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적인 무맛의 삿갓유통 “유럽 토마토”
오픈마켓이든 SNS든, 존재를 아는 대로 생산자 직판 과일을 사먹어 본다. 인터넷과 전국 1일 생활권이 가능해진 택배가 한데 만나면, 이것이 결국 한국에서 실현 및 지속 가능한 farmer’s market이라 생각한다. 치즈, 요거트, 사과, 복숭아 등등, 이런저런 걸 사먹어 보았지만 여태껏 만족스러웠던 건 대구 근교에서 올라오는 홍옥 밖에 없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유는 간단하다. 나머지는 대부분 귀농 등등 비교적 최근에 농사를 시작한 이들의 산물이었고, 사과만 아니었다. 홈페이지에서 약력까지는 소개하지 않기 때문에 파악이 불가능하지만, 삿갓유통의 유럽토마토도 어쨌든 맛을 놓고 보면 철저한 실패다.
사실 토마토는 거의 포기한 채로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분명 많이 먹는 채소임에도 불구하고 맛있는 걸 찾을 수 없다. 맛있는 토마토라는 건 과연 뭘까. 쓴맛을 빼놓고 짠맛, 단맛, 신맛, 감칠맛을 골고루 품고 있어야 맛있는 토마토다. 한국에는 그런 토마토가 없다. 대부분 신맛이 너무 강하고, 소수는 단맛이 너무 강하다. 다른 맛이 체면치레라도 존재하는 경우가 드물다. 향도 없는 편. 또한 질감도 유쾌하지 않다. 토마토라는 채소가 전 세계적으로 유통 및 판매 과정에서 파손을 막기 위해 일찍 따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단단한 것은 물론, 껍질도 굉장히 질기다. 한술 더 떠, 백화점에서는 이런 토마토를 냉장보관해서 판다. 과육이 꺼끌꺼끌해지기 때문에 토마토는 냉장보관해서는 안되는 채소다. 이 모든 걸 감안하면, 한국의 토마토는 진정 절망적이다.
그래서 이 유럽 토마토라는 것에도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다만 ‘신맛이 강하지 않은 유럽풍’이라는 게 무엇인지는 알고 싶었다. 3kg에 18,900원짜리 토마토가 주문 다음 날, 바로 사진의 저런 상태로 왔다. 아무런 완충장치도 없이 그냥 적당한 상자에 담았다. 그래도 멍 하나 안 든 건 한편 신기했고 또 다른 한 편 불길했다. 이 토마토가 익는 조짐이라도 보인다면 이렇게 멀쩡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자, 그래서 맛. 아무 맛도 나지 않는다. 흔한 토마토의 흔한 신맛마저 빠지니, 이 토마토는 토마토라고 부를 수 없을 정도로 닝닝하다. 덜 익은 것도 원인이겠지만, 즙도 거의 없고 질감은 버석거린다. 샐러드를 만들까 소금에 절였더니 물기가 거의 나오지 않는다. 길거리 트럭에서 아무렇게나 파는 찰토마토도 이보다는 맛있다. 며칠 두면 좀 나아질까? 덩굴에서 떨어진 토마토는 그걸로 끝이다. 어느 정도 익을 수는 있겠지만 극적으로 맛이 나아지지는 않다. 이 토마토는 아마 이 맛 그대로 물러버릴 것이다.
