삿포로 휴가 후기-통제와 환상
휴가를 휴가처럼 보내기 위해 안간힘을 써 게으름을 부렸다. 덕분에 ‘이건 꼭 해야만(먹어야만) 한다’라는 강박에 시달리지 않고 오래만에 느긋하게 굴었다. 가져간 음반도 다 듣고 책도 다 읽었으니 그만하면 성공이었다.
사진의 사과를 먹으며 통제에 대해 생각했다. 과연 일본 음식이란 어떤 음식인가.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자연의 맛을 최대한 살리는데 목표를 두고 있는 걸까. 기껏해야 1~2년에 한 번 갈 뿐이지만, 회를 거듭할 수록 그렇게 생각하기가 어려워진다. 차라리 원하는 맛을 내기 위해 무수히 손을 댄 나머지, 감각으로 알아차리기가 어려울 지경에 이르렀다고 말하는 편이 맞지 않을까. 이 사과만 해도 그렇다. 적절히 달고 시고 씁쓸하고 아삭하지만, 그 모든 요소가 적절하게 존재하기 위해서 엄청난 통제를 거쳤노라는 느낌이 확실히 들었다. 손에 닿는 대로 먹은 것도, 또 부러 찾아가서 먹은 것도 전부 그러했다. 훌륭하지만 절대 선을 넘지 않는다. 예측이 어느 정도 가능하고, 또 거기에 딱 들어 맞는다. 좋지만 즐겁지는 않은 경우가 많다. 나는 ‘whim’ 이나 ‘playfulness’를, 즉 재미를 훌륭한 음식의 마지막 요소라고 생각하는데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어떤 경우엔 종종, ‘아예 그쪽으로는 가지 않겠다’라는 의지를 보여주는 것도 있다. 똑바르고 질서정연하지만 거기까지다. 물론 그 단계까지 이르기도 어려우니 그만큼만 되어도 훌륭하지만 거기까지다.
물론 통제에는 긍정적인 측면이 분명 있다. 알아야 다스릴 수 있다. 어떤 요소가 필요한지 알고, 또 그 요소를 미세조정하는 방법을 아는 것이다. 어떤 맛이 나야만 하는지 이해하고 있고, 이를 실현할 수 있다는 의미다. 그래서 어디에서 무엇을 먹더라도, 그냥 호텔 앞에서 500원짜리 스키야키동을 사먹더라도 그 특유의 단맛에 몸서리를 칠지언정 맛없음에 진저리치지는 않는다. 물론 거기엔 분명, 누군가 지적한 것처럼 요즘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블랙 기업’, 즉 우리나라와 별 다를 바 없는 노동 착취 등이 일정 수준 영향을 미칠 것이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음식과 맛에 대한 이해나 관심이 우리보다 높은 건 사실이다. 일본 음식이 단 한 번도 내 취향인 적은 없지만, 늘 말하는 그 전 단계의 완성도가 문제였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사실 전부 새삼스러운 이야기다. 전혀 새로울 것이 없다는 말이다. 하지만 비행기가 삿포로 공항을 뜨면서, 나는 마이클 폴란이 ‘Cooked’에서 언급한 ‘하라하치부(腹八分)’를 생각했다. 정말 일본사람들이 배가 부르기 전에 젓가락을 내려놓는 생활 습관에 이끌려 산다면, 밤 열두 시 넘어서까지 불을 환히 밝히는 꼬치집이며 라멘집 등의 존재가 가능한 것일까. 맛소금을 절묘하게 뿌려 또한 겉은 바삭하지만 속은 여전히 부드럽게 구운 닭간이며, 첫 입에는 ‘고기가 이렇게 달 수가’라고 느끼도록 만드는 양념의 양고기가 가능한 걸까. 적당히 먹고 젓가락을 내려놓는다는 만트라가 정말로 모든 이의 뇌리에 박혀 있다면 이토록 조미료를 절묘하게 써서 맛을 내는 음식문화가 발달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요는, 저렇게 마이클 폴란과 같은 이가 생각하는 일본이라는 건 그냥 환상의 산물이 아니냐는 것이다. 이 문화에는 분명히 훌륭한 구석이 있지만, 그 ‘훌륭함’이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완전히 반대쪽의 좌표에 자리잡고 있지는 않느냐는 것이다.
