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를 기다리는 나날들 (2)

이제는 회사에 넥타이를 매고 가지 말아야 되겠어요. 마음을 좀 다잡고 일해보겠다고 넥타이 매고 가는 날마다 하는 일은 넥타이 완전 필요 없는 노동이라서…

오전에는 사무실 사람들이 자리에 없고 저도 할 일이 없어서 마음 잡고 청소를 했습니다. 마감 지날때마다 한 번씩 대청소를 해서 쓸데없는 도면들을 다 버려줘야 되는데 그것도 귀찮아서 하지 않으면 임시로 머물고 있어서 가뜩이나 비좁은 사무실이 더 일하기 불편한 공간으로 변해버리거든요. 그래서 목을 조이는 넥타이를 매고 열심히 바닥을 굴러가면서 청소했죠.

 

사실 이건 지난주에 청소하고 찍은 사진입니다. 이번주에는 책상 옆에 있는 서류철을 정리해서…

하여간 오후에는 지난번에 하다 말던 프로젝트를 이어서 한다고 모형을 만들었는데 또 디자인이 (즉흥적으로) 바뀌어서 일할 의욕을 완전히 상실했다고… 저는 말단이고 그다지 목소리 크게 내고 싶은 생각이 아직까지 없어서 디자인이 바뀌는 것 자체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 편인데, 경력도 없는 주제에 가소롭게도 그러한 결정이 즉흥적으로 이뤄진, 즉 고민의 흔적이 없는 것 같으면 사실 별로 믿음을 주지 않는 아주 나쁜 버릇이 있습니다. 돈은 못 벌어도 이 직업은 정신적인 고민과 육체적인 노력이 아주 많이 요구되는 것인데, 그렇지 못한 상황을 보면 다들 이 직업에 너무 오래 몸담고 있어서 불감증에 걸린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때가 있어요. 사실 의사나 변호사처럼 돈도 많이 못 벌고 그만큼 전문직종으로 사회에서 인정도 못 받는 건축가라는 직업이 말도 안되는 면허시험제도(최소 3년의 소위 ‘견습 intern’ 과정을 거쳐 $250내고 보는 시험 아홉과목에 합격해서 건축사 자격이 주어집니다. 내년 6월부터는 일곱과목으로 줄지만 거기서 거기겠죠, 시험이 더 어려워질테니까…)를 가진 이유도 건축가의 실수에 따른 후유증이 크기 때문인데, 오래 일하다 보면 그런 생각이 흐려지는 건지 참…

이상은 뭐 아직도 조직생활에 개념없는 인간의 푸념이었고, 사실 어제 소나기가 와서 노래를 한 곡 같이 올려 볼까, 하고 Youtube를 뒤져봤는데 딱 하나 올려 놓은 비디오가 마침 레코드사 소유라서 embed가 안 되더라구요. 그래서 꿩 대신 닭 노래를.

Surface-The First Time

제가 중학교 때, 그러니까 1988년 경에 인기 많았던 Surface라는 그룹의 노랜데 머리모양이며 안경이며 전체적으로 너무 촌스럽지만, 그래도 그때는 흑인들 Rhythm & Blues도 생악기 연주에 리듬도 미친듯이 쪼개지 않는 절제의 미덕을 발휘해주셔서 참 듣기에 편안한 매력이 있다지요. 원래 올리려던 노래는 ‘Shower Me With Your Love‘라고 링크를 따라가시면 들을 수 있습니다. 두 노래는 느낌이 사실 거의 같은데 이 두 곡만 반짝 인기를 얻고 이 그룹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어요.

아, 오늘도 비는 어느 하늘 구석탱이에 짱박혀서 길고 긴 낮잠을 쳐 자는지, 오지 않았습니다.

목말라요.

 by bluexmas | 2007/06/07 12:10 | Life | 트랙백 | 덧글(8)

 Commented by ibidem at 2007/06/07 12:19 

Boys to men 이나 Color Me Badd가 더불어 생각납니다. 말씀대로 지금 들으니 정겹게 느껴지는 걸요.

(아, 그런데 링크가 깨졌나보아요)

 Commented by bluexmas at 2007/06/07 12:30 

얘들은 그 두 그룹보다 약간 앞 세대에요 1988년 노래니까… 지금 들으니까 그 해 겨울에 혼자 어딘가 막 싸돌아 다니던 기억이 나네요.

(아, 그리고 링크 고쳤어요. 원래 이글루스의 툴을 이용하면 http:// 매크로를 친절하게도 제공하는 바람에 지워주지 않으면 그 매크로가 두 번 겹쳐서 링크가 깨지죠, 지적에 감사^^)

 Commented at 2007/06/07 19:00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ppink at 2007/06/07 20:04 

1988년이라면,,티비속에서 굴렁쇠 소년이 한창 뛰어다닌 그때로군요.

다행스럽게도,, 천천히 불러주셔서 몇마디 알아듣..겠….ㅋ

 Commented by chan at 2007/06/08 01:16 

전 이런 80년대후반,90년대초반 노래 참 좋아합니다. 노래는 역시 그때가 젤 듣기 좋져.이지리스닝.

전망 참 좋군요.쾌적한 작업공간!-아마 청소의 효과겠죠?ㅋㅋ

>>왠지 시애틀의 잠못이루는 밤이 생각나는군요.ㅋ

 Commented by bluexmas at 2007/06/08 09:57 

비공개님: 제가 책이라면 환장을 하는 사람이라서… 곧 정보 알려드릴께요. 감사합니다^^

ppink님: 그 굴렁쇠 굴리던 어린이가 배우 한다고 나온 걸 어디에서 봤어요. 스물 여섯인가 되었을텐데. 뭐 그때나 지금이나 생각해봐도 올림픽 이벤트 전체가 그다지 좋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호돌이도… 그 올림픽 행사 한다고 지방에서 학생들 동원해서 부려먹다가 버스 사고 나서 다친 경우도 있었고 하여간…생각해보면 군사정권 냄새가 너무 많이 났던 것 같아요.

chan님: 뭐 나이 먹은 티 내기는 싫은데 그때는 우리나라나 외국 음악 모두 뭐랄까 순박한 면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사무실은 전망은 좋은데 chan님 방처럼 서향(좀 더 정확히는 북서향)이라서 저녁에 해가 머리가 아플 정도로 들이닥치죠. 게다가 전면 유리 커튼월이라서 온도도 엄청 올라가고…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은 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네요.

 Commented by chan at 2007/06/09 23:52 

해변패션 추천합니다.

그리구 그 명작을 아직도? 꼭 보십쇼.

 Commented by bluexmas at 2007/06/10 13:15 

chan님: 회사에 프린트 셔츠랑 반바지 입고 갈까요? 샌달 끌고?^^ 서랍에 선글라스는 있어요. Sleepless in Seattle 봐야되는데 늘 텔레비젼에서 조각조각보니까 빌려보기는 좀 그렇더라구요. 그래도 시애틀은 가보긴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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