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수동] 탄탄면공방-괜찮은 그릇과 부족한 선택
‘우리 입맛에 맞추었다’는 문구를 볼 때마다 당연한 얘기지만 1. 방법론, 2. 효과에 주목한다. 홍대-상수에 각각 매장이 하나씩 있는 탄탄면공방에서도 그런 문구를 보았다. 정확히 무엇을 우리 입맛에 맞춘 건지 궁금하다. 일단 기본이 나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국물-베이스가 터질듯한 공업의 맛을 품고 있지는 않았다는 말이다. 아주 살짝 더 익혀 나왔다는 느낌이었지만 면도 괜찮았다. 국물에서는 역시 땅콩버터가 핵심이다. 레시피를 찾아보니 대부분이 참깨나 그 페이스트를 기본으로 쓰고 종종 땅콩버터를 쓰는 것들이 보인다. 이 둘의 차이는 무엇일까? 맛을 따진다면 난 깨쪽에 한 표 던진다. 물론 가격도 더 비싸다. 이렇게 따져보면 원래 깨를 쓰고 땅콩버터가 그 대안은 아닐까 추측하게 된다.아니면 현대화의 징조라고도 볼 수 있다.
어쨌든, 기성품 땅콩버터에는 기본적으로 단맛이 딸려 온다. 물론 깨를 쓰더라도 국물에 설탕을 더했을 가능성은 매우 높다. 이런 국물이라면 기본 탄탄면에는 괜찮을 수 있지만 내가 먹은 해탄면(7,000원)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오징어 다리 쪼가리와 냉동 홍합이 전부인 해물 볶음 고명의 비린내가 단맛을 만나 증폭되기 때문이다. 볶은김치가 느끼함 잘라주는 역할을 맡아야 되지만 그마저 달아서 오히려 역효과를 낸다. 그래서 고명을 좀 더 살펴보자면, 선택의 여지가 전혀 없는 것이 조금 놀라웠다. 고기는 물론, 기본으로 딸려 나오는 계란조차도 추가 주문이 불가능하다. 대신 카레와 가라아게, 춘권, 물만두의 사이드 메뉴가 있는데 라면집의 정체성에는 모두 보탬이 안된다. 그나마 내가 먹을 때는 튀김, 즉 가라아게와 춘권은 안된다고 했다. 꿩 대신 닭으로 물만두를 시켰는데, 전혀 의미가 없었다. 일단 거의 어느 곳에서나 먹을 수 있는, 공장-수제 구분 안 가는 들척지근한 맛인데다가, 소세지처럼 대강 만들어 툭툭 자른 감자전분 피는 생산의 이점을 노린 것이라고 밖에 안 보였다. 생파채 또한 부피가 커 보이기 위한 것일 뿐, 맛에는 전혀 보탬이 되지 않고 또 질기다. 차라리 식초-간장 바탕 양념 같은데 살짝 버무리기라도 했으면 나을 것이다. 3,000 원짜리라는 건 아는데 아예 안 하는 것이 나아보인다. 이것저것 다 빼면 최후의 선택지는 1,000 원짜리 공깃밥인데, 그건 너무 허무하다.
음식 전체의 맛에는 어떤 경우에도 전혀 도움이 안된다고 믿는 생 청양고추를 국물에서 씹고는, 이런 것이 우리 입맛 맞추기라면 의미 없다고 생각했다. 계란도 그렇다. 일본풍 라멘에 나오는 것이라고 보기에는 좀 많이 익혔다. 이런 계란이 과연 한국풍 라면의 고명일까? 차라리 분식집에서 대량 개별 조리를 위해 한꺼번에 풀어 놓았다가 더해 적당히 익혀 내는 게 더 한국풍일 것이다. 하지만 같은 국물에 고명만 바꿔 내는 식으로 품목을 다양화하니 그런 방법은 번거로워서 안 쓸 것이다. 그럼 저온조리로 63도 계란 같은 걸 준비했다가 식탁에서 손님이 깨어 더하는 방식은 도입할 수 없을까? 순두부에 딸려 나오는 날계란과 비슷하면서도 미리 익히기 때문에 뚝배기에 펄펄 끓여 나오는 국물이 아니더라도 잘 조화되는 한편 부드럽다. 땅콩버터로 진하고 부드럽게 낸 국물이라면 이 정도로 삶은 계란은 전체를 부드럽게 먹는데 조화스럽지 않다. 그리고 너무 작다. 초란이니 새벽란 등등이라는 명목으로 50g 초반은 물론 그보다 훨씬 밑도는 걸 버젓이 파는데, 난 상품으로서 가치가 없다고 본다. 이 계란도 마찬가지. 초란이나 새벽란일 가능성은 낮으니 그냥 56g짜리보다 싼 것으로 본다. 6,000원에 맞추려는 시도일 수 있고 그걸 감안하면 나쁘다고 할 수 없겠지만 차라리 추가금을 내고 좀 더 나은 선택을 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그릇. 국물을 들고 마시려 든다면 확실히 불편하다. 하지만 이 국물은 여러모로 보아 들고 다 마실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감안하면 좋다. 국물이 잘 식지 않고 면을 건져 먹기에도 편하다. 정식당에서도 이렇게 생긴 그릇을 리조토, 수프 등을 내는데 오래전부터 써왔다. ‘굳즈’로 판다면 사고 싶을 정도인데, 다만 그릇이 보여주는 디테일을 음식에서도 볼 수 있는 것 같지 않다.