또한, 육식 자체를 하지 않던 나라가 이다지도 음식에 열광해, 극단적인 마블링의 소를 만들어 낼 정도로 음식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쩌면 다른 측면에서 돌파구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은 아닐까. 적당한 가격과 노력으로 쾌감을 줄 수 있는 것이 이제 음식 밖에 없어서 그런 건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그 욕구 만큼은 적절한 수준으로 충족되고 있다고 보는데, 현재 그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는 우리나라는 어떤가. 다들 그렇게 애써 찾아 나서는 만큼 만족하고 있는 걸까. 우리가 그런 것에 신경쓴지 그리 오래지 않았으니, 시간이 지나면 조금 더 나아지기는 하는 걸까. 웬만해선 조작과 통제의 흔적을 느끼지도 못하도록 무수히 손을 댈, 시행착오를 겪을 준비를 하고 있나, 과연?
국민의 90 퍼센트 이상이 OCD가 염려 되는 나라라서 그렇습니다.. 농담이 아니고 정말로요. 계획을 짜고 그걸 실행하는데 한 치의 오차도 용납하지 않고 거기에 드는 막대한 비용에도 개의치 않죠. 기꺼이 지갑을 여는 소비자들이 있어서 가능한 일이겠지만요. 일상에 녹아 있어서 문득 깨닫는 그 배려와 통제에 소름이 끼칠 정도.
말씀대로 음식의 소위 ‘가격 대 성능비’에서 일본을 따라올 나라는 없다고 생각하는데, 그것도 완벽주의의 산물이자 안으로 파고들 수밖에 없는 섬나라의 한계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집 앞 (주택가) 20석짜리 이탈리안 비스트로에서 프랑스산 메추리 로스트를 800엔에 파는 걸 보고 아득해졌어요… .
음식으로 관심이 간다는 건 어찌보면 마지막 단계는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뭐 상황 비슷한데 그것도 안 된다면 그거야 말로 진짜 불행한 것이겠지만…
말씀하신 일본 음식의 끝까지 철저하게 통제하는 성향을 저는 굉장히 동경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아직 어리고 경험도 많지 않아서 그런지는 모르겠습니다. 아마 국내에서 어딜 가서 뭘 먹더라도 맛이 불확실하단 사실에 불안해해야 했던 경험 때문일지도 모르겠네요. 그래서, 안정적으로 통제되어 공급되는 맛을 골라 먹을 수 있는 사회라면 식생활에 있어 그만한 사회가 없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말씀하신대로, 식사의 재미란 거기서 끝나면 안 된다는 생각은 전부터 어렴풋하게는 느끼고 있었지만, 이 글을 보고서야 명확해졌습니다.
블로그에서 참 많은 것을 배워갑니다. 많은 것들을 참 열심히, 상세하게 좋아하시는 분이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덕분에 제가 좋아하는 것들을 어떤 시각으로 보아야 더 좋아할 수 있을지, 더 큰 만족을 얻을 수 있을지 방향이 잡히는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모든 견해와 취향에 100% 동감하지는 않지만 – 그럴 필요도 없지만 – 그 견해와 취향을 알기 쉬운 말로 설명해주시니, 읽는 이의 취향을 성장시키기에 더없이 좋은 글들이라 생각합니다. 좋은 글들 감사히 잘 읽고 갑니다.
그만큼 속속들이 통제할 수 있다면 그것도 큰 자산이고 능력입니다. 저의 취향에 맞지는 않지만 수준이 높죠. 폄하하는 의도는 아니었습니다. 말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