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개 답변] 다이닝 인 스페이스
지난 주, 다이닝 인 스페이스의 노진성 셰프가 덧글을 통해 올리브 매거진 창간호 레스토랑 리뷰에 대한 의견을 밝혔습니다. 그 자체로 한편 의미 있다고 생각하며, 또한 그런 기사를 쓰는 한 비슷한 종류의 논쟁은 상존할 것으로 보아 공개적으로 답변합니다. 다이닝 인 스페이스의 리뷰는 여기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노진성 셰프님께,
의견 잘 보았습니다. 미리 말씀드린 대로 지난 주 내내 바빠 답이 좀 늦었습니다.
1. 스테이크 무게에 대해 상상력을 지나치게 발휘해서 죄송합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저의 잘못입니다. 다만, 리뷰를 위한다고 해도 저울이나 온도계 같은 도구를 쓸 수는 없음을 헤아려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또한 본문에서도 밝혔듯, 후하다는 데는 긍정적인 측면도 분명히 있었습니다. 좋은 의미에서 이런 양과 구성의 코스가 얼마나 지속가능한지 의문도 품었습니다. 한마디로 걱정했다는 말씀입니다.
2. 저온(또는 정온) 조리에 대한 의견입니다. 저도 집에서 저온조리를 합니다. 처음 시작했을 때는 호기심이 일어서 손에 잡히는 대로 이것저것 돌려보았습니다. 오징어, 심지어 꽁치 같은 재료도 진공포장해서 돌려 보았는데요, 느린 분해가 과조리의 면에서는 실패를 줄여주지만 그 결과물의 질감에 언제나 만족스럽지는 않다는 결론이었습니다. 분명 단단하거나 뻣뻣하지는 않습니다만, 전통적인 조리방식-생선이라면 특히 구이-에 비해 퍽퍽할 때가 있었다는 말씀입니다. 4년 전인가 스웨덴의 프란첸 린드베리 (레스토랑 프란첸)를 인터뷰할 기회가 있어서 이에 대해 물어보았습니다. ‘저온조리는 재료를 이상한 덩어리(weird mass)로 바꿔 놓지 않는가?’라는 말을 하더군요. 저도 공감했습니다. 다이닝 인 스페이스에서 먹은 농어도 비슷한 느낌이었습니다. 조리가 나빴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저온조리를 썼다고 설명을 들었고 음식도 그렇게 말을 하고 있었습니다만, 그냥 굽는 것보다 낫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모든 조리 상태를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는 수비드의 시대에서 조림/스튜나 구이 같은 조리법이 여전히 사랑받고 있는 이유입니다. 저도 집에서 덩어리 고기를 통째로 굽는다거나 조림을 하면, 저온조리를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오븐에서 지글지글 익힌 고기는 또 다른 맛이고, 그건 저온조리를 통해 얻을 수 없습니다.
덧붙이자면, 저는 저온조리의 의도도 읽습니다. 최근 어딘가에서 점심을 먹었는데요, 도미를 찐 다음 껍질을 지져 냈더군요. 저온조리 만큼은 아니지만 찜도 습열을 통해 온도를 일정하게 통제할 수 있으므로 비슷한 효과를 냅니다. 따라서 과조리되지는 않았지만 이미 생기는 빠졌고, 그만큼 맛은 없었습니다. 생기가 다 빠져나간 맛이랄까요. 이런 조리법을 굳이 쓰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실패의 확률 감소가 아니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한마디로 조리방법은 셰프의 선택입니다만, 이런 경우-흰살생선-에는 딱히 더 낫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본문에서는 언급도 하지 않았고요. 또한 저같은 아마추어 쿡도 집에서 저온조리를 할 수 있는 현실에서 조리방법 자체가 메리트로 작용하지는 않는다는 생각입니다.
3. 제가 생각하는 승화나 초월이란 이런 것입니다. 셰프의 전기는 많이 읽지 않습니다만, 그랜트 아케츠 (알리니아)의 것을 가장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본인의 완벽주의에 토마스 켈러를 끼얹고 구강암 드라마도 한 몫 단단히 거듭니다. 어디 하나 재미없는 구석이 없습니다만, 가장 인상에 남는 건 그의 프렌치 런드리 실습 경험 이야기였습니다. 우리도 곱창집 등등에서 ‘서비스’로 먹는, 하찮은 천엽을 하얗게 될 때까지 닦아서 미슐랭 별 셋 파인 다이닝의 코스로 만든다는 것이죠. 그는 그 과정을 통해 요리의 초월적 가치를 깨달았노라고 말합니다.
