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집 아이스크림, ‘팀킬’의 상징
생각난 김에 간만에 벌집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무슨 홍보대사질이라도 하는 건가? 당연히 그건 아니고… 마침 서래마을 갈 일이 생겼는데 거기에 ‘스위트럭’이라는 내가 아는 범위 안에서 제 삼의 브랜드가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 주인이 먹거리 엑스파일 게시판에 줄줄이 글을 써 놓은 모양인데… 물어보니 매상이 반 이하로 줄었고 프랜차이즈하는 회사에서 소송을 넣을 것이며, 개인 차원에서도 할 것이라고…
이전에 소프트리를 먹고 쓴 바 있는 것처럼 기본적인 생각은 바뀌지 않는다. 아이스크림 멀쩡하고 벌집도 어쨌거나 멀쩡하다. 하지만 그 둘을 합쳐놓으면 멀쩡하지 않다. 그래서 ‘팀킬’이다. 아이스크림의 차가움이 벌집을 더 딱딱하게 만들고, 딱딱해진 벌집은 아이스크림의 부드러움을 해친다. 기억하자, 이것은 ‘소프트’ 아이스크림이다. 온도나 오버런 비율을 조정해 여느 아이스크림보다 더 부드럽게 만들고 그것이 핵심 특성이다. 한편 꿀은 온도가 높아야 그 부드러움과 향이 활성화될텐데 되려 아이스크림 때문에 그렇게 될 수 없다. “쫄깃꼬들”한 걸 좋아한다면야 내가 말릴 것이 아니지만 아이스크림과 관련 제조 과학기술이 발달해온 방향을 되짚어보면 이것은 거기에 역행하는 움직임이라고 볼 수 밖에 없다. 꿀과 벌집을 먹으면 건강에 좋으므로? 요즘 고과당 콘시럽을 놓고도 ‘결국은 당이니 설탕과 몸에서는 똑같은 작용을 한다’라는 주장이 꽤 설득력 있게 퍼져 나가고 있는데, 그렇게 따지면 결국 당인 꿀은 설탕과 대체 얼마만큼 다른 것일까? 찾아보면 살균 작용 등을 한다고는 하지만 그 효과가 이만큼의 당을, 그것도 아이스크림과 함께 먹는 것을 정당화해줄 수 있을까? 그리고 이것은 어차피 디저트, 쾌락을 위한 식사의 잉여부문이니 굳이 효능같은 걸 따지고 드는 것도 이성적이지 않다. 또한 이것을 디저트의 맥락에 놓고 평가한다고 해도 지나치게 원시적이라 큰 점수는 줄 수 없다. 벌집과 꿀은 조리 도구나 기술 등등이 발달되지 않았던 고대 국가 시절이나 디저트로 먹었다고 하니까. 그리고 밀랍이든 파라핀이든 씹히지 않는 벌집 조각은 삼켜도, 뱉어도 둘 다 그냥 웃긴다.
아이스크림과 벌집의 결합은 결국 ‘팀킬’이라고 그랬는데, 크게 보면 이 디저트 자체가 결국은 팀킬의 상징이다. 1. 유행을 탄다. 2. 너도나도 사업에 뛰어든다. 3. 돈 될 아이템을 찾는 자영업자가 부나방처럼 달겨든다. 4. 곧 레드오션이 된다. 5. 그와 동시에 선정적인 팔아먹을 거리를 찾는 언론에서 턴다. 6. 좋다고 줄서서 먹던 사람들이 덮어놓고 욕한다. 7. 사업 전체가 짜부라들어 관련 업계 종사자들도 연쇄로 피해를 본다. 8. 이를 반복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어느 누구도 이것을 맛의 평가가 필요한 음식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효능과 돈벌이와 취재 대상으로서 벌집 아이스크림은 존재하지만 디저트나 아이스크림으로는 여기지도 않고 평가도 하지 않는다. 물론 그것도 팀킬의 일부. 팀킬이여 영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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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때 열었다가 이영돈의 ‘먹거리 X파일’로 타격을 입었다. 작년에 쓴 글의 아이스크림이 여기에서 먹은 것이다. 한창 이 문제로 떠들석할때 기고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