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식의 이해(17)-미슐랭 레스토랑 국내 후보는 존재하는가?
얼마 전, 지방출장간 지인 덕에 충청권의 명물 튀긴 소보루를 먹을 수 있었다. 포장지에 ‘2011년 미슐랭 가이드 선정’이라 쓰여 있었다. 빵 속의 팥소는 달콤했건만 쓴웃음이 배어 나왔다. 이 미슐랭은 그 미슐랭이 아니다. 모두가 우러러보는 별점의 레스토랑 가이드는 ‘레드,’ 소보루의 빵집이 이름을 올린 건 관광가이드인 ‘그린’이다. 어디에든 이름을 올리는 건 영업에 도움이 된다. 또한 여기만 미슐랭 가이드 기재 사실을 내세우는 것도 아니다. 업소는 물론 온갖 매체에서도 그 사실을 대대적으로 다뤘다. 하지만 ‘론리 플래닛’에 이름을 올렸다고 대대적으로 내세우는 업소를 보았나? 매체는? 권위를 지닌, 훌륭한 가이드지만 기억에 없다. 결국 이건 혼동이 빚어낸 해프닝이다.
당시 몇몇 매체에서는 그린을 레드의 징검다리라 주장했다. 이 미슐랭이 나왔으니 저 미슐랭도 곧 나오리라는 것. 물론 나는 동의하지 않았다. 음식은 거짓말을 못하는 법, 식탁에 오른 접시에 ‘NO’라는 대답이 담겨 있었다. 실로 한결같아 ‘이것이 이구동성이구나’라는 인상마저 받았다. 그리고 3년, 레드는 아직 기약이 없다. 질문을 던져볼 차례다. 우리나라에는 미슐랭 별을 받을만한 레스토랑이 존재하는가?
대답을 위해 약병 이야기를 하겠다. 지금 내 책상 위에 놓인, 주로 어린이를 위한 50ml쯤의 플라스틱 병이다. 약 대신 소금이 담겼고, 출처는 신라호텔 중식당 팔선이다. 1인당 24만 원짜리 코스의 중심인 북경오리의 곁들이다. 껍질을 전병에 싸 먹고 남은 고기에 함께 챙겨준다. 집에서도 호텔 소금의 맛을 즐기라는, 이 얼마나 친절한 배려인가?! 미안하지만 그렇지 않다. 100달러 안팎 짜리 코스의 미슐랭 별 하나짜리 레스토랑에만 가도 손님의 이름이 찍힌 메뉴를 내온다. 식사를 마치고 일어설 때는 전용 봉투에 곱게 담아 내민다. 레스토랑 시스템을 갖추기 위한 총비용에 비하자면 미미한 액수일 것이다. 다만 격을 맞추고픈 의지, 경험의 완성도 향상을 위해 세부사항에 기울이는 주의의 표현일 뿐이다.
물론 물약 병에 담긴 소금에도 노력은 깃들어 있노라고 믿는다. 나름 기발하다고도 생각했다. 그래서 안타깝다 못해 다소 짠했다. 누구의 머리에서 나온 아이디어일까, 또 대체 어디까지 가서 이 병을 잔뜩 사왔을까. 하지만 이건 부분점수를 줄 수 있는 주관식 수학 문제가 아니다. 철저히 결과로 승부해야 한다. 보기 좋고 맛도 있는 요리에서 머리카락이 나왔다면? 당연히 0점이다. 이것도 마찬가지, 불도장과 샥스핀의 식사라면 약병을 찾아 소금을 담을 시간과 노력으로 전용 용기를 제작해야 맞다. 그래야 격이 맞는다. 아니면 아예 소금을 딸려 보내지 말던가.
이 작은 약병 하나가 많은 것을 시사한다. 전체를 이루는 요소 사이의 묘한 불일치와, 그걸 문제로 인식 못하는 의식과 시각의 부재다. 화려한 ‘센터 피스’와 고급 식기 사이로 자리잡는 후줄근한 메뉴판, 잘 ‘익으셨’다며 스테이크는 높여주되 손님은 불편하게 만드는 서비스 등이 불일치, 이런 것들을 지적해도 ‘쓸데없는 트집을 잡는다’며 묵살하는 게 부재다. 더 구체적인 예도 많다. 하나만 들어보자. 국내 가이드에서 매년 최고의 레스토랑 가운데 하나라며 꼽는 곳이 기억난다. 자리에 앉았는데 옆자리 식탁보의 구멍이 눈에 바로 들어왔다. 500원짜리 동전보다 더 컸다. 딱히 보려고 본 것도 아니었다. 너무나 크고, 너무나 뻔한 자리에 있어 그냥 눈에 바로 들어왔다. 이런 곳이 제대로 된 음식을 내놓을까? 그럴 리가 없다. 눈은 물론, 혀로 느낄 수 있는 구멍이 숭숭 뚫려 있었다. 웰던으로 익은 흰살생선의 뻣뻣함과 소스의 들척지근함은 아직까지도 생생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곳은 올해의 가이드에서도 여전히 최고 가운데 한 자리를 꿰차고 있다.
