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시대의 글쓰기(1)-형식과 분량에 대한 고민
얼마 전, 미식축구(NFL) 지명대상인 미주리 주립대의 수비수 마이클 샘이 커밍아웃했다. 예상대로 4월, 4~7 라운드 사이에서 지명된다면 미식축구 사상 최초의 현역 ‘오픈리’ 게이 선수가 될 것이다.
뉴스를 접하고 이와 관련된 글을 쭉 읽다가 그 이전 ESPN의 자매 사이트 그랜트랜드에서 글을 통한 성전환자의 ‘아우팅’ 사건이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딱히 스포츠 전문이라기보다 어디에선가 주워들은 것처럼 ‘스포츠의 탈을 쓴 라이프스타일 필자’인 빌 시몬스가 운영하는 그랜트랜드는, 길이에 비해 내용이 없는 글이 많아 처음 1년 정도 이후에는 잘 가지 않는 사이트였다. 그래서 몰랐던 사전의 내막은 다음과 같다. 칼렙 하난(Caleb Hannan)이라는 필자가 우연히 텔레비전 광고(infomercial)에서 ‘마법의 퍼터’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그 발명자를 이메일 등으로 간접 취재했던 것. 전제 조건은 발명품, 즉 퍼터만을 대상으로 삼고 발명가인 자신에 대해서는 묻지 않을 것이었다. 하지만 MIT 출신이며 미국 국방에 관련된 비밀 프로젝트(스텔스 폭격기 등)등을 맡았다는 ‘그녀’의 이야기에서 취재를 거듭할 수록 구멍이 드러났고, 다른 경로로 확인 결과 발명가가 성전환자임을 알아낸다. 이에 대해 당사자에게 확인을 요청하자 연락이 끊겼고, 얼마 뒤 필자는 그녀가 자살을 했다는 소식을 접한다.
매체를 통해, 그것도 사후에 벌어진 ‘아우팅’ 때문에 이 글은 엄청난 파장을 불러 일으켰다. 원문은 물론 그에 얽힌 여러 다른 글들을 읽어 보았는데, 내가 필자에게 품은 불만은 이렇다. 발명가가 성전환자라는 사실을 통한 극적인 효과를 지나치게 노린 나머지, 원래 소재인 퍼터에 대한 이야기는 뒤로 갈수록 용두사미가 되어 버린다. 취재원과 사전에 맺은 합의를 지키며 글의 동기에 충실하려면 그녀의 사생활, 또는 성정체성보다는 과학적인 분석 등을 통한 퍼터의 실효에 대해 따져보는 것이 맞다. 하지만 글은 구성마저도 취재원의 공개적인 아우팅을 통한 극적인 효과에 맞추고자 초점이 완전 빗나가 버린다. 그리하여 끝까지 읽으면 불쾌함만이 남는다. 비단 이 특정 필자 뿐만 아니라, 글을 쓰는 사람의 직업윤리라는 것이 대체 무엇인지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이 글에 대한 비판이 거의 대부분 성소수자의 인권에 초점을 맞춘 가운데 그 형식에 대한 의구심을 품은 것도 있었다. 긴 글, 소위’long-form’이 인터넷 시대에 다시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데, 향수로 인해 각광을 받지만(켈럽 하난의 글도 막 인터넷에 올라왔을때 ‘훌륭하다’는 평이 압도적으로 트위터 등 SNS를 통해 돌아다녔다) 그 형식 또는 길이 자체만을 만족시키기 위한 시도가 이런 글의 부적절한 아우팅 같은 부작용을 낳는 것이 아니냐는 내용이었다. 한마디로 본말이 전도된다는 의미다.
같은 블로그를 10년 동안 끌고 오다보니 인터넷상의 글쓰기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한다. 저 ‘long-form’의 의미에 대한 고민도 그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인터넷의 지면에는 제한이 없으므로, 글을 길게 써도 상관이 없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 가장 큰 이유는 오히려 그 ‘제한 없음’이 낳은 다원화와 그로 인한 집중력 부족이다. 한마디로 공급 과잉이기 때문에 그 제한 없음을 믿고 글을 길게 써봐야 잠재적 독자에게 간택을 받지 못한다는 의미다. 그러한 현실을 보여주는 용어가 바로 ‘tl;dr’, 즉 ‘too long didn’t read’다. 칼렙 헤난의 글도 끝까지 한 번에 읽기에는 길이 자체만으로 부담스러운데, 그나마 그가 다소 억지로 불어넣는 강제 아우팅의 클라이막스가 간신히 하지만 불쾌하게 집중력을 지켜준다. 물론 그 또한 바로 그 강제 아우팅 부분이 지나면 읽을 수가 없어진다. 앞에서 언급한 본말전도처럼, 글 자체를 일단 길게 쓰고 싶은 욕망 때문에 쓸데없이 극적인 효과를 불어넣는 등 내용 전달과 상관없는 경로를 택하는 건 아닌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또한 우리나라의 인터넷 매체에서는 특히 비평 혹은 비판일때 자꾸 말을 돌리느라 글이 쓸데없이 길어지는 경우도 보니 그것 또한 재고해야 한다.
거기에 매체의 특성도 생각해봐야 한다. 이제 많이 대중화된 전자책 또한 아날로그 책의 형식을 최소한 따른다. 플랫폼 안에서 이루어지는 페이지의 전환이 그것이다. 2세대 킨들을 샀을때만 해도 아날로그 책의 쪽수가 아닌 위치(location)만을 알려줬지만, 이후 업데이트가 이루어지면서 쪽수도 함께 보여준다. 전환이 이루어지지 않을때 읽기는 지루해질 수 있다. 웹페이지의 글이 그렇다. 수직으로 내려가면서 읽는 글은 같은 분량이더라도 수평으로 쪽의 전환이 이루어지는 글보다 더 많은 집중력을 요구한다. 성취와 목표의 인지도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한 가지 원칙을 정해놓고 따른다. 간단하다. 글은 무조건 한 번에 다 쓴다. 일단 내가 한 호흡에 쓸 수 없는 글은 독자 또한 한 호흡에 읽을 수 없다. 길어서 지치든, 잘 쓸 수 없어서 지치든 블로그에 올릴 글은 한 번에 쓸 수 없다면 쓰지 않는다. 그리고 그게 인터넷이라는 매체의 장점을 십분 살릴 수 있는 다생산, 또는 다작에도 적합하다.
# by bluexmas | 2014/02/23 15:42 | Media | 트랙백 | 핑백(1) | 덧글(4)
Linked at The Note of Thir.. at 2014/02/24 17:50
… 인터넷 시대의 글쓰기(2)-형식과 분량에 대한 고민 분명히 블로그 어딘가 썼을테지만 찾아보기 귀찮으므로 그냥 동어반복을 해보자. 몇 년 전, 모 “진보” 신문의 “웹진” 필진으로 영입된 적 … more
미주리가 보수적인 동네이긴 하지만 Mizzou는 그렇지 않은 편인 학교라 괜찮긴 했을텐데
프로로 가면 팀원들이 얼마나 그를 받아들여줄지와 그런 팀원들을 그가 얼마나 받아 들일지 궁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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