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삿포로] 몰리에르-사소한 결핍의 축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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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 직후 쓴 짧은 에서 밝혔듯, 삿포로에서는 아주 열심히 먹지 않았다. 대신 두 군데의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양식(프랑스), 일본요리-에서 먹은 게 거의 전부였는데, 결론을 미리 말하자면 그다지 즐겁지 않았다.

2012년, 미슐랭에서 삿포로 특별 가이드를 발간한 적이 있다. 몰리에르(Moliere)는 거기에서 별 셋을 받은 레스토랑 가운데 하나로, 홋카이도 전역에 걸쳐 레스토랑과 카페 등을 운영하는 라팡 그룹의 간판 레스토랑이다. 북해도산 양이 주요리로 나오는, 예약 필수라는 메뉴 테루아르(15,000엔)를 먹었다. 코스 전반에 걸친 인상은 한마디로  ‘사소한 결핍의 축적’이라 정리할 수 있다. 크게는 탄수화물, 지방, 단백질의 기본 3요소부터 작게는 온도나 맛의 디테일까지 사소하다면 사소하고 또 그렇기 때문에 사소하지 않다고 할 수 있는 요소들이 반드시 하나 이상 빠져 있었다. 간단히 정리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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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뮤즈 부시라 할 수 있는 첫 번째 요리는 우엉 수프. 영어가 가능하다는 지배인(Maitre d’)이 식탁에 올려 놓으며 ‘굉장히 뜨겁다’고 주의를 주었다. 아닌게 아니라 수프는 식기를 기다려면 족히 십 분은 걸릴 정도로 뜨거웠다. 바로 입에 넣으면 입천장이 벗겨질 정도의 온도. 미리 주의를 줄 정도라면 실수 아닌 의도라는 의미. 궁금했다. 한편 우엉의 단맛과 ‘흙냄새(earthiness)’라 할 수 있는 특유의 구수함이 풍부한 지방 위에 생생하게 올라 앉아 있어 그 자체로 훌륭한 맛이었지만 그 여운을 한 단계 더 승화시켜주는 향신료나 질감의 대조를 이뤄줄 고명 등등은 없었다. 그것이 첫 번째 요리의 결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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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요리는 섭씨 65도 계란, 즉 ‘온센 다마고’와 벨루테,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 이파리 채소 소스(바질?) 등등이었다. 말려 올라가지 않을 정도로 두툼하게 저며준 검은 송로버섯에선 별 향이 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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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요리는 굴 튀김과 와사비 크림 프레시. 화이트는 적당히 잔으로 마시기로 하고 보네(Côte de Beaune, 부르고뉴-피노 누아)를 주문했는데, 지배인이 대개 ‘굴-화이트’지만 주문한 와인이 잘 어울린다며 권해주었다. 꽤 두툼한 맛의 굴을 튀기기까지 했으니 역시 적당히 두툼한데다가 통상적으로 체리나 베리의 향을 지닌 레드 정도는 되어야 기가 죽지 않을 테니 이해가 가는 한편, 굴맛이 진하면 결국 아연 등등의 금속이나 흙맛 또한 진할테니 뒷맛의 충돌은 피할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 다소 단단하다고 까슬까슬하게 굴을 튀겼다면, 소스는 다소 흐를 정도인 아이올리 등등이 더 나을 것으로 보였다. 또한 일본식으로 와사비가 해산물과 튀김의 뭉툭함에 균형을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면, 차라리 와인은 드라이하고 두툼하지만 향은 살아 있는 화이트 쪽으로 가는 편이 전체의 조화면에서 나을 것이라고도 생각했다. 바닥에 깐 솔잎의 향이 훌륭했지만, 입에 넣고 먹는 요소에는 특출난 구석이 없었다.

