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미쉐린 가이드 서울 2017 (1)
우선 미쉐린 (공식 가이드의 표기이므로 앞으로 준수하겠다) 가이드 별 받은 모든 레스토랑을 축하한다. 물론 모든 별이 이치에 들어 맞는다고 생각하지 않고, 진짜 웃긴 곳마저 몇 군데 있다 (진진? 크게 웃었다). 하지만 축하로 리뷰의 문을 열어서 나쁠 것 없다. 받을만한 레스토랑과 셰프, 그리고 직원들은 물론, 가이드의 출범 등등 골고루 축하한다.
며칠 전 올린 리뷰의 한국어판인 이 글에서는 별 목록과 빕 구르망은 물론 그제 발간된 가이드북까지 고려할 예정이다. 크게 두 편으로 나눠 전반부에는 영어 리뷰와 비슷한 내용을 다루고, 주말에 가이드북을 자세히 들여다 본 뒤 내용을 보강한 후편을 올리겠다. 영어 리뷰에 비해 좀 더 세부적인 내용을 다룰 생각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레스토랑의 선택에 대한 리뷰를 하지는 않을 것이다. 어찌 되었거나 모든 선택이 정당화되기란 애초에 불가능한 상황이고, 따라서 큰 그림에 치중할 예정이다.
일단 운을 확실하게 떼자. 리스트에 굳이 동의하지는 않지만 결정과 논리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큰 그림에 납득하고 있으며, 월요일의 리스트 발표 이후 곱씹을 수록 이해의 폭이 커진다. 한 번 살펴보자.
1. 레스토랑의 수
한국어 리뷰를 쓰면서 다시 확인해 보았다. 다른 지역의 2017년 가이드가 나오지 않은 가운데, 2016년 기준으로 일본은 도쿄에만 217곳, 관서(오사카/교토/나라)지역에 186곳의 미슐랭 별 레스토랑이 존재한다. 총 403군데다. 한편 2017년 가이드에서 별을 받은 한국 레스토랑은 총 24곳. ‘217/24=9이니 일본과 한국의 식문화 수준 차이가 그만큼 난다고 믿을 수도,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최소한 3-5배 차이는 난다고 보아야 한다’라고 썼는데 이쯤 되면 아니라고 할 수 밖에 없다. 403/24=16.8이니 깎고 깎아도 최소 10배는 수준 차이가 난다고 보아야 한다.
한편 ‘도시 대 도시로 비교해야 하니 서울이라면 도쿄와 비교해야 하지 않겠나’라는 의견도 들었는데, 정확한 수치를 확인하고 나니 그래도 9배다. 하지만 실제로는 미슐랭 가이드가 일본에 진출하고, 수도 외의 도시에도 일정 밀도 이상으로 진출한 상황 전체를 감안해야 한다. 어쨌거나 수준 차이는 크다. 한국은 식문화의 고유성을 내밀어 그저 다를 뿐이라 정당화하는 경향이 있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한국이 일본보다 열등한 건 확실하다.
이를 감안할 때, 나는 미쉐린이 별을 이보다 더 많이 주지 않아 다행이라고 여긴다. 나를 포함한 모두가 셀 수 없이 많은 글을 써 미슐랭의 쇠락을 논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 시장에 뿌리듯 별을 매기지는 않았다. 수준 차이를 감안하면 서울의 별은 서울의 맥락 아래에서만 정당화될 수 있다고 믿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쉐린은 너그럽지 않았다. 나는 이를 하나의 메시지로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직 갈 길이 멀다.
2. 일관성 > 공정함
리스트를 펼쳐 놓고 지구의 끝-어째 트럼프 당선으로 한결 더 가까워진 느낌?-까지 논쟁을 별일 수 있다. 또한 많은 이들이 리스트의 공정함에 대해 불평하고 있다. 각각의 논지에 대해 일정 수준 이해하지만 그래도 리스트가 최소한의 일관성을 보여주고 있다고 믿는다. 그린 가이드도 이미 내놓았고, 사업적 관점에서 몇 년 동안 진출을 고려했지만, 어쨌거나 실제로 행동에 옮기고 보니 그렇게 풍성한 식문화가 아니라고 이해한 것이다. 따라서 별을 많이 주지도 않았을 뿐더라, 한식에 기반한 또는 그렇다고 자칭하는 레스토랑에 별을 집중해 주었다.