그럼, 이러한 승화 또는 초월이 비단 미슐랭 별 단 레스토랑에만 존재하는 걸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모든 요리에는 각자 나름의 그런 측면이 존재합니다. 저는 요즘 종종, 할머니가 만드시던 돼지머리 편육을 생각합니다. 삶아 살을 발라서는 한데 모아 무명천으로 싸서 다듬잇돌로 누릅니다. 명절보다 더 특별한 경우-결혼 등-라면 삶은 계란도 군데군데 넣습니다. 그 결과는 원래 돼지머리와는 영 딴판인, 아름다운 단면 만큼이나 다양한 질감의 별미입니다. 이것도 승화 또는 초월이며, 영국의 퍼거스 헨더슨 등이 말하는 ‘Nose to tail eating’과도 통합니다. 생명을 죽였다면 어느 한 부분 버리지 말자는 철학이죠. 물론 저 천엽을 하얗게 닦는 것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푸아그라 배추말이를 내셨습니다만, 심지어 세계 3대 미식 재료라는 푸아그라조차 토숑을 만들면 한 단계 더 나은 음식이 됩니다. 그 과정에서 실핏줄을 걷어내고 밀도를 재조정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렇기 때문에 저는 푸아그라 같은 재료를 그냥 내는 걸 그다지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건 누구나 할 수 있으니까요.
이렇듯 모든 만들어내는 것에는 내가 의식하든 안하든 승화나 초월의 몫이 존재합니다. 저는 글을 쓰지만 단순히 음절이나 낱말이나 문장의 집합체라고 간주하지 않습니다. 글은 제 생각/시각의 매개체여야만 하고, 이는 글이 음절과 낱말의 결합을 넘어 섰을 때에만 가능합니다. 다시 음식으로 돌아와보면 생각해보면,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재료의 나열=요리’가 아니기 때문이지요. 제가 활어회를 요리라고 생각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저녁 식사로 10만원 지불하면서 지향점은 미슐랭 3스타 수준이 아닌가?’라고 물으셨습니다만, 각각의 음식에는 그에 맞는 철학과 승화 및 초월의 몫이 존재합니다.
덧붙이자면, 말씀하신 생각은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그대로 받아들여 뒤집으면 ‘이건 미슐랭 별 셋이 아니야, 가치가 없지’라고도 치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가격표가 평가의 큰 맥락을 좌지우지하는 것은 사실입니다만, 제가 본문에서 언급한 것처럼 무작정 ‘가격대 성능비’를 따지려 드는 건 위험한 발상입니다. 그 과정에서 음식을 재료의 집합으로 격하시키고 사람을 소외시키기 때문입니다. 저는 분명히 메뉴의 가격보다 다이닝 인 스페이스가 비싼 음식을 낸다고 생각했습니다만, 그것과 상관없이 ‘이 음식에 깃든 셰프의 철학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품었습니다. 그것은 미슐랭 별과 아무런 상관 없는 기준입니다. 셰프님의 철학은 무엇입니까?
4. 다음은 파스타입니다. 저도 쓰기 전에 찾아보았습니다. 다시 한 번 프렌치 런드리를 언급하겠죠. 파스타를 종종 내서, 요리책에도 레시피가 실려 있습니다. 토마스 켈러는 피에몬테에서 머물며 파스타를 배웠다고 들었습니다. 실제로 3년 전 우리나라에 연 갈라 디너에서 아뇨로티가 나왔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컬리나리아, 파씨오네, 물랭에서 각각 라비올리를 먹은 적 있습니다. 모두 프렌치를 표방하는 레스토랑입니다. 물론 파스타라고 해서 그저 단순한 면 종류를 말하지 않는다는 것은 저보다 더 잘 아실 것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파스타를 언급해 제가 말하고 싶은 건 탄수화물의 역할이었습니다. 맨 아래층의 불랑제리에서 올라오는 것이라 추측하는데요, 딱히 인상적인 맛을 지니고 있지 않았습니다. 요즘 빵의 경향이 전반적으로 그래서 (보기에 비해 별 맛을 안 지니고 있는) 딱히 더 큰 불만은 없었습니다만, 구워서 내오는 상태-특히 두 번째-는 확실히 개선이 필요해보였습니다. 또한 아래층에 베이커리가 있어 그곳에서 빵이 나오고 그걸 의무적으로 써야 한다면 그것도 레스토랑에 그다지 긍정적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만약 다른 곳에서 받아오거나 주방에 직접 준비한다고 해도 별개로 긍정적이지는 않고요.