네 번째 요리는 따뜻한 채소 샐러드. 일단 ‘따뜻하다(warm)’는 형용사에 맞게 채소의 온도가 아주 적합했다. 다시 한 번, 앞에 나온 우엉 수프의 온도가 100% 의도이자 동시에 이해할 수 없음을 확인시켜 주는 설정이랄까. 또한 설컹거리지도, 무르지도 않고 심이 살짝 살아 있을 정도로 익힌 채소는 완벽했으니 코스의 정점이라고도 꼽을만 했다. 처빌의 향과, 무른 구석이 전혀 없도록 살짝 데친 질감 위로 퍼지는 풋콩의 고소함은 아직도 생생하다. 이렇게 훌륭한 가운데 유자 콩포트의 단맛과 쌉쌀함, 접시 오른쪽 아래의 깨가 다소 두드러져 다른 드레싱은 물론 채소의 훌륭함을 덮었다. 유자는 그렇다 쳐도 깨는 없는 편이 나아보였다. 아니, 사실 유자도 쓸데 없었고 아예 드레싱이라는 게 별 필요 없어 보였다. 써놓고 보니 샐러드에서는 결핍보다 과잉이 단점이었던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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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까지 먹고 난 뒤, 다른 웨이트레스가 튀길 것이라며 산 새우를 가지고 나와 보여줬다. 그리고 곧 나온 튀김. 아무 것도 없이 반으로 가른 새우를 그대로 튀겨 덩그러니 놓았는데, 아주 살짝 과조리된 데다가 간도 거의 되어 있지 않아 밋밋했다. 하지만 조리보다 설정의 의도가 더 궁금했다. 굳이 가지고 나와 보여줄 정도로 싱싱한 새우라면 튀겨야할 필요가 있었을까? 게다가 다른 나라도 아닌 일본이고, 새우는 알마저 밴 상태였다. 이런 새우의 매력을 최대한 살리고 싶었다면 차라리 카르파치오를 만들고 시트러스 바탕의 소스에 알을 섞어 가볍게 깔아주는 정도면 충분하지 않았을까. 통째로 튀겨 아무 것도 곁들이지 않고 덩그러니 놓은 새우에선 개입을 하지도 안 하지도 않은 어정쩡함이 묻어 났다. 의도를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물론, 의도를 몰라도 즐길 수 있게 해주는 조리마저 훌륭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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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전복. 오징어 먹물을 섞어 구운 빵을 가루내어 전복에 입혀 익힌 뒤 먹물 소스에 얹었다. 그리고는 오징어 먹물 “리조토”에 얹었는데, 이 리조토라는 것이 결국은 그냥 잘 지은 밥. 밥 자체로는 참 맛있다고 할만한 것이었지만 다소 쫀득, 또는 끈적거리는 밥알은 크게 보아 서양 요리 또는 작게 보아 전복 자체의 질감과 어울리지 않았다. 전복도 저온 조리 등등 현대 레스토랑이 그다지 어렵지 않게 활용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만큼 부드럽지는 않은 걸 감안한다면 차라리 소스를 없애고 죽같은 “리조토” 를 깔아주는 편이 더 잘 어울렸을 것이다. 그 밖에 소금과 기타 향신료 등의 부재는 공통적인 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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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가심용 소르베. 맛보다 잔의 차가움이 더 확실히 입가심 시켜준다는 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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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우처럼 한 번 보여준 뒤(왜?) 접시에 담아 나온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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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 어떤 부위인지 감이 안 왔는데, 보여준 것처럼 갈비(rack)를 통으로 구운 뒤 끝부분만 발라낸듯. 육즙(jus)의 도움이 전혀 필요 없을 정도로 부드러운 조리 상태를 감안한다면 왜 전복 등등은 그렇게 조리할 수 없는지 조금 궁금했다. 간은 오른쪽 윗편의 소금으로 방점을 찍어줘야 맞는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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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치즈코스. 오타루 어딘가의 호밀빵 위에 프랑스의 염소젖 치즈를 얹었는데 일반적인 조합이라고 할 수 있는 익힌 과일 약간이 부족했다. 덕분에 아주 평범한 조합으로 전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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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조린 배와 가지가 나왔는데, 기다렸다가 치즈코스와 함께 먹어야 하는 것인지 궁금했다. 그 자체로 훌륭했지만 단지 익힌 질감이 그랬을 뿐, 염소젖 치즈와 어울릴 정도의 농축된 맛이나 질감을 지니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둘을 을 아우를 수 있는 한 가지였다면 더 낫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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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삶은 밤을 마이크로 그레이터로 갈아 얹은 크림 브륄레. 밤은 훌륭했지만 평범한 크림 브륄레와는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었으며, 그 단맛이 이 코스의 마지막을 장식할 수 있는 성격으로 보이지 않았다. 이 또한 차라리 일본에서 열심히 만드는 몽블랑 류의, 보다 더 적극적으로 밤을 참여시킨 디저트 쪽이 나았을 것이다.

코스 전체가 어딘가 모르게 한두 가지씩 빠진 듯하고 아귀가 안 맞는 느낌을 주는 가운데, 전체적인 접객도 좀 그러했다. 손님이 적은 시간에는 코스를 움직이는 속도가 꽤 빨라 서두른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만석이 되자 서두르는 느낌이 가시지 않으면서 전체적인 간격이 굉장히 커졌다. 아마도 영어를 쓸 수 있다는 이유로 내 식탁을 맡은 지배인은 유쾌하고 친절했지만 식탁에 올때마다 자켓 소매 끝을 버터에 아슬아슬하게 스치고 지나가더니, 시간이 흐르면서 부드럽게 녹아버린 시점에서 묻히고야 말았다(물론 말해주지 않았다;;). 이 밖에 굳이 언어 문제가 아니더라도 알아보기 어려운, 프랑스 일부 지역 위주의 와인 목록도 마음에 걸렸다. 물론 일본 특유의 모순적인 양식 flavor profile 또한 감안해야 되겠지만(대중적인 보통 음식은 꽤 달고 짠편인데 양식, 디저트 등은 언제나 밋밋하다), 사소한 결핍이 쌓여 만들어 내는 전반적 불일치는 이 레스토랑이 세월을 현명하게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지 못한지 오래 된 것은 아닌가- 라는 의문을 품게 만들었다.  여러 가지 이유로 불쾌하지 않았고, 오히려 즐겁기까지 했지만 그 즐거움의 원천은 레스토랑의 본래 의미-맛, 접객 등을 포함한 총체적 경험-은 분명 아니었다. 한마디로 평범하고 또 묵었다.

6 Comments

  • 뭔가 코스 전체를 보는 내내 느낌이… “우리 재료 열라 좋은 거 써! 재료 자체의 맛을 느껴줘!”라는 외침이 들려오는 듯하군요;; 코스마다 통일되는 “어딘가 하나 부족한” 감도 메인 재료 자체를 강조시키고 싶은 과욕이 아닐까 싶고. 그래도… 저 정도라면 꼭 맛보고도 싶네요 ;ㅂ;

    • bluexmas says:

      넵. 근데 사실 재료 좋은 건 어느 지점에 이르면 비슷해집니다. 좋은 레스토랑에서 좋은 재료를 안 쓸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 이삼민 says:

    좋네요 잘봤습니다 좋은글감사드립니다

  • Cloud daniel says:

    미식가이신가요? 좋다는 내용은 찾아볼 수가 없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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