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면옥(과 우래옥), 끝없는 평양냉면의 가격 논쟁과 한식의 맛
원래 정인면옥에 대해서만 쓰려는 의도였으나, 그 사이에 우래옥을 한 번 더 갔다왔으며 잊지 않고 평양냉면의 가격에 의문을 품는 기사가 또 한 번 나온지라 이 모두를 묶어서 다뤄보겠다. 무슨 글을 어떻게 써도, 또 그에 대해 반발하는 의견이 많다고 해도 평양냉면과 뭐라도 선정적으로 써보려는 매체와 기자가 공존하는 한 같은 기사는 내년, 내후년에도 또 나올 것이므로 냉면과 가격에 대한 글은 이것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쓰지 않을 것을 미리 못 박고 시작하겠다.
먼저 정인면옥. 인상비평을 하자면 ‘의도는 알겠지만 요령 없는 화법’ 이다. 파워블로거의 표현을 빌자면 “슴슴”하고 “담백”한 맛을 내고 싶지만 그 방법은 모른다는 느낌이다. 불고기를 예로 들자면 단맛을 빼는 것이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 보이는데, 과도한 후추와 참기름이 빠진 만큼 채워넣은 다음 그 이상을 보탠다. 두 사람이 2인분을 시켰는데 그 후추와 참기름 맛 때문에 끝까지 먹기가 어려웠다. 맛을 내는 기술적인 차원, 즉 요령이 떨어지기 때문이라고 본다. 굳이 비교하자면 우래옥의 불고기는 더 달지만 먹다 보면 ‘원하는 맛이 이런 것이군’이라고 받아들일 수 있다. 그 요령에 어느 정도 설득이 된다는 의미다.
그리고 거기에 하나 덧붙이자면, 굳이 1++등급의 한우를 불고기로 내는 의미는 무엇일까. 고기를 저미다 못해 다지고, 그걸 참기름과 후추 맛이 많이 나는 양념에 버무려서 굽지도 볶지도 않는 조리방식으로 익혀 먹는다. 이 일련의 과정에서 마블링 위주로 평가 받는 1++의 매력은 없어진다시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그건 단지 정인면옥의 것 뿐만 아니라, 불고기라는 조리방식이 품을 수 밖에 없는 한계다. 이것이 과연 쇠고기에 걸맞는 조리법인가? 혹 직화에 구워 별 다른 양념 없이도 먹을 수 있는 정육 이외의 부위를 소화하기 위한 궁여지책으로 나온 조리법에 우리가 여전히 매달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다음은 냉면. 분명히 순면을 9,000원에 먹을 수 있다는 건 장점이다. 이제 우래옥도 “주방의 사정”으로 인해 순면을 하지 않는다니 그 의미가 한층 더 부각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장점이 온전하게 맛의 영역에 놓여 있는 것인지 심리 또는 의식적 영역에 놓여 있는지는 미지수다. 난 50:50 정도라고 본다. 분명 즐거움은 있지만 그게 100% 맛에서 온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한발 더 나아가, 평양냉면을 먹는다는 행위 자체가 그런 것이라는 생각마저 한다. 가서 먹어도 별 맛이 없고, 조리의 원리 등을 곰곰이 따져보면 그럴 수 밖에 없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지난 주말, 오랜만에 먹은 우래옥 냉면도 딱 그 범주 안에 든다. 한마디로 말해 예전보다 맛이 없었다. 면은 평소보다 질기고 딱딱했으며, 겉절이든 국물이든 이젠 조미료를 감당하기가 어렵다. 다 먹고 나서면 을지로 4가에서 광화문까지 걸어가도록 온 입안이 얼얼하다. 물론 설정이겠지만 고명인 신김치는 육수에 균형을 불어넣기에 너무 시고 군내나며 질감도 아삭하다기보다 물컹해 어중간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양냉면 자체를 세상에서 존재하지 않는 음식 취급하고 영영 안 먹을 생각은 없다. 이유도 간단하다. 이 음식의 대체제를 스스로 만든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면만 해도 글루텐이 없는 메밀 반죽을 집에서 압착해서 뽑는다는 것 자체가 무리수인데다가, 노계든 불고깃감이든 뭐든 국물을 내어 거르고 차게 식히는 건 보통 손이 많이 가는 일이 아니다. ‘냉면은 한국의 분자요리’라 일컫는 한국의 서양 요리 셰프들도 있다던데, 설사 그걸 과장이라고 치부하더라도 이 음식이 맛은 고사하고 형체 자체를 갖추는 것 자체가 가정의 조리 환경과 인력 등등으로 거의 불가능하다는 건 인정해야 한다(참고로 먼 옛날 시도해본 적도 있다).