사족 1: 쿠자쿠에서도 그렇고, 한국에서 라멘을 먹으면 국물의 온도가 일정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위에서는 미지근해서 젓가락으로 훑어야 그제서야 맞는데, 과연 이건 개선이 불가능한 것일까? 삶아 한 번 헹군 면을 담고 국물을 부어서 그런 모양인데…
사족 2: 일곱시 경에 찾았는데 그 시간에 직원도 저녁 식사를 하면 요청이 굉장히 어려워진다.
아래 사족과 관련해서, 제가 다니는 라멘집에서는 국물을 그릇에 부은 후에 삶은 면을 넣고 조리용 젓가락으로 섞어서 내어 주던걸로 기억합니다.
면이 먼저였는지 국물이 먼저였는지 지금 좀 자신 없긴 하네요.
암튼 저렇게 한 번 섞은 후에 토핑 얹어서 내주는 라멘집도 있습니다.
이렇게 하면 좀 나을까요?
여러 글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 재미있을 뿐만 아니라 배울 점이 굉장히 많아 좋아요. 다만 한식에서의 복합적인 맛에는 약간 적대적이시군요. critic포스트이니 어쩔 수 없겠지만 취향이 다른 맛이 나쁜 맛이라는게 아니라는걸 아실거라 믿습니다.
이번 포스트에서 말씀하신 생 청양고추같은 경우도 제대로 만든 감자전에 미량 올리면 맛이 대단하니까요.
여태까지 봤는데 얼마 못읽었네요.
한식을 너무 양식, 특히 프랑스식으로 이해하시는게 아닌가 우려되는군요.
다른 부류에 대해서는 기법이나 재료 선정을 비판하는 반면
탁한 국물류의 음식에는 음식 자체를 부정적으로 생각하시는것 같습니다.
우선 한국에서 국물이란 부족한 재료를 늘리기 위해 나온 부류가 아닙니다.
고기를 제외하고도 국으로 먹는 재료는 상당히 많은데
조선시대 사람들은 서양 어느나라보다도 잘 먹으면 잘 먹었지 못먹지 않았습니다.
특히 양적으로 따진다면 어마어마하게 먹는게 가능했습니다.
밥만 400g정도로 기억하는데요.
최소한 동아시아에서라면, 국물의 목적이 “원래는 존재하지 않는 맛으로 합친다”가 더 옳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냉면 고기 국물을 우려낼 때 쓰는 비합리성에 대해서는 매우 관심 깊게 봤습니다.
제가 무조건 옳다는건 아니지만 냉면 육수의 맛은 고기의 향을 중심으로 오이와 배의 맛이 더해져야합니다.
이 두 재료는 시원할 때 맛이 살아납니다.
오이나 배의 즙이 나와서 청량함이 나와야 하는데 지금은 대부분이 고명으로만 사용할 뿐입니다.
상당한 시간동안 우려내 지방이 적은 쇠고기의 부족한 감칠맛을 보충하는게 필요한데
만드시는 분들은 이것들이 왜 냉면 고명인지 관심이 별로 없을 것입니다.
양념이 재료의 맛을 덮는다 하셨으나 이것은 한식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 조리하시는 분들의 문제입니다.
양념은 가볍지 않아야 하지만 대신 모든 재료가 살아야 한식입니다.
가장 강렬한 맛의 청국장을 끓여도 가장 맛이 희미한 두부는 마지막에 넣어 두부를 보호해줍니다.