이야기가 나온 김에 코스의 구성에 대해 조금 더 살펴 보겠습니다. 그것이 파스타일 수도 있고, 샐러드 또는 채소 요리 코스일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건 계속 강한 단백질로 몰아 붙이는 것보다 한 박자 쉬어 갈 수 있는 코스가 필요하다는 말씀입니다. 또한 조리의 난이도로 보자면 단백질 덩어리 위주의 요리 한 접시보다는 채소를 주연 삼아 나름의 포만감(satiation)을 주면서 맛을 내는 게 훨씬 더 어렵습니다. 그게 <탑 셰프> 같은 요리 쇼에서 채소 주요리 만들기 등의 과제를 내는 이유입니다.
5. 치즈와 디저트의 흐름입니다. 다이닝 인 스페이스의 코스에서 둘은 맞물립니다. 어찌 되었건 소르베-아이스크림의 조합은 저에게 설득력이 없습니다. 게다가 아이스크림이 이미 <라 새종> 시절 나왔던 메뉴라는 걸 감안하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디저트의 세계는 무궁무진한데, 굳이 예전 카드를 다시 쓰실 이유가 있을까요? 또한 ‘치즈 코스’라는 것이 문자 그대로 저민 치즈 한두 쪽을 의미하는 게 아닙니다. 민트 (또는 다른 과일) 시럽이 소르베의 형식을 갖춘 것처럼, 치즈 또한 다양한 형식을 갖춰 식탁에 오를 수 있습니다. 다시 한 번, 가능성은 무궁무진합니다.
6. 셰프님 의견을 다 읽고, 이 모든 것이 주관과 객관에 대한 오해에서 나온 것은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평가 자체는 객관적일 수 없습니다. 오랜만에 또 언급해보겠습니다. ‘입맛은 주관적이다’라고 말합니다. 궁극적으로 따져보자면 맞습니다. 하지만 주관적인 입맛을 쌓는 요소는 객관적입니다. 다시 말해, 평가는 주관적으로 내리지만, 신뢰(credibility) 확보를 위해 객관적인 요소를 최대한 갖추는 게 평자의 의무입니다. 크게 두 가지로, 첫 번째는 지식과 정보입니다. 공부한다는 말씀입니다. 두 번째는 평가 환경입니다. 얻어 먹지 않습니다. 제가 굳이 두 번째 식사를 하고 레스토랑으로 고구마 한 상자를 보냈던 건, 서비스로 주신 와인값을 갈음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인간적인 차원에서 음식 자체에 감사를 표하려는 마음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만, 그건 한없이 부차적인 사안입니다. 네, 또한 개인적인 차원에서라면 힘들게 한 끼 식사를 만들어 주는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합니다. 그러나 그것과 비평은 별개겠지요.
7. 마지막으로 비평가의 역할입니다. 때로 비평가는 우스개의 대상으로 도마에 오릅니다. 최근 개봉한 <버드맨>을 보셨는지요? 브로드웨이로 유턴한 전직 할리우드 배우가 싫어 ‘여기에서 몰아내버리겠다’며 바들바들 떠는 비평가가 등장합니다. 우습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대놓고 우스운 존재도 있습니다. 음식 만화 <라타투이>의 안톤 이고가 그렇습니다. 실제로 이런 비평가가 존재하니까 그렸다고는 생각합니다만, 저의 지향점은 저런 존재가 아니고 그래서도 안됩니다. 권위는 필요할 수 있지만 권력은 지양한다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적절한 비평으로 요리사의 의욕을 고취시켜주는 것이 진정한 음식평론가의 일’이라는 의견에 동의하지도 않습니다. 3월 초, 저는 어떤 좌담회에 음식평론가의 직함을 달고 참가했습니다. 미술/디자인, 문학 비평가 등과 함께하는 자리였는데요, 거기에서 저는 ‘이 자리에 참가한 것 자체가 나에게는 큰 의미다. 여태껏 음식은 미술, 음악, 영화, 문학처럼 비평의 대상이라고 여기지 않는 분위기가 존재했다. 나의 일은 음식을 담론의 대상으로 삼는 것, 그게 가능함을 보여주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저의 일입니다.
