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럼 타워] 안즈-또 한 켜 아래의 형편 없음
12시에 먹었으니 이제 소화는 다 되었을 것이다. 아마도 이 돈까스로부터 취한 마지막 영양분이 글쓰기의 에너지원이리라. 한편 이 현실에 지극한 아이러니를 느낀다. 이렇게 맛없는 음식을 먹고 취한 에너지로 맛없음에 대해 쓰다니. 한편 인터넷 시대의 장점이라는 생각도 든다. 음식의 영향이 채 사라지기 전에 글을 써 올릴 수 있다니, 나름 재미있는 일 아닌가. 하필 맛없음에 대해 (또!) 써야 한다니 슬프지만.
하지만 한편으로는 전혀 슬프지 않다. 어디 하루이틀 일인가. 나는 참으로 덤덤하다. 다만 늘 말해왔던 것처럼 이제 맛없음의 끝을 보았다고 철썩같이 믿을 때, 맛없음은 그럴리가 없다며 한 켜 아래 나락으로 향하는 문을 연다. 이 돈까스가 바로 그런 역할을 맡는다. 무엇보다 가격과 완성도의 불일치가 단연 ‘역대급’이다.
물론 초행은 아니다. 예전에도 안즈에서 무엇인가를 한 번 먹었는데, 이다지도 처참한 수준은 아니었다. 사진의 돈까스는 29,000원인데, 이미 등장하는 순간 튀김옷의 껍질과 고기가 분리되어 있었다. 또한 튀김옷이 눅눅하다가 못해 축축해서 바삭함과는 서울과 OO(원하는 도시의 이름을 넣으시오)의 미슐랭 원스타 식당 만큼 거리가 있었다. 젓가락으로 집어 들면 축축 처지며 떨어지는 껍데기를 한눈으로 힐끗힐끗 내려다 보며 나는 지인과 환담을 나누었다. 반가운 사람이 아니었다면 아마 나는 점심 손님 가득 들어찬 음식점의 상황을 아랑곳하지 않고 강력하게 항의했을지도 모르겠다. 설상가상으로 내 앞에 놓인 밥그릇은 이가 빠져 있었다. 최근 도쿄에서 먹은 750엔짜리 돈까스의 수준이 이것보다 나았다. 그리고 튀김 상태로만 보자면 심지어 어느 대학교 앞에서 먹은 6,000원 짜리보다 나빴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듯한 형편 없음에 나는 깊은 좌절과 슬픔을 느낀다.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가 절실하다. 이 돈까스엔 그런 게 튀김옷 부스러기 만큼도 없었다.
마감 등 각종 일로 난 오늘 블로그질을 할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이렇게 형편 없는 돈까스를 먹고 나니, 그 돈까스의 에너지가 사라지기 전에 글을 써야 되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점심을 먹은 뒤 지금까지 한편으로는 이 돈까스를, 다른 한편으로는 누군가 자꾸 들이미는 다양성에 대해 곱씹었다. 모든 다름을 다양성의 이름 아래 아우를 수 있을까? 모든 다름이 과연 다름일까, 아니면 사실은 우열일까? 사실은 우열이 맞는데 인정할 수 없으므로 다양하다 퉁치려 드는 것일까? 다양함은 혹시 우열 구분이 불가능한 이들을 위한 정당화 수단은 아닐까? 그렇다면 대체 무엇을 그렇게 애타게 정당화하고 싶은 것일까?
정말 최악이군요
매번 글솜씨에 감탄합니다.
올초였던가 갔었을 때 너무 형편없어서 충격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최근 그랑서울에서
한화호텔이 운영하는 중식당 티원 탕수육을 먹고 난 뒤의 느낌과 비슷하군요.
29,000 원짜리 탕수육에 육즙이 하나도 없어서 놀랐지요.
서울 외식업체들이 돈값 못하는 건 고질병인 듯 하구요.
엊그제 발표된 미쉐린 가이드의 서울판도 지뢰를 피하는 용도로 활용하라는 거지
맛있는 집과는 거리가 멀다고 인식하고 있습니다.
한 4년전쯤 갔을땐 맛있게 먹어서 아직도 안즈하면 괜찮은 돈까스집이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정말 형편없어졌네요. 그때도 가격은 비싸다 생각했는데.. 저런 음식이 29000원이라니..
안망하는게 이상할 정도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