‘안녕하십니까’의 열풍이 초겨울의 땅을 한 차례 휩쓸고 지나갔다. 한 번도 써먹지 않았다. 이 지면을 위해 아껴두었다. 국내 최고 호텔 중식당의 물약병과 자칭 국내 최고 가이드 선정 최고 레스토랑의 구멍 뚫린 식탁보, 모두 안녕하지 못하다는 증거다. 위쪽에 자리잡은 식탁이 이렇다면 그 아래로는 어떨까? 마감 직전, 공중파의 고발 프로그램에서 치킨을 뒤흔들었다. 미슐랭 별 달린 레스토랑에서도 흔히 쓰는 가공법인 염지를 놓고 문제 삼았다. 나트륨 과다섭취의 원인이라는 지적이었다. 물론 근거 없는 선정보도다. 염지의 원리는 배추 절임과 같으니 나트륨이 문제라면 김치부터 끊어야 하며, 닭을 바늘로 찌르는 건 대량 조리의 효율을 위해 필요한 절차다. 어쨌거나 다음날, 트위터에는 염지 치킨을 파는 업체로 항의 전화가 빗발쳤다는 이야기가 꾸준히 올라왔다. 근거 없는 ‘착한 식당’ 등과 더불어 우리의 음식 현실이 이렇다. 어디 이뿐이겠나. 반찬 재활용, 1인 식사 제공 거부 등 짚고 넘어가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 모두 안녕치 못하다는 증거며 서로 연결되어 있다.
이렇게 위아래로 안녕치 못한 현실에서, 미슐랭 별에 대한 질문이 과연 의미 있을까? 그런 레스토랑의 존재가 정확한 우리 식문화의 현주소일까? ‘청춘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서 논객 한윤형은 ‘국가대표 판타지’를 문제 삼는다. 드러나는 성적을 위해 ‘생활과 떨어진 ‘별동대’를 키워내며, 국가대표 판타지를 다른 영역에 적용하면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는 지적이다. 현재 미슐랭 별을 궁금해하는 우리의 현실이 딱 이렇다. 극소수의 레스토랑이 별을 받는다고 해서 전체 식탁 수준의 향상의 원동력으로 작용할 수 없다. 따져보니 어째 질문을 괜히 던졌나, 싶다.
월간 ‘젠틀맨’ 2014년 2월호
*NOTE: 이 글이 실린 뒤, 담당 에디터로부터 해당 레스토랑이 약병을 더 이상 쓰지 않기로 정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내부적으로도 검토하던 사항이었는데, 실무자가 이 글을 읽은 것이 영향을 미쳤다고.
약병…. ㅋㅋㅋㅋㅋㅋㅋㅋ
슬프다 못해 웃기네요…. ㅠㅠ
지금은 아마도 바뀌었을텐데 저도 다시 가보기 않아 잘 모르겠습니다. 굳이 약병을 쓸 이유가 있었을까요…
글 참 좋으네요. 잘 읽었습니다. ^^
감사합니다 ^^
음식을 제하고서라도 ‘불편하지 않을 만큼’의 배려나 서비스를 받아 본 기억이 없어요.
매우 부족하거나 매우 과하거나의 둘 중 하나.
중간을 못 찾는 것이 문제입니다.
잘 익으셨다며 스테이크를 높이는 불편한 서비스는 사실 손님과 실선에서 움직여보지 않은 책임자의 탓이 크죠. 그런 이상한 높임법을 하지 않으면 예의없다고 진상 부리는 손님도 태반(고급 레스토랑을 가도 있음)인데다 그런 손님과 트러블을 만들지 않으려고 대부분의 책임자는 직원에게 이러이러한 이상한 존댓말을 하라고 교육하죠. 시민 의식이 개선될 때, 그때가 되어서야 우리는 미슐랭 가이드를 생각해 볼 수 있을 겁니다
네, 전 현재라면 들어오지 않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의미가 없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