그래서 생각해보건대, ‘적절한 비평’이란 무엇일까요. 일단 ‘생산자의 의욕을 북돋아 주는’ 적절한 비평이라면 그건 제 몫의 일이 아닙니다. 셰프님께서 말씀하시는 블로거의 몫이죠. 그런 평이 인터넷에 넘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런 적절함이 아니라면, 제 몫의 적절함은 이 레스토랑 평가를 비평 담론의 좌표 위에 올려 놓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이것이 ‘맛 있다/없다’의 납작한 평가가 아닌 형식을 갖추어야만 하고, 결론적으로는 원초적인 평가와는 다른 국면을 띠고 지면에 실리게 됩니다. 결론적으로, 저는 생산자를 위해 비평하지 않습니다.
이 레스토랑 리뷰는 몇 달에 걸쳐 올리브 매거진의 편집팀과 의견을 나누며 준비한 것입니다. 그 사이 가장 의견을 치열하게 주고 받았던 대상 역시 적절함이었습니다. 그간 지면 제한 없는 홈페이지에서 ‘plate by plate’의 형식 리뷰를 올렸습니다만, 거기에 지면의 권위나 제약을 한 켜 더 덧대면 또 다른 글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결과가 생산자의 직접적인 반응을 이끌어 냈다면(물론 그걸 굳이 원하지는 않습니다만), 저는 담론 형성의 측면에서 나름 긍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라 믿습니다. 앞으로 더 맛있는 음식 기대합니다. 감사합니다.
흥미진진하네요. 이 곳은 두 번 방문했었는데, 이용재 평론가님의 의견에 100% 동의합니다. 돈이 아깝다거나 불쾌한 정도는 아니지만 확실히 단조롭고 맛의포인트와 메뉴변화가 부족합니다. 그리고 10만원과 미슐랭 얘기는 노셰프님의 글을 읽을때도 평론가님의 답변을 들을때도 역시 섬찟하네요. 입밖으로 내지 않으셔야 할 얘기였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노셰프님과 평론가님의 언변차이가 너무 심해서 – 이건 직업의 문제니까요- 평론가님의 의견이 무척 압도적으로 느껴지긴 하는데요. 노셰프님의 답변에서 무얼 얘기하시려는지 고충은 이해가 충분히 되는 바입니다. 책임을 지는자의 어려움이죠. 힘내십쇼. 평론가님의 평가는 무척이나 아프지만 제가볼땐 최고로 정확한 평가를 하시는 분입니다. 막상 받아들인다고 생각하면 피가되고 살이될겁니다.
이용재님께.
정성 가득한 글 잘 읽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내용에 의구심이 들어 글을 올립니다.
먼저 저온요리를 모든 사람이 선호하는 방식은 아니라는 점에 동감합니다.
그러나 앞에서 언급하셨던 것처럼 저온요리의 과정은 그리 간단하지는 않습니다.
육류, 해산물이 가지고 있는 최고의 숙성일을 계산하여 팬에서 표면을 익힌 후 저온의 오븐에서 2~3차례 열처리와 레스팅을 번갈아 줍니다.
생선의 경우 1분만 초과해도 위에서 언급한대로 생기가 빠진 텍스쳐가 나오기 일쑤입니다.
한마디로 완벽하게 통제하기 무척 까다로운 테크닉입니다.
그럼에도 제가 이 조리법을 택한 이유는 수비드의 단점을(가열-냉각 후 보관-재가열을 통한 재료의 풍미 손실) 보완하는 게 적합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저온요리법에 대한 견해는 취향의 차이로 보는 것이 맞다고 봅니다.
앞에서 말씀하신 승화와 초월에선 값싼 재료로 좋은 음식을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느껴집니다.
물론 요리사로써 지녀야 할 덕목임엔 분명하나 그것이 모든 요리사의 지향점인 듯이 말씀하는것 엔 동감 할 수 없습니다.
