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창전동] 버터밀크-‘빠른 주문’ 음식의 시스템
팬케이크를 한국에서 돈 주고 사먹어본 기억이 없다. 버터밀크에 가기 전까지는 말이다. 트위터에서 자리 논란-4인 손님을 받지 않는다고 돌려보낸-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니 궁금해졌다. 대체 어떤 곳이기에. 분위기 같은 것보다 ‘세팅’이 궁금했다. 팬케이크를 비롯한 브런치 메뉴는 기본적으로 빠른 주문(quick order) 요리다. 재료가 간단하고 준비 시간도 적게 걸리므로 잘 달궈 놓은 번철만 있다면 몇 분이면 내올 수 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버터밀크는 그런 상황이 아닌 것 같았고, 인과관계를 체험해보고 싶었다.
이도저도 아닌, 어중간한 시간대에 갔다. 손님이 많지 않는 시각 말이다. 오후 네 시 조금 못 됐었고, 한두팀 정도 이미 기다리고 있었다. 평소엔 그러지 않지만 관련 있다고 생각했으므로 시간을 재보았다. 입장까지 18분이 걸렸다. 아닌게 아니라 내부가 진짜 좁았다. 세어본 기억으로는 12석? 굳이 동의하지 않지만 4인 손님을 안 받겠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이상하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리코타치즈 팬케이크 세트(8,800원)에 소시지추가(2,000원)을 주문했다.
그리고 다시 시간을 재보았다. 20분만에 팬케이크가 나왔다. 이만하면 괜찮은 건가. 일반적인 음식을 일반적인 상황에 먹는다면 그럴 수 있고, 배가 고픈 가운데 펜케이크의 본성을 기대한 상황이라면 아닐 수 있다. 음식이 나오는 사이 자연스레 주방을 보았다. 세 사람이 각각 접객(과 음료), 차가운 음식, 뜨거운 음식(팬케이크 포함)을 맡는다. 화력의 원천은 번철 아닌 주방용 스토브였고, 거기에 팬케이크 크기에 딱 맞는 드 부이에(본 게 맞다면) 무쇠팬을 올려 팬케이크를 굽고 있었다. 말하자면 한 사람이 팬케이크를 전담해서 한 번에 한 장씩 굽는 시스템이었다. 시간이 오래 걸릴 수 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번철을 쓰지 않는 이유가 궁금했다. 추구한다면야 무한한 가능성이 있겠지만, 팬케이크는 굳이 예쁠 필요가 없는 음식이다. 빨리 앉아 빨리 먹고 가는 만만한 음식의 콘셉트에 충실하다면 그렇다. 게다가 숙달된 조리사라면 굳이 못나게 부칠 이유도 없다. 묽기보다 된 편에 속하는 반죽(batter)을 번철 같은 열원에 정량 올리면 빠르게 표면이 익어 모양이 잡힌다. 줄줄 흐르지 않으므로 크게 어렵지 않다는 말이다. 그래서 열원을 최대한 많이 확보하는 번철이 빠르고 효율적인 조리에 훨씬 유리하다.
그런데 왜 쓰지 않는 걸까. 추측을 해보았다. 첫째, 그나마 가장 설득력 있는 건 가게의 온도다. 12석 정도 간신히 넣을 만큼 공간이 좁고, 그만큼의 2/3가 주방이다. 좁은 공간에 번철처럼 지속적으로 달궈진 열원이 있다면 온도가 굉장히 올라갈 수 있다. 지금처럼 미칠듯 더운 상황도 아닌 6월에 갔는데 이미 더위의 실마리를 먹는 동안 조금 느낄 수 있었다.
둘째, 그와 별도로 시스템이 가정 조리사의 그것에서 확장한 게 이유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이건 열원보다도 더 순전한 추측(pure speculation)에 가깝다. 열원과 근처 작업대에 복잡하게 늘어선 양념통이나 열려있기 때문에 보이는 사람의 움직임을 근거로 삼는다. 말하자면 두 번째 원인과 온도에 대한 고려보다 현재의 비효율적일 수 밖에 없는 시스템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그래서 팬케이크는 어땠을까. 그것만 놓고 본다면 맛있었다. 아직도 코티지 치즈 때문인지 살짝 설익었기 때문인지 헤아리기가 다소 어려웠지만, 나이프에 전혀 저항하지 않을 정도로 부드럽고도 촉촉했다. 한두 장 더 먹었다면 확실히 파악할 수 있겠지만, 이런 시스템이라면 추가 주문-SNS에서 듣기로는 손님 많은 시간대에는 한 장에 20분 씩도 걸린다고-이 불가능하므로 더 이상 생각하지 않았다.
한편 그런 측면에서 팬케이크 외의 구성은 전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자발적으로 추가한 소시지를 제외하면 완성도를 따지기 이전에 먹으나마나한 요소다. 팬케이크와 수준 차이도 꽤 나는지라 모두 빼고 차라리 팬케이크를 네 장씩 쌓아 시럽 듬뿍 뿌려 먹으면 더 만족스러울 수 있겠지만, 그럼 1인당 부쳐 내야하는 팬케이크의 수가 최소한 두 배로 늘어나므로 이 가게의 현재 시스템으로는 소화할 수 없을 것이다. 결국 이 모두를 감안하면 이 구성마저 의도적인 건 아니냐는 말이다.
이를 감안할때, 좀 더 가지를 쳐 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 요소가 있었는데 바로 커피다. 각 주문마다 드립을 내려 주는데 드는 품에 비해 맛이 없다. 브런치 카페의 커피가 굳이 1인 드립이어야 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 역시 콘셉트-빠른 주문-에 충실하자면 웬만한 드리퍼에 카라페째 내려놓고 내도 큰 문제 없지 않을까. 한정된 공간과 인적자원으로 운영되는 곳이라면 신경 쓸 요소가 한 가지 줄어드는 것만으로도 다른 꼭 필요한 것-예를 들자면 접객-들이 훨씬 더 원활하게 돌아갈 수 있다.
마지막으로, 브런치라는 장르에 대한 거품은 대체 언제 꺼질지 궁금하다. 팬케이크가 낯선 음식인가? 초등도 아니고 국민학교 다니던 시절부터 인스턴트 믹스를 살 수 있었던 현실을 생각한다면 전혀 그렇다고 볼 수가 없다. 그러나 왜 브런치를 파는 음식점에는 사람이 몰릴까? 또한 그렇게 인기를 누리는데 비해 왜 저변은 넓어지지 않을까? 세상에 줄 서서 먹을 음식이 없다고 믿지만, 그 가운데서도 가장 의미가 없는 게 바로 이런 빠른 주문 음식점일 것이다.
평가가 재밌네요^^ 달랑 글 몇 개 읽었을 뿐이지만 전반적인 철학이 저와 비슷하신 것 같습니다.
배우고 갑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