채소를 쌈장에 찍어먹는 것도 같습니다.
채소의 맛을 느끼려고 먹는 것이 아니라 장이 찍힌 채소를 먹는 것이지요.
지금처럼 설탕과 초고추장에 참기름을 엄청나게 쏟은게 한식이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재료가 같다고 한식이 아니니까요.
제가 먹어보지 않은게 한식이 아니라는건 아닙니다.
하지만 제가 그렇듯 주인장님이 드신 한식이 한식이었다고 확신하실 수 있는지요?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는 분들의 댓글 속에서, 화이팅을 외쳐드립니다.
쩝..이거 전엔 두명밖에 없었으니 복수형이면 저도 포함이겠죠? 제 의견이 맞다고 할 수도 없고 맛에 대해 기준이 명확하신 분인 주인장님께 시간낭비일수도 있어 죄송한 마음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틀린 것이 있고 말주변이 없다고 해서 주인장님께 말씀드려야 할 게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제 가족 중 특별한 질환때문에 먹을 것을 가려야 하는 사람이 있는 이유로 냉면 육수같은 국물과 관련해서는 상당히 많은 방법을 시도해봤습니다. 양지가 지방이 얼마나 많은지 모르겠지만 일단 주인장님이 말씀하신것처럼 고기 양이 많고 잘 끓여서 맛있습니다. 고기 양이 국물의 1/3정도가 되면 차가운 상태에서도 맛있습니다.
그런데 냉면으로 먹을 때는 오히려 방해되더군요. 그릇당 500cc정도 되는데 먹기가 좀 힘듧니다. 이건 결코 따지자는게 아니라 그랬다는 말입니다. 면발과 먹을 때는 이상하게 방해되고 음식에 집중이 안되어서 짜증이 납니다.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그렇다고 주인장님이 틀렸느냐 하면 그것도 아닙니다. 그 국물은 말씀대로 보통 냉면 육수랑은 비교할 대상이 아닐 정도로 맛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보통의 밋밋한 냉면육수보다 맛이 없더란겁니다. 냉면이라는 틀에 길들여져서는 아닙니다. 파는 냉면은 고깃물의 맛이 나는 집이 거의 없어서 잘 안먹습니다.
저는 주인장님의 글들을 처음 접했을 때 너무 좋아서 6시간 내리 읽었습니다. 저 위에 글 붙은거 보시면 알겠지만. 내용을 좋아하지도 않고, 동의하는 바가 없거나 부족하다면 처음부터 6시간이나 정독하고 댓글을 남기지도 않을 것입니다.
뭐 제가 저 위에 쓴 글들이야 졸려서 머리가 안돌아갈 때 남긴거니 지금 봐도 그냥 지워버리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주인장님이 간단하게라도 답글을 달아주신다면 고깃국물과 냉면에 대해서는 피드백 좀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제 집에서는 한달에 두세번씩 양지로 국물을 많이 내니까요. 그래서 얼굴팔리건 말건 냉면 좀 더 맛있게 먹고 싶습니다.
앞으로 멘션은 더 안하겠지만 포스트 계속 보겠습니다. 그리고 주인장님께서 좀 더 양질의 식탁에 앉으실 수 있길 바랍니다.
먼저, 관심 가져주신데 감사드린다는 말씀부터 드립니다.
말씀하신 청양고추에 대해 간단히 답합니다. 1980년대 중반에 개발된 품종과 그 수준의 매운맛이 대체 언제부터 “한국의 맛” 대접을 받는 것인지 전 수긍하기 어렵습니다만, 그 맛을 진정 좋아한다면 좀 더 적극적으로 조리에 대해 생각해볼 일입니다. 그저 썰어 국물에 섞거나 음식에 얹는 정도라면 안일하다는 말씀입니다. 저는 전혀 좋아하지 않습니다만 여러 가능성을 생각합니다. 일단 토치에 지져 셀로판질 껍질을 벗겨 낸 다음, 갈라 씨 발라내고 부드러운 속살만 씁니다. 말씀하신 감자전이라면 다져 섞어 부쳐도 되고요, 무쳐 먹거나 간장에 섞어 찍어 먹어도 됩니다. 더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방법이 많은데 가장 간편한 방법을 적용하고는 그 수준의 차이를 취향의 문제로 돌립니다. 아직 갈 길이 먼데 나쁜 습관을 전통이라 정당화하는 현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