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秀)우유케이크-실패한 모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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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안의 화제, 말도 많고 탈도 많은 파리바게트의 야심작(?!), 순수우유케이크. 나도 한 번 먹어보았다. 이 케이크를 통해 블로그 운영의 새로운 형식을 시험해보려는 의도가 있었다. 어느 자칭 예술가/작가라는 분의 “크라우드펀딩” 기획을 보고 생각한 것인데, 같은 방법을 통해 평가 대상인 음식을 미리 알리고  그 비용을 십시일반으로 조달하는 방식이다. 이를테면 순수우유케이크 큰 것이라면 25,000원이므로 많이도 말고 50원씩 500명, 먹어본 작은 것이라면 6,500원이므로 역시 50원씩 130명, 또는 100원씩 65명에게 손을 벌린다. 트위터 리트윗을 통해 대중의 의중을 떠보았으나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아(…) 결국 계획을 접고 내 돈으로 사먹었다.

이 케이크를 둘러싼 논쟁(취향 존중 등등)을 이해하려면 프랜차이츠 또는 대량 생산 식품의 특성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라면 이야기를 해보자. 내가 가장 좋아하는 건 농심의 해물탕면/오징어 짬뽕이다. 그 국물 맛을 좋아하지만 ‘오오 역시 해물 국물이 시원하네~!’라고 감탄을 뱉지는 않는다. 이건 엄밀히 따지면 해물 국물이 아닌, 그 모사며 진짜 해물을 넣고 끓인 국물과는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천 원이 못 되는 돈으로 이 라면을 산다는 행위는  ‘그 차이점을 이미 인식 및 동의하겠습니까’라는 물음의 체크박스에 표시를 하고 넘어가는 것과 같다. 여러 요인을 들 수 있겠지만 일단 진짜 국물을 내기 위한 재료비와 차이만 감안해서 이 거리의 인식 및 동의는 거의 자동 및 직관적으로 가능하다.

그럼 이 케이크는 어떠한가. 일단 케이크가 모사하려는 대상이 무엇인지부터 살펴봐야 한다. 계란, 밀가루, 설탕, 소금, 바닐라만으로 만든 제누아즈에 동물성 100% 크림을 바른 케이크가 될 것이다. 프랜차이즈가 이런 케이크를 만들지 않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가공 및 유통의 편의다. 동물성 100%의 크림은 깔끔하게 바르기도 어렵고 그 형태가 오래 가지도 않는다. 공장에서 만들어 매장까지 먼 거리를 오는 경우 시간과 거리 양쪽 측면 모두 상품의 가치를 훼손시킬 수 있다. 따라서 비율은 각기 다르겠지만 식물성 크림(팜유)를 섞는다. 그리고 두 번째는 가격인데, 여기에서 대량생산 제품에 품는 기대의 문제가 발생한다. 100% 동물성 생크림을 쓰면 가격이 뛰기 때문에 다른 재료를 섞는 것인데, 그런 방식을 취하는 만큼 가격이 싸지 않고 이는 (베블렌까지 들먹어야 되는지 모르겠지만) 소비자로 하여금 최소한 중급 이상은 되는 제품을 먹는다는 기대를 갖도록 만든다. 달리 말해 가격이 품질보다 높은 기대를 품게 만드는 것이다. 물론 이 케이크와 우유 크림 100%를 쓴 케이크의 거리가 해물탕면과 진짜 해물탕만큼 멀지는 않지만, 가격과 그걸 결정하는 외적 요인(전지현?) 등이 사람들로 하여금 둘 사이의 거리를 통영 시장에서 그날 아침에 들어온 해물을 사서 현지에서 바로 점심에 끓인 탕과 같은 해물이 그날 저녁 서울에 올라온 것을 사다가 다음날 저녁에 끓여 먹는 탕 정도로 인식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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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여기에 맛의 경험이 방점을 찍는다. 사진을 참조하시라. 길디 긴 유제품의 조합이 우유크림을 대신한다. 사람들이 말하는 고소함의 원천은 탈지분유가 압도적이고 거기에 치즈가 거드는 형식인데, 생크림의 풍부함과 고소함에는 미치지 못한다. 이는 두 가지를 모두 경험해보았다면 감각적으로 쉽게 알아차릴 수 있는 차이인데, 문제는 그럴만한 여건을 아직도 쉽게 갖추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원래는 양극 구도여야만 하는 프랜차이즈-독립 자영업자의 현실이 불거져 나온다. 위에서 언급한 이유로 프랜차이즈는 어차피 100% 우유크림 케이크 같은 건 만들지 않고, 또 그래야할 이유도 없다. 그 틈새를 독립 자영업자가 파고 들어가 입지를 다져야 되는데 일단 존재가 미미하며(그런 걸 만든다는 가게는 대부분 부러 찾아가야만 하는 번화가에 존재한다), 더 심각하게는 설사 자기 입으로는 품질을 추구하며 프랜차이즈와 다르다고 내세우는 독립 자영업자 또한 본질적으로는 크게 다르지 않은 제품을 만들어 파는 현실이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두 가지의 맛을 비교하기 위해 집에서 구운 제누아즈에 크림을 발라 먹어야 할까? 만약 그럴 만큼의 의욕을 다수가 가졌다면 이 케이크를 놓고 취향이네 아니네 논쟁을 벌이는 상황 자체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한마디로 이건 그냥 그런 케이크, 맥락이 만들어내는 본질 자체가 맛을 수렴하는 제품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주 간단한 문제다. 이것과 100% 우유크림 사이의 선호도는 사람들이 말하는 취향이 아닌, 재료를 포함한 맥락이 빚어내는 완성도에 달렸고 논쟁의 여지가 없는 사안이다. 생각해보라. 같은 기술을 가진 사람이 다른 재료로 음식을 만들면 어떤 것이 더 맛있을 수 밖에 없을까? 비단 음식만의 문제가 아니다. 같은 장인이 만들어도 싸구려 합판 기타와 결이 좋은 단풍나무로 만든 기타는 다를 수 밖에 없다. 이것이 과연 취향을 볼모로 삼고 벌여야만 하는 논쟁인가? 나는 당위성을 줄 수가 없다.

