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수동] 챠오-3개월만의 재방문
을밀대의 냉면을 먹고 그날, 새벽까지 잠을 못 이뤘다. 머리가 복잡했다. 굳이 표현하자면 그 냉면국물 같달까. 다만 나는 내 머릿속이 복잡하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냉면국물은 어떠한가. 만드는 사람들은 알고 있을까? 먹는 사람들은? 이것이야 말로 수동적 공격성(passive-aggressiveness)가 맛으로 구현된 예가 아닐까? 그날 한 끼 반 정도를 먹었는데, 배고픈 줄도 모르고 새벽까지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그리고 다음날 저녁, 상수동의 트라토리아 차오에 갔다. 3월의 그곳 말이다. 정확하게 가야 되겠다는 생각보다, 부정적인 의미에서 ‘아닌 듯 그런’ 맛의 음식-결국 양념 위주의 한식-을 먹고 싶지 않았다. 복기해보자. 3월에 나는 이곳 음식의 간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정확하게 셰프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이번엔 어땠을까. 한마디로 말해 내가 이상적이라 생각하는 서양 음식의 간에 근접했는데, 조금 힘이 들어간 듯 보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것의 90%가 셰프가 원하는 맛 아닐까’라고 생각했다.
시저샐러드의 드레싱에선 마늘맛이 좀 튀었는데, 이것은 레시피의 문제라기보다 마늘 자체의 문제로 보였다. 원래 안초비와 생마늘을 쓰는데, 안초비도 그렇지만 의외로 맛있는 마늘을 찾기가 힘들다. 쓰고 아린 경우가 많고, 이 드레싱의 것도 다소 그러했다. 한편 트라토리아라는 형식과 이곳의 콘셉트를 감안할때 계란에 생기가 하나도 없는 것이 아쉬웠다. 흰자가 너무 퍼진데다가 바로 부쳐내지 않은 듯한 느낌. ‘업소’에선 이렇게 수동적으로 조리한 계란을 내는데, 안전한 조리를 위해 맛을 포기하는 격이다. 삼겹살이나 스테이크 지져 내는 걸 감안하면 너무 소심하다. 나쁜 습관인걸까. 미리 준비해야 한다면 차라리 수란이 나아 보이고(마지막에 따뜻한 물로 데워 낸다), 아니라면 아예 중국집 계란처럼 박력있게 겉만 튀겨 내는 것도 좋겠다. 바삭해진 흰자, 흘러내려 자연스레 소스의 일부가 되는 노른자는 이곳의 콘셉트와도 맞아 보인다. 사실 프랑스 요리책에도 이런 식으로 튀기는 계란이 등장하니, 양식에서 못 쓸 이유는 없다. 계란이 뜨거우면 드레싱이 분리되거나 상추의 숨이 죽지 않을까, 잠깐 생각해보았는데 삼겹살 위에 얹어 내면 큰 문제는 없을듯. 바로 그런 매개체로 쓸 수 있는 삼겹살은 조리 등 내온 것 자체로는 아쉬울 게 없었으나, 단가 등 요리 외적의 측면에서는 생각할 여지를 주었다. 괜찮은 가격의 수입산이 있기는 하지만, 애초에 잉여를 소비하기 위해 가공육을 만드는 현실이 아니라면 다른 부위의 가능성도 시험해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다. 이를테면 다릿살이랄까. ‘삼겹’은 아니지만 비계는 고소하고 껍질도 좋다. 다만 정육이 삼겹살보다 훨씬 두꺼운 것이 문제인데… 저온조리로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지금 내오는 것으로 문제 없지만, 만일 서양과 다른 현실로 인해 콘셉트에 충실하기 위해 삼겹살을 이런 식으로 쓰는 것이 단과 관리에 부담이 된다면 대안은 존재할 거라는 말이다. 상추잎은 차곡차곡 쌓지 않고 좀 널어 담는 것도 좋겠다. 접시의 긴 가로축에 30-45도로 각을 주어 비스듬하게, 절반씩 겹치게 담고 삼겹살, 그 위에 계란. 안될까.
