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vory Food 속 단맛의 의미
별 생각 없이 지나가던 어느 동네 골목길에서 막 붙인 듯한 간판을 보았다. ‘화상 00’라는 중국집 간판. 마침 짜장면 생각이 간절했으므로 바로 확인. 예전 사업주체-역시 중국집-의 간판도 여전히 붙어 있는 것으로 보아, 있던 중국집을 인수해 새로 연 모양이었다. 7,000원짜리 간짜장은 진득함이 전혀 없는 스타일이었지만 금방 잘 볶았고, 면도 쓸데없이 단단하지 않았다. 심지어 튀긴 계란까지. ‘오, 좋다’라고 생각해야 맞겠으나 그러기엔 짜장이 너무나도 달았다. 춘장 때문이 아닌, 설탕을 꽤 넣은 단맛. 그래서 일단 후퇴.
며칠 뒤, 다시 가서 간짜장과 볶음밥, 깐풍기를 시켜보았다. 분명 ‘개업발’의 영향이라고 보아야 할 조리는 세 가지 다 좋았으나, 역시 너무 달았다. 어느 순간 디저트를 먹듯 물려, 더 이상 손을 댈 수 없을 정도의 단맛. 그나마 단맛이 전혀 개입하지 않은 음식은 볶음밥 한 가지 뿐이었는데, 전체의 단맛과 비교할때 소금간이 꽤 약했다. 일산 어딘가의 중국집에서 아예 소금간이 전혀 없이 단맛으로만 간을 맞춘 음식도 먹어본지라 최악은 아니었지만, 개업발이든 아니든 좋은 조리를 완전히 잡아먹는 수준이었다. 먹고 나서는데 ‘슈가 러시’가 올 지경이었다. 편의점에서 동원 녹차를 사서 쓴맛으로 균형을 애써 맞췄다.
물론 이건 한두 군데의 특정 음식점, 또는 (한국식) 중국 음식 만의 문제는 아니다. 일반 음식 (savory food)의 단맛이 강해지는 건 추세이자 현상이다. 며칠 전 ‘단맛 열풍’에 대한 기사도 나왔는데, 분명 열풍이라는 표현을 쓸 만큼 강렬하지만 그보다 점진적이고 지속적인 현상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리고 이렇게 강해지는 단맛은 미각, 또는 음식문화의 퇴행이다. 왜 그럴까. 다섯 가지 기본 맛 가운데 단맛은 가장 쉽고 즉각적이다. 신경문화인류학자 존 앨런은 <미각의 지배>에서, 이를 수렵 및 채집 문화의 산물로 설명한다. 스스로 만들지 않고 찾아 먹어야 하는 상황에서, 단맛을 지닌 과일이 맛있을 뿐더러 위험하지 않다는 것을 몸으로 익혀 전해 내려왔다는 것(쓴맛에 품는 거부감도 같은 이유로 설명한다. 독을 가져 먹으면 안되는 식물이 쓴맛을 지녔다고). 그래서 음식이 ‘맛있다’고 느낄 수 있는 상황을 연출하는데 단맛을 쉽고 즉각적인 전략 요소로 쓸 수 있는 것이다. 막말로 어디든 설탕을 들이부으면 일단 맛있다고 느낄 수 있다. 자칫 잘못하면 식문화의 본질적 특성을 줄세우려는 시도가 될 수도 있겠지만, 일반 음식에 존재하는 단맛과 그 비율을 측정, 비교해보면 분명히 패턴이 드러날 것이다.
어쨌든, 일반 음식에서 단맛의 존재 자체가 문제라고 보지는 않는다. 중요한 건 언제나 그렇듯 균형이다. 일단 음식의 의미와 용도를 정확히 파악해, 그에 걸맞는 맛을 찾아야 한다. 또한 단맛의 원천도 중요하다. 단맛은 즉각적인 쾌감을 주지만 물리는 맛, 잘라주는 맛이다. 식사의 맨 마지막에서 입가심으로 먹는 디저트가 단맛 위주라는 걸 감안하면 금방 이해할 수 있다. 끼니를 위한 음식에 지나치게 단맛을 많이 개입시키면 순간적으로는 즐거울 수 있지만 금방 물리며, 재료의 맛의 느끼기가 어려워진다. 아예 들어내도 전혀 문제 없고, 굳이 쓰겠다면 방점을 찍거나 짠맛과 ‘밀당(interplay)’하는 용도로 쓰는 게 효과적이다. 이제는 굳이 예로 드는 것조차 진부한 느낌이 드는 엘불리의 경우, 초월적인 미식 경험을 빚어내기 위해 의도적으로 단맛과 짠맛의 경계를 허물거나 모호하게 만드는 시도를 많이 했다. 그러한 시도의 장본인인 페란 아드리아라 미국의 햄버거-프렌치프라이-콜라-토마토 케첩의 조합을 예로 들며 ‘이러한 시도가 일반적인 음식과 엄청나게 거리가 먼 것은 아님’을 시사했다는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단맛과 짠맛의 균형이 맞을때 입체적인 맛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소금을 뿌린 수박이나 소금 캐러멜 같은 음식도 비슷한 예로 생각할 수 있으며, 한식에서도 모든 것을 함께 먹는 공간전개형 식사에서 콩자반 같은 음식과 김치를 함께 먹었을때 느끼는 미묘한 단맛-짠맛의 줄다리기는 얼마든지 곱씹어볼만한 예다. 요는, 단맛의 존재는 반드시 짠맛을 전제로 삼아야 한다는 것. 이는 사실 단맛 위주의 디저트에도 마찬가지다. 굳이 소금 캐러멜처럼 짠맛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지 않는 음식이더라도, 소금으로 간해야 전체 맛의 표정이 좀 더 입체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이는 다음에 짠맛에 대한 글에서 보충하겠다).
다음은 원천. 끼니를 위한 음식에 굳이 쓰겠다면 재료가 기본적으로 지닌 단맛을 최대로 활용하는 게 자연스럽고(고기, 양파 등), 굳이 조미료를 쓰겠다면 어떤 경우라도 중립적으로 단맛만 내는 백설탕보다 좋은 재료가 없다. 딸려오는 맛을 딱히 염두에 두지 않았다면, 물엿이든 조청이든 아가베 시럽은 물론 흑설탕마저도 효과적이지 않다는 것. 특별히 더 건강한 당이란 존재하지 않으니 어쨌든 적절히 먹는 게 좋고, 굳이 단맛을 쓰겠다면 중립적인 맛을 좇는게 가장 효과적이라는 말이다.
계란후라이 얹어 주는 점은 좋군요. 서울에서는 찾기 힘드니까요.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닌데 별로 없죠. 사실 잘 어울리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