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시대의 글쓰기(2)-여건, 또는 ‘전업’의 의미

인터넷 시대의 글쓰기(1)-형식과 분량에 대한 고민

[부제] 허핑턴 포스트의 무고료 정책과 전업 글쓰기의 의미

분명히 블로그 어딘가 썼을테지만 찾아보기 귀찮으므로 그냥 동어반복을 해보자. 몇 년 전, 모 “진보” 신문의 “웹진” 필진으로 영입된 적이 있다. 1주일에 한 편인가 올리는 것으로 기억하는데 고료를 5만원 준다고 했다. 다만 원고지로 따졌을때 15매 정도인가 하는 분량 하한선이 있었고, 시험삼아 올린 포스팅에는 돈을 주지 않는다고 했다. 몇 달 하다가 개편되어 잘렸고, 지금은 어떻게 되었는지 잘 모르겠다.

한겨레에서 허핑턴 포스트를 들여와 며칠 내로 출범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데 필진에서 고료를 지급하지 않는단다. 이를 놓고 주말 동안 좀 시끄러웠다. 거기에 대고 누군가 ‘자기가 “초대” 못 받아 부러워 그러는 것들 아니냐’라는 이야기를 했다. 솔직히 나에겐 맞는 이야기다. 누군가 트위터에서 필진으로 참여한다는 이야기를 했고, 부러웠다. 그래서 축하한다는 이야기도 날렸다.

그러나 더 솔직히 말하자면 한겨레나 허핑턴 포스트이기 때문에 부럽지는 않다. 일단 그것이 노출을 통한 인지도의 문제인데다가, 결국 그 인지도와 “간택(초대는 웬 초대?ㅋ)” 등등의 문제 뒤에는 좋게 말해 “공감대”라 할 수 있는 정서와 무리 짓기 혹은 네트워킹 따위가 숨어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냥 막말로 이 집단주의에 찌든 한국인들 네트워킹 잘도 하는게 부러울 뿐이다.

물론 모든 노출의 기회가 반가운 건 아니다. 아니, 오히려 그 반대다. 대부분이 반갑지 않다. 전업으로 책 팔아먹겠답시고 발버둥치는 인간이 이런 식으로 말하면 안된다는 것 알지만, 거의 대부분 내가 생각하는 나와 거리가 있거나 멀고 그로 인한 어색함을 참을 수 없게 만든다. 다른 건 다 괜찮은데 그 어색함을 견디기가 너무 어려운 것이다. 최근에도 매체니 뭐니 하는 것과 전혀 거리가 먼 실무자를 우연히 만나 그런 이야기를 하기에 다른 것보다 어색함에 대해 생각해봐야 한다고 의견을 밝혔다. 다른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나에겐 전직의 의미가 무리 짓기, 또는 스스로를 어색하게 만드는 맥락으로부터 거리두기이므로 그건 언제나 큰 화두다.

좌우지간, 특정한 매체라서 부럽지 않으며 노출의 기회라고 해서 다 좋은 것도 아니라는 생각 때문인지 나중에 고료를 주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었을때도 ‘뭐 그렇군’ 정도의 반응을 품었지 ‘이런 거지 같은 사회악’이라는 수위까지는 생각이 올라가지 않았다. 물론 이게 거지같은 “재능기부” 등등과 별 다를바 없다고 보지만 사회악이 너무나도 넘치는 나머지 그냥 이 정도에 화를 내기조차 아깝다는 생각을 한 것 뿐이다. 이에 대해 누군가가 ‘0원과 100원 사이의 차이가 가장 크다’라고 이야기했는데, 그처럼 나도 돈을 전혀 주지 않는 건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런 가운데 전업으로 글을 쓴다는 사람들이 더 과격한 반응을 보였다. 한마디로 ‘공짜로 글을 쓰게 하면 전업으로 쓰는 사람은 어떻게 먹고 사느냐’는 것이다. 원칙적으로 보면 틀린 주장은 아니지만, 그 이면에는 자신의 직업에 대한 이해 부족이 깔려 있다고 보았다. 예를 들자면 ‘취미로 글을 쓰는 사람’에 대한 비난이다. ‘글 쓰는 의사’를 비난했던가? 아니면 의사가 글을 써서 팔아먹는 현실을 비난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정당화할 수 없는 비난이라고 본다. 글쓰기의 핵심은 활자의 생산이 아닌, 세계관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상적인 경우겠지만, 의사라면 자신의 전공 지식이나 임상 경험 등으로 빚은 세계관을 글로 표현할 것이다. 그건 전혀 문제될 게 아니며, 오히려 세계의 다양성을 위해 적극 장려되어야만 할 시도다. 다른 모든 직업인의 글쓰려는 시도 또한 마찬가지다. 오히려 반대로, 취미로 글을 쓰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밥그릇을 빼앗기는 전업 작가가 있다면 정말 진지하게 자신의 역량에 대해서 돌아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는, 내가 전업작가를 목표로 살면서 정말 생활이 가능하도록 돈을 벌고 있기 때문에 하는 이야기가 절대 아니다. 다만 글이 산지사방에 존재하는 인터넷 시대에서, 나는 이러한 위기 또는 말도 안되는 진창을 다소 뒤집어 보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어차피 돈을 넉넉하게 못 벌 것이라면 그 빈곤이 부산물로 자아내는 자유로움을 차라리 즐기고 싶다는 의미다. 이는 위에서 언급한 ‘어색함’을 최대한 피하려는 시도와도 결국 일맥상통하다. 굳이 쓰지 않아도 될, 짠 원고료와 그 말도 안되게 늦은 지급, 실무자와의 쓸데없는 실랑이를 통한 감정 노동의 매체 원고를 가급적 피하고, 그 시간에 차라리 취재를 하고 연구를 한다. 책도 마찬가지다. 좋은 기회가 있고 함께 좋은 책을 만들 수 있겠다는 느낌의 편집자를 만나면 얼마든지 쓰지만, 분명히 그럴 수 없을 것 같은데 다만 당장의 돈을 위해서 계약하거나 서둘러 쓰지 않는다. 왜? 그래봐야 나오는 대가가 정말 너무나도 빤하기 때문이다. 글이 널린 시대에 나무까지 낭비해서 안 찍어도 되는 글을 쓰고 싶지 않다. 굳이 희생을 치르고 공간을 잡아 먹으려면 디저털의 존재를 초월, 압도까지는 못하더라도 동등하게 자리할 수 있는 정도의 책을 써야만 한다. 독자가 ‘인터넷에 널린게 정본데 이 책은 돈 주고 살만한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책을 써야 한다.

