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맛의 표정과 사정
지난 주말, 밖에서 밥을 먹으니 빙수 한 그릇 생각이 간절했다. 그런데 주변이 완벽한 빙수 불모지. 덥고 습한 공기를 뚫고 가고 싶은 생각이 안 들어, 궁리 끝에 스타벅스 프라푸치노로 나를 적당히 속여보려 시도했다. 신메뉴라는 허니 카라멜칩. 결과는 55점. 먹으면서 생각했다. 요즘 단맛이 여러 모로 세간에 많이 오르내리는데, 그 문제 제기는 과연 정당한 것일까. 달리 말해 요즘 흥하는 식의 단맛 비판이 단맛의 발전에 도움이 되는 걸까. 단맛을 일단 악으로 규정하는 방식 말이다.
한국에서 단맛을 비판적인 시각으로 보려면 출발점이 어디일까. 일단 단맛의 역전 부터 논해야 한다. ‘Savory Food’가 ‘Savory’하지 않고 ‘Sweet Food’가 ‘Sweet’하지 않은 현실 말이다. 물론 이 또한 여러 갈래로 나눠 생각할 수 있다. 끼니를 위한 음식에 단맛이 들어가면 무조건 나쁜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가격대가 높지 않은 끼니 음식이라면 즉각적인 만족을 주기 위해 적절한 단맛의 손을 비는 것도 효율적인 전략일 수 있다. 말하자면 ‘필요악’일 수 있고 나의 취향이 아니더라도 상황에 맞춰 이해할 수는 있다는 말이다. 물론 다만 이 경계가 뚜렷했으면 좋겠는데, 비싼 음식도 똑같은 방식으로 달면 곤란하다. 지난 달 신라호텔의 라연에 오랜만에 갔는데, 예전의 기억과는 달리 굉장히 달아서 놀랐다. 또한 소금간이 가장 기본적인 수준으로도 안 된 상황에서 단맛이 너무 강해 두 번 놀랐다. 짠맛과 단맛 둘 다 당연히 너무나도 의도적인 설정일 텐데, 현재 굉장히 극단적으로 가고 있다. 말하자면 단맛으로 간을 맞추는 상황이다.
다음은 단맛 자체의 표정이다. 바로 이 프라푸치노를 먹으면서 느낀 건데, 깨끗하게 달지 않다. 시각적으로 표현하자면 단맛의 부피/덩치는 크지만 원하는 수준까지 찔러주지 못한다. 은근하지 말아야 되는데 은근하다고 느끼거나 또는 느끼하다. 아니면 부피는 쓸데없이 크고 끝에서는 찌르는 듯한 여운을 너무 길게 남긴다(고과당 옥수수시럽?). 블로그질 10년 동안 최대의 트래픽을 몰고 왔던 허니버터칩이 맛없다고 생각한 이유도, 단맛이 뭉툭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는 여러가지 이유에서 단맛을 높여야 하지만 설탕보다 다른 감미료에 기대는 현실 때문인 것으로 이해한다. 화학 조미료로 감칠맛 끌어내는 것도 그렇고 어떤 맛내기가 그렇게 간단하겠느냐만, 단맛 또한 요즘 얻어맞는 것만큼 만만하지 않다. 디저트를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설탕의 양은 단맛의 강도는 물론 수분과도 연결되어 있다. 머핀 류의 퀵브레드나 쿠키를 굽는데 설탕을 줄이면 단맛과 함께 질감도 뻣뻣해지는 이유다. 결국 총체적인 경험으로서 맛이 두 갈래로, 두 배 이상 떨어진다. 이를 뒤집어 생각하면 촉촉함을 불어 넣기 위해 마냥 설탕의 양을 늘릴 수도 없다는 의미가 된다. 한국 반찬에 간접적으로 단맛을 불어 넣는 물엿이 좋은 예다. 대개 윤기-촉촉함-어우러짐(binding)을 위해 쓰는데, 덕분에 썩 유쾌하지 않은 단맛이 난다. 은근하지만 깨끗하지는 않은 단맛이다. 디저트에도 마찬가지 영향을 미친다. 아이스크림의 결정구조-질감을 향상시키기 위해, 또는 반찬처럼 촉촉하지만 너무 달지 않기 위해 팥 조림에 물엿을 쓴다. 맛? 물론 별로 즐겁지 않다. 단맛이 질리는 것과는 별개로 불쾌함이 쌓인다. 여름철 팥빙수가 온도 외엔 기대만큼의 상쾌함을 주지 못하는 이유도 팥의 단맛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팥 자체의 맛이 그다지 상쾌하지도 않지만.
나는 이러한 단맛의 체제가 계속해서 강화될 것이라고 본다. 분명 부담없이 사먹을 수 있는 가격이지만 설탕보다 싼 대체당류가 영역을 계속해서 넓혀가고 있다. 다시 한 번, 단맛 자체를 악이라고 보지 않는다. 즐거움을 위해 분명히 필요하다. 그리고 그 즐거움은 단맛과 짠맛의 영역이 확실히 분리되었을때 더 커진다. 앞에서도 언급했듯, 짠맛 위주 음식에 개입하는 단맛은 즉각적인 즐거움을 주지만, 그만큼 깊이와 표정은 떨어진다. 게다가 요즘처럼 소금간은 안 하는 현실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현실에서 그게 불가능하다면, 최소한 그 단맛이 좀 더 선명했으면 좋겠다. 이왕 먹어야 한다면 좀 더 맛있었으면 좋겠다는 말이다. 단맛 자체를 비판하기 보다, 내는 방식에 대한 논의가 더 활발해야 한다.
깨끗하게 단 맛이 부족하단 맛 너무 공감합니다 ㅠㅠ 밖에서 뭘 사먹다보면 엄청 달기만 한 음식은 많은데 깔끔하고 개운한 단 맛 나는 음식은 찾지를 못하겠더라고요
설탕에 대한 이상한 편견 같은게 있 지요. 올리고당은 몸에 좋고 설탕은 몸에 나쁘고…
설탕은 몸에 나쁘고 꿀은 몸에 좋고….
또 다이어트를 위해 설탕의 200배 300배의 단맛을 내준다는 제품들 …
제과로 먹고 사는 입장에서 설탕 뿐 아니라 트레몰린, 꿀, 토레할로스, 함수결정포도당 등 많은 종류의
당을 사용하지만 맛으로 보면 역시 설탕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제발 밥에는 과당 좀 쓰지 말고 설탕
써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네요 아님 포도당 이거나요.
미국에서 판매중인 Pepsi Real Sugar를 드셔보셨는지 궁금합니다. 문외한인지라 ‘진짜 설탕’을 썼는지 여부는 모르겠으나 확실히 맛이 깔끔하게 똑 떨어지더군요. 그 맛이 충분히 매력적인지 여러 다른 제품군으로 Real Sugar가 확장되고 있던데 한국에서도 맛볼 수 있는지 궁금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