저마다의 가치기준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저는 재료간의 조화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걸 접시에 간결하게 표현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또한 “프아그라 토숑은 (토숑-조리사가 앞치마에 걸치는 흰색 천, 토숑으로 푸와그라를 말아 와인 또는 부이용에 익힌 뒤 차갑게 식힌 테린의 변형) 더 나은 음식이고 프아그라를 배추에 만 (실핏줄을 걷어내고 밀도를 재조정하는 것 이상으로 공이 들어간) 요리는 누구나 할 수 있다고 단언하는 근거는 무엇인지요?
위에서 ‘단백질 덩어리’라고 표현하신 요리에는 어림잡아 각 접시마다 30~50%의 야채와 탄수화물(푀유따쥐)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저는 코스 구성상 굳이 야채와 탄수화물을 늘려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덧붙여 말씀드리자면 저도 야채요리를 즐겨 쓰고 싶으나 유통되는 제품의 질과 종류의 한계 때문에 계절별로 가끔 매뉴화 하는 걸로 만족하고 있습니다.
치즈도 마찬가지 입니다.
AOC급의 꽁떼 정도를 구할 수 만 있다면 손님에게 자신 있게 낼 수 있겠습니다만 국내 통관법상 모든 비가열 된 식품은 수입을 불허하거나 통관에 수일이나 걸려 냉동이나 가열된 제품만 구할 수 있는 실정입니다.
(치즈를 재구성해서 요리화 하는 것을 선호하지는 않지만 그것도 치즈의 퀄리티가 보장이 된 다음입니다.)
일본의 경우 신선한 식재료라 하더라도 미리 신고하면 하루 만에 받아볼 수 있는 것과 차이가 있죠.
이런 여건을 고려해서 레스토랑을 비평하시는지요?
3년 전에 라쎄종에서 오리가슴요리를 드시고는 미국에서는 그렇게 익히지 않는다고 말씀 하시던 게 기억이 납니다.
맞는 말씀입니다.
그건 미국오리니까요.
미국산 오리를 먹어 볼 기회는 없었지만 프랑스에서 여러 번 조리해봤습니다.
국내에서 유통되는 것에 비해 살코기와 지방이 두툼하고 탄력이 있으며 호제로 구워도 전혀 비린 맛이 없고 풍미가 깊었습니다.
반대로 말해서 국산 오리는 살코기가 비교적 얇고 껍질이 탄력이 적어 말캉거리며 호제로 구우면 비릿한 맛이 남아 조리법을 달리 했던 것 인데 마음에 들지 않으셨나 봅니다.
다음으로 넘어가서 프렌치 코스 중 프레데쎄르(산미가 있어 쁠라와 데쎄르 사이에 가볍게 먹는 형태가 보편적임)는 소르베로, 데쎄르는 아이스크림으로 제공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것이 결합 또는 재구성을 통해 다르게 보일뿐이지요.
“소르베-아이스크림의 구성은 설득력이 없다”라는 말이 제겐 설득력이 들립니다.
“신뢰(credibility) 확보를 위해 객관적인 요소를 최대한 갖추는 게 평자의 의무입니다”
저도 이 말에 백번 동감합니다.
객관성은 방대한 자료를 토대로 중도를 택하는 것 이라고 생각합니다.
“레스토랑 평가를 비평 담론의 좌표 위에 올려놓는 것” 이야 말로 지금도 수많은 블로거들이 댓글을 통해 실천하고 있는데 굳이 비평가도 합류 할 필요가 있을까요?
객관성을 띤 적절한 비평으로 생산자의 의욕을 고취시킨다는 것이야 말로 한 차원 높은 비평가의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간 써온 글에서 치열함과 진지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윗분의 말씀대로 대부분 제게 도움이 되는 말이라고 생각하고 곱씹어 보겠습니다.
이런 논쟁이 이용재님 에게도 긍정적인 역할이 될 거라 믿고 싶습니다.
끝으로 늦었지만 올리브 매거진의 창간을 축하드리며 레스토랑 비평이 오랫동안 연재되길 바랍니다.
“소르베-아이스크림의 구성은 설득력이 없다 라는 말이 제겐 설득력 없이 들립니다”로 정정합니다.
국내 유통 재료의 한계를 고려한 비평은 전문비평가라면 반드시 생각해야 한다는 셰프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이 점은 음식평론가나 일반 대중이나 아직 부족한 부분이죠. 게다가 장사의 논리가 겹쳐지기라도 하면, 일반고객이 고급식재라고 생각하는 식재를 빼버리긴 현실적으로 힘들기도 하구요.