카르보나라. 계란이 신선했던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쨌든 소스가 면을 삶는 솜씨에 비해 조금 처진다. 굳이 바닥에 소스가 남지 않고 면에 완전히 감기는 게 좋다. 계란을 쓰는 진짜 카르보나라가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다. 갓 삶아낸 면의 온도만으로 계란을 익히지만 멍울지거나 질척해서도 안된다. 잘 삶은 면-5-10% 딱딱했다고는 생각하지만-에 소스가 조금 더 달라붙어야 한다. 한편 통으로 익힌 마늘도 올랐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시저샐러드와 마찬가지 이유로 마늘도 섬세하게 익혀야 한다. 조금만 선을 넘어도 쓰거나 진득해진다. 돼지기름이 계속 나오는 주방이라면 그 기름에 콩피를 해서 기름과 마늘을 모두 쓸 수 있는 여건이면 좋을 것이다.
스테이크. 가격 등등을 감안할때 딱히 불평할 거리는 없고(조금 더 익혔다고는 생각하지만), 다만 곁들여 내는 것들의 선택이 다소 수동적이다. 사워크림은 한국에 유통되는 걸 감안-절반이 (맛없는) 요거트-할때 아예 쓸 가치가 없고, 그게 아니라도 스테이크와 어울리는지 모르겠으며, 비싼 잣을 빼 두께가 없는 페스토 또한 맛에 보탬이 되기보다는 체면치레에 가깝다. 매장에 ‘실버스푼’을 펴 놓았던데 그 책만 참고해도 대안은 얼마든지 있을 거라 본다. 그걸 준비하는데 손이 많이 간다면 아예 레몬즙과 소금만 내도 문제가 되리라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손님들은 적응 못할 수 있겠지만.
다음은 술. 페로니 생맥주는 6,000원에 훌륭해서 와인 마시려던 생각을 접었다. 사실 와인의 선택 폭이 너무 좁기도 하다. 아니, 아예 없다고 봐도 될 여건. 스파클링(자르데토 프로세코), 화이트(체사리 소아베 클라시코), 레드(요리요) 단 한 종류씩. 검증 받은, 소위 ‘가격대 성능비’가 좋은 것들이고 소매가와 차이가 없는 건 좋지만 각각 하나인 것과 둘이라도 되는 건 아주 크게 다르다. 물론 이해는 간다. 적당한 이탈리아 와인을 찾는 게 쉽지 않다. 가격, 선호도 등을 감안하면 소위 ‘데일리’급으로 쓸만한 게 잘 안 나온다. 특히 한국에서 좋아하지 않는 맛이라는 이야기를 듣는 화이트는 더하다. 그래서 이런 가격대의 레스토랑이 칠레나 아르헨티나 쪽으로 집중한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없는 것. 디저트와 커피다. 이 또한 0과 1의 차이가 크다. 아예 없는 것보다는 뭐라도 있는 게 낫다는 것. 파나코타에 이탈리아산 비터 오렌지 잼을 한 숟가락 얹어 내도 좋고, 그마저 어렵다면 시판 아마레토 쿠키 같은 것에 누텔라라도 한 숟락 얹어 내야 한다. 커피도 마찬가지. 캡슐 커피만 있어도 없는 것보다 낫다. 근처 커먼 커피 로스터즈 10% 할인 쿠폰을 주니 활용하면 되지만 경험의 완결성이 떨어지는 건 어쨌든 아쉽다.
맛의 구성 또는 조직에 대해서 생각한다. 단순하게 복잡함/단순함이 문제가 아니고, 그걸 쌓아올린 방식이나 논리가 더 중요하다. 상호작용을 이해하지 못하는 요소를 얽어서 이룬 복잡함은 의미가 없다. 정확히 아는 요소를 쌓아서 낸 복잡함이 더 의미 있고, 우리는 그 방법론에 대해서 고민해야 한다. 한식에서 전염병처럼 퍼지는 단맛은 의미 없는 복잡도를 높이는데 쓰인다. 셰프가 원하는 맛을 냈다는 전제 아래, 챠오 같은 곳에서 내는 맛과 을밀대든 뭐든, 평양냉면이든 불고기든 한식이 내는 맛을 비교해볼 필요가 있다. 차이가 있다면 원인은 무엇인가? 이것을 정말 순수하게 상대주의에 입각해 ‘다른 것’이라고 퉁치고 넘어가는 게 한식에 도움이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