따라서 평양냉면에 대한 가격 논란은 바로 그 시점을 정확하게 보는 것으로부터 운을 떼어야 한다. 이 평양냉면이 비록 음식이지만 그 본질 자체가 복잡한 음식이며, 음식으로서 최소한의 얼개를 갖추는 시점까지 이르는 것만으로 어느 정도의 가치를 보장해주어야 한다는 의미다. 다만 그러한 논란 가운데에서 어쨌거나 음식의 본질인 맛에 대한 평가가 빠져 있음을 반드시 지적해야만 하고, 또 실제로도 개선해야만 하는 것이 평양냉면과 이를 둘러싼 논란의 핵심 과제다.
하지만 이론적으로는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가운데, 실제로 여기에서 평양냉면의 맛이 더 나아질 수 있는지는 미지수다. 면보다 육수 때문이다. 고기와 뼈를 우린 국물을 차갑게 먹는 건 그 본성에 반하는 시도다. 왜 고기를 물에 넣고 끓이는가. 물론 여러 요인을 꼽을 수 있지만 우리나라 국물 음식의 현실에서는 ‘양 늘이기’가 큰 몫을 차지한다고 본다. 국물을 내는 것만큼 고기의 가치를 분배가 수월하게 해주는 조리법이 또 있겠는가. 어쨌든, 고기와 뼈를 물에 끓였을때 취할 수 있는 이점인 지방이나 젤라틴 등은 국물을 차게 먹는데 되려 방해가 되는 요인이다. 둘 다 국물을 뜨겁게 데우지 않는 한 겔 상태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국물의 질감을 북돋아주는 이 요소를 전부 걷어내고 순수하게 맛에만 기대어야 한다면, 과연 그 재료 자체를 익혀 먹는 것만큼의 만족을 느낄 수 있을까? 난 이 지점에서 조미료 등으로 두터움을 더해주지 않으면 안되는 불가피함이 싹튼다고 본다. 달리 말해, 차가운 고기국물에 면을 말아 먹는 것이 평양냉면의 핵심이고 본질이며 매력이지만, 바로 그 핵심과 본질과 매력이 이 음식의 한계로 작용하는 것이다.
여기까지 따져보면, 내가 요즘 한식에 궁극적으로 품고 있는 의문까지 꺼내놓지 않을 수가 없다. 과연 우리가 우리의 것이라고, 익숙하게 먹는 한식의 기본적인 맛 조합이 과연 현재에도 꼭 들어맞는 것일까? 인간이 생리학적으로 느끼는 기본적인 다섯 가지 맛(단맛, 짠맛, 쓴맛, 신맛, 감칠맛)에서 압도적인 감칠맛을 발효장류에서 주로 얻고 거기에 단맛과 매운맛까지 폭발적으로 가세한 현재의 맛 조합이 우리에게 정서적인 것 이상의 즐거움을 안겨주고 있느냐는 회의다. 무엇보다 맛의 특성과 양념의 양을 따져보면, 분명 재료의 신선함을 북돋아주는 설정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전만큼 식품을 저장시켜 두었다가 먹을 필요가 없는 요즘 시대에 우리는 정서적인 만족에만 의지해 딱히 도움되지 않는 것을 고수하고 있지는 않은가, 냉면 한 그릇에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다.
그리고 다시 평양냉면으로 돌아와 살펴보자면, 나는 현실적으로 가격을 내리는 것보다 우리가 심리적인 거리를 정확하게 설정하는 것이 해법이라 믿는다. 달리 말해, 냉면은 이러한 음식이고 쉽게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니 우리가 친숙하게 생각하는 것보다 먼 음식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분명히 집밥이 아니고, 그럴 수도 없다. 그러므로 욕망의 거리를 재설정해야 한다. 더군다나 아무리 면을 많이 주더라도 이건 결국 고급화된, 미화시킨(glorified) 분식일 뿐이다. 즐거움을 위한 별식의 영역에 머물러야 할 것을 끼니의 영역에 어거지로 편입시키려는 시도가 되려 화를 불러오는 것은 아닌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사족: 생마늘과 생고추가 가뜩이나 양념 범벅인 우리 밥상에 더 필요한지도 따져보아야 하지만, 설사 그렇다고 해도 스스로 고급을 표방한다면 이렇게 미리 썰어두다 못해 색마저 변한 건 내지 말아야 한다.