하지만, 여기서 하나의 함정은, 그럼 구지 외국에 비해 열등한 재료를 꼭 써야 하냐 입니다. 이것은 요리사의 몫이고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블로거들까지 담론을 만들어내고 있는데 비평가가 꼭 필요하냐는 말은 앞뒤가 안맞습니다. 일단 블로거들이 음식비평의 의미있는 담론을 만들어내고 있나요? 두번째, 블로거들이 그렇다고 하더라도 보다 전문적인 비평이 가능한 사람의 역할을 부정하면 안되겠죠. 가정식 백반집하는 사람이 많은데 구지 파인다이닝 셰프들이 음식 만드는데 참여해야 하나요라는 말과 같이 들립니다.
재료간의 조화를 중시한다는 말은, 뭐 안 그런 셰프가 어디있겠냐는 반문이 가능합니다. 즉, 너무나 기본적인 사항이므로 그 이후의 스테이지를 논해보자면, 이라는 전제로 이용재님이 말씀을 하고 계신것 같습니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지만, 재료간의 조화를 정말 생각한다면 외국에 비해 질이 떨어지는 재료를 굳이 써서 조화를 시킬 필요가 있겠냐는 거죠. 왜냐하면 재료간의 조화보다 더 중요한게 바로 그 재료 하나하나의 퀄리티이기 때문입니다. 또 한가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지보다 떨어지는 재료를 꼭 써야한다면, 재료의 열등함을 상쇄시킬 셰프의 창의성과 스킬 혹은 재료의 변형이 있어야만 한다는 뜻이겠죠.
야채나 탄수화물의 부족에 대해 셰프님이 퍼센트까지 제시하면서 의도된 것이라고 하면, 이건 레스토랑의 특성이라고 생각해 줘야 할 것 같네요. 베지테리안 코스를 따로 짤 수 있듯이 의도된 구성일 수 있습니다. 아주 심하게 발란스가 깨지지만 않았다면 셰프는 이 정도가 딱 알맞다고 느끼고 낼 수 있는 문제니까요.
여기서부터는 개인적인 취향이 반영된 의견입니다.
흰살생선의 수비드. 프렌치에서 많이 시도하고 있는 걸로 알지만 흰살생선의 수비드는 재료를 가장 망치는 조리법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나 강과 바다의 경계에 서식하는 숭어, 농어(프렌치에서 잘 사용하는 재료이기도 하죠)는 적절한 처리와 가열을 통하지 않으면 그 특유의 냄새를 잡기 힘듭니다. 게다가 이걸 수비드로 할 경우, 결과는 최악입니다. 참돔, 옥돔, 다금바리등이 자연산일 경우 수비드는 답이 될 수 있습니다. 어느 정도 탄력을 가지면서도 살에 냄새가 배여있지 않고, 청크가 되는 식감을 피할수 있는 재료이기 때문이죠. 광어와 가자미를 가열한 후 둘의 식감 차이가 어떤지 경험해 보셨는지 궁금하군요. 가지미는 살짝 과저리가 되어도 그다지 뻑뻑해지지 않고 부드럽게 먹을 수 있지만 광어는 그렇지 않습니다. 수비드는 재료의 특성을 이해한 후 적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민물과 바다의 경계이면서도 냄새없고 감칠맛을 이끌어 낼 수 있고 온도에 민감한 갯장어를 들 수 있겠네요.
활어회가 요리가 아니라는 평론가의 말씀은 프렌치 요리가 아니라는 말씀이라면 이해할 수 있지만 요리전반에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있어보입니다. 이것도 마찬가지로 식재에 따라 적절한 숙성을 거친 날 것이 맛있는 경우가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날 것의 섬유질을 “잘라내는” 스킬이야말로 요리의 본령일 수 있습니다. 칼로 제대로 잘랐을 때 혀가 느끼는 감촉과 맛의 차이는 생각보다 큽니다.
물론 노량진 시장에서 광어 한마리 대충 잘라서 나오는 그런 것들에 대해서까지 요리라고 말씀드리는 것은 아닙니다.
