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산] 서동관-물에 끓인 고기의 딜레마

IMG_5777가끔 일산에서 아이맥스로 영화를 보고 밥을 먹는다. 지난 일요일엔 백병원 근처의 서동관에 갔다. 그 자체로도 썩 뛰어나다고 생각하지 않는 하동관을 벤치마킹하는 집이라고 들었는데 (이름부터), 미안하지만 비슷한 건 놋그릇 밖에 없었다. 수육 (4만원)과 양특곰탕 (1만 6천원)을 시켰는데, 여러 모로 좋은 음식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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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가장 문제라고 생각한 건 고기 자체. 부위 막론하고 절반 정도는 씹을 수가 없었다. 차돌박이나 양 등은 정말 육식동물이라야 씹을 수 있을 정도. 나머지 정육 부위도 이에 저항이 굉장히 강했으며 두께도 아주 고르다고 할 수 없었다. 이유는 추측컨대 너무 오래 삶으면 고기가 부스러져 썰기 나쁘거나 모양이 나빠지는 걸 우려하기 때문인 듯. 족-소 및 돼지-탕도 완전히 푹 삶지 않아 껍질이나 연골 등을 우적우적 씹어야 하는 경우가 잦은데, 어디선가 물어보니 너무 삶으면 완전히 떨어져 나와 보기 싫으므로 그렇게 할 수 없다는 대답을 들었다. 정말 없는 걸 나눠 먹고자 고기를 끓여 먹던 시절이라면 고기가 조각조각 떨어지거나 흐물거려도 상관 없을지 모르겠지만, 이제 그러면 상품 가치가 떨어지는 모양. 하지만 만일 그게 문제라면 아예 이런 국물 음식 자체를 없애버리고 먹지 말아야 하는 것은 아닐까? 국물 음식에 쓰는 부위는 거의 언제나 운동을 많이 해서 질기지만 맛은 풍부하다. 이런 걸 모양이 망가지지 않을 정도로만 끓인다면 맛은 맛대로 완전히 우러나오지 않고, 고기는 고기대로 씹기 어렵다. 말하자면 일종의 딜레마인 것. 고기를 오래 끓이는 조리법의 경우, 고기가 날것의 상태를 벗어나는 것과 먹기 편한 정도로 분해되는 것은 별개다. 후자의 경우까지 조리하지 않으면 이러한 조리법을 오랜 시간을 들여 적용하는 건 큰 의미가 없다. 재료의 특성과 그에 맞는 조리의 목표를 좀 더 생각해고 행동에 옮길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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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고기를 많이 끓이더라도 이곳에서 내는 것보다 얇고 고르게 저밀 수 있는 방법은 있다. 완전히 식혀서 한 번 굳히면 된다. 하동관과 이곳의 고기를 비교해보면 두께도 다른데, 그것은 분명 그에 따라 먹을 수 있는 정도가 달라진다는 것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는 그걸 몰라서 이렇게 내는 걸까, 아니면 알지만 거기까지는 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걸까? 하여간 좋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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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문제는 간. 수육도, 탕도 간이 하나도 안 되어 있다. 물론 탕의 경우 식탁의 소금-그리 뜨겁지 않은 국물인데 굳이 굵은 소금을 올려야 할까? 잘 녹지 않는다. 바다소금도 얼마든지 곱게 갈 수 있다-으로 간을 하면 된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그래봐야 간이 되는 건 국물이지, 고기가 아니다. 게다가 소금간을 해서 끓이는 것과, 마지막에 소금을 더하기만 해서 먹는 건 맛의 차이가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이걸 모르는지 한식은 대부분 1. 소금으로만 간을 하지 않거나 (간장, 된장류로 짠맛까지 책임지도록 한다. 맛도 역할도 다르다), 2. 아예 간 자체를 하지 않는다. 그래서 국물이면 소금간을 하고, 고기 등등이면 장류에 찍어 먹도록 한다. 먹는 양념의 양이나 맛내기를 감안한다면, 이건 철저하게 비효율적이다. 재료에 간을 미리 해서 자체의 맛을 끌어내지 않고, 재료의 일부에만 장을 찍어 그걸 입 안에서 씹으면서 분배시킨다. 말하자면 요리의 완성을 주방이 아닌 먹는 이의 입에서 하는 셈인데, 그러려면 주방의 의미는 무엇일까? 물론 각 나라마다 소스-딥의 문화가 있기는 하지만 주연인 음식의 간이 0인 경우가 얼마나 존재할까? 프렌치 프라이에 소금간을 하지 않고 케첩으로 간을 맞추나? 그렇지 않다. 사시미/스시의 간장이 향을 주는 역할인가, 아니면 간을 맞추는 역할인가? 게다가 거기에 쓰는 생선은 숙성을 통해 재료의 맛을 일정 부분 끌어낸다. 날고기를 아무런 처리 없이 물에 넣어 삶은 다음, 그것도 완전히 분해되지 않은 상태에서 간장에 찍어 먹는 것과는 다르다. 음식의 간을 이렇게 처리하는 문화가 중립적인 소금을 이용해 간을 맞추는 방법에 대해 아예 생각을 못하게 만든다. 그래서 이렇게 물에 끓인 고기를 먹으려면 양념도 계속 먹고, 신김치도 계속 주워 먹어야 한다. 느끼하고 밋밋하므로 미각이 균형을 찾기 때문이다. 이것이 효율적인가? 아니면 좋은 맛을 선사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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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기/끓이기에는 나름의 미덕이 있지만, 그게 재료의 맛을 최대한 끌어내주는 건 아니다. 그래서 맛은 대개 굽거나 튀기는 것보다 밋밋하다. 하지만 재료와 열원의 특성을 감안할때 들어맞는 경우가 있으므로 때로 유용하다. 하지만 서동관의 고기처럼 재료에 필요한 만큼 완전히 적용하지 않는다면 의미 자체가 아예 없어진다. 전통이 전통이 아니라 사실 습관이며, 더 잘 먹고 잘 사는데 기여하지 않는다면 재고해봐야 한다. 이곳의 음식이 딱히 좋지 않았지만, 일정 부분 이건 이러한 조리 형식 자체의 문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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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족: 음식에 딸려나오는 것들도 큰 생각은 없어 보였다. 파는 냉장고에 넣어놓았다 주는지 차갑던데, 그럼 딱히 뜨겁지 않은 국물에 넣었을때 온도가 많이 떨어질 수 있다. 또한 좀 더 잘 썰어야 할 필요도 있다. 잘 안 드는 칼로 난도질한 느낌. 김치: 통과. 밥을 추가로 한 공기 시켰는데, 토렴해 나온 게 거의 부서지는 수준인데서 알 수 있듯 국물의 가격과 맞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미뢰를 완전히 박살내버리는 청양고추는 완전히 난센스. 음식을 생각해서 만든다면 도저히 낼 수 없는 선택이다.

3 Responses

  1. 케잌 says:

    “물론 탕의 경우 식탁의 소금-그리 뜨겁지 않은 국물인데 굳이 굵은 소금을 올려야 할까? 잘 녹지 않는다. 바다소금도 얼마든지 곱게 갈 수 있다)으로 간을 하면 된다고 생각할 수 있다. ”
    -로 시작해서 괄호로 끝나네요. 잘 읽었습니다.

  1. 05/20/2015

    […] 전, 일산 서동관의 먹기 어려운 수육에 대해 글을 썼다. 한 달쯤 전에 청진옥에서 저녁 먹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