이 글을 읽으며, 특히 본문 중 ‘재료의 신선함을 북돋아주는 설정’ 이라는 말을 들으며 불편한 느낌이 들더군요. 그러고보니 최근 ‘식재료의 본래 맛을 살린 요리’ 라는 표현을 여기저기서 들으며 다소 답답함을 느꼈던 기억도 납니다. 그 답답함은…뭐랄까, 저런 식의 표현에는 그 방법론을 지킨 요리가 진짜배기다, 라는 뉘앙스가 느껴지기 때문이 아닐까 싶은데요.
식재료의 본래 맛을 살린 요리만이 길은 아니며, 또한 그게 최고의 맛은 결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맛은 본질적으로 주관적이며 그 자체의 우위는 없다고 봅니다. 그게 조미료 위주의 감칠맛이든 재료의 특성을 잘 살린 맛이든.
이 글에서 말하는 ‘재료의 신선함을 북돋아주는 설정’은 ‘식재료 본래의 맛을 살리는 조리’가 아닙니다.
제가 둔감해서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어떻게 다른지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보기엔 글에 등장하는 불고기 얘기도, 냉면의 육수가 그 음식과 모순된다는 얘기도 본질적으로 식재료 본래의 성질(아, 적고보니 제가 맛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다소 확장하여 생각하긴 했군요)을 죽인다는 얘기로 들리거든요. 저는 그게 너무 보수적이고 좁은 생각이 아닌가 싶어 답답했던 거구요.
혹시 제 생각이 틀렸다면 지적 부탁드려도 될지요?
그래서 우래옥 냉면이 맛이 있다는 것인가 아님 맛이 없다는 것인가? 도대체 무슨 글을 이렇게 현학적으로 쓰냐?
당신이 우래옥 냉면이 맛있다면 당신은 평양냉면을 모르는 사림이다. 우래옥 냉면은 그냥 갈비탕 국물에 메밀면을 넣은 것에 불과하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이런 주장을 여러번 들었습니다만, 각 냉면집이 지향하는 맛의 기준과 개념이 다른 것 같습니다. 저는 각자 다른 방향성을 가지는 여러 집들을 번갈아 다니는 편인데요 (아예 품질 미달인 곳은 재방문 안하지만요). 우래옥 냉면은 그 나름대로의 맛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집 냉면은 풍요로운 현 시대에 맞춰 발전했다고 봅니다. 물론 진한 육향은 호불호가 갈리긴 합니다만 우리나라 요식업계, 그것도 냉면 업계의 품질 개선과 서비스의 고급화에는 분명 기여했습니다. 글 쓰신 분께서 연세가 꽤 되셔서 십대 시절 그 옛날 평양이나 평안북도에서 냉면을 드셔보셨다면 할 말이 없지만 (제 주변에는 제법 많으십니다) 진짜 평북의 냉면을 추억하시는 분들께 여쭤보면 냉면이라는 음식은 지금보다 아주 많이 가난하던 시절, 메밀 추수가 끝나고 동치미가 익은 겨울철에만 먹을 수 있는 특식이었고, 운이 좋으면 꿩고기 정도를 넣는 얼음 동치미 국물을 넣은 메밀국수 정도라고 기억하십니다. 지금 먹으면 의외로 맛이 없을 수도 있다면서요… 그래서 과거에 가장 근접한 냉면을 꼽아달라면 나름 곤궁한 맛과 (덜 풍요로운 맛이라고 해야할까요?) 낡은 정서가 풍겨나오는 장충평양이나 을지면옥 정도를 선택하곤 하시지요. 하지만 그것이 진짜 평양냉면이다 – 라고 하기엔 무리가 따르지 않을까요.
일제 시대에 평양냉면집이 서울에서 번성하기 시작했는데 그 번성의 이유 중 하나가 아지노모토=msg라고 합니다… 태생부터가 조미료에 범벅된 음식인데. 아지노모토를 빼고 억지로 그 맛을 낼려고 하자니 가격이 한없이 올라가고 그렇다고 넣으면 싸구려 음식이 되고 딜레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