그래서 전업으로 살고 있거나 그걸 시도하는데 저런 상황이 장애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은 왜 글을 쓰려 하는가? 아니, 대체 당신의 세계관은 무엇인가? 의사나 변호사 같이 사회적으로 명망있는 직군의 사람들이 세계관과 글재주마저 갖춰 취미인 글쓰기로 푼돈을 벌어 챙긴다면, 그와 맞서 당신의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 당신은 대체 어떤 세계관을 쌓아 나가고 있는가? 이러한 표현이 극단적으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나는 아무런 전문성도 없이 소위 말하는 ‘라이프스타일’을 글로 팔아먹으려는 시도에 환멸을 느낀다. 그건 20대에 반짝 가능하고 30대 중반을 넘기면 슬슬 추해지기 시작해, 40대에 이르면 가치 없는 재료로 전락한다. 그 나이에 이르러서도 팔아먹을 라이프스타일이 있다면 그걸 누리는 사람은 글을 써야할 이유가 굳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을까? 그런게 전혀 없이 시스템만을 문제로 생각한다면, 당신이 생존할 가망성은 앞으로 계속 떨어질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글쓰기는 문화산업의 일부며, 그 문화산업의 일부라는 건 결국 잉여가 잉여를 먹고 생산해 잉여의 공간을 채우는 산업이니까. 막말로 마음의 자양분을 위해 문화산업이 존재하지만, 정말 급박한 상황 즉 몸에 자양분을 못 채워넣을 상황에 이르면 마음 따위 신경조차 쓸 수 없어진다. 그러한 직종에서 전업으로 일한다는 의미는, 시스템의 문제를 지적하는 것만으로 생존의 노력이 정당화받지 못할 수 있는 것이다. 어차피 그 시스템이라는 것 자체가 없어져도 삶은 이어나갈 수 있으니까. 이러한 인터넷 시대에 옛날처럼 소줏잔 놓고 앉아서 풍류를 즐기는 글쓰기와 그 생산자는 고사할 수 밖에 없다는게 내 생각이다. 스스로 글쓰기 ‘노동자’라 칭한다면 정말 노동같은 노동을 하자.

*사족: ‘”초대” 받아 블로그는 만들지만 글은 쓰지 않겠다’는 말은 대체 뭘까? ‘음주 운전은 했지만 술은 마시지 않았습니다’ 같은 농담인가? 거기에 글을 안 쓰고 그림을 올리면 그게 그림이므로 돈을 받지 않아도 상관 없는 건가?

 

 by bluexmas | 2014/02/24 17:50 | Media | 트랙백 | 핑백(1) | 덧글(2)

 Linked at The Note of Thir.. at 2014/03/17 11:13

… 하는 사람들은 많다. 하지만 특히 저 사이트가 인기를 얻는다면, 그건 사람들이 뉴스를 선별하는 시각에 믿음을 주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시각의 중요성은 결국 이전 글에서 전업으로 살아 남으려면 꼭 갖춰야 할 ‘세계관’의 확보와 다르지 않다. 시각이 그렇게 중요하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이런 글을 보자. 허핑턴포 … more

 Commented by 가녀린 얼음요새 at 2014/02/24 20:07 

필진 공짜로 쓰는 한겨레 태도를 보고 추측컨대, 그들은 1) 글쓰는 건 노동으로 보지 않거나, 2) 자신들은 ‘자본가’가 아니므로 노동문제에서 자유롭다고 여기거나, 3) 자기들이 하는 건 무엇이든 옳다, 셋 중 하나의 사고방식을 가진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신, (출판시장에서 주로 386 중심으로 돌아가는) ‘공감하는 정서에 따른 무리짓기’의 가장 큰 문제는 질적으로 분명히 더 나은 글/컨텐츠가 그들 정서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간택’ 단계에서 이해받지 못하고 사장된다는 사실이 아닐까 합니다. 가까운 주변에서 몇몇 사례들을 접하다보니, 이제 그러려니 하게되긴 하는데, 그게 사회에 미치는 악영향이 생각보다 훨씬 크다는 생각이 듭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14/03/02 00:31

그에 대해서 이야기가 굉장히 많은데 저는 이 의견 https://www.facebook.com/heterosis.kim/posts/243587709154442 에 정확하게 동의합니다. 전혀 새롭지 않은 매체에요. 법륜 같은 사람들 불러 쇼하는 것도 그렇고…

‘무리’에 대한 이야기는 그보다는 사람들의 무리짓기에 대한 것인데요(제가 외국에 오래 있다가 와서 또래 친구 전혀 없는 상황), 지금 말씀하시는 것도 요지는 이해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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