물론 맥락 등등을 다 걷어내고 맛만 따져볼 수도 있다. 여전히 만족스러운 구석이 없다. 어찌보면 당연하다고 볼 수 있지만, 단지 재료의 차이만이 문제는 아니다. 일단 단맛이 많이 떨어진다. 늘 말하지만 디저트는 식사의 말미에서 ‘임팩트’를 주어 그 앞에서 먹은 음식의 맛을 씻어내는 역할이므로 일정 세기의 단맛을 지녀야 한다. 하지만 일본의 영향을 받았는지 아니면 설탕 공포 때문인지 충분히 달지 않다. 혹 일본 영향이라면 이건 언제나 실패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재료의 풍부함이 뒷받침 되지 않는다면 이 정도의 단맛은 느끼함만을 안길 뿐이며 디저트를 먹는 본질적 의미 자체를 반감시켜버린다. 크림과 케이크를 부분 별로 먹어보니 단맛은 대부분 케이크에서 나오고 있으며, 크림은 원래 단맛이 별로 없고 밍밍(bland)한데, 표면에만 뿌린 것 같은 가루설탕(?)이 조금 보태는 수준이다. 하지만 그보다 이 케이크의 진짜 약점은 질척함이다. 크림도 케이크도 밀도가 없는 가운데 수분이 너무 많아 좋게 말하면 입에서 녹아 없어지고 나쁘게 말하면 허망하다. 다시 말하지만 이 케이크는 맛과 질감 양쪽 모두에서 디저트를 먹는다는 기쁨을 전혀 안겨주지 않고, 그건 사실 너무나도 당연한 결과다.

뽀로로와 타요가 올라 앉아 있는 케이크들의 사이에서 이 민둥산을 바라보는 마음은 참으로 복잡하다. 이 케이크는 사실 아무 것도 아니다. 여태껏 저렇게 맛과 상관없는 것들을 잔뜩 얹어 팔다가 그걸 걷어내고 새로운 이름과 분위기를 붙이고 전지현을 내세웠을 뿐이다. 어떻게 보면 자기 모순이라고도 볼 수 있지만, 프랜차이즈/대량 생산의 일반적인 정책을 따랐을 뿐이다. 게다가 이름마저 교묘하게  ‘순수(秀)’ 케이크, 물론 광고야 그렇게 하겠지만 어느 구석에서도 스스로 맛을 표방하노라고 암시를 주지 않는다. 거듭 말하지만 크게 보면 프랜차이즈의 존재 자체가 맛이 목적이 아니므로. 거기에 다시 해물탕면으로 돌아와 생각해보면, 사실 제과제빵계 전체의 낮은 수준은 사실 심각하다. 의식주 전체를 놓고 생각해보면 ‘의’와 ‘주’에 비해 식의 수준이 떨어지며 특히 제과제빵의 수준이 가장 심하다. 과연 그 이유는 무엇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