 직접 찾아와서 인사하고 사인한 메뉴와 더불어 잘 만든 쿠키를 선물로 건넨다.
이 모든 요소를 감안한다면, 제주도 여행을 상수로 잡아 놓고 접근할 경우 밀리우는 훌륭한 변수, 아니면 더 나아가 상수 속의 상수가 될 수 있다. 그만큼은 확실히 긍정적이다. 하지만 밀리우 자체를 목적지로 잡는 여정을 혹시라도 계획한다면 지금까지 나열한 요소가 일정 수준의 실망을 안길 가능성도 확실히 존재한다. 물론 나에게 가장 큰 고민거리는 그 실망의 가능성이 아니다. 밀리우만 보지 않고, 현재만 보지도 않는다. 그보다 실망의 가능성을 셰프와 레스토랑의 역량만으로 극복할 수 없는 여건을 본다. 돌고 돌면 결국 다시 그 지점으로 돌아온다.
아마도 그렇기 때문에, 당분간은 설사 상황이 긍정적으로 흘러가더라도 크게 달라질 거라 보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레스토랑 리뷰를 그만하기로 결정했는지도 모르겠다. 밀리우는 올리브 매거진 레스토랑 리뷰의 취재 대상이었고, 복수의 방문을 마치기 전에 리뷰 자체를 그만 두기로 결정해 더 이상 취재하지 않았다. 3월 밍글스 파동 이후로 그야말로 한 달, 한 군데씩 리뷰한다는 생각으로 버텨왔는데 이제 더 이상 그러지 않기로 결론 내렸다. 후련하다. 때가 됐다.
이 리뷰는… 왠지 굉장히 슬픕니다.
이 나라의 한계라는 게 눈에 딱 보여서 그런 걸까요.
울적해져버렸네요.
어쩐지 올리브 매거진에서 Critic란이 없어졌다 했더니… 그런 사연이 있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