일본요리에서 흔히 하는 말이 있습니다. 인스턴트 라면에 이것저것 넣어서 맛있게 만드는 것보다 사과껍질 깎는 게 요리라고. 꼭 활어회뿐만 아니라 파를 잘라보아도 제대로 안자르면 그 끈적끈적한 액이 흘러나와 모든 요리를 망칠 수 있습니다. 하물며 파도 그런데, 파보다 100배는 자르기 힘든 활어를 자르는 것은 어떻게 보면 요리중의 요리일 수 있습니다. 모든 재료는 자르는 순간 drip하니까요. (즉 재료의 손실)
노진성씨의 주장은 비평의 역할을 지나치게 과소평가하고 비평을 함 장르에 종속 되어있는 장르로 착각하고 있는데서 나올 수 있는 발언.
국내에서 생산되는 메추리(알을 낳기 위해 길러진 후 폐기 또는 도살되어진)와 프랑스산 메추리(순수하게 최상의 고기를 위해 길러진 후 잘 손질되서 질소 포장되어진)를 비교 테이스팅 하면 굳이 냉동이라도 수입을 써야하는지 이해를 하실겁니다.
이건 창의성으로 극복하기 힘든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식재료의 차이는 경험해본 사람만이 알지요.
또한 국내에서 유통되는 재료는 한식을 위해 키워지고 유통되는 것이 대부분이라 양식에 맞는 재료는 한정되어있는게 현실입니다.
그러나 말씀하신 의도대로 국내에는 외국의 식재료를 뛰어넘는 재료들도 여럿 있습니다.
단 그것으로 프렌치화 시키기엔 시행착오와 적지않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나마 최근 특수야채를 전문적으로 재배, 보급하는 업자들이 생겨나서 조금 숨통이 트이는 실정입니다.
담론의 의미는 “이야기하고 논하다”입니다.
비평가라면 응당 그 이상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뜻이였지 비평가의 역할 자체를 부정하는 의미는 아니였습니다.
이용재님과 의견차가 있어 공개적으로 논쟁을 펼쳤지만 대부분 동감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재료간의 조화를 중요시한다” 이 것이 요리사의 기본이지만 그 범주에 적합한 요리를 만든다는게 얼마나 어려운지 알기에 그렇게 답했던것입니다.
윗분 말씀대로 수비드를 이해하실수도 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건 생선의 두께와 그에 따른 최적의 숙성상태라고 생각합니다.
얇은 생선은 어떤것이든 수비드나 저온조리에 적합하지 못 하다고 생각합니다.
제 경험상 3kg급 광어와 700g급 가자미(보통 500g~700g이 유통 됨)를 수비드(또는 저온요리)했을 때 결과물은 광어가 더 낫습니다.
둘의 숙성일은 2~3일 차이가 납니다
포괄적인 레스토랑 리뷰와 밑그림과 같은 의견교환에서 자꾸 다른 각론으로 이야기를 전개시킬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참고로, 흰살생선을 2,3일 이상 숙성시킨다는 말씀같은데, 과숙성이고 시간만 버리고 계십니다. 이게 자연산이 아니고 양식이라면 재료를 완전히 망치고 계십니다. 생선의 적절한 숙성에 대한 어드바이스가 필요하시다면 언제든 문의 주세요.
대체적인 생각은 본문의 글에 동의합니다만, “말씀하신 의도대로 국내에는 외국의 식재료를 뛰어넘는 재료들도 여럿 있습니다. 단 그것으로 프렌치화 시키기엔 시행착오와 적지않은 시간이 필요합니다.”라는 문장엔 진심으로 공감합니다. 이건 진실로 어려운 문제고, 문제를 다 풀기 전에 영업을 하지 말라는건 너무 가혹한 이야기니까요. 가능한 것도 아니구요. 다만 평론에 역할에 대해서 “비평가라면 응당 그 이상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말씀에도 공감 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오히려 일반 블로거보다 더 명확하고 분명하게 선을 긋고 평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산자의 의욕을 북돋아 주는” 비평은 독 사과 같은것이거든요.
식당은 경영이기도 합니다.
10만원짜리 식사에를 하면서 미슐랭3스타의 수준을 원한다는
노진성 쉐프님의 항변은 정당할뿐만 아니라 그자체로 존재하는 냉정한 현실입니다.
더 높은 수준의 파인 다이닝을 원하신다면 30만원을 지불하는 식사라야 가능한 것이죠.
흔히 정신적은 부분을 강조하는 분들이 이런 현실을 간과하는 경우가 많죠.
그 나라의 경제력, 구매력 이런 부분까지 이야기를 하면 너무 장황해질것 같아 생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