나는 요즘 이런 패턴을 눈여겨보고 있다. 젊은 농부가 있다. 귀농을 했다면 금상첨화다. SNS나 깔끔하게 만든 홈페이지를 통해 자신의 농장과 농작물을 홍보하고 예약제 등을 통한 직거래, 프리미엄 농수산물만을 취급한다는 중개업체를 통해 시중의 물건보다 비싼 가격을 붙여 판다. 때로 포장도 정성스럽고 깔끔하다(이 경우는 예외지만. 부끄럽지도 않나? 진짜 프리미엄 제품이라면 이런 식으로 대강 포장해 보내서는 안된다). 심지어 보기에는 굉장히 좋아보이기까지 한다. 하지만 입에 넣는 순간 모든 기대가 와르르 무너진다. 맛이 없다. 지식과 기술이 한데 만났을때 맛볼 수 있는 풍부하고 다양한 표정이 없고 밋밋하다. 소규모 생산자를 위한 틈새는 분명히 존재하지만 내는 제품은 그걸 만족시켜주지 못한다. 한마디로 높게 책정하는 가격이나 통상적이지 않은 주문 방식을 정당화하는 만큼의 품질을 제공하지 못한다. 겹겹이 둘러치는 스토리텔링의 발끝에도 못 미치는 수준의 맛에 실망한다. 토마토가 맛없어지는 세계적인 추세를 감안하더라도 이건 절망적이다. 그런 맛없음의 틈새에서 높은 가격을 정당화하는 제품이 분명히 존재하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은 거기에 속하기는커녕, 말했듯 길거리에서 대강 살 수 있는 것보다도 수준이 떨어진다. 가격? 올가의 토마토가 1kg에 4,400~5,500원 수준이다. 그것도 맛이 없지만, 이건 더 맛이 없다.
문제는 대체 무엇인가. 늘 언급하고 있다. 생산자가 맛을 모른다. 하지만 이건 생산자 혼자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 토마토라면 이제 더 이상 그 자체만 생으로 먹는 수요가 발생하는 채소가 아니다. 다른 재료와 함께 먹는 샐러드라던가, 좀 더 적극적으로 익히는 스튜나 소스도 있다. 모든 용도를 만족시키는 제품이란 이토록 복잡한 현대에선 거의 존재하지 않으니, 정확한 목표를 잡고 집중 공략해야 한다. 그걸 누가 도와줄 것인가. 저런 식으로 위탁 판매를 통해 수익을 얻는다면 판매자가 도와줄 것인가? 아니면 ‘음식의 맛은 재료가 결정한다’는, 물정 모르는 재료 본위주의자들이 도와줄 것인가? 고급 농수산물이 직거래로 레스토랑에 소비되는 경우라면 대개 생산자-요리사의 끈끈한 관계가 각자의 과업을 더 잘 이뤄내는데 도움을 준다. 한국에서는 누가 그런 역할을 맡을 것인가. 음식이 대유행이라는데, 모두가 음식에 관심을 가진다는데 바다 건너 온 깡통 토마토 국물보다 맛이 1/10도 없는 토마토가 프리미엄 제품인양 딱지 붙어 팔리는 이 현실 대체 어쩔건가. 가격이 올라가고, 친환경이니 뭐니 생산환경이 좋아지면 맛도 좋아져야 하는 것 아닌가. 왜 맛만 늘 그대로, 아니면 더 나빠지는가.
선명한 맛의 토마토를 찾으신다면 대저 ‘짭짤이’ 토마토를 추천 드립니다. 단점이라면 일단 가격(KG 당 5천원~1만원)을 꼽을 수 있겠지만 한정된 계절 또한 아쉬운 부분이에요. 보통 초봄에 나온 녀석들의 맛이 가장 좋았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짝퉁’이 많아서 좋은 물건을 알아보고 구매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입니다. 그나마 제가 사는 동네에선 흔히 볼 수가 있어서 하나 먹어보고 맛 없으면 최소량만 사거나 하면 그만인데 택배 거래 같은 걸로는 한계가 있을겁니다. 물론 고질적인 단단한 껍질의 문제점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날이 선 짠맛 뒤로 느껴지는 단맛이 정말 좋더라구요.
너무나도 공감 하는바입니다. 10년전만해도 길거리 아무 토마도나 대충사서 먹어도 실패할 확률이 적었는데 요새는 아무리 세심하게 골라보려고해도 번번히 실패하고마는 무맛의 시대네요.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토마토 뿐만이 아니라 요새 거의 웬만한 과일들도 다 그러더군요.
엄청 비싸게 파는데 먹어보니 절대 사지 말았어야할 자두라던지 하는 것들이 수두룩 빽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