이유가 뭘까. 한국인으로서 원하는 대로 가이드의 진출을 받아들일 수 있고, 얼마든지 좋은 일이라 여길 수도 있지만 어쨌거나 주 대상은 한국인이 아니다. 한국을 찾는 관광객에게 팔 생각으로 진출한 가이드다. 그들에게 어떤 음식이 가장 호소력 있겠는가. 한국 음식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국이므로 한식이 다른 식종에 비해 우월하다 믿어도 된다는 의미는 절대 아니다. 그저 식종 불문 시장이 황폐한 가운데 더 호소력 있다 믿었으므로 한식에 초점을 맞췄을 뿐이다. 말하자면 정치적 결정이다.
따라서 나는 크게 우려한다. 무엇보다 양식 레스토랑 및 셰프가 이 메시지에 의기소침할 까봐 걱정한다. 다시 한 번, 한식이 우월하기 때문에 선택하지 않았다. 이 환경에서 한식이 한국의 음식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식문화 발전에 넘어야 할 고개가 많지만, 그 과업 모두가 양식 셰프나 레스토랑의 몫은 아니다. 반대로 나는 미쉐린의 선택을 오해해 한식의 발전에 나쁜 영향을 미칠까봐 우려한다. 여전히 한식의 문법을 개념적으로 이해한 뒤 복제 이상의 수정이나 발전을 시도하는 셰프가 드물다. 라연과 권숙수가 그나마 앞서갈 뿐이다. 한식은 전혀 우월하지 않다.
3. (비)정치적 선택과 대담한 결정
리스트를 보면 선택의 영향을 최대한 고려는 했지만 완전히 휩쓸리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가장 충격적인 선택인 피에르 가니에르 하나만 봐도 알 수 있다. 예전 글에서 언급했듯, 개장 직후 짧은 기간 이후 나는 그들의 음식을 믿지 않았다. 하지만 서울 최초의 미쉐린 가이드 출범에서 유일한 프랑스 셀리브리티 셰프인 그의 레스토랑에 별 세 개를 주지 않을 수 없다고 믿었다. 하지만 나는 틀렸다. 그래도 고작 두 개를 주었으니까. 맥락을 감안하면 세 개 아니면 의미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별 한 개 받은 레스토랑 가운데 두 삼각편대가 시사하는 바에 주목한다. 정식당–밍글스–스와니예와 리스토란테 에오–보트르 메종–라미티에의 두 무리다. 통틀어 음식에 큰 믿음이 없지만, 맥락을 감안할 때 별을 받을만한 운명이고, 그에 대해 딱히 반감은 없다. 특히 소위 떠오르는, “모던” 한식의 앞 그룹이 별을 받아야 할 정치적 필요도 분명 있다고 본다. 따라서 한 개가 적절하다. 주되 엄청난 의미로 곱씹을 필요는 없는 별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밍글스가 별 한 개를 받았다는 사실에 거의 실망할 뻔 했다. 더 받아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올해 봄 밍글스 리뷰로 인해 받은 온갖 모욕, “세계적인 레스토랑을 비판했다”는 모욕이 별 한 개로는 도저히 정당화 되지 않는다. “루저” 운운도 마찬가지. 심지어 멘토 역할을 해 온가까운 이와 밍글스의 평가를 놓고 논쟁을 벌인 나머지 연락을 하지 않는 소동까지 겪은 대가로는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콘셉트부터 모든 것에서 ‘프로젝트 미쉐린’ 티를 줄줄 내고도 별 한 개, 하지만 권숙수와 비교하면 나머지 세 레스토랑와 수준 차이는 분명히 난다. 가이드가 맞게 보았다.
반면 뒤의 무리에 대해서는 좀 더 회의적이다. 리스토란테 에오는 한때 아름답게 현대화된 이탈리아 음식을 냈지만 이미 과거지사일 뿐이다. 그리고 나머지 둘은 더 나쁘다. 희석된 서양 음식을 내고 에오보다 수준이 훨씬 떨어진다. 하지만 한국의 말도 안되는, 유행이 죽 끓듯 변덕스런 상황에서 오래 버텼으니 그걸 고려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았다. 특히 비슷한 연령대의 셰프가 운영하지만 더 수준이 낮은 라사브어가 별을 못 받았음을 감안하면 더더욱 그렇다.
(2편에서 계속)
그 “217개”가 도쿄에만 해당하는 것이었군요. 실로 놀라운 숫자입니다.
“한국이 일본보다 열등한 건 확실하다.”
그렇죠, 이건 미식에 관심 없는 사람이라도 누구든 알고 있는 사실이죠.
한국에서 한식 요리사로 살기 힘들다는 말씀들 많이 하시던데
정치적인 요소가 다분히 개입되었다 할지라도 가이드 첫 판에 이런 제스처를 써 준 건
잘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남에게 지기 싫어하는 악착같은 민족이니 내년에는 별이 더 많이 늘어 있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