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호텔] 피에르 가니에르-솜씨 없는 복제화

선생이 가르침-원격 수업?-의 방법으로 모사를 택했다. 그의 그림/도면을 던져주고 그 위에 트레이싱지를 올려 모사하라는 것. 학생은 선생이 시키니까 하지만 그 방식의 큰 그림은 들여다보지를 못한다. 가르치지 못한 선생의 잘못일 수도 있고, 헤아리지 못한 학생의 잘못일 수도 있다. 문제는 갈수록 그림이 헛나간다는 것이다. 그래서 멀리에서 한참 계시다 선생이 찾아와보니 학생은 아주 다른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는 슬픈 이야기…

…가 한 3년만에 가본 롯데호텔 꼭대기의 피에르 가니에르의 현실이 아닌가 싶다. 디저트를 빼고 먹을 수 있는 코스(서양 요리로서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아예 짝짓기 자체가 없는 와인(물론 맞는 걸 요리마다 고를 수는 있지만, 그 모두를 골랐을때 혜택이 전혀 없다. 왜 페어링을 제시하고 전 요리에 선택했을 경우 10%라도 할인해주는 제도 같은 걸 도입하지 않을까?) 등, 음식 자체를 따져보지 않더라도 비판보다는 슬픔이 배어나오는게 이곳의 상황이다. 대체 얼마나 맞춰줘야 되는 건지 알 수 없지만, 그러다보니 결국은 최소한의 틀마저 위태롭달까. 그래서 이것이 정말 손님 유치를 위한 노력인 것인지, 아니면 레스토랑이나 호텔 자체, 불러온 명망있는 셰프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마저 저버린 것인지는 생각을 해봐야 되겠지만…

간단히 말해서 못먹을 정도로 형편없는 수준은 아니다. 게다가 당신이 원하는 것이 그냥 서울 시내 한복판 별 다섯 개 호텔 꼭대기의, 미슐랭 별 셋을 따먹은 셰프의 이름이 붙은 레스토랑을 경험하는 것이라면 그냥저냥 넘어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것이 정말 그 브랜드만으로 기대를 품게 하는 레스토랑의 경험을 주느냐면, 그건 절대 아니다. 무엇보다 조리의 세심함이 너무 떨어지는데, 이게 딱히 게으르다거나 주의가 의도적으로 부족하다기 보다, 그냥 안되는 것을 한다는 느낌이다. 최선을 다하는데 그 최선이 자신의 최선일 뿐, 저 맥락에서는 최선이 될 수 없달까.  맛과 기술의 이해가 완전하게 없는 걸 따라하는 느낌. 철학이나 콘셉트까지는 따지지도 말고.

뭐 다른 건 됐고 마지막 디저트라고 나온 부시 드 노엘(아니 크리스마스 지난 1월에 이걸 왜 낼까?)에서 초콜릿 판때기가 떨어진 걸 보시라. 만일 이걸 괜찮다고 생각하는 마인드라면 이곳의 음식은 누가 해도 잘 할 수가 없다.

한편, 위대한 셰프가 얼마나 관여하는지 모르겠지만 콘셉트도 다소 의심스럽다. 특히 ‘그래 이렇게 해야 이 동네 사람들은 프렌치라 느끼겠지’라는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코스랍시고 나온 요리 네 가지 가운데 세 가지에 푸아그라를 쓰는 건 안일하고 촌스러운 대처다. 요즘 옮기는 책에 요리 비평가들끼리 조엘 로뷔숑의 감자와 송로버섯 요리를 먹고는 ‘네, 맛있죠. 그런데 송로버섯과 감자, 안 맛있을 수가 있나요?’라고 말하는 대목이 나온다. 이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푸아그라? 맛있다. 하지만 음식의 맛을 푸아그라에 기대어 낼 생각을 한다면 안일하고 촌스러운 거다. 그래서 난 자주 먹을 일도 없지만 그럴 상황을 만들지도 않는다. 사실 진짜로 셰프에게 도전정신이 있다면 그 자체가 맛을 압도하듯 결정짓는 재료는 피하고, 설사 쓰더라도 다른 코스에 겹치지 않게 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리하여 굳이 길게 글을 쓸 필요도 없다. 넉넉한 공간이 채 반도 차지 않은 가운데 가장 좋은 자리에 앉은 일가의 남자 어른이 식사 내내 가래침이라도 바로 뱉을 양 컥컥거리는 소리가 온 레스토랑에 울려퍼지는 걸 들으며, 위대한 셰프에게 편지라도 한 통 써, ‘요즘 당신의 제자가 그린 그림의 수준을 냉철히 점검해보았는가?’라고 물어보기라도 하고 싶다. 가만, 근데 그분이 곧 오셔서 거의 일곱자리에 가까운 코스 요리를 낸다고 하셨는데….

 by bluexmas | 2014/02/27 13:18 | Taste | 트랙백(1) | 덧글(4)

 Tracked from vindetable at 2014/03/23 17:11제목 : 음식평론에 관한 단상

[롯데호텔] 피에르 가니에르-솜씨 없는 복제화 0. 나름 열심히 먹어왔다. 과장하면 먹기 위해서 파리에 두 번 갔었으니까. 그리고 규합총서에서 브리야 샤바랭의 미식예찬까지 많은 음식 관련 책들을 읽어왔다. 레시피 책들까지 포함하면 한 백여권은 읽었나보다. 만들어보기도 많이 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처음 동태찌개를 끓인 이후로 한식에서 중식, 양식, 거기에 간단한 베이킹도 해오며 지내왔다. 음식을 만들다 보면 확실히 음식점들……more

 Commented by JK아찌 at 2014/02/27 13:29 

아무것도 모르는 제가 생각하기에도 3번이나 푸아그라 연속은 이해 안가는 군요..
 Commented at 2014/02/27 13:50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p946612 at 2014/02/27 16:03 

블러그의 숨은 애독자중 한명입니다. 오늘 읽은 뉴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해요.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4022701031532071001 “유명쉐프, 음식촬영은 포르노” 저는 음식사진을 찍지는 않지만, 음식사진 보는것은 즐기는 사람이라 남한테 피해안가게 빠른시간에 후레쉬/소리안나게 찍으면 상관없다. 이런생각을 했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Commented by renaine at 2014/02/27 21:45 

디저트 없는 코스에 무슨 의미가 있나요……

 

 

1 Response

  1. 11/26/2014

    […] 초, 롯데 호텔의 피에르 가니에르에 간 후, ‘솜씨 없는 복제화‘라고 평했다. 이후 이를 포함, 내가 하는 일의 